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 과제 해결
태풍 카눈이 국토를 종주해 북으로 사라진 팔월 둘째 주말이다. 새벽녘 잠을 깨 남긴 “장맛비 그치더니 내리쬔 뙤약볕이 / 삼복을 넘기면서 대지는 달구어져 / 지상은 숨을 죽인 채 복사열로 뜨겁다 // 엊그제 입추여도 늦더위 남았는데 / 태풍이 스쳐 가자 열대야 잠재우고 / 한낮은 하늘 두둥실 뭉게구름 떠간다” ‘적운’ 전문이다. 지기들에게 카톡으로 사진과 함께 보낸 아침 시조다.
유월 하순에 시작된 장마가 한 달 걸쳐 지겹도록 비가 내렸다. 올해 장마는 기간도 길었지만 누적 강수량도 역대급이라 육십갑자 전 계묘년 대홍수가 소환되기도 했다. 충청과 경북 일원에서는 태풍이 아닌 장맛비에도 산사태와 침수로 상당한 인명이 희생되고 물적 피해가 속출했다. 장마가 물러가니 이번엔 겪어보지 못한 무더위로 연일 폭염경보가 내려지고 열대야가 계속되었다.
엊그제 지나간 태풍은 바람은 피해를 주지 않고 비를 많이 뿌리고 사라져 마음이 놓인다. 날이 밝아오는 이른 아침 산행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장마 기간 비가 그친 틈새 생활권에서 가까운 숲을 찾아 영지버섯을 찾아내 베란다에서 말리고 있다. 장마가 끝난 이후는 폭염이 심해 산행을 제대로 나서지 못했다. 산을 찾아가도 반나절만 숲에서 머물다 물웅덩이에 몸을 담그고 나왔다.
나는 창원 근교 숲에서 식생이나 지형을 훤히 꿰뚫고 있다. 봄철엔 어느 산자락으로 오르면 무슨 산나물을 뜯어올 수 있는지 다 알아 우리 집에서는 찬거리를 걱정하지 않는다. 일부는 이웃이나 지기들한테도 나눈다. 여름이면 어느 숲에서 영지버섯이 자라는지도 알고 있기에 채집 적기를 놓치지 않고 따왔다. 말린 영지버섯 역시 형제나 주변에 인연이 닿는 지기들에게 보내진다.
삭은 참나무 그루터기에 자라는 영지버섯은 찾아내기가 그리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연년이 쌓인 산행 경험으로 남들에겐 귀한 영지버섯을 발품을 팔아 나서면 쉽게 찾아낸다. 올여름에도 몇 군데 산자락으로 올라 따와 말리는 영지버섯이 제법 되는 편이다. 영지버섯은 여름 한 철만 자라다 계절이 바뀌면 삭아 쪼그라들고 벌레가 파먹어 건재로서 가치를 잃게 되었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불모산동을 출발해 온 214번 버스를 탔다. 종합터미널과 농산물도매시장을 거쳐 공단 배후도로를 달려 웅남동 주민운동장에 닿았다. 산성산을 찾기 위해 생태하천으로 복원된 양곡천을 따라 걸어 높다란 교각의 마창대교 진입로를 지났다. 편백 누리길에서 바람 소리길로 오르면서 개척 산행으로 숲속을 누벼 벌레가 꾀고 삭아가는 영지버섯 무더기를 찾아냈다.
이후 숲을 더 누볐는데 영지버섯은 찾아내지 못하고 산마루 전망 정자에 닿았다. 나뭇가지 사이로 두산중공업 공장과 합포만과 가포 일대 시가지가 드러났다. 얼음 생수를 비우고 몇몇 지기들에게 산마루 풍광 사진과 함께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정자에서 파도 소리길로 내려가면서 등산로를 벗어나 비탈진 숲을 누벼 영지버섯을 찾았더니 발품을 판 보람은 있어 몇 무더기 만났다.
영지버섯은 장마가 오기 전 자루에서 갓을 펼쳐 점차 커지면서 자색으로 바뀌었다. 삭은 참나무 둥치가 커서 영양 공급을 잘 받기만 하면 주전자 뚜껑 크기 영지버섯도 볼 수 있었다. 나는 올여름 산성산에서 한 차례 영지버섯을 채집한 적 있어 이번이 두 번째 걸음이었다. 지난번 숲을 누비다가 남겨둔 구역에서 찾아낸 영지버섯은 비에 삭으면서 벌레가 꾀고 가뭄에 쪼그라졌다.
삼귀 해안에 이르는 참다래길로 나아가질 않고 비탈진 숲을 누벼 영지버섯을 몇 조각 더 찾아냈다. 송전탑을 세우면서 지나간 장비가 망가뜨린 숲을 복원한 구역에서 산마루로 올라가 간식으로 가져간 삶은 옥수수를 꺼내 먹었다. 산등선을 넘어가 갈미봉 약수터로 향하지 않고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가면서 영지버섯 부스러기를 몇 조각 더 찾아내 양곡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23.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