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에 핀 야생화
이틀 뒤 광복절이 다가오는 팔월 중순 일요일이다. 엊그제 지나간 태풍은 연일 내려지던 폭염경보와 지속된 열대야를 날려버렸다. 간밤은 기온이 낮아져 창문을 닫고 선풍기와 에어컨은 꺼도 되었다. 일찍 잠을 깬 새벽에 날이 밝아오길 기다리며 음용하는 약차를 끓이면서 노트북을 열어 뉴스를 검색해 봤다. 염려된 세계 청소년 잼버리가 유종의 미를 거뒀다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이른 아침을 해결하고 산행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마산역 광장으로 나가 봉화산 허리로 뚫린 임도를 걸어볼 요량이다. 그간 유월 말부터 시작된 장맛비와 이어진 폭염으로 진북과 진전 일대 산자락으로 나가 볼 겨를이 나질 않았는데 무척 오래간만이다. 칠월 말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을 때 수리봉 기슭 영지버섯을 찾아보고 의림사 계곡에 몸을 담그고 왔던 적은 한 차례 있었다.
역 광장으로 오르는 노점에는 여름을 견뎌낸 채소들이 다수 진열되어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엊그제 지난 태풍과 가뭄으로 잎줄기채소는 귀해져 드물었고 애호박이나 누군가 산에서 힘들게 채집했을 제피열매가 눈길을 끌었다. 열무나 호박잎은 드물어도 껍질을 깐 고구마 잎줄기는 많이 보였다. 일요일 아침이면 신마산 댓거리에서도 장터가 열리는데 역 노점과 겹치는 날이었다.
번개시장 들머리에서 김밥을 마련해서 진북 대현으로 가는 72번 농어촌버스를 탔다. 어시장을 거치는 시내를 벗어나 동전터널을 지나 진동 환승장에 둘러 진북 산업단지를 지났다. 추곡에서 대현과 정현을 지난 종점 용광사에서 승복을 입은 한 비구와 같이 내렸다. 진동에서 함안 여항으로 넘는 79번 국도 갓길을 따라 진고개로 올랐다. 대현을 대치라고도 하고 진등으로도 불렸다.
여항산을 거쳐온 낙남정맥이 봉화산에서 광려산과 무학산으로 이어진 고갯마루가 대현으로 창원 진북과 함안 여항의 경계였다. 봉화산으로 가는 임도 들머리에서 길고양이처럼 생긴 작은 짐승이 뒷모습만 보인 채 앞질러 달아났다. 고라니보다 작은 체격으로 미루어 오소리나 너구리였지 싶었다. 임도 길섶에는 넝쿨로 뻗어 자란 칡과 산딸기나무가 무성해져 길바닥을 덮칠 정도였다.
엊그제 지나간 태풍으로 내린 비로 산사태가 났던 언덕은 중장비를 동원해 복구를 마쳐 놓은 구역이 나왔다. 봉화산을 돌아가는 갈림길을 지나 베틀산으로 뚫린 길고 긴 임도를 따라 걸었다. 평소엔 인적이 전혀 없는 곳인데 산악자전거를 타고 오르는 사내 셋이 페달을 힘차게 밟고 지나 응원을 보냈다. 언덕 아래서 올라온 덩치 큰 멧돼지가 자전거를 뒤따라 사라져 마음이 놓였다.
한여름은 야생화가 귀한 계절임에도 간간이 몇 종 꽃을 볼 수 있었다. 꽃잎이 작아 앙증스러운 이질풀이 분홍 꽃을 피워 허리를 굽혀 눈높이를 맞추었다. 토종 물레나물보다 이파리나 꽃송이가 작은 서양 물레나물이 노란 꽃을 무더기로 피웠다. 한여름 뙤약볕에도 꿋꿋하게 자란 등골나물이 피운 꽃은 자주색과 흰색 두 가지였다. 마타리과에 속하는 뚝갈은 제철에 하얀 꽃을 피웠다.
길고 긴 산모롱이를 돌아가는 어디쯤 자연석을 실어 날라 대규모 사방 사업을 마쳐둔 골짜기가 나왔다. 바위 벼랑이 잘려 나간 암반은 태풍이 지나면서 내렸던 비로 맑은 물이 흘러내리기도 했다. 마땅한 쉼터가 없어 산그늘이 드리운 길바닥에서 퍼질러 앉아 땀을 식히고 배낭의 김밥을 꺼내 먹었다. 아까 봤던 멧돼지가 다시 나타날까 봐 사주를 경계하는 긴장의 끈은 놓지 않았다.
서북산 낙남정맥이 대부산에서 봉화산으로 뻗어가면서 한 갈래 분맥은 평지산으로 나뉘어 베틀산으로 이어졌다. 금산 편백숲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걸어 베틀산 허리에서 부산마을로 내려갔다. 덕곡천을 건너 이목마을 노거수 느티나무 아래서 서북동을 출발해 시내로 가는 73번 농어촌버스를 탔다. 합포구청 앞에서 버스를 갈아타 집 근처 닿으니 평일 하교 시간과 얼추 맞았다. 23.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