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찬송가 191장 (구 427장) / 출애굽기 4 : 1 - 17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 찬송가 191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출애굽기 4장 1절 – 17절 말씀입니다.
1.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2.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지팡이니이다.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것을 땅에 던지라 하시매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
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으니 그의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
5. 이는 그들에게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6. 여호와께서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의 손에 나병이 생겨 눈 같이 된지라.
7. 이르시되 네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다시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의 손이 본래의 살로 되돌아왔더라.
8.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만일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그 처음 표적의
표징을 받지 아니하여도 나중 표적의 표징은 믿으리라.
9. 그들이 이 두 이적을 믿지 아니하며 네 말을 듣지 아니하거든,
너는 나일 강 물을 조금 떠다가 땅에 부으라.
네가 떠온 나일 강 물이 땅에서 피가 되리라.
10.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11.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12.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13.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14.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여 이르시되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 잘 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그의 마음에 기쁨이 있을 것이라.
15.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16.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17.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아멘!
하나님이 온 우주를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이 모든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사실도 믿으십니까? 하나님이 역사를 이끌어 가실 때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을 부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킨 장본인입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에게 신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그렇게 위대한 모세도 처음 부르심을 받았을 때 얼마나 초라한 인물이었는가를 보여 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사용하시는가?” 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십니다.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내가 내 백성의 고통과 부르짖음을 아노라.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 이 얼마나 귀한 사역입니까? 하지만 모세는 거절합니다. 40년전 이 말씀을 하셨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 때는 일할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었습니다. 바로의 궁중에서 40년을 지내며 애굽의 모든 학문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애국심에 불타 애굽 사람을 죽일 용기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려는 꿈도 있었습니다. 능력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는 불러 써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광야로 쫓겨나 40년간 쓸쓸한 세월을 보냅니다. 나이가 여든이 되었습니다. 인생에 아무런 낙도 없습니다. 무슨 기대도 없고, 어떤 변화도 바라지 않습니다. 예전에 가졌던 꿈도, 젊은 날에 용기도 다 사라졌습니다. 그런 모세를 이제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늙어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모세에게 너무나 엄청난 사역을 맡깁니다. 그때 모세의 반응은 출애굽기 3장 11절입니다.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사명을 거부합니다. 모세의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겁니다. 지금 내 모습이 얼마나 초라하고, 내가 얼마나 무능한 존재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제 와서 날더러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해내라니 “내가 누구관대” - 이런 일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사명을 받았지만 두려워 머뭇거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왜 사명자가 이런 두려움에 빠지게 되는가?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자신을 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볼 때 무능력한 자신의 모습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가 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일을 내 힘으로 하려 한다면 낙심하고 절망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일을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두 번째는, 환경을 보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자신이 가야 할 곳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40년을 살아왔던 곳입니다. 바로의 엄청난 권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두려워서 도망쳐 온 곳 아닙니까? 그런 곳에 어떻게 들어갑니까? 환경과 처지가 다 맞아서 주의 일을 하는 것 아닙니다. 환경을 보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40년 전에 부르지 않고 이제 부르신 이유를 아십니까? 겸손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한 가장 필수조건이 겸손입니다. 40년 전 모세는 바로의 궁중에서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자신이 지도자로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 교회들이 목사님을 초빙할 때 어떤 분을 구하는지 아십니까? 우선 설교 잘 하고, 그 다음 행정도 잘하고, 심방도 열심히 하고, 인간관계도 좋고, 공부도 잘 해서 유학갔다 온 사람이면 더 좋고, 무엇보다 외모가 되어야 합니다. 그야말로 약점 하나도 없는 100점짜리 목사님을 구합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하나님은 요즘 교인들보다도 눈이 낮은 분입니까? 왜 하나님이 팔십 노인이 된 모세를 불렀습니까? 그렇다면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사람이 과연 하나님만 의지하겠습니까?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양 무리를 치면서 본격적인 겸손의 훈련을 합니다. 40년 광야에서 모세는 낮아질 대로 낮아집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토록 겸손해지고 한없이 낮아진 모세를 부르십니다.
주님의 일을 하려면 뭔가 갖추어야 하지 않습니까? 남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자신을 돌아보면 전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망설이게 되고 뒷걸음질 치게 됩니다.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그때 하나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출 3:12) - 모세를 설득시키는 하나님의 응답이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갖고 계신 것을 주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모세가 갖고 있는 것이 뭐냐고 지금 물으시는 겁니다. 모세가 갖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달랑 지팡이 하나입니다. 모세가 속으로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걸로 제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아무 것도 주시지 않고 보잘 것 없는 “지팡이를 들고 가라” 고 하십니다. 모세가 갖고 있던 지팡이는 목자가 양을 칠 때 쓰는 볼품없는 아카시아 나무 막대기입니다. 아무 보잘 것 없는 막대기입니다. 모세가 또다시 핑계를 댑니다. 말을 잘 못한다는 겁니다.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해서 못가겠다고 합니다. “보낼만한 사람을 보내라.” 고 합니다. 그러자 말 잘하는 아론을 붙여줍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아무 것도 특별한 것을 주지 않았습니다. 특별한 변화도 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세의 지팡이를 통해 하늘에서 뇌성과 우박을 내리시고, 불을 내리기도 하십니다.(9:23) 지팡이를 바다 위로 내밀 때 홍해가 갈라졌습니다.(14:16) 지팡이로 반석을 칠 때 그 속에서 물이 나옵니다.(17:6) 모세의 지팡이가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지팡이를 휘두르는 모세에게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시니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모세가 갖고 있는 거라곤 지팡이 하나 밖에 없습니다. 한없이 초라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을 들어 하나님의 큰 역사에 사용하십니다. 바로 이 진리를 모세의 지팡이를 통해 보여주시지 않습니까?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이 질문은 모세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질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모세처럼 지팡이 하나만 있어도 됩니다. 마침내 모세가 순종하여 애굽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손에 지팡이를 들고 애굽으로 내려가는 모세의 모습은 양을 칠 때와 다를 바 없는 초라한 모습입니다. 여전히 말을 못하는 입이 뻣뻣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순종하는 순간부터 대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도 순종해야 합니다. 나의 약함, 부족함, 무능함, 하나님이 다 알고 계십니다. 순종하면 하나님이 채워주십니다. 지혜도 주시고, 능력도 주시고, 물질도 주시고, 사람도 주시고, 채워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가진 작은 것으로도 주님을 최고로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있는 것 놔두고 달라고 하지 마십시오. 있는 것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용되기만 하면 됩니다. 던지라 할 때 던지고, 잡으라 할 때 잡고, 가리키라 할 때 가리키므로 능력의 하나님이 역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