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미는 뒤통수를 맞은 듯 꼼짝도 못했다. 자신의 모습이 넘어진 거울의 깨진 유리 사이로 보였다. 자신이 생각한 후줄근한 아줌마는 거기 없었다. 맵시있게 파마한 머리, 떡칠한 화장 그리고 붉은 립스틱…이건 자신이 창녀라고 욕한 수진의 모습이었다. 아무에게나 가랑이를 벌리고는 깔깔 웃을 거 같은 그런 천박한 여자. 거울 속의 자신을 보는 선미를 감상하면서 영진은 웃었다. 경멸과 조소가 분노를 만나 마음껏 터지고 있었다. 적어도 그가 살아왔던 인생 모두에 대한 분노인 거 같았다. 그렇게 씩씩대던 영진이 갑자기 외투를 벗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말을 시작했다.
“그렇게 집착하면서…나 없이는 못 살거 같았으면서…엄마가 나에게 해왔던 짓이 뭔지 알아?” 상의를 벋고, 속옷을 벗었다. 23살의 튼실한 상체가 드러났다. 그 곳에서 선미는 자신의 실체를 봤다. 영진에 온 몸에 난 저 멍…선미의 아버지가… 자기에게 했던 아픈짓…그렇게 증오했던 아버지와 내면적으로 완전히 합치된 자신을…그래, 장선미, 난 이런 년이었다.
선미는 황제의 마지막 자비를 구하는 검투사처럼 영진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황제의 결심은 잔인하게도 확고하다.
“아빠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난 갈거야. 더 이상 이렇게 못 살아. 짐은 필요 없어…엄마, 아니, 장선미씨 마음대로 해.”
아들이 떠나가려고 한다. 아들이 떠나간다. 그렇게 사랑했던 내 아들이…안 돼, 안 돼, 저대로 보낼 수 없어. 아들이…나가려는 영진의 뒤편에서 무언가 검은 것이 보인다. 희뿌연 연기같은 것이다. 그 검은 연기는 이성을 거의 상실한 선미가 보이게도 말할 수 없이 불길하고 음침했다. 그것은 영진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기운이 뭉치면서 하나의 형상을 이루었다. 세상에 저것은…수진의 모습, 아니 바로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을 향해 기분 나쁘게 조소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래, 네 년은 그런 년이었어. 등신같은 년.”
선미는 그녀를 계속 응시했다. 아무리 봐도 자신의 모습을 띤 수진을, 그녀가 앙칼지게 웃고 있었다. 영진이라는 남자를 두고 싸움을 벌였던 자신과 자신을. 아니, 저건 최후의 보루일지도 몰랐다. 영진이를 그나마 아들로 보려고 했던 무의식이 저 검고 불쾌한 물체를 만나 나에게서 떼어 놓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선미는, 영진을 사랑하던 그녀는 깨진 거울 조각을 들었다. 그녀의 머리 속엔 진실이 보이지 않는다. 영진이 떠나간다, 그리고 저 앞에 있는 수진인지 무언지 하는 년때문이라는 간단한 삼단 논법이 다였다. 그러나 그것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수진은 웃고만 있다. 그래, 계속 웃고 있어라. 네 년은 내가…선미가 일어난다.
“죽어!!” 먹이를 위해 잔뜩 도사린 사자같이 그녀는 도약한다. 그녀의 괴성에도 수진은 꼼짝하지 않는다. 그래, 그대로 있어라 이년아. 수진이 바로 손에 잡힐 듯 다가 온다.
그러나, 수진이 사라졌다. 바로 눈 앞에서. 선미는 검은 연기가 흩어지는 것을 본 거 같았다. 그 대신 그 앞에는 선미의 괴성에 놀라 자신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영진이 있었다. 아차…이것은…? 너무 빠르게 다가와서 멈출 수가 없었다. 날카로운 유리조각이 곧바로 영진의 가슴으로 날아드려고 한다. 안 돼, 안돼…
“영진아!!”
영진은 극적으로 몸을 틀었다. 선미는 영진에게 아슬아슬하게 부딪혀 중심을 잃어버렸다. 비틀거리며 현관으로 곤두박질쳐버린 선미는 자신의 왼쪽 가슴 쪽에서 으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통증이 퍼져오는 것을 느꼈다. 선미는 엎드린 몸을 천천히 돌렸다. 유릿 조각이 그녀의 왼쪽 가슴에 검붉은 진흙탕을 만들며 꽂혀 있었다. 싸늘한 영진도 그 광경에 충격을 받았는지 그녀에게서 슬금슬금 멀어졌다. 그녀는 그 와중에서 영진을 바라보았다. 안 돼…가지마…가지마… 선미가 하고 싶은 말은 폐에서 역류하는 피 때문에 하지 못했다. 영진은 비명을 지르며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선미는 잦아드는 호흡 안에서 다시 그 괴물의 연기가 형성된다. 그 놈이 다시 나타났다. 그런데 이번엔 뭔가가 다르다. 일그러진 얼굴에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선미를 바라보고 있다.
“등신같은…년…” 놀랍게도 그녀도 왼쪽 가슴에 똑같은 상처가 있었다, 그랬다. 수진은 선미고, 선미는 수진이다. 어떤 괴물이 어떻게 태어났건, 선미의 내면에 있는 그녀의 아버지도 선미라는 사실만큼이나 명확했다. 수진은, 아니 수진은 닮은 괴물은 그렇게 가슴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모든 게 끝나가고 있었다. 선미와 같이 수진은 그렇게 죽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 와중에, 죽어가는 와중에 선미가 웃는다. 저 년, 아니 놈? 뭐든간에 내 흉내를 내는데 한가지 실수한 것이 있었다. 그녀는 꺼져가는 생명을 간신히 잡고서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수진을 본다. 미동도 하지 않는 것이 죽은 거라고 추호도 의심을 하지 않았다. 심장을 찔렸으니 즉사한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선미는?
현관에서 구두소리가 급하게 들린다. 김성진, 그가 오고 있는 것이다. 시간은 얼마 없지만 마지막 힘을 다해 손에 가슴에서 뽑은 유리 조각을 찌를 힘은 있었다. 그녀는 지금 꺼져가는 힘을 짜내서 현관문틈에 숨는다. 이제 문이 덜컥 열리려고 한다. 선미는 그 짧은 시간속에 참을성 있게 숨어서 기다린다. 선미를 따라한 괴물이, 모든 것을 그대로 흉내낸 괴물도 알지 못해서 저지른 실수.
그녀는 오른쪽 심장이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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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플갱어
독일어로서 영어로는 더블 고어(Double gore)로, '이중으로 걷는자, 방황하는 자'라는 뜻이다. 흔히 실체가 없이(굳이 있다면 검은 연기같은 형체이다)상대방의 모습을 똑같이 복사하고 죽인 후에 그 희생자의 행세를 하고 다니는 존재라고 한다. 물질적이나 동물적 의미보다 정신적이나 유령적인 의미가 더 강하다고 하겠다. 신화나 판타지 적인 아닌 이성적인 의미의 도플갱어의 정의는 정신질환의일종이다. 심한 정신적 충격이나 다른 이유로 자기 제어가 불가능할 때 생기는 것으로 평소 자신이 혐호하던 모습이나 무서워하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이오카스테 증후군
이오카스테는 오이디푸스의 어머니로, 아버지를 죽인 아들과 사랑에 빠져 결혼해 살다가, 사실이 밝혀지자 목을 매고 자살한다. 연상이나 어머니같은 이미지에 집착하는 오이디푸스 증후군과 반대로 연하나 아들의 이미지에 집착거나 실제 혈연의 아들에게서 과도하게 집착하는 증상을 보인다고 한다. (우리나라 영화의 '올가미'와 드라마 CSI에서 인용되었음)
PS) 환상수 생명의 원 에 등장한 환상수
호문쿨루스
호문쿨루스란 연금술에 의해 만들어진 인조인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라틴어로 'Homullus(작은 사람) 라는 의미로, 어른이 되면 거인이 되는 것도 있다고 한다.주의 깊게 키우면 스스로 지성도 가진다. 호문쿨루스라는 말이 생겨난 이유는 연금술사들이 생명의 창조에 대해서도 흥미를 가지고 있어서 기계로 만든 인조인간이 아니라 생명을 가진 인조인간을 화학적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프랑켄슈타인이 기계의 힘으로 탄생한 것과는 대조적이라고 할 수있다. 독일의 연금술사인 파라켈수스는 여성의 육체 외부에서 하나의 인간이 탄생하는 일도 가능하다고 하여 그 생성 방법을 써놓았는데, 남자의 정액을 증류기 속에 넣어서 40일간 밀봉해두면 그것이 부패해서 움직이는 것이 눈에 보이게 되고, 사람의 형태를 띠긴 했지만 투명하고 실체가 거의 없어 보이는 것이 생겨 난다. 이것에게 매일 인간의 혈액을 투여해서 조심스럽게 기르는데, 40주 동안 말의 태내 온도에 맞게 보존해두면 인간의 여성으로부터 태어난 것과 똑같이 사지가 달린 인간의 아이가 태어난다. 문학에서도 등장한 바있는 호문쿨루스는, 연금술을 통한 인공적 생명 창조라는 의미 외에도 인간의 순수한 이성의 산물이라는 경이롭고도 위험한 의미를 둘 다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첫댓글 이런 반전이 있었군요. 잘읽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이해 안되는 부분;; 오른쪽 심장이었다...무슨 뜻인가요?? (제가 워낙 이해력이 딸려서...-_-;;)
아... 사람중엔 기형이 있는데 전체 내장의 위치가 일반인과 반대인 사람과 심장의 위치만 일반인과 반대인 사람이 있죠. 아마도 여기 주인공은 심장의 위치가 오른쪽에 있는 사람인듯. ^^;;;
'괴물'의 실수라는 부분...을 주목하시면 이해되실듯 하네요~^^ 유리조각에 찔린 부분을 생각해보신다면^^
잘 읽었습니다.
와웅~!
음..재미있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