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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백취부(河伯娶婦)
하백이 신부를 맞이한다는 말이다
河 : 강이름 하(氵/5)
伯 : 맏 백(亻/5)
娶 : 장가들 취(女/8)
婦 : 여자 부(女/8)
출전 :
열국지(列國志) 7部 全國七雄
사기(史記) 골계열전(滑稽列傳)
사회를 어지럽히는 무위도식(無爲徒食; 하는 일없이 밥만 축내는 사람들) 자들과 힘없는 백성들을 못살게 구는 악덕 관리를 제거하는 훌륭한 목민관을 비유하는 말이다.
중국 대륙에는 두 개의 큰 하천이 있다. 하나는 장강(長江), 즉 양자강이고, 또 하나는 황하(黃河)다. 일반적으로 장강은 '강(江)'이라고 부르고, 황하는 '하(河)'라고 부른다. 하백(河伯)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황하를 관장하는 물의 신이다.
황하는 중국 대륙 북부를 흐르는 총연장 5464㎞의 큰 강이다(서울과 부산의 거리는 480㎞다). 황토 지대를 통과하기 때문에 언제나 물빛은 황갈색이며, 밑으로 내려갈수록 강폭이 넓어져 어떤 곳은 마치 바다처럼 보이기도 한다. 황하 유역은 중국 고대문명의 발상지이며, 중국을 대표하는 전설을 많이 품은 강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강의 신(神)은 변신하는 능력이 있으며, 어떤 때는 사람의 모습, 또 어떤 때는 용(龍)의 모습으로 변한다고 생각했다. 하백(河伯)에서 백(伯)은 맏이나 우두머리를 뜻하기도 하지만 친밀함을 나타내는 경칭(敬稱)으로 쓰이기도 한다.
위(魏)나라의 문후(文侯) 시대에 서문표(西門豹)라는 매우 강단(剛斷)이 있고 정사(政事)에 밝은 인물이 '업(鄴)' 고을의 유수(留守)를 맡게 된 일이 있었다.
문후(文侯)는 그에게 유수의 직분을 내리면서 하남성의 어지러운 질서와 백성들의 고통을 반드시 해결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서문표는 부임하자마자 곧장 지역의 장로(長老)들을 불러 모아서 그들의 고민거리를 들었다. 장로들은 "하백(河伯)이 처녀를 요구하기 때문에 우리들은 항상 궁핍(窮乏)할 수밖에 없고,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모두 굶어죽고 말 것입니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매년 하백에게 바치는 처녀를 사기 위한 준비금으로 많은 세금을 내야하고, 남은 돈은 굿을 담당하는 늙은 무녀(巫女)와 그 제자들, 그리고 삼로(三老; 호족)와 탐관오리(貪官汚吏)들이 나누어 가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해마다 때가 되면 무녀가 집집마다 돌면서 아름다운 처녀를 찾아내 "이 처녀가 하백의 아내감이다"고 하면서 데려가기 때문에 처녀가 있는 집은 모두가 먼 곳으로 도망을 쳐서 마을의 사람마저 줄어들고 있다고 장로들은 하소연했다.
또한 "만약 하백의 아내가 되는 것을 거부하면, 하백이 진노해서 홍수를 일으켜 논밭이 물에 잠기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들도 모조리 익사(溺死)시켜 버린다고 합니다"고 하였다.
장로들의 이야기를 듣고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서문표가 입을 열었다. "다음번에 하백에게 아내를 바치는 때가 오면, 관리와 무녀, 그리고 아내가 될 처녀의 집안 사람들을 모두 강가에 데려오시오. 나도 한번 지켜보겠소."
이윽고 하백에게 아내를 바치는 때가 되어 무녀와 그 제자들(20명)과 삼로(三老), 탐관오리들은 처녀를 데리고 강가로 모였다.
서문표는 무녀의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이 처녀는 아름답지가 않은데… 무녀 할멈, 지금 당장 물에 들어가 하백에게 아뢰시오. 나중에 아주 아름다운 처녀를 바치겠다고."
그러고는 부하들에게 명령해서 무녀 노파를 강 속에 던져버렸다. 무녀가 강에 빠져 나오지 않자 조금 있다가 "무녀 노파는 너무 늙었다는구나. 그렇다면 제자들이 들어가 보라." 서문표는 부하를 시켜 무녀의 제자 3명을 강으로 던졌다.
그리고 잠시 후에, "무녀들은 여자라서 사정을 잘 설명하지 못하는 것 같구나. 그렇다면 삼로(三老)와 관리들께서 한번 들어가 보시는 것이 어떻겠소" 라고 하면서 삼로와 관리 몇 명도 강에 던졌다.
남은 관리들은 얼굴이 흙빛이 되고, 등에 땀을 흘리면서 벌벌 떨고 머리를 땅에 조아리고 살려달라고 빌었다. 서문표는 마을의 관리들과 무녀가 결탁해서 사람들을 쥐어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건이 있고 난 후에야 과중한 세금을 부과해서 하백에게 처녀를 바치게 하는 풍습은 없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서문표는 아전, 호장 및 삼로의 재산들을 몰수하여 그들에게 착취당한 백성들에게 다시 돌려주도록 하고 장가들지 못한 청년들과 무녀 제자들과 결혼을 시키는 등 하남성은 정상을 찾았고 관개시설(灌漑施設)을 확충하여 홍수를 막아 해마다 풍년을 기약했다.
강단 있고, 정사(政事)에 밝은 한 사람의 태수가 많은 백성을 구하고, 악독한 무당과 그와 결탁한 탐관오리를 척결하여 고을의 평화를 회복하는 통쾌한 사건은 정치가들에게 대대로 목민관(牧民官)의 귀감(龜鑑)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기세가(史記世家)에 "나라가 장차 흥하려면 반드시 상서로움인 군자는 등용되고 소인은 퇴출되며, 나라가 장차 망하고자할 때는 현자는 숨고, 어지러운 신하만 귀하게 된다(國家將興必有禎祥 君子用而小人退 國家將亡 賢人隱亂臣貴)"는 말이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사정은 백성들의 삶이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모든 사회질서가 분열로 파괴되어 혼란스럽고, 순리(順理)가 역행하여 세상이 거꾸로 간다고 한다. 그런데도 지도자급들은 국민을 속이고 자기 체면을 세우기 위해 혈안이 되고 있다.
나라가 빚더미에 앉던, 국민이 고통으로 얼룩지던 빚을 내어서라도 표(票)얻기만 혈안이니 안타까운 마음 어찌 혼자만이겠는가? 이 시대 힘이 없어 고통 받는 국민을 구할 수 있는 현명하고 용기 있는 서문표(西門豹)는 진정 없는 것인가?
◼ 하백취부(河伯娶婦)
황하의 신 하백은 바다를 보고서야 그 끝없음에 자신이 한없이 초라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인간은 바다가 아닌 황하 앞에서도 초라함을 느꼈으며, 특히 황하가 범람하면 무기력과 두려움으로 온몸을 떨었다. 북해약 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꼬리를 내린 그 하백을 달래기 위해서 처녀를 제물로 바칠 정도로.
사기(史記) 골계열전(滑稽列傳)에 나온다. 전국시대 때 위(魏)나라 문후(文侯)는 서문표(西門豹)를 업현(鄴縣)의 현령으로 보냈다.
서문표는 업현에 이르자 명망 있는 노인들을 불러 놓고 백성이 괴로워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노인들이 말했다. "하백에게 신붓감을 바치는 일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그 일 때문에 가난합니다."
서문표가 그 까닭을 물으니, 이렇게 대답했다. "업현의 삼로(三老; 마을에서 교화를 맡은 관리)와 아전들은 해마다 백성에게 세금을 부과하여 수백만 전을 걷는데, 그 가운데 하백에게 여자를 바치는 데 20만이나 30만 전을 쓰고 그 나머지는 무당들과 나누어 가집니다. 그 시기가 되면 무당이 예쁜 처녀를 찾아내어 '이 애가 하백의 아내가 될 것이다'고 말하고는 폐백을 보내고 데려갑니다. (…) 어여쁜 딸을 가진 집에서는 무당이 하백을 위해 자기 딸을 데려갈까 봐 두려워서 딸을 데리고 멀리 달아나는 자가 많습니다. 이런 까닭에 성안에는 더욱 사람이 줄고 또 가난해졌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지 실로 오래되었습니다. 민간에서도 '하백에게 아내를 얻어 주지 않으면 백성을 익사시킬 것이다'고 말들 합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하백이 신부를 얻다'는 뜻의 하백취부(河伯娶婦) 관습이다. 황하의 범람이 얼마나 무시무시했으면 산사람을 제물로 바칠 생각을 했을까만은. 실로 오래 되었다고 했는데, 황하 가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짜낸 고육지책(苦肉之策)이라 생각하면 수천 년은 되었음직하다.
그런데 황하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면서도 관리나 아전, 무당들은 또 그걸 이용해 선량하고 무지한 백성을 속여서 재물을 갈취했으니, 참으로 인간이란!
◼ 하백신앙 ; 서문표 지혜가 필요하다
2017년 한 오락채널이 방영한 '하백의 신부'라는 판타지 드라마가 20, 30대 연령층에서 선풍적 인기를 끈 바 있다. 하백은 고대 중국과 한반도 신화에 등장하는 물의 신으로 드라마는 인간 세상에 내려온 하백이 한 여성을 만나는 과정에서 발생한 해프닝들을 코믹하게 다뤘다.
그런데 '하백이 신부를 맞는다'는 뜻의 사자성어 하백취부(河伯娶婦)와 관련된 실제 사건이 수천년 전 전국시대 위나라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사건은 어떤 각색물보다도 훨씬 더 기막히고 배꼽 빠지는 코미디이면서도 후대에 진한 교훈을 남겼다.
중원에 위치한 위나라는 황하의 물줄기를 젖줄 삼아 성장한 나라였다. 강물은 농수와 식수 등 풍요로움을 선사했지만 동시에 홍수라는 대재앙도 일으켰다. 오늘날과 달리 치수가 크게 발달하지 않았고 국토 면적도 상대적으로 작았던 고대 기록에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홍수가 일자 온 나라가 침수됐다'는 한탄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자연히 고대인들은 두려움 앞에 미신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위나라 업(鄴) 지역 백성들은 순결한 처녀를 제물로 바쳐 하백의 자비를 빌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서문표라는 인물이 업 태수로 임지에 도착하니 민생은 말이 아니었다. 이유를 묻자 백성들은 "매년 하백이 장가를 들어 그 뒷바라지를 하느라 등골이 빠진다"고 답했다.
서문표가 알아보니 원인은 부패에 있었다. 인신공양은 어느새 관리들의 부정축재 수단으로 변질돼 호족 등 유력층은 관리들에게 뇌물을 바쳐 면제받는 '부모찬스'를 일삼고 있었고 제물과 제사비용 마련은 오로지 힘없는 서민들 몫이 되어 있었다.
당장 일망타진할 수도 있었지만 그럴 경우 호족들은 "외지인이 제사를 막아 하백을 노엽게 한다"며 미신을 신봉하는 백성들을 선동할 수 있었기에 서문표는 꾀를 냈다. 그는 짐짓 "나도 제사에서 하백을 위로하겠다"며 정말로 다음 제사에 참석했다.
뒷돈을 받아 챙긴 관리와 무당들이 처녀를 수장시킬 찰나 서문표는 제사를 중단시키고 대뜸 "하백의 신붓감이니 마땅히 아름다운지 태수인 내가 확인 해야겠다"며 나섰다.
처녀의 얼굴을 살핀 서문표는 "못 생겼으니 큰일이다. 딴 처녀를 바칠 테니 무당이 우선 들어가서 하백에게 기다리라고 설득하라"고 말하며 누가 말릴 틈도 없이 수하들을 시켜 큰무당을 강물에 냅다 집어던졌다.
관리와 무당들이 속으로 경악하는 사이 서문표는 정말로 하백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 태연히 앉아 있다가 "아무래도 큰무당은 늙어서 시간이 걸리는 듯하다. 제자들이 들어가라"며 이번에는 젊은 무당들을 강으로 던져버렸다.
누가 봐도 진지한 표정의 서문표이기에 아무도 트집을 못 잡고 안절부절하는 사이 그는 다시 "신분이 미천한 무당이라서 어려운가 보니 삼로(三老; 호족)가 들어가라"며 이들도 모조리 집어던졌다.
관리들 사이에서 이제는 경악을 넘어 공포가 들끓었지만 못 본 척 한동안 기다리던 서문표는 "아무래도 안 되겠으니 조정의 녹을 받는 너희들이 한꺼번에 가 봐라"며 관리들을 모두 집어던지려 했다.
그제야 관리들이 머리가 깨지도록 절을 하며 잘못을 빌자 서문표는 "다음부터 하백을 장가 보내려면 너희들이 강에 들어가 중매부터 서라"고 태연히 말했다. 관리 중 누구도 '중매인'을 자처할 리 없었기에 업 지역에서는 부패한 하백신앙이 사라지고 대신 치수기술이 연구돼 민생이 부흥했다.
근래 우리나라에서도 수천년 전 부패한 하백신앙과 흡사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가짜뉴스 근절을 이유로 어용세력을 동원해 진실이 알려지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는 한편, 자산운용을 앞세워 사람들을 현혹해 착취한 뒤 부정축재를 일삼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를 반대하는 쪽의 대응은 미흡하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과거 서문표의 행동은 갖은 핑계를 들어 부정을 일삼고 민생을 기울게 하는 자들의 농간에 대처하는 교과서적 해법으로 남아 있다.
관리와 무당들 입장에서는 하백을 만나라며 강물 속에 자신들을 던져버리는 서문표의 행동을 막을 명분이 없었다. 이를 거부할 경우 아름다운 처녀를 신부로 맞아야 하는 하백의 신성한 권리 혹은 하백의 존재 자체를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되어 그동안 이용해먹은 백성들에게 맞아죽을 수 있었기에 꼼짝도 못했다.
자승자박, 즉 상대로 하여금 자신이 놓은 덫에 스스로 걸리게끔 한 서문표의 지혜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 사기(史記) 券126 골계열전(滑稽列傳)
①순우곤(淳于髡) ②우맹(優孟) ③우전(優旃) ④곽사인(郭舍人) ⑤동방삭(東方朔) ⑥동곽선생(東郭先生) ⑦왕선생(王先生) ⑧서문표(西門豹)
⑧서문표(西門豹)
이 편은 익살스러운 말로 사람들을 감동시킨 사람들에 대한 일화를 열전으로 엮은 것이다. 사마천은 전국시대의 인물인 순우곤(淳于髡), 우맹(優孟), 우전(優旃)에 대해 기록했으며 후세에 전한(前漢)의 사학자인 저소손(褚少孫)이 곽사인(郭舍人), 동방삭(東方朔), 동곽선생(東郭先生), 순우곤(淳于髡), 왕선생(王先生), 서문표(西門豹) 등 여섯 명의 일화를 이 편에 덧붙여 놓았다.
이 장은 저소손(褚少孫)이 기록한 서문표(西門豹)에 관한 전기이다. 서문표는 12개의 수로를 파서 논으로 강물을 끌어들이는 관개사업을 하여, 농업생산 증대에 이바지하였다. 또 그 고장 사람들이 해마다 미녀를 골라 강물에 던지는 풍습의 폐습을 일소했다.
1
魏文侯時, 西門豹為鄴令。
위 문후(魏 文侯) 때 서문표(西門豹)가 업(鄴)의 현령이 되었다.
豹往到鄴, 會長老, 問之民所疾苦。
서문표가 업현에 부임해서 장로(長老)들을 불러놓고 백성들의 괴로움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長老曰:苦為河伯娶婦, 以故貧。
장로가 말했다. "하백(河伯)에게 신부감을 바치는 일로 괴로움을 당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가난하기도 합니다."
豹問其故, 對曰:鄴三老 廷掾常歲賦斂百姓, 收取其錢得數百萬, 用其二三十萬為河伯娶婦, 與祝巫共分其餘錢持歸. 當其時, 巫行視小家女好者, 云是當為河伯婦, 即娉取. 洗沐之, 為治新繒綺縠衣, 閒居齋戒; 為治齋宮河上, 張緹絳帷, 女居其中. 為具牛酒飯食, 行十餘日. 共粉飾之, 如嫁女床席, 令女居其上, 浮之河中. 始浮, 行數十里乃沒. 其人家有好女者, 恐大巫祝為河伯取之, 以故多持女遠逃亡. 以故城中益空無人, 又困貧, 所從來久遠矣. 民人俗語曰; 即不為河伯娶婦, 水來漂沒, 溺其人民云。
서문표가 그 까닭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업의 삼로(三老)와 아전들은 해마다 백성에게 세금을 거두어 가며, 수백 만전을 거두어 그 중에서 하백에게 신부감을 바치게 하는데 20~30만 전을 쓰고, 그 나머지 돈은 무당들과 나누어 가지고 돌아갑니다. 그 시기가 되면 무당이 돌아다니면서 어려운 집안의 딸 중에서 아름다운 처녀를 보면 ‘이 처녀가 하백의 아내가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는 곧 폐백을 보내 주고 데려갑니다. 처녀를 목욕시키고 새로 비단옷들을 지어 입히고 홀로 머물게 하며 재계시킵니다. 재궁(齋宮)을 물가에 짓고 붉은 장막을 치고 처녀를 그 안에 머물게 합니다. 쇠고기와 술과 밥을 갖추어 먹이고 10여 일을 보냅니다. 그날이 되면 단장을 시키고 시집가는 여자의 이부자리와 방석처럼 만들어 여자를 그 위에 앉힌 뒤 물에 띄워 보냅니다. 처음에는 떠 있지만 수십 리를 가면 물에 가라앉고 맙니다. 예쁜 딸을 가진 집들은 큰 무당이 하백에게 시집보낼 것을 두려워해 데리고 멀리 도망가는 집이 많아졌습니다. 이 때문에 성 안이 더욱 비게 되어 사람도 없어 더욱 더 가난해진 것이 이미 오래 된 일입니다. 백성들의 속담에 ‘만약 하백에게 신부감을 바치지 않으면 물이 넘쳐 백성들을 빠져 죽게 할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西門豹曰:至為河伯娶婦時, 願三老 巫祝 父老送女河上, 幸來告語之, 吾亦往送女。
서문표가 말했다. "하백을 위해 신부감을 바치려 할 때 삼로와 무당과 부로(父老)들이 처녀를 물에 띄우려 하거든 제게 알리기 바라며 저도 처녀를 전송할 것입니다."
皆曰:諾。
장로들이 모두 말했다. "알겠습니다."
2
至其時, 西門豹往會之河上。
때가 되어 서문표는 물가로 가서 그들을 만났다.
三老 官屬 豪長者 裏父老皆會, 以人民往觀之者三二千人。
삼로와 아전, 유지들과 마을의 부로가 모두 모이고 이를 구경하러 온 백성들이 모두 2천~3천 명이었다.
其巫, 老女子也, 已年七十.
從弟子女十人所, 皆衣繒單衣, 立大巫后。
무당은 늙은 여자로서 나이가 이미 일흔이었다. 여제자 열명 가량이 따르는데 모두 비단으로 만든 홑옷을 입고 큰 무당의 뒤에 섰다.
西門豹曰:呼河伯婦來, 視其好醜。
서문표가 말했다. "하백의 신부감을 불러오거라, 내가 예쁜지 못났는지를 보겠다."
即將女出帷中, 來至前.
豹視之, 顧謂三老 巫祝 父老曰:是女子不好, 煩大巫嫗為入報河伯, 得更求好女, 后日送之。
곧 처녀를 장막에서 데리고 나와서 서문표 앞으로 왔다. 서문표가 그녀를 보더니 삼로와 무당과 부로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 처녀는 예쁘지가 않으니 수고스럽겠지만 큰 무당 할멈이 들어가서 하백에게 다시 예쁜 처녀를 구해 다음에 보내드리겠다고 보고하여라."
即使吏卒共抱大巫嫗投之河中。
이에 아전과 군사를 시켜 큰 무당 할멈을 안아서 물에 던졌다.
有頃, 曰:巫嫗何久也. 弟子趣之.
復以弟子一人投河中.
조금 있다가 서문표가 말했다. "무당 할멈이 어째서 이렇게 오래 있단 말인가? 제자들을 보내 재촉하게 하라!" 다시 제자 하나를 물에 던졌다.
有頃,曰:「弟子何久也?復使一人趣之.
復投一弟子河中. 凡投三弟子.
또 조금 있다가 말했다. "제자는 어째서 이렇게 오래 걸리느냐? 다시 제자 하나를 더 보내 재촉하게 하라!" 또 제자 하나를 물에 던졌다. 이렇게 모두 제자 세 명을 강에 던졌다.
西門豹曰:巫嫗弟子是女子也, 不能白事, 煩三老為入白之.
서문표가 말했다. "무당과 그 제자들이 모두 여자라 사정을 말하기 어려운 모양이니 삼로들이 번거롭겠지만 들어가 하백에게 알리시오."
復投三老河中. 西門豹簪筆磬折, 向河立待良久.
다시 삼로를 강물에 던졌다. 서문표는 붓과 같은 비녀를 모자에 꽂고 허리를 굽혀 절을 하면서 물을 향해 한참을 기다렸다.
長老 吏傍觀者皆驚恐.
西門豹顧曰:巫嫗 三老不來還, 柰之何.
장로와 아전들과 곁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모두 놀라고 겁을 먹었다. 서문표는 이들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무당과 삼로들이 모두 돌아오지 않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欲復使廷掾與豪長者一人入趣之.
皆叩頭, 叩頭且破, 額血流地, 色如死灰.
다시 아전과 고을 유지에게 한 사람씩 들어가서 재촉하라고 했다. 모두들 머리를 조아려 머리를 땅에 부딪치니 이마의 피가 땅위에 흐르고 얼굴은 잿빛으로 변했다.
西門豹曰:諾, 且留待之須臾.
서문표가 말했다. "좋다, 잠시 멈추고 기다려 보자."
須臾, 豹曰:廷掾起矣. 狀河伯留客之久, 若皆罷去歸矣.
잠시 후 서문표가 말했다. "아전들은 일어나라. 하백이 손님들을 오래 붙잡고 있는 모양이니 너희들은 모두 마치고 돌아가도록 하라."
鄴吏民大驚恐, 從是以後, 不敢復言為河伯娶婦.
업현의 아전과 백성들은 크게 놀라고 두려워하며 이후로는 감히 다시는 하백을 위해 신부감을 바쳐야 한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3
西門豹即發民鑿十二渠, 引河水灌民田, 田皆溉.
當其時, 民治渠少煩苦, 不欲也.
서문표는 곧 백성을 징집하여 12개의 도랑을 파서 강의 물을 끌어서 백성들의 논에 물을 대니 논마다 모두 물이 대어졌다. 당시 백성들은 도랑을 만드는 것이 다소 번거롭고 힘들다고 여겨 하려고 들지 않았다.
豹曰:民可以樂成, 不可與慮始. 今父老子弟雖患苦我, 然百歲後期令父老子孫思我言.
서문표가 말했다. "백성들이란 일이 이루어지고 나면 즐거워할 수 있을 뿐이지 함께 일을 시작할 생각은 하지 못한다. 지금 부로와 자제들은 괴롭힌다고 비록 나를 증오하겠지만 100년 뒤에는 부로와 자손들이 내 말을 생각하게 하기 바란다."
至今皆得水利, 民人以給足富.
지금까지도 모두 이 수리(水利) 덕분에 백성들이 부유해졌다.
十二渠經絕馳道, 到漢之立, 而長吏以為十二渠橋絕馳道, 相比近, 不可.
12개의 도랑이 황제의 치도(馳道)를 가로지르고 있으며, 한(漢)나라가 세워지자 지방의 수장과 관리들은 12개 도랑의 다리가 황제가 행차하는 길을 끊어서 서로 가까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欲合渠水, 且至馳道合三渠為一橋.
그래서 도랑의 물을 합치고 또 치도에 이르는 세 도랑을 합쳐 하나의 다리를 만들고자 했다.
鄴民人父老不肯聽長吏, 以為西門君所為也, 賢君之法式不可更也.
그러자 업현의 부로들이 장리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으며 서문표가 해 놓은 일이니 어진 사람의 법도를 고쳐서는 안 된다고 여긴 것이다.
長吏終聽置之.
장리들도 결국 이 말을 받아들여 그대로 두기로 하였다.
故西門豹為鄴令,名聞天下,澤流後世,無絕已時,幾可謂非賢大夫哉.
그리하여 서문표는 업의 현령이 되어 이름을 천하에 알려지고, 그 은택은 후대에까지 흘러 끊어져 끝난 적이 없었으니 어찌 어진 대부라고 일컫지 않을 수 있겠는가!
4
傳曰:子產治鄭, 民不能欺; 子賤治單父, 民不忍欺; 西門豹治鄴, 民不敢欺.
전하는 말에 이르기를, "자산(子産)이 정(鄭) 나라를 다스리자 백성들이 그를 속일 수 없었고, 자천(子賤)이 단보(單父)를 다스리자 백성들이 차마 그를 속이지 못했고, 서문표가 업현을 다스리자 백성들이 감히 그를 속이지 못했다"고 했다.
三子之才能誰最賢哉.
세 사람의 재능 가운데 누가 가장 뛰어난 것일까?
辨治者當能別之.
다스리는 길을 아는 자는 마땅히 이를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 사기(史記) 골계열전(滑稽列傳)
사기(史記) 골계열전(滑稽列傳)에 따르면 서문표는 위나라 문후 때 업성(城) 태수가 되었는데,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서문표의 이 일화를 굳이 골계열전, 즉 해학과 기지가 뛰어난 인물들을 소개하는 부분에 실을 정도면 한나라 시대에도 서문표의 행동을 매우 '쿨하게' 여겼던 모양이다. 유교 사상과 상반되는 괴력난신을 타파하고자 일을 벌였다.
진(晉)나라가 분열하고 위나라가 생긴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업(鄴) 땅에 유수(留守) 자리가 비자 모사 적황은 문후에게 서문표를 적임자로 추천했다. 업 땅은 조나라, 한나라 옆에 있던 곳이라 위나라의 중요한 요충지였으나 별로 개발되지 않았다.
서문표가 업에 도착해 보니 성안이 한산하고 왕래하는 사람이 적었으며, 민심도 좋지 않았다. 서문표가 장로(長老)들을 불러놓고 백성들의 괴로움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장로가 말했다. "하백(河伯)에게 신부감을 바치는 일로 괴로움을 당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가난하기도 합니다."
서문표가 그 까닭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업의 삼로(三老)와 아전들은 해마다 백성에게 세금을 거두어가며, 수백 만전을 거두어 그 중에서 하백에게 신부감을 바치게 하는데 20~30만 전을 쓰고, 그 나머지 돈은 무당들과 나누어 가지고 돌아갑니다. 그 시기가 되면 무당이 돌아다니면서 어려운 집안의 딸 중에서 아름다운 처녀를 보면 '이 처녀가 하백의 아내가 될 것이다'고 말하고는 곧 폐백을 보내 주고 데려갑니다. 처녀를 목욕시키고 새로 비단옷들을 지어 입히고 홀로 머물게 하며 재계시킵니다. 재궁(齋宮)을 물가에 짓고 붉은 장막을 치고 처녀를 그 안에 머물게 합니다. 쇠고기와 술과 밥을 갖추어 먹이고 10여 일을 보냅니다. 그날이 되면 단장을 시키고 시집가는 여자의 이부자리와 방석처럼 만들어 여자를 그 위에 앉힌 뒤 물에 띄워 보냅니다. 처음에는 떠 있지만 수십 리를 가면 물에 가라앉고 맙니다. 예쁜 딸을 가진 집들은 큰 무당이 하백에게 시집보낼 것을 두려워해 데리고 멀리 도망가는 집이 많아졌습니다. 이 때문에 성 안이 더욱 비게 되어 사람도 없어 더욱 더 가난해진 것이 이미 오래 된 일입니다. 백성들의 속담에 '만약 하백에게 신부감을 바치지 않으면 물이 넘쳐 백성들을 빠져 죽게 할 것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서문표가 말했다. "하백을 위해 신부감을 바치려 할 때 내게 알려 주시오. 나도 참석하여 처녀를 전송하겠소이다."
장로들이 모두 말했다. "알겠습니다."
마침내 하백에게 신부를 바치는 날이 되어 서문표는 강가로 가서 그들을 만났다. 삼로와 아전, 유지들과 마을의 부로가 모두 모이고 이를 구경하러 온 백성들이 모두 2천~3천 명이었다. 무당은 늙은 여자로서 나이가 이미 일흔이었다. 여제자 열명 가량이 따르는데 모두 비단으로 만든 홑옷을 입고 큰 무당의 뒤에 섰다.
서문표가 말했다. "하백의 신부감을 불러오거라, 내가 아름다운지 확인하도록 하겠다."
무당의 제자들이 곧 처녀를 장막에서 데리고 나와서 서문표 앞으로 왔다.
서문표가 그녀를 보더니 무당과 삼로와 부로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 처녀는 아름답지가 않으니 수고스럽겠지만 큰무당 할멈이 들어가서 하백에게 다시 예쁜 처녀를 구해 다음에 보내 드리겠다고 전하여라."
곧 바로 군사들을 시켜 큰 무당 할멈을 들어 강물에 던져버리게 했고 지켜보는 사람들이 모두 대경실색했다.
조금 있다가 서문표가 말했다. "무당 할멈이 어째서 이렇게 오래 있단 말인가? 제자들을 보내 재촉하게 하라!"
다시 제자 하나를 강물에 던졌다.
또 조금 있다가 말했다. "제자는 어째서 이렇게 오래 걸리느냐? 다시 제자 하나를 더 보내 재촉하게 하라!"
또 제자 하나를 강에 던졌다. 서문표가 입을 열 때마다 제자가 하나씩 강으로 던져져서 그렇게 모두 제자 세 명이 강에 던져졌다. 그러나 돌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서문표가 말했다. "무당과 그 제자들이 모두 여자라 사정을 말하기 어려운 모양이니 삼로가 번거롭겠지만 들어가 하백에게 알리시오."
다시 군사들을 시켜 삼로를 강물 속에 던졌다. 서문표는 붓과 같은 비녀를 관에 꽂고 자리에 엎드려 강을 향해 절을 하며 한참을 기다렸다. 장로와 아전들과 곁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모두 놀라고 겁을 먹었다.
서문표는 이들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무당과 삼로들이 모두 돌아오지 않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다시 아전과 고을 유지를 한 사람씩 하수에 들여보내려고 하였다. 겁에 질린 이들이 모두 머리를 조아려 땅에 부딪치니 이마의 피가 땅위에 흐르고 얼굴은 잿빛으로 변했다.
서문표가 말했다. "좋다, 잠시 멈추고 기다려 보자."
잠시 후 서문표가 말했다. "모두들 일어나라. 하백이 손님들을 오래 붙잡고 있는 모양이니 너희들은 모두 마치고 돌아가도록 하라."
업현의 아전과 백성들은 크게 놀라고 두려워하며 이후로는 감히 다시는 하백을 위해 신부감을 바쳐야 한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고 하며 도망쳤던 사람들도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서문표는 곧 백성을 징집하여 12개의 도랑을 파서 강의 물을 끌어서 백성들의 논에 물을 대니 논마다 모두 물이 대어졌다. 당시 백성들은 도랑을 만드는 것이 다소 번거롭고 힘들다고 여겨 하려고 들지 않았다.
서문표가 말했다. "백성들이란 일이 이루어지고 나면 즐거워할 수 있을 뿐이지 함께 일을 시작할 생각은 하지 못한다. 지금 부로와 자제들은 비록 나를 증오하겠지만 100년 뒤에는 부로와 자손들이 내 말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도 모두 이 수리(水利) 덕분에 백성들이 부유해 졌다. 12개의 도랑이 황제의 치도(馳道)를 가로지르고 있으며, 한(漢)나라가 세워지자 지방의 수장과 관리들은 12개 도랑의 다리가 황제가 행차하는 길을 끊어서 서로 가까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랑의 물을 합치고 또 치도에 이르는 세 도랑을 합쳐 하나의 다리를 만들고자 했다. 그러자 업현의 부로들이 장리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으며 서문표가 해 놓은 일이니 어진 사람의 법도를 고쳐서는 안 된다고 여긴 것이다.
장리들도 결국 이 말을 받아들여 그대로 두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서문표는 업의 현령이 되어 이름을 천하에 알려지고, 그 은택은 후대에까지 흘러 끊어져 끝난 적이 없었으니 어찌 어진 대부라고 일컫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열국지(列國志) 전국칠웅(全國七雄)
풍몽룡의 역사소설 열국지(列國志)에서는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그때 위문후는 비어있는 업도(鄴都)의 태수직을 맡길만한 마땅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 적황이 말했다. "업도는 상당(上黨)과 한단(邯鄲) 사이에 끼어 있어 한나라와 조나라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땅입니다. 이곳에는 필히 강단있고 정사에 밝은 사람을 보내 지키게 해야 할 것입니다. 서문표(西門豹)라면 능히 지킬 수 있습니다."
문후가 즉시 서문표를 불러 업도의 태수로 임명했다. 서문표가 평복 차림으로 업성에 당도 하였으나 성안의 거리가 한산하며 왕래하는 백성들이 많지 않았다.
서문표가 태수부로 들어가 성안의 부로들을 불러 무엇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불려온 노인들이 하나같이 말했다. "하백이 부인을 취하는 바람에 우리가 이렇듯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서문표가 듣고 말했다. "참으로 괴이한 일이로다! 하백이 무슨 방법으로 부인을 맞이해 간단 말인가? 노인장들은 혹시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까?"
부로 중에 한 사람이 나서서 말했다. "장수(漳水)는 첨령(沾嶺)에서 발원하여 사성(沙城)에 이르러 동쪽으로 그 방향을 바꾸어 업도(鄴都)를 지나면서 장하(漳河)로 이름이 바뀝니다. 하백(河伯)은 맑은 물이 흐르는 장수(漳水)의 수신(水神)입니다. 하백(河伯)이 예쁜 여자를 좋아하여 매년마다 여인을 한 명 씩 골라 부인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만약 여인을 가려 하백에게 보내주면 해마다 풍년이 들어 곡식의 낟알을 잘 여물게 할 수 있도록 비를 골고루 적당히 오게 합니다. 그렇지 않고 여인을 부인으로 보내지 않으면 격노한 하백께서 파도를 일으켜 인가를 덮쳐 잠기게 합니다."
서문표가 물었다. "이 일은 누가 먼저 시작하자고 했습니까?"
부로가 계속 대답했다. "이 읍에 사는 무당이 하는 말을 따라 옛날부터 물을 두려워하고 있는 풍속이 생겼습니다. 누가 감히 무당의 말을 듣지 않겠습니까? 매년 동네의 호족들과 관청의 하급 관리들이 무당과 같이 모의하여 백성들에게서 수백 만 전의 부세를 걷어 그 중 2-3십 만 전은 하백의 부인을 찾는 비용으로 쓰고 나머지는 자기들끼리 나누어 갖고 있습니다."
서문표가 물었다. "백성들이 그렇게 착취를 당하고 있으면서 어찌 한 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노인들이 말했다. "무당은 하백에게 축원을 드리는 일을 주관하고 삼로(三老)와 아전들은 비용을 거두기 위해 분주하게 돌아 다녀 수고로움이 적지 않으니 비용으로 나누어 쓴다 해도 그것은 즐거운 마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드는 일은 초봄에 들에 종자를 뿌리는 시기에 무당이 사방의 민가를 찾아 다니며 하백의 부인을 구한다고 하면서 제법 미색을 갖추고 있는 처녀를 발견하면 즉시 '이 처녀는 마땅히 하백의 부인으로 보낼 만하다'고 말합니다.
그 처녀의 부모가 자기 딸을 하백의 부인으로 보내지 않으려면 많은 재물과 비단을 무당에게 바쳐 면하면 무당은 다시 다른 처녀를 별도로 찾습니다.
다시 하백의 부인으로 지명된 처녀의 집이 가난하여 재물과 비단을 주지 못해 면하지 못한 백성은 할 수 없이 자기의 딸을 무당에게 줄 수밖에 없습니다.
강물 위에다 지은 재궁의 침소 주위에 장막을 치고 그 안에 이부자리를 새롭게 장만한 무당은 처녀를 목욕시키고 옷을 갈아입힌 후에 재궁의 안에서 묶게 합니다.
점을 쳐 잡은 길일이 되면 갈대로 엮어 만든 배에 처녀를 태우고 강물 위에 띄어 보냅니다. 처녀를 태운 배는 강물에 떠내려가 몇 십리를 흐르다가 이어 가라 앉고 맙니다.
이러한 막대한 비용으로 인하여 백성들의 고통이 적지 않고 또한 딸을 사랑하는 자들은 자기의 딸이 하백의 부인으로 점지될까봐 두려워하여 딸을 데리고 멀리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래서 성안이 텅텅 비게 되었습니다."
서문표가 다시 물었다. "그 동안 하백이 노하여 홍수의 피해를 입은 적이 있었습니까?"
노인들이 말했다. "매년 처녀를 부인으로 바쳐오고 있는 덕분에 아직까지 하백의 노여움을 사지 않아 홍수의 피해가 없다고 합니다만, 그것은 단지 여기 업 땅은 지세가 높고 멀리 떨어져 있는 지방이라 강물이 덮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매년 한해를 만나 가뭄으로 곡식이 말라죽은 재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부로의 말을 듣고 업 땅의 상황을 대충 짐작한 서문표가 말했다. "하백이 진정 있다면 처녀가 시집을 갈 때 내가 마땅히 참석하여 전송하고 백성들을 위해 축원하리라!"
이어서 처녀를 하백에게 바치는 날이 되자 그 노인네들이 서문표를 찾아와 알렸다. 서문표가 의관을 정제하고 의식이 행해지는 강가로 나갔다. 고을의 모든 관속, 삼로(三老), 호족(豪族), 이장(里長), 그리고 마을의 부로(父老) 등이 이미 참석하여 서문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백성들은 이곳저곳에 모여 자리를 잡았는데 그 의식을 구경하려고 나오는 사람은 수천 명이 넘었다. 삼로와 이장 등이 대무(大巫)를 데리고 와서 서문표에게 인사를 시키는데 대무의 행동거지가 매우 거만했다.
서문표가 대무를 살펴보니 바로 늙은 노파였다. 소무로 여자 제자를 20여인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모두가 옷차림을 정결하게 차려 입고 있었다. 소무들은 수건이나 빗, 그리고 향로 같은 제기들을 손에 들고 대무의 뒤서 서서 수행했다.
서문표가 대무를 향해 말했다. "대무께서 번거롭겠지만 하백의 부인이 될 처녀를 불러와 주시오. 내가 한 번 보리라!"
대무가 제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려 하백의 부인으로 뽑힌 처녀를 불러오라고 시켰다. 서문표가 대령시킨 처녀를 보니 아름다운 옷에 허리에는 하얀 허리띠를 두르고 있었는데 얼굴은 그런 대로 중간 정도는 되었다.
서문표는 대무와 삼로 그리고 의식에 참석한 여러 사람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하백은 고귀한 신이라 부인으로 바친 처녀는 반드시 그 자색이 고와야만 비로소 우리의 성의를 고맙다고 여기지 않겠는가? 이 처녀의 자색은 그다지 아름답지 못하니 대무는 번거롭겠지만 나를 위해 하백에게 가서 태수의 말이라고 하면서 '아름다운 처녀를 구해 다시 날짜를 정해 바치겠습니다'고 전하라!"
서문표가 즉시 수행 군졸들을 시켜 늙은 대무를 들어 강물에 던져버리게 하자 좌우에 있던 사람들은 삽시간에 벌어진 뜻밖의 일에 대경실색했다.
서문표가 시치미를 떼고 정중한 자세로 서 있다가 시간이 얼마쯤 지나자 다시 큰 소리로 말했다. "늙은 노파라서 우리의 급한 사정을 전혀 개의치 않는구나! 강물 속의 하백을 만나러 가서 오래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 돌아와 하백의 뜻을 전달하지 않으니 너희 제자들이 가서 나를 위해 너의 대무를 재촉하여 빨리 오라고 전하라!"
다시 군졸들을 시켜 제자 한 사람을 끌고 가서 강물에 던지게 했다. 서문표가 다시 엄중한 자세로 서서 기다리다가 시간이 다시 얼마쯤 지나자 입을 열어 말했다. "제자가 물속으로 들어간 지 오래 되었는데도 그 역시 빨리 돌아와 고를 하지 않는구나!"
서문표가 군졸들을 시켜 제자 중 한 사람을 더 끌고 가서 강물에 빠뜨렸다. 다시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그들이 늦게 온다고 성화를 부리며 군졸들로 하여금 다시 제자 중 한 명을 안아다 강물 속으로 던지게 했다.
모두 대무의 제자 세 명을 던져 물속에 가라앉게 하고는 다시 여러 사람들 향해 외쳤다. "하백에게 간 사람들은 모두가 여인네들이라서 나의 말을 분명하게 전하지 못한 듯하다. 아무래도 하백에게 가서 나의 말을 정중하게 전하기 위해서는 삼로가 수고를 좀 해 주어야 하겠소! 삼로는 하백에게 가서 나의 말을 분명하게 전해주기 바라오."
삼로가 사양하려고 하자 서문표가 큰소리로 외쳐 꾸짖었다. "무슨 잔말이 그리 많으냐? 빨리 가서 하백에게 나의 뜻을 전하고 즉시 돌아와 그의 뜻을 받아 오라!"
군졸들이 달려가 한 쪽에서는 밀고 다른 쪽에서는 끌고 해서 삼로가 미처 변명도 하기 전에 물속으로 던져버렸다. 삼로는 강물의 파도 속으로 휩쓸려 사라져 버렸다.
서문표의 뜻을 짐작하게 된 주위 사람들은 모두 속으로 혀를 깨물며 괴로워했다. 서문표가 관에 비녀를 꽂고 땅에 엎드려 강을 향해 절을 하며 공경의 뜻을 표하면서 삼로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다시 대략 한 시진을 그런 상태로 있었다. 서문표가 땅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삼로가 나이가 많아 그들 역시 하백이 있는 곳까지 가지 못한 것 같다. 할 수 없이 나이가 젊은 아전이나 마을의 호족들이 가서 나의 말을 전해야 되겠다."
아전과 호족들이 서문표의 말을 듣고 얼굴이 흙빛으로 변하고 흐르는 땀으로 등을 적시더니 일제히 머리를 땅에 부딪치며 목숨을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머리를 땅에 부딪쳐 나온 피로 얼굴이 피범벅이 된 아전과 호족들은 땅에 엎드린 채로 결코 일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서문표가 그들을 향해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잠시 더 기다려 보기로 하겠다."
하백에게 제사를 드리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모두가 전전긍긍했다.
시간이 다시 한 시진쯤 경과하자 서문표가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하수의 물은 도도히 흐르건만 한 번 떠난 사람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하백은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함부로 민간의 여자를 죽게 만들었으니 너희들의 죄는 죽어 마땅하다 하겠다!"
아전들과 호족들이 다시 머리를 땅에 부딪치며 자기들이 지은 죄의 용서를 빌었다. "원래 이 일은 모두 죽은 대무가 꾸민 사기행각이지 우리들이 지은 죄가 아닙니다."
서문표가 다시 말했다. "대무는 이미 죽었으니 이후에 다시 하백이 부인을 맞이한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즉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중매를 서게 하여 하백에게 보내리라!"
그리고 나서 아전, 호장 및 삼로의 재산들을 몰수하여 그들에게 착취당한 백성들에게 다시 돌려 주도록 했다.
다시 마을의 부로들을 시켜 백성들 중 나이가 찼으나 장가를 들지 못한 사람과 소무들을 결혼을 시키게 하여 무속의 뿌리를 뽑아 버리게 했다. 잘못된 무속으로 인하여 고향을 등지고 도망친 백성들이 그 소문을 듣고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 일을 두고 지은 시가 있다.
河伯何曾見娶妻(하백하증견취처)
하백이 어떻게 그 부인을 얻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는가?
愚民無識被巫斯(우민무식피무사)
어리석은 백성들이 무식하여 무당에게 속고 있었음을
一從賢令除疑网(일종현령제의망)
어진 사람의 한번 영으로써 의심의 그물을 걷고
女子安眠不授亏(여자안면부수우)
근심스럽던 처녀들이 안심하고 잠을 이룰 수 있게 하였다.
업도의 민심을 안정시킨 서문표는 업도의 지형을 상세하게 살펴 장수가 흐를 수 있는 곳을 정하여 백성들을 동원하여 큰 물길을 파도록 하였는데 모두 12 군데가 되었다. 이어서 장수의 물을 새로 판 물길로 끌어들이자 장수의 물살이 완만하게 되었다.
다시 물길의 앞쪽에다 전답을 일구게 한 후에 그 물을 끌어들여 잠기게 하니 그 후로는 가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윽고 벼농사가 잘되어 그 수확이 두 배나 늘어나게 되었다. 백성들은 모두 즐거운 마음이 되어 생업을 열심히 했다.
오늘날도 임장현(臨漳縣)에 가면 서문거(西門渠)라는 관개시설이 있는데 바로 서문표가 미신을 타파한 후에 백성들을 위해 굴착한 구거(溝渠)다.
이때 서문표가 땅을 판 곳이란 유래가 있는 서문거(西門渠)란 지명이 실제로 있다.
단순한 미신타파를 강행했다면 작은 사회의 특성상 갑툭튀한 이방인이 자신들의 전통(그게 옳고 그름을 떠나)을 파괴하려 한다는 거부감이 들 것이다.
즉, 저런 의식을 겉으로는 따르는 척 하면서, 현실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는 방식으로 미신을 타파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후에 조조와 전예가 크게 존경하고 통치에 있어서의 역할 모델로 삼았다. 전예가 죽을 때 남긴 유언은 "서문표와 같은 길을 걸었으니 그와 같은 곳에 있을 수 있을 것이다"였고, 조조가 남긴 유언은 "업(鄴)의 서쪽 언덕 서문표(西門豹) 사당 부근에 묻어달라"였다.
후에 진짜로 하백이 나타나서는 처녀를 바치지 않는다고 괘씸하게 여겨 마을을 쓸어버리려 했으나 예에게 화살을 맞고 물러났다는 이야기도 있다.
보통은 아무런 배경이 없는 상태에서 이런 일을 저지르면 무당과 결탁한 지역토호들에게 몰래 숙청당하는 일이 있겠지만, 서문표는 당대 위나라의 왕 문후와 문후의 스승인 자하의 제자라는 뒷배가 있기 때문에 감히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또한, 서문표가 자신들의 행동을 대놓고 막으려 들지 않고 표면적으로는 따르는 모습을 보였기에 이런 행동을 예상치 못하고 방심한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 사교행위(邪敎行爲)와 무당(巫堂)
사교(邪敎)란 그릇된 교리로 세상 순리를 해치는 종교를 두고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요즈음 세상에 나대는 대부분 종교는 포교과정에서 그릇된 교리로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종교 지도자, 관계자들이 앞뒤 다른 처신, 이른바 겉으로는 아닌척하고 뒤로는 오리발 내미는 행동을 거리낌 없이 자행하여 만인의 눈살을 찌프리게 하는 예가 비일비재하다.
종교지도자들이 각종 종교행사 때만 되면 가난한자, 노동자 농민위한답시고 그럴싸한 언변으로 이유들어 헌금 하기를 교묘히 유도한다. 그러나 정작 가난한 사람들 앞에 일부 봉사자들만 희생적으로 신앙행위를 표현 할 뿐 노동현장, 농사뜰에는 성직자들이 노동자 농민 차림으로 땀 흘려가면서 동고동락하는 모습들은 눈을 씻고 찾아도 찾아볼 수가 없다.
말로만 노동자 위한 봉사요, 가난한자를 위함이요, 노동자 농민 위하는척하며 자기 실속을 채리는 기회주의자라 간주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무리 훌륭한 교리를 내세워 세상에 외쳐보아도 정작 보여지는 모습들은 예수그리스도, 석가모니의 가르침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공허한 메아리 뿐이다. 제사가 뜻하는 이치와는 동떨어지게 쟷밥에 만 영신이 들려있기 때문이라 오해받기 딱 알맞다 할 수 밖에 없다.
기원전 고대중국 전국시대 초기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위나라 문후(魏 文侯)라는 걸출한 지도자가 있었다. 성은 희(姬)요. 씨는 위(魏),그리고 이름은 '사(斯)' 또는 '도(都)'이다. 이회(李悝), 오기(吳起), 악양(樂羊), 서문표(西門豹)등 인재를 적재적소에 성공적으로 등용하여 위나라를 전국시대 최초로 패국으로 만든 걸출한 지도자이다.
위 문후 당시 목민관(牧民官) 서문표(西門豹)에 관한 미담을 소개하고자 한다. 당시 조(趙)나라와 한(韓)나라와 국경을 둔 먼 곳에 업鄴)이라는 고을이 있었는데 위문후는 대가 센 장수 서문표라는 장군을 추천받아 임명하였다
목민관(牧民官)이 된 서문표(西門豹)가 임지에 도착하여 살펴보니 땅은 사막화 되어 메마른 바람만 황량히 불어 쓸쓸하고 고을 이곳 저곳을 둘러 살펴보아도 사람이 모여사는 모습의 그림자 찾기가 왕가물에 콩나듯 한 지경이었다.살펴보니 한심 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서문표는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업지방은 전통적으로 황하(黃河)강의 신(神) 하백(河伯)을 섬긴다는 점이었다. 하백신에게 드리는 제사 주관자가 무당(巫堂)이라 하였다.
기이한 것은 하백에게 제사를 잘 지내야 업땅 고을의 농사가 잘 된다는 명분을 앞세웠다는 점인데, 가관인 것은 그 하백에 바치는 제물이 반드시 처녀 이어야 된다 하였다. 이른바 해 마다 처녀에게 새 장가를 간다는 것이다. 고을 사람들이 두려워 하는 것은 농사일이 망쳐지는 웬만한 고통은 참을 수가 있으나 여염집 처녀를 지목하여 제물로 바친다는 문제점이었다.
농번기 시작 봄철이 되면 무당은 세도가인 지방 토호들과 짜고 그 위세를 등에 업고 해마다 새끼 무당을 대동하고 이집 저집 기웃거리며 처녀를 물색하러 다니는데, 무당이 떴다 하면 온 고을에 비상이 걸려 전전긍긍하여 혹시 자기집 딸이 선발 될까 두려워 이 간택을 피하고자 은밀하게 각종 뇌물을 지방토호와 무당에게 바쳐 애지중지 키운 딸을 빼 돌리느라고 법석을 떤다 하였다.
그래서 이 풍습에 견디지 못한 백성들이 집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온 가족이 보따리 싸들고 이웃 나라 다른 지방으로 도망을 쳐 업고을이 황량하다 하였다. 제물로 발탁 된 처녀는 미모와는 아무관계 없고 돈을 주선하여 뇌물주지 못한 가난한 농부집안이라 하였다. 고대 제사장은 뒷 구녕으로 이렇게 악랄하였다.
고을 원 서문표가 공포하였다. 아무날 하백에게 처녀를 시집보낸다 한다니 그 잔치날에 내가 참석하겠다. 잔칫날에 참석한 서문표가 보니 하백에게 시집보낸다 발탁 된 처녀가 공포에 떨고 있었으며 너무 못생겼고 또 초라하였다.
서문표가 말하였다. "잠간 있거라 하백과 결혼하는 그 처녀를 갈대로 엮은 똇목에 태우지를 말아라. 내가 보기엔 하백이 좋아 할 상이 아니다. 하백이 그래도 저 처녀에 장가들지 안할지가 의문인데 미리 먼저가서 물어 보고난 다음에 결정하자. 어서들 저 무당 곁에 있는 이쁘장하게 잘 생긴 새끼무당을 갈대배에 태워 물어보고 오도록 하여라!"
어느 영이라고 또 누가 막겠는가? 모두가 긴장 한 가운데 고을 원의 명을 받아 견습무당이 한명 지목되어 배에 태워 한바다 같은 큰강으로 띄어 보냈다. 얼마 가지 않아 갈대는 몽땅 스며드는 물에 젖어 사람을 실은 채로 깊은 물속으로 통채로 가라 앉았다.
서문표는 내색을 않고 경건한 자세를 취하며 짐짓 하백의 답을 가지고 올 새끼무당을 기다리는 척 했다. 그러나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 되 돌아 올리 만무하였다. 그러나 서문표가 또 명을 내린다. "보낸 사신이 되 돌아 오지 않으니 다른 사람을 또 보내자!"
이렇게 해서 재차 새끼무당을 보내고 난 뒤에 하백 결혼식 잔치행사는 공포의 도가니로 변했다. 서문표가 말하였다. "또 좋다! 싫다! 답을 가지고 오니 않으니 하백이 눈이 멀거나 귀가 어두운 모양이다. 이번에는 저 왕초 무당을 뗏목에 태워 물어보고 오게 하라."
자지러지는 왕초 무당이 우쭐 댈 때는 언제인데. 다급하니까 괴상한 비명지르면서 애걸 복걸하며 잘못했다고 싹싹빌어봤자 허사였다. 뗏목에 대워진 배는 한바다 같은 중천에 가라앉고, 시간이 지나도 무당이 돌아 올리 만무하다.
그때서야 지방토호 세력가들이 두려운 안색으로 서문표에게 살살빈다. '제발 살려달라'고. '아무것도 모르고 단지 무당시키는대로 했다고' 무당을 두둔하여 뇌물 받아 먹고 작당질을 두둔 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오리발 내밀기에 죽을 힘을 다하는 초라한 세도가들이다.
서문표가 준엄하게 명한다. "오늘날과 같은 대명천지(서문표란 목민관이 있었던 시대를 따져 보자면 지금으로부터 2,300여년 전)에 하백이란 신이 어디있고 또 신이 있다 손 치드라도 사람을 잘 살게 해주는 신이 있다면 모를까 뇌물 받지 못하여 안달이 나 억울하게 바쳐지는 제물을 받는 더러운 신이 어디 있단 말이냐! 명하노니 고을 세도가들과 무당행위를 눈감아 주는 관리들을 모두 색출해 조금전 하백에게 가서 돌아오지 않는 귀신같은 괴물 무당년 처럼 엄벌하라. 그리고 무당되겠다고 수련받는 년들을 모두 장가못간 사람들과 결혼을 시켜 자손을 낳도록 하라!"
불호령을 내린것이다. 그 이후 지도자 서문표의 소문을 듣고 타향살이 하던 업땅 주민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하여 업땅은 번성하여 훗날 삼국지에 나오는 위나라의 수도가 되었다라고 한다. 목민관 서문표는 뱃장이 세기로 소문난 장군이었고 오직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당시부터 후대까지 역사에 기록된 명 참모였던 것이다. 명에 의하여 자기 임무를 다 하는 공직자였던 것이다.
다시 돌아가서 대한민국 오늘날 공직자들이나 정치한다고 나대는 사람들! 당신들 지금 그 자리가 출세했다고 뻐기는 자리가 아닌 것이요. 봉사와 희생정신으로 목숨까지 바쳐 백성을 사랑해야만 하는 그런 소중한 자리인 것이요. 지금 그 자리가.
이적행위하면서 그것이 민주주의라고 외치는 잔수작만 떠는 종북좌파들! 그리고 국민들이 뽑아 대한민국 정체성을 사수할 것이라 믿고 있는 지도자를 험담이나 하고 그것도 모자라 반 사회적 종북행위까지 하는 종교 지도자들 중에 작당질이나 일삼는 얼빠진 자들이 너무 많아 지금 온통 우리나라는 아수라장 천국이 되었다.
예나 이제나 순진한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국민 모두가 공산사회주의를 싫어해 드디어 뽑아 놓은, 나라정체성 바로 잡아야 겠다 공언한 대통령의 명을 받고 지금 지위에 있는 이들은 모두가 전후좌우 살필것도 없고 오직 고대 국가 목민관 서문표의 애국애민하는 충성심을 본받아 맡은바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 河(물 하)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삼수변(氵=水, 氺; 물)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可(가, 하)이 합(合)하여 강물을 뜻한다. 可(가, 하)는 입으로 부터 숨이 세게 나오거나 허락하여 말하는 일을 말한다. ❷회의문자로 河자는 '물'이나 '강'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河자는 水(물 수)자와 可(옳을 가)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河자는 본래 중국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인 황하(黃河)를 일컫던 말이었다. 황투고원에서 시작되는 황하는 상류에서 쓸려오는 퇴적물이 많아 정기적으로 범람이 일어나던 강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대부터 황하 일대에서는 둑을 쌓아 범람하던 황하를 다스렸었다. 그래서인지 갑골문에 나온 河자는 水자와 方(모 방)자가 결합한 모습이었다. 이것은 가래로 둑을 쌓는다는 의미이다. 후에 方자가 可자로 바뀌긴 했지만, 본래는 치수의 개념이 반영된 글자였다. 그래서 河(하)는 물이 시원스럽지 못하게 나가다가 세차게 흐르는 일을 나타낸다. 중국에서는 황하를 예로부터 하(河)라 일컫고 그 신(神)을 하신(河神)이라 하여 소중히 여겼다. 그래서 河(하)는 성(姓)의 하나로 ①물 ②내, 강(江) ③운하(運河) ④섬(=島) ⑤은하(銀河) ⑥강(江)의 이름, 황하(黃河) ⑦메다, 짊어지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내 천(川), 강 강(江), 바다 해(海), 시내 계(溪), 물 수(水),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메 산(山), 큰 산 악(岳), 언덕 릉(陵)이다. 용례로는 강과 시내를 하천(河川), 강물이 큰 강이나 호수 또는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어귀를 하구(河口), 강과 바다를 하해(河海), 독수리 자리의 가장 밝은 별을 하고(河鼓), 하천의 바닥을 하상(河床), 강 가나 강 언덕을 하반(河畔), 하천가에 있는 작은 항구를 하진(河津), 하천이 흐르는 골짜기를 하곡(河谷), 강물이 흐르는 한 가운데를 하심(河心), 물이 통하는 길을 하도(河道), 강이나 내의 흐름을 하류(河流), 움푹 들어간 눈을 하목(河目), 얼음이 얼은 큰 강을 빙하(氷河), 산과 강을 산하(山河), 강과 하천을 강하(江河), 온 하늘을 두른 때 모양의 엷은 빛의 별무리를 은하(銀河), 홍수가 져서 강물이 제방을 파괴하여 넘쳐 흐르는 말을 결하(決河), 평소에는 마른 골짜기이다가 큰비가 내리면 홍수가 되어 물이 흐르는 강을 고하(凅河), 강물을 건넘을 도하(渡河), 항상 흐린 황하의 물이 천년에 한번 맑아진다는 뜻으로 기다릴 수가 없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하청난사(河淸難俟), 큰 강이나 넓은 바다와 같이 넓고 큰 은혜를 일컫는 말을 하해지은(河海之恩), 배앓이를 달리 일컫는 말을 하어지질(河魚之疾), 썩 드문 만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하청지회(河淸之會), 은하수가 멀고 먼 하늘에 있다는 데서 연유한 말로 막연한 말을 이르는 말을 하한지언(河漢之言) 등에 쓰인다.
▶️ 伯(맏 백, 우두머리 패, 길 맥)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사람인변(亻=人; 사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크다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白(백)으로 이루어졌다. 우두머리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伯자는 '큰아버지'나, '맏이', '우두머리' 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伯자는 人(사람 인)자와 白(흰 백)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白자는 촛불이 밝게 켜져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밝다'나 '희다'라는 뜻이 있다. 이렇게 '밝다'라는 뜻을 가진 白자에 人자를 더한 伯자는 '밝게 빛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밝게 빛나는 사람은 무리에서의 우두머리를 뜻한다. 씨족사회에서는 형제 중 제일 맏이를 伯이라고 했다. 그래서 伯(백, 패, 맥)은 ①맏, 첫 ②남편(男便) ③큰아버지 ④백작(伯爵) ⑤일 백(=百) ⑥말 귀신(鬼神) ⑦뛰어나다 ⑧나타나다, 드러나다, 그리고 ⓐ우두머리(패) 그리고 ㉠길(논밭 사이의 길)(맥)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맏 윤(允), 맏 맹(孟), 맏 곤(昆)이다. 용례로는 백씨나 장형이나 맏형을 이르는 말을 백형(伯兄), 남의 맏형을 이르는 말을 백씨(伯氏), 맏조카로 맏형의 맏아들을 백질(伯姪), 맏형수를 이르는 말을 백수(伯嫂), 둘 이상의 누이 가운데 맏이가 되는 누이를 이르는 말을 백자(伯姊), 큰아버지로 둘 이상의 아버지의 형 가운데 맏이가 되는 형을 백부(伯父), 큰어머니로 아버지 맏형의 아내를 이르는 말을 백모(伯母), 화가의 높임말을 화백(畫伯), 아우와 형을 숙백(叔伯), 남에게 대해 자기의 맏형을 일컫는 말을 가백(家伯), 시문에 능한 사람 또는 시문의 대가를 높이어 일컫는 말을 사백(詞伯), 뛰어난 의사나 의사의 경칭을 의백(醫伯),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어 버렸다는 뜻으로 자기를 알아주는 절친한 벗 즉 지기지우의 죽음을 슬퍼함을 이르는 말을 백아절현(伯牙絶絃), 누구를 형이라 아우라 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형제인 장남과 차남의 차이처럼 큰 차이가 없는 형세로 우열의 차이가 없이 엇비슷함을 이르는 말을 백중지세(伯仲之勢), 백유가 매를 맞으며 운다는 뜻으로 늙고 쇠약해진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 슬퍼한다는 말을 백유읍장(伯兪泣杖), 백유의 효도라는 뜻으로 어버이에 대한 지극한 효심을 일컫는 말을 백유지효(伯兪之孝), 명마가 백낙을 만나 세상에 알려진다는 뜻으로 훌륭한 사람에게 인정받음을 이르는 말을 백낙일고(伯樂一顧) 등에 쓰인다.
▶️ 娶(장가들 취, 중매들 서)는 형성문자로 娵(취)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계집 녀(女; 女子)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取(취)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娶(취, 서)는 ①장가들다 ②아내를 맞다, 그리고 ⓐ중매들다(서)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혼인할 혼(婚),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시집갈 가(嫁) 이다. 용례로는 아내를 맞는 예를 취례(娶禮), 장가를 들어 아내를 얻음을 취처(娶妻),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을 가취(嫁娶), 첫 번째 장가 감 또는 첫번 혼인 때 맞아들인 아내를 초취(初娶), 아내를 여읜 뒤에 두 번째 장가듦 또는 두 번째 장가들어 맞이한 아내를 재취(再娶), 술이 반쯤만 취함 또는 상사람으로서 양반의 집 딸과 혼인하는 일을 반취(班娶), 아내가 죽어서 다시 장가 듦을 개취(改娶), 남의 집 과부를 자루에 넣어 데려가서 아내로 삼는 일을 박취(縛娶), 이미 장가 듦을 기취(旣娶), 존귀한 사람이 상사람의 딸에게 장가 듦을 민취(民娶), 세 번째 장가감 또는 세 번째로 맞는 아내를 삼취(三娶), 장가듦을 성취(成娶), 아직 장가를 들지 아니함을 미성취(未成娶), 아내가 있는데 또 아내를 얻음을 일컫는 말을 유처취처(有妻娶妻), 종실에서 그 자녀의 배필 대상으로 사대부 집안의 자녀를 선정하여 그 이름을 적어서 종부시에 내면 종부시에서 사대부 집안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강제로 혼인시키는 일을 일컫는 말을 망정혼취(望呈婚娶), 성이 같은 사람끼리는 혼인을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불취동성(不娶同姓) 등에 쓰인다.
▶️ 婦(며느리 부)는 ❶회의문자로 妇(부)의 본자(本字), 妇(부)는 간자(簡字)이다. 시집와서 빗자루(帚)를 들고 집안을 청소하는 여자(女)로 아내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婦자는 '며느리'나 '아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婦자는 女(여자 여)자와 帚(비 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帚자는 손에 빗자루를 들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렇게 빗자루를 들고 있는 모습을 그린 帚자에 女자가 결합한 婦자는 집 안을 청소하는 여자를 표현한 것으로 '며느리'나 '아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시집온 여자들의 삶이 엿보이는 글자이다. 그래서 婦(부)는 ①며느리 ②지어미 ③아내 ④여자 ⑤암컷 ⑥예쁘다 ⑦정숙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내 처(妻),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시어머니 고(姑)이다. 용례로는 결혼한 여자를 부인(婦人), 남의 아내가 된 여자를 부녀(婦女), 여자가 지켜야 할 떳떳하고 옳은 도리를 부덕(婦德), 주로 부녀들이 짓고 부르는 민요를 부요(婦謠), 부인의 공덕이나 공적을 부공(婦功), 여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부도(婦道), 여자의 권리를 부권(婦權), 여자의 말씨를 부언(婦言), 여자의 몸 맵시를 부용(婦容), 아내와 동성동본인 겨레붙이를 부당(婦黨), 길쌈이나 바느질 따위의 부녀자들의 일을 부직(婦職), 고모부에 대하여 자기를 일컫는 말을 부질(婦姪), 아내의 아버지를 부공(婦公), 처남인 자기자신으로 주로 편지에서 매부에게 자기를 가리킬 때 쓰는 부제(婦弟), 장인인 나로 편지나 글 따위에서 사위에 대하여 스스로를 가리킬 때 쓰는 부옹(婦翁), 남편과 아내를 부부(夫婦), 한 집안의 주인의 아내를 주부(主婦), 간악한 여자를 간부(奸婦), 요사스러운 여자를 요부(妖婦), 갓 결혼한 색시를 신부(新婦), 시어머니와 며느리를 고부(姑婦), 남편이 죽어서 혼자 사는 여자를 과부(寡婦), 범절이 얌전하고 용모와 재질이 뛰어난 신부를 가부(佳婦), 잔치나 술집에서 손님에게 술을 따라 주는 일을 업으로 삼는 여자를 작부(酌婦), 여자의 말을 무조건 옳게 쓴다라는 뜻으로 줏대 없이 여자의 말을 잘 듣다는 의미의 말을 부언시용(婦言是用), 며느리 늙어 시어미 된다는 뜻의 말을 부로위고(婦老爲姑), 남자로서 여자처럼 편벽되고 좁은 성질을 일컫는 말을 부인지성(婦人之成), 여자의 소견이 좁은 어진 마음을 일컫는 말을 부인지인(婦人之仁), 평범한 남자와 평범한 여자를 일컫는 말을 필부필부(匹夫匹婦), 땔나무를 하는 아이와 물을 긷는 여자라는 뜻으로 보통 사람을 뜻하는 말을 초동급부(樵童汲婦), 남편이 주장하고 아내가 이에 따름으로 가정에서의 부부 화합의 도리를 이르는 말을 부창부수(夫唱婦隨), 오륜의 하나로 남편과 아내는 분별이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부부 사이에는 인륜상 각각 직분이 있어 서로 침범하지 못할 구별이 있음을 이르는 말을 부부유별(夫婦有別), 정혼하고 배우자가 죽어서 시집도 가보지 못하고 과부가 되었거나 혼례는 했으나 첫날밤을 치루지 못해 처녀로 있는 여자를 일컫는 말을 망문과부(望門寡婦), 악처는 남편의 일생을 망칠 뿐 아니라 가정의 평화를 파괴하고 자손에게까지 나쁜 영향을 미침을 일컫는 말을 악부파가(惡婦破家)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