빌4:13-20선교 헌금은 주의 나라은행에 저축
많은 신자들이 좋아하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다시 말하면 그 주님을 통하여 모든 것을 할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사람의 힘이나 경험이나 방법이 아닌 배후에 역사하시는 주님의 능력으로 할 수 있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능력주시는’ 으로 번역된 단어의 의미는 합성어 ‘뒤나모오’로 ‘능력을 주다’‘원기를 돋우다’‘활기를 불러일으키다’입니다. 이 단어는 주님의 권능적인 활동을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바울은 주님이 능력 부어 주심이 항상 현재적이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많은 성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믿는 자에게’는 불가능이 없다는 뜻일까요? 이 말씀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바울은 불가능이 없다는 의미보다 어떤 조건 속에서도 만족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이 말씀은 예수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의지하여서 자족할 수 있었던 힘이 궁핍을 극복하였고 괴로움을 인내하였고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견디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원천이 그리스도라 하십니다.
바울이 실제로 고린도교회에 유대인들이 와서 괴롭힐 때 두려워 말고 잠잠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행18:9-10) 뿐만 아니라 힘든 상황에는 나타나셔서 격려해 주셨습니다.(행23:11,27:24)
그렇다면
왜 주님은 이런 은총을 베푸셨을까요? 그것은 다름이 아닌 바울이 주님을 향한 믿음의 자세 때문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결박과 환란이 있는 줄 알면서 예수님의 이름을 가지고 그곳으로 잡혀 갔기 때문입니다.(행20:23-24.빌3:12) 바로 주님의 이름을 들고 복음으로 살려고 할 때 하나님은 주의 이름 안에서 부어 주신다고 하십니다.
지금도 주님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에게 은혜와 능력을 주시기 원하시는데 문제는 하나님 한분으로 만족하는 삶이냐가 문제입니다. 주님이 그 중심에 오셔서 제일 윗자리에 모셔 있고 주님의 인도를 받아 사는 자에게 허락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런 자에게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할수 있게 하십니다.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고후 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1)머물게 하려 함이라
(딤전 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14절에서 내게 헌금을 보내주어서 고맙다고 말씀합니다. 자족하는 은총을 주셔서 빈부에 처할 수 있는 자족하는 마음이지만 그럼에도 나의 괴로움에 함께 동참한 것은 잘한 일이다 칭찬을 했습니다.
괴로움이란 고난, 혹은 시련, 괴롭히는 환경을 의미합니다. 바울의 일상생활이 괴롭고 고난과 시련으로 힘들었던 것을 말씀합니다. 이 모든 고통이 복음 때문이라 하십니다. 이 고난에 동참하는 것은 얼마의 헌금을 보내주는 것으로 동참했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주의 일군들, 종들을 돌보아 주는 것을 하나님이 참으로 귀하게 보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15절에서 처음부터 빌립보 성도들은 바울의 선교에 동참했다고 칭찬을 하면서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다고 말씀합니다. 빌립보교회는 바울에게 물질을, 바울은 영적인 복을 주고받는 사이라고 하십니다. 마게도냐에서 데살로니가에 와서도 그리고 로마 감옥에 갇혀 있을 때도 늘 물질적으로 힘들 때 보내어 주었다고 그들의 관심은 그렇게 쭉 변함없이 계속이어졌다고 하십니다. 변함없는 믿음생활이 귀합니다. 어제는 잘했는데 오늘은 뒤돌아섰다고 하면 어제 일이 의미가 없어집니다. 계속 이어질 때 그것은 아름다운 헌신이고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17절에서 이런 일들이 바울이 구차히 쓸 것이 없어서 선물을 바란 것도 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일들을 하므로 성도들의 삶이 풍요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단어인데 ‘유익’이란 단어‘로곤’은 15절에서 일로 번역하였고 17절에서는 ‘셈’‘계산’이란 의미로 쓰였고 ‘과실’이라는‘카르폰’은 비유적으로 ‘투자로 얻어지는 이익 배당금’이라는 의미입니다. 무슨 말일까요. 선교헌금은 일종의 투자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투자한 이익배당금이 ‘번성’ 즉 많아지기를 ‘풍부’하기를 ‘증가하기를’구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투자는 잘못하면 손해 볼 수도 있는데 하나님께 선교헌금으로 투자 한 헌금은 손해가 없을뿐더러 믿음으로 드리기만 하고 기다리면 배당금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믿음으로 감동이 오면 선교헌금은 많이 하십시오. 18절에서 ‘내게는 있고’의 ‘에페코’는 영수증이라는 의미입니다. 무슨 말일까요? 바울은 영적인 신령한 것을 주었고 빌립보 교회는 육적인 헌금을 보냈는데 그것이 빚을 받은 것이다 라는 의미이며 그 선교헌금을 받는 것은 나의 영수증이다 이 말입니다. 즉 바울은 받아야 할 빚을 다 받았고, 그 영수증이라는 것입니다. 이 헌금이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하십니다. 혹은 냄새, 향기라 합니다. 있어서 넉넉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없는 가운데서 넘치는 사랑으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것이 제물이고 향기이고 축복의 배당금이라 하십니다.
(고후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빌 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라고 축복하므로서 헌금에 대한 감사와 답례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헌금을 드릴 때 마음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야 드린 것의 배당금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을 채무자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신앙은 다윗의 고백처럼 모든 것이 주께로 왔으니(대상29:14) 하는 고백으로 자원해서 드릴 때 그 예물이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하십니다. ‘그 향기로운’제물로 열납 될 때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쓸 것을 다시 말하면 필요를 채우신다고 하십니다. 더 나아가서 말씀을 드린다면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무엇을 달라고 떼를 쓰는 것 보다 이렇게 하나님으로 내려 주시겠다고 하신 부분을 믿음으로 한다면 하나님께서 채우시고 공급하신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은행입니다. 은행장은 나의 하나님이시고 결재자는 예수님이시고 우리는 찾아 쓰게 됩니다. 우리 주님이 창조주 권능자라는 믿음이 있으면 실행하시고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눅18:22, 롬8:32, 고후9:8)
그러므로 선교헌금에 인색하지 마시고 선교사들을 돕는 것으로 하나님은 선교사들의 고난에 동참했다고 인정하시니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 헌신하시고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늘의 산소를 나르는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