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찻길에서 사다리 타기
고경숙
어디선가 아카시꽃이 하얗게 쏟아져 날렸다
5월에 눈이라니, 농담은 비현실적인 풍경을 만들고 샤갈의 마을처럼 붉은 말이 떠다녔다
놀이공원에서 쓰고 나온 기린 머리띠가 당신과의 간극을 없애준다 믿으며 나는 몰 래 까치발을 들었지
기차가 안 다니는 철로를 5월과 함께 걸었다
철로 한 쪽엔 내 발, 남은 철로엔 당신 발, 균형 잡지 못해 흔들리는 춤사위가 인생 어느 지점쯤에선 희극적 요소가 되리라 미리 웃으며
내가 침목을 만나 그리로 가면 그 침목을 타고 내가 있던 쪽으로 당신이 오고, 우리가 한 칸 두 칸 전진할 때마다 기적汽笛이 환청으로 왔다
봄날의 폭설은 끝없이 내리고 사다리 게임은 영원히 끝날 수 없었다
그래, 생을 가로막는 건 늘 선線, 선이었지 샤갈의 마을에는 신랑신부도, 붉은 말도, 지팡이 든 신사도 모두 착지着地하지 못하고 둥둥 떠다닌다는 것을, 눈여겨봤어야 했어
5월에 꽃눈 내리면 눈을 감는 버릇은 슬픈 예감,
기차가 없는 철로는 길이라고 더 이상 우기지 않던 당신은
지금 어느 길 끝에서 한참을 서있을까
웹진 『시인광장』 2023년 5월호 발표
고경숙 시인
2001년 계간 《시현실》로 등단. 시집으로 『모텔 캘리포니아』, 『달의 뒤편』, 『혈穴을 짚다』, 『유령이 사랑한 저녁』 등이 있음. 수주문학상, 두레문학상,경기예술인상, 희망대상(문화예술부문), 한국예총 예술문화공로상 수상. 부천예총 부회장,수주문학상운영위원장 ,부천시 문화예술위원, 부천의 책 도서선정위원장, 부천신인문학상운영위원, 부천시립도서관 운영위원, 부천펄벅기념관 운영위원.
[출처] 웹진 시인광장 선정 올해의 좋은 시 5 00[261]기찻길에서 사다리 타기 - 고경숙 ■ 웹진 시인광장 2023년 5월호 신작시|작성자 웹진 시인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