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한갖 재주는 타고 난다던데...
말카 비켜간 난 뭐여?
사람이
재주가 많으면 할 일도 많은가봐요.
팔방미인도 되고, 팔방미남도 되고...
가수 秦芳男 = 작사가 半夜月
1939년 7월 김천극장에서 조선일보·태평레코드사 주최 전국신인가수 선발콩쿠르가 열렸다. 일본 오사카에서 함경도까지 전국에서 참가비 3원을 내고 접수한 몇 백 명이 모여 이틀간 걸쳐 예선, 결선을 치렀다. 1등에 마산 출신의 박창오가 뽑혔다. 김천극장 옆 여관에서 가수 백년설과 태평레코드사 문예부장 고려성이 입상자 박창오에게 진방남(秦芳男)이란 예명을 지어줬다. 진나라의 꽃다운 향기 나는 남자가 되란 의미였다.
진방남은 1940년 하숙집 주인의 이질녀인 김천 남산동 출신 윤경분(尹京紛)과 결혼했다. 장인이 김천 남산동의 윤제균(尹濟均), 장모가 서태경(徐泰慶)이다. 김천에서 풍각쟁이 사위감이라 반대하는 걸 진방님이 어렵게 설득, 허락을 얻어냈다. 마침내 진방남과 윤경분이 서울 광화문 금구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충신동 셋방에서 신혼살림을 차렸다. 진방남은 6·25전쟁 때 처자식을 잃고 떠돌다가 피란 갈 곳이 없어지자 김천 남산동의 처가로 찾아들기도 했다.
가수 진방남이 작사가 반야월(半夜月)이 되었다.
반야월, 이 예명으로 그는 80여 년 간 3천5백여 곡의 가요시를 지으며 전국의 9곳에 자신의 노래비를 남겼다. 잘 알려진 <울고 넘는 박달재> <단장의 미아리 고개> <소양강 처녀> <무너진 사랑탑> <산장의 여인> <만리포 사랑> <두메산골> <삼천포 아가씨> <아빠의 청춘> <열아홉 순정> <유정천리> <잘 했군 잘 했어> <행복의 일요일> <딸 칠형제> <마도로스 박> <벽오동 심은 뜻은> <남성 넘버 원> 등등이 서민적, 낭만적, 휴머니즘적 성향 농후한 그의 히트곡이다.
한국가요사 1세대의 마스터 키요, 풍류 휴머니스터였던 반야월은 명예제천시민, 충북도민이 되어 박달재에 영구히 누워있다.
화물선(貨物船) 사랑 -- 秦芳男진방남(=半夜月반야월)
1940
處女林처녀림ba朴英鎬박영호=不死鳥불사조 작사,
霧笛人무적인ba李三同이삼동=李在鎬이재호=南村人남촌인 작곡
0
< 1 >
간다간다 떠난 港口
안개 속에 그 港口
貨物船 뱃머리에
매달리던 그 處女
울지마라 太徵아
네가 울면은
매달리던 그 處女가
다시 그립다~
< 2 >
온다온다 떠난 埠頭
사랑 매낀 그 埠頭
두 토막 옷소매에
百日紅을 그렸오
울지마라 太徵아
네가 울면은
百日紅 옷소매가
다시 野俗타~
< 3 >
떠나갈 때 안 오마는
모진 님을 봤느냐?
온다고 떠난 님이
돌아온 님 봤느냐?
울지마라 太徵아
네가 울면은
허물어진 盟誓나마
다시 아깝다~
화물선(貨物船) 사랑/진방남 노래(1940)의 작사가 박영효가 월북하면서 금지곡의 운명이 되자
반야월(진방남)이 가사를 다시 쓰고 나화랑이 작곡한 무역선 사랑--진방남 노래(1957)도
위의 이재호 작곡의 "화물선 사랑"과 선율이나 서정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느껴진다.
무역선 사랑--진방남(반야월) 노래
1957
반야월(진방남) 작사, 나화랑 작곡
E
첫댓글 좋은아침입니다
반야월
많이도 노래를 만들었네요
3500곡이나?
대단합니다
근데
화물선 사랑
처음 들어봅니다
나는 왜?
처음 듣는 노래가 많을까요?ㅎ
아무튼
오늘도
기분좋은 하루가 되십시요 ~^^
그 많은 걸
어떻게 다 듣고 아나요 ㅎ
수 많은 언어를
그저 두세개만 해도 얼마나 훌륭한가요.
세상엔 모르는 게 너무 많고
사람은 많이 모르고 무식한게 정상입니다.
안 들어본 것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반야월이 진방남 이름으로 ..
좋은 하루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