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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년부중래(盛年不重來)
젊은 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뜻으로, 시간을 아끼라는 말이다.
盛 : 성할 성(皿/7)
年 : 해 년(干/3)
不 : 아닐 불(一/3)
重 : 거듭 중(里/2)
來 : 올 래(人/6)
젊음은 일생 동안에 두 번 오지 않는다는 뜻으로, 청춘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는 말이다. 도연명(陶淵明)의 시 '잡시(雜詩)'에 나오는 말이며,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人生無根蔕(인생무근체)
飄如陌上塵(표여맥상진)
인생은 밑바탕이 없는 것, 한길 위의 먼지처럼 바람에 나부끼네.
分散逐風轉(분산축풍전)
此已非常身(차이비상신)
흩어져 바람 따라 뒤집히니, 이로써 이미 영원한 몸은 아닐세.
落地爲兄弟(낙지위형제)
何必骨肉親(하필골육친)
세상에 태어나 형이요 아우요 하니, 하필 혈족 사이에서만 한할 것인가.
得歡當作樂(득환당작낙)
斗酒聚比鄰(두주취비린)
기쁜 일 만나면 마땅히 즐길 것이니, 말술을 갖추고 이웃들을 불러 모으라.
盛年不重來(성년부중래)
一日再難晨(일일재난신)
젊은 시절은 두 번 오지 않고, 하루에 다시 또 아침 되기 어려우니.
及時當勉勵(급시당면려)
歲月不待人(세월부대인)
좋은 때를 잃지 말고 마땅히 힘써야 하리니,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네.
인생은 식물의 뿌리나 과실의 꼭지 같은 밑바탕이 있는 존재가 아니어서, 길위의 먼지가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것과 다름없이 떠도는 하찮은 몸이다.
그러한 존재에 지나지 않으니 하필 피붙이들 끼리만 형이니 아우니 할 것은 무언가. 사해지내(四海之內)가 모두 형제인 것이니 기쁜 일이 있거든 술상을 갖추고 이웃을 불러 함께 즐김이 마땅하리라.
하루에 아침이 한 번이듯 젊은 시절도 다시 오지 않는 것이니 때를 놓치지 말고 노력함이 좋으리라. 세월은 나를 기다리지 않고 가 버린다네.
허무적인 느낌을 주다가 끝에 가서 인생은 헛되이 보내버릴 것이 아니라는 유교적 교훈을 담았다.
이러한 노력의 강조는 다분히 그의 증조부 侃의 "위대한 우(禹) 임금은 성인이었으나 촌음(寸陰)을 아꼈다. 모든 사람들은 더 말할 것도 없이 1분 1초를 아끼며 살아가야 하리라"는 사상을 이어받음에서 왔으리라. 끝 네 구는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명구(名句)이다.
도연명은 전원 생활과 음주의 낙을 즐겨 읊었지만 때로는 인간의 내면을 그린 철학적인 시도 적지 않다. 청결한 일생으로 '정절선생(靖節先生)'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성년부중래는 화살처럼 흐르는 것이 인생이고, 그 가운데 젊은 시절은 매우 중요한 때이므로 헛되이 보내지 말라는 뜻이다.
앞의 '잡시'에는 성년부중래 이외에 일일난재신(一日難再晨), 세월부대인(歲月不待人) 등의 고사성어가 유래하며, 특히 성년부중래, 급시당면려, 일일난재신, 세월부대인은 한국의 명심보감(明心寶鑑)에도 실려 면학을 권장하는 말로 인용된다.
성년부중래(盛年不重來)
젊음은 두 번 오지 않는다는 뜻으로, 청춘을 낭비하지 말라는 말이다.
시간은 금이고, 돈이고, 흘러간 시간은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서양 격언이다. 중국 宋(송)나라의 蘇軾(소식)도 一刻値千金(일각치천금)이라 읊었으니 동서가 다르지 않다. 이렇게 값나가는 시간이 지나가기는 덧없다. 빨리 지나가는 시간을 말이 달리는 것에 비유한 표현이 많다.
禮記(예기)에는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가 지나는 것을 문틈에서 보듯이 순식간이라고 若駟之過隙(약사지과극)이라 했고, 莊子(장자)에서도 비슷하게 흰 망아지가 달리는 것을 보는 白駒過隙(백구과극)과 같다고 했다.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는데 인생에서 짧은 부분인 전성기는 순식간이니 알차게 보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혈기가 왕성한 젊은 시기(盛年)는 일생에서 두 번 오지 않으니(不重來) 청춘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는 명구는 陶淵明(도연명, 365∼427)의 시에서 나왔다. 六朝(육조) 최고의 시인인 그는 바로 歸去來辭(귀거래사)가 떠오르고 박봉으로 허리를 굽힐 수 없다는 五斗米折腰(오두미절요)란 말도 연상한다.
전원생활과 음주를 벗한 그의 시에 ‘雜詩(잡시)’란 제목의 12수가 있는데 1수의 뒷부분에 이 구절이 나온다. 내용을 보자. ‘한창 시절은 거듭 오지 않고, 하루에 새벽은 두 번 맞지 못한다네(盛年不重來 一日難再晨/ 성년부중래 일일난재신), 때맞춰 부지런히 힘써야 하리,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네(及時當勉勵 歲月不待人/ 급시당면려 세월부대인).’
도연명의 시는 다른 구절 一日難再晨(일일난재신)이나 歲月不待人(세월부대인)까지 누구나 알 정도로 많이 인용된다. 우리의 한문교재 ‘明心寶鑑(명심보감)’에도 실려 친숙하기도 하다. 19편의 항목에서 증보한 마지막 24편의 勸學(권학)에서인데 여기엔 朱子(주자)의 유명한 시도 함께 소개된다.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짧은 시간이라도 가벼이 여기지 말라(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 소년이로학난성 일촌광음불가경)’는 구절과 ‘오늘 배우지 아니하고서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며, 올해에 배우지 아니하고서 내년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勿謂今日不學而有來日 勿謂今年不學而有來年/ 물위금일불학이유래일 물위금년불학이유래년)’는 권학문이다. 古文眞寶(고문진보)에도 나오는 그 구절이다.
선현들이 수없이 시간을 아끼고, 전성기는 빨리 지나가니 알차게 보내야 한다고 일러도 보통 사람들이 명심하기는 어렵다. 특히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그것이 영원한 줄 안다. 權不十年(권불십년)이란 이야기는 남에게만 해당되는 것인 양 우쭐댄다.
어쩌다 재산을 모은 졸부는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인 줄 모르고 흥청망청 낭비한다. 남을 욕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피땀 같은 세금을 앞날은 생각 않고 퍼주기 인기몰이 하는 위정자는 더하다. 영원한 것은 없고 좋은 시기는 후딱 지나간다.
성년부중래(盛年不重來)
불로초(不老草)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던 진시황(秦始皇)도 고작 50년을 사는 데 그쳤다. 누구나 자신만은 늙지 않고 항상 젊게 살 것 같지만 세월이 가만 두지 않으며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다.
그래서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백발을 보고 깜짝 놀란 이대백(李太白)이가 있었고, 오동나무 잎새에서 들려오는 가을소리에 세월의 빠름을 한탄했던 주자(朱子)도 있지 않았겠는가.
조조(曹操)는 인생을 조로(朝露), 아침 이슬에 비유했다. 과연 두보(杜甫)의 '고희(古稀)'에서 볼 때 나이 일흔 넘기기가 예로부터 쉽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 짧디 짧은 인생을 알차게 보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이태백(李太白)처럼 술로 한 평생을 보낸 자가 있는가 하면, 도연명(陶淵明)처럼 전원(田園)에 묻혀 속세와 인연을 끊고 지내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어차피 한 세상 살아갈 바에야 열심히 사는 게 좋지 않을까. 세상 싫다고 다들 산으로 전원으로 들어간다면 이 사회, 이 나라는 어찌할 것인가. 설사 마음이야 떠날지라도 몸은 떠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일까.도연명(陶淵明)은 이런 말도 남겼다.
盛年不重來(성년불중래)
日日難再晨(일일난재신)
청춘은 다시 오지 않고, 새벽은 두 번이 없네.
及時當勉勵(급시당면려)
歲月不待人(세월부대인)
때 맞춰 열심히 해야 할 것을,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으니…
어찌보면 도연명(陶淵明)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한계가 아닐까. 메뚜기도 한 철 이란 말이 있다. 모든 것이 때가 있듯 우리 인생에도 때가 있다.
嗚呼老矣(오호노의)
誰是之愆(수시지건)
오! 늙었구나. 이 누구의 탓이란 말인가?
한탄해 보아야 이미 때는 늦었다.
시계는 살 수 있어도 시간은 살 수 없다?
시간은 가고 또 오는 것인지, 한 번 간 시간은 영원히 오지 않는 것인지… 물론 경우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한 번 지나간 시간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절실히 느껴진다.
때로는 젊은 시절 잘못된 삶을 산 부분은 컴퓨터처럼 포맷하거나 리셋팅해서 새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절대 포맷해서 새로 포장할 수 없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그래서 먼저 산 사람들의 삶의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그 삶의 지혜가 가끔은 잔소리로 변해 부자(父子) 간, 노소(老少) 간의 갈등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먼저 산 삶의 교훈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예술은 길지만 인생은 짧다'는 표현보다 '인생은 짧지만 그 교훈은 길다'가 나이가 들수록 더욱 다가오는 현실이다.
나이에 따라 세월의 속도도 달리 비유한다. 10대는 시속 10㎞의 속도로 느릿하지만 50대는 시속 50㎞에 비유한다. 점점 더 세월이 빨라지고, 그 세월의 속도만큼이나 인생의 시간에도 더욱 가속이 붙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간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 격언과 사례는 수없이 많다. 이미 널리 알려진 구체적 사례를 한 번 들어보자.
세상에는 중요한 세 가지 금이 있다. 그 첫째는 돈을 상징하는 '황금', 두 번째는 음식을 상징하는 '소금', 세 번째는 시간을 상징하는 '지금'이다.
흔히 하는 말로 '세 가지 중에 하나만 선택하라고 하면 무엇을 선택하겠느냐?'고 묻는다. 100이면 90 이상이 '황금'이라고 주저 없이 말할 것이다.
돈만 있으면 소금도 살 수 있고, 시간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돈으로 소금은 충분히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돈으로 시간, 즉 지금이나, 나아가 모든 것을 살 수 있을까?
마이클 샌델 교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What money can't buy)'이란 책에서 도덕적 한계와 재화의 가치를 적절하게 평가하는 방법을 결정할 철학적 프레임을 제공하고 있다.
도덕과 재화를 조화롭게 유지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함께 공동사회를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동시에 제공한다. 그가 든 예를 보면 쉽게 다가온다.
아이의 성적 향상을 위해 아이가 책을 읽을 때마다 약간의 돈을 주는 것은 단기적으로 아이의 독서량을 늘릴 수 있겠지만 아이는 독서를 돈을 벌기 위한 수단쯤으로 여기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아이에게 주는 돈은 '독서의 즐거움 때문에 책을 읽는' 높은 차원의 규범을 '돈을 벌기 위해 책을 읽는' 낮은 차원의 재화의 가치로 대체하는, 도덕적으로 타협된 일종의 뇌물이라는 것이다.
'돈으로 시계는 살 수 있어도 시간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어도 잠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책은 살 수 있어도 지식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의사는 살 수 있어도 건강은 살 수 없다. 돈으로 관계는 살 수 있어도 사랑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집은 살 수 있어도 가정은 살 수 없다'와 같은 사례는 돈과 가치를 적절히 규정짓는 개념들이다.
결국 인간의 자발적 의지와 본인의 높은 차원의 규범과 가치가 개입 되어야만 의미있고 행복하게 된다는 맥락과 통한다.
기본적으로 돈의 속성은 버는데 있는 게 아니라 쓰는데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도 '개 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고 한다. 돈을 어떻게 버느냐보다 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가 결정된다는 가르침이다.
돈은 버는 것보다 사용하는데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되지만, 시간은 현재 이 순간,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 젊었을 때 허투루 쓴 시간은 절대 돌이킬 수 없다. 인생의 멍에처럼 따라 다닌다. 그것을 극복했을 때 또 다른 시간의 가치가 기다린다. 이와 같이 시간은 다면성의 가치를 지닌다.
노력하는 사람의 시간과 허투루 쓰는 사람의 시간은 '시간'이라는 의미에서는 같을지 몰라도 그 가치나 결과에 있어 엄청난 차이를 부른다. 젊었을 때는 그 시간의 가치를 잘 모른다.
시간이 무궁무진한 줄 안다. 시간이 가고 또 오는 걸로 안다. 하지만 한 번 간 시간은 절대 오지 않는다. 과거의 시간과 지금의 시간은 절대 같을 수 없다. 과거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절대 같을 수 없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시간은 '지금'을 말한다. 지금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예로부터 많은 선인들이 얘기했다. '귀거래사(歸去來辭)'와 '도화원기(桃花源記)'로 유명한 중국 도연명은 '성년불중래 세월부대인(盛年不重來 歲月不待人)'이라 했다. 한창 때는 다시 오지 않고,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의미다.
결과적으로 '지금'의 가치는 황금보다 더 소중한 것이다. 그 지금을 둘러싸고 있는 요소들은 가족, 친구, 인간관계 등 결국 관계들이다. 그 관계가 시간을 결정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요소는 본인 자신이다. 시간은 가고 또 오는 것이 아니라, 한 번 간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면 지금의 가치를 더욱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법정 스님도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내가 고스란히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끝없이 변화하면서 생성되는 것이 생명 현상이므로, 개인의 의지를 담은 노력 여하에 따라 그 인생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되풀이되는 범속한 일상을 새롭게 심화시키는 데서 좋은 일은 이루어진다. 일일시호일(日日時好日)"이란 글을 남겼다. 날마다 좋은 날은 결국 본인의 의지에 달렸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한 번 간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지금'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면 인생도 더욱 보람 있어지고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무더운 여름 무릉도원을 찾아 마음의 여유를 즐기면서 지금의 소중함을 느껴보는 것도 인생의 낙이지 않을까 싶다.
황금보다 더 가치 있는 시간 관리의 조언
아이비 리는 록펠러, 모건, 카네기, 듀퐁과 같은 거물들을 주요 고객으로 삼고 있는 컨설턴트였다. 어느 날 베들레헴 철강회사의 찰스 슈왑이 리에게 상담을 청해왔다.
리는 자신의 서비스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을 맺었다. "우리의 서비스를 받으시면 더 나은 경영법을 알게 될 것입니다."
슈왑이 소리쳤다. "이봐요! 나는 이미 알 만큼 알고 있소. 내가 아는 것만큼 경영이 잘 안 돼서 문제란 말이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지식'이 아니라 '더 나은 행동 방법'이오. 내가 이미 아는 것들의 반만이라도 실천하게 해 줄 수 있다면, 행동 방법을 말해준다면 요금이 얼마든지 기꺼이 지불하겠소."
"그럼, 지금부터 20분 동안 그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좋소. 기차 탈 시간까지 딱 20분 여유가 있소. 어떤 방법이오?"
리는 메모지를 꺼내서 슈왑에게 건네며 말했다. "하루를 끝내기 전에 매일 10분씩 그날 한 일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오. 오늘 내가 잊어 버리거나 소홀히 하거나 실수한 일은 무엇일까? 앞으로 그런 잘못을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오늘의 일을 개선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런 다음 5분을 더 시간을 내서 이 메모지에 내일 꼭 해야 할 일 6가지를 쓰세요."
여기까지 말하는 데 8분이 걸렸다.
"그 다음에는 중요한 순서대로 번호를 매기십시오. 그 종이를 주머니에 넣고. 다음 날 아침에 제일 먼저 1번을 읽어 본 다음 행동으로 옮기십시오. 1번 일이 끝날 때까지 시간마다 메모지를 쳐다 보십시오. 그 다음에는 2번으로 넘어갑니다. 그 후에는 3번으로. 이렇게 하나하나 번호를 지워 가면서 마지막 번호까지 이동하십시오."
3분이 더 지났다.
"2번이나 3번까지 밖에 못 끝내더라도 신경 쓰지 마십시오. 1번을 지키느라 하루가 다 걸리더라도 상관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거니까요. 다른 일은 미루어도 됩니다. 이 방법으로 끝낼 수 없다면, 다른 방법으로도 끝낼 수 없습니다. 이 방법이 아니면 어떤 일이 가장 중요한지 결정조차 못할 수도 있습니다."
"내일 할 일을 결정할 때 오늘 끝내지 못한 일들을 옮겨 적으세요. 매일 저녁에 15분씩 할애해서 내일 꼭 '해야 할 일'을 결정 하십시오. 이 방법을 시험해 본 후에, 간부급 임원들에게도 권해보세요.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지 마음껏 시험해 보십시오. 그 후 저의 방법이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하신 만큼의 액수를 수표로 보내 주십시오."
나중에 슈왑은 250,000달러 수표를 리에게 보냈다.
"하찮게 보이는 이 방법은 내 평생 배운 것 중에서 가장 실용적이었습니다. 아홉 달을 미루었던 전화를 걸게 했고, 그 전화로 200만 달러어치의 철재 주문을 받아냈습니다. 나는 이 방법을 임원들에게도 알려 주었지요. 그것이 임원들과 수십 번 미팅을 한 것보다 더 확실하게 베들레헴 철강회사를 세계 제일의 철강회사로 만들어 주었답니다."
슈왑은 가장 간단한 아이디어가 가장 탁월할 정도로 효과적이라는 점을 배웠다. 너무나 평범해 보여서 많은 사람이 시도하지 않는 방법이었지만 그 결과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다른 어떤 성공의 법칙이나 세미나보다 큰 효과를 발휘했다. 이것은 평범한 사람을 특별한 기업가로 탈바꿈 시켜주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제자였던 폴 두린스키도 같은 말을 했다. "나의 목표를 종이에 적고 나자 인생 자체가 바뀌었습니다. 목표를 종이에 적기 전까지는 머릿속으로 생각만 했을 뿐이죠. 그런데 종이에 적어보니까 현실적이고 생생한 것이 되었습니다. 생각만 하면서 지냈던 15년이 낭비였어요. 종이에 적는 일은 땅에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 씨가 점점 자라나지요. 정말이에요. 목표를 글로 써 놓는 것은 효과가 있습니다. 그게 바로 방법입니다."
인생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종이에 적어라.
슈왑이 15개 부서의 장에게 '다음 날 꼭 해야 할 일 6가지'를 적어보라고 제안했을 때, 유진 그레이스도 그 말을 들은 한 사람이었다.
며칠 동안 이 방법을 시험해 보고 나서 그레이스는 매우 깊은 인상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이 할 일들을 모두 적기 시작했다. 공적인 일과 개인적인 일, 골프, 자선활동, 전화, 쇼핑, 직원들, 심지어 친구들과의 만남과 개인적인 편지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기록했다.
몇 달 후, 슈왑이 새로운 용광로의 위치를 상의하기 위해 부서장들을 소집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언급하고 나서 임원들에게도 아이디어를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다른 사람들이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 이미 머리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적어 놓았던 유진 그레이스가 리스트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적어 보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읽어 내려갔다. 그 모습을 눈여겨본 슈왑은 공장 건설과 용광로 설치의 책임자 자리를 그레이스에게 맡겼다. 그 일은 대단히 성공적이었고, 몇 달 후에 그레이스는 남아메리카 지국을 맡게 되었다.
2년 뒤 슈왑이 이사회 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연봉 백만 달러짜리 사장으로 그레이스를 지명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세계 1차 대전이 발발했고, 그의 연봉은 무려 160만 달러가 되었다. 슈왑은 회사사정을 잘 알고 있는 임원보다 종이에 기록하는 그 사내를 택한 것이다.
한 가지 사례를 더 보자. 시간관리의 '할 일 목록 6'과 함께 자신의 장단기 목표를 종이에 적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아버지가 없는 10살짜리 소년이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저 근사한 마차에 타신 분이 누구예요? 아주 돈도 많고 중요한 사람 같아 보여요."
엄마가 말했다. "저분은 국회의원이야."
소년이 말했다. "그럼, 나도 커서 국회의원이 되고 싶어요."
다음 날 어머니는 소년의 방에 종이 한 장이 붙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거기에는 이런 문장이 쓰여 있었다. "국회의원이 되자!"
다음 주에 소년은 나무 자르는 일로 용돈을 벌어서 국회의원에 관련된 책을 샀다. 16세에는, 노새를 몰면서 국회의원이 되는 공부를 계속했다. 18세에는, 학비 대신 학교 청소를 맡아 하기로 하고 히람 대학에 입학했다.
그로부터 3년간 목수 일로 용돈을 벌어 쓰면서 공부를 계속했다. 다음 해에는 일주일에 12달러를 받으며 학생들을 가르쳤고, 2년 후에는 윌리엄 대학의 법학과를 우등생으로 졸업했다. 26세에 그는 주의 상원의원이 되었고, 33세에는 하원의원이 되었다.
그가 하원의원으로 당선될 때까지 그의 방에는 어린 시절의 그 종이가 계속 붙어 있었다고 한다. 몇 년 후에 그는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그의 이름은 제임스 가필드(미국의 20대 대통령)였다.
대부분의 사람이 실패하는 원인은 목적의식, 열정, 끈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모든 성공은 하나의 생각으로 출발한다. 그것이 우연히 스치는 생각이나 공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종이에 적어 놓는다면, 그 생각이 소망이 되고 꿈이 되고 불타는 정열이 되고 그 후에는 끈질긴 계획과 실천으로 이어진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목표가 정확해야 하고 종이에 적어야만 한다.
성공에는 목표설정, 의지력, 독창성, 올바른 판단력, 끈기가 행운보다 더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진지하게 추구하는 목표가 있을 때, 그 목표가 사람을 변화시킨다.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쉬지 않게 한다. 보다 열성으로 하루를 움직이게 하고 장애물이 생겼을 때 뛰어넘을 수 있게 한다.
로마의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도 세상도 때로는 무덤까지도 자신이 가는 곳을 아는 사람에게는 길을 비켜준다." 강렬하게 원하는 목표에 사로잡히게 되면 그 무엇도 그를 막을 수가 없다.
불구를 극복한 슈타인 메츠(독일 태생의 전기공학자), 가난을 이겨내고 입지전적인 인물이 된 링컨, 소아마비의 장애를 딛고 대통령이 된 프랭클린 루즈벨트, 열두어 번 해고 끝에 자동차의 왕이 된 헨리 포드, 귀머거리, 장님, 벙어리의 삼중고를 극복한 헬렌 켈러의 삶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시간을 소중히 여기거나 시간을 철저히 지키려는 의식이나 생각을 '시간관념'이라 한다. 시간관념도 가치관의 일환으로 시간을 어떻게 보고 대하는가에 따라서 시간을 가치 있게 쓰기도 하고 허비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시간을 돈이라 하지만 우리 도(道)에서는 시간을 생명이라 한다. 시간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는 것은 촌음(寸陰)을 아껴 인생을 허비하지 않는 시금석이다.
주자(朱子)는 우성(偶成)이라는 제하의 시에서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촌음이라도 가벼이 여기지 말라. 연못의 봄풀이 아직 꿈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섬돌 앞 오동나무 잎에선 벌써 가을 소리가 나는구나"고 세월의 덧없음을 읊었다.
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
未覺池塘春草夢
階前梧葉已秋聲
도연명(陶淵明)의 시에도 "젊은 시절은 다시 오지 않고 하루에 새벽을 두 번 맞이할 수 없다. 때에 맞춰 마땅히 힘쓸지니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네"라 하였다.
盛年不重來
一日難再晨
及時當勉勵
歲月不待人
한결같이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금언이다. 잠시도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항상 때가 있다. 하고 싶은 것은 당장 시작하라
陶淵明詩云(도연명시운) 盛年(성년)은 不重來(불중래)하고 一日(일일)은 難再晨(난재신)이니 及時當勉勵(급시당면려)하라. 歲月(세월)은 不待人(부대인)이니라
도연명의 시에 이르기를, "젊은 나이는 거듭 오지 않고 하루에 새벽은 두 번 오기 어려우니 때에 미쳐 마땅히 학문에 힘써라.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권학문에 나오는 유명한 문장인데 인생은 무상하고 무정해 황금 같은 젊은 시절은 한 번 가면 영원히 다시 오지 않기에 늘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어르신들은 젊은 시절의 일 년은 길게 느껴지겠지만 나이 들수록 하루가 지나가는 속도가 빨라져 나중에는 전광석화(電光石火)나 시위를 떠난 화살같이 느껴진다고들 말하곤 한다.
항상 현재의 시간을 소중히 해야 하며, 지금 함께 있는 가족, 친구, 연인의 소중함을 알아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야 하는 이유다.
아무 노력 없이, 좋은 결과나 결실을 바라거나 현재에 주어진 시간과 기회를 놓치고서도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영원히 곁에 있어줄 거라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고 착각이다.
아침에 게을러 놓쳐 버린 새벽은 돌이킬 수 없는 것처럼 현재의 시간은 곧 과거의 시간이 될 것이며 과거의 시간은 그저 추억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흘러내린 폭포수처럼 아무리 후회해도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인생이고 때가 있는 것도 인생이다.
늦잠을 자던 나의 일상에 큰 변화가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면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한다. 운동이 끝나면 집안일을 하고 기사를 메모하거나 미팅할 사람과 취재 계획, 하루 일과를 점검한다.
더 이상 늦잠 자는 습관으로 시간을 아깝게 보내거나 하루를 허망하게 보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가 이제는 소중하게 다가온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도 참 좋다.
도연명의 시처럼, 젊은 나이는 거듭 오지 않고 하루에 새벽은 두 번 오기 어려우니 때에 미쳐 마땅히 학문에 힘써라.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평소 하고 싶은 공부가 있었다면 배우고, 배우고 싶은 운동이 있다면 당장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다. 다만 지킬 수 있고 꾸준히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해야 무리가 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교육프로그램 뿐 아니라 동호회나 클럽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는 평생학습의 시대에 살고 있다. 각 지자체마다 문화체육 시설이나 평생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의지만 있다면 운동이나 문화, 예술, 교육 등 어느 분야든 언제든지 쉽게 배울 수 있다.
현재의 시간을 아끼고 부지런히 배우면 노년에 후회 없이 살았노라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농사도 마찬가지다. 여름에도 가을에도 씨는 뿌릴 수 있다. 그러나 때가 맞지 않으면 뿌린 씨가 싹이 트지 않거나 돋아도 열매를 맺지 못한다. 씨 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씨 뿌리는 때가 더 중요하다. 때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인간의 관리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 관리다. 인생의 활용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시간의 활용이다. 시간은 저축이 불가능하고 매매가 불가능하고 대차(貸借)가 불가능하다. 시간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시간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 일도 못한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는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인명의 흥망성쇠(興亡盛衰)가 좌우되고 길흉화복(吉凶禍福)이 결정된다.
'시간은 황금'이라고 옛사람은 말했다. 그러나 시간은 황금 이상의 것이다.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천만금을 주어도 일초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생명을 낭비하는 것이다. 시간은 생명의 핵심이요. 근간(根幹)이다.
늘 있으라고 생각하지 말라. 나의 시간은 항상 기다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나의 시간은 광음여시(光陰如矢)이다. 시간은 쏜살같이 달려간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시간을 건설적으로 창조적으로 절약하고 활용하는 사람만이 인생의 대업을 성취하고 보람 있는 생애를 살 수 있다.
인생 70년을 살면 날짜로 약 2만 5천날이요, 시간으로 약 60만 시간이다. 그중에서 3분에 1은 잠을 자야한다. 우리는 잠자는데 20만 시간을 보낸다. 우리가 깨어있는 시간은 겨우 40만 시간밖에 안 된다. 그 중에서 활동을 위하여 공부하고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 약 20만 시간밖에 안 된다. 우리는 20만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이냐?
한번 가버리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시간 남이게 빌려줄 수도 없고 빌려 쓸 수도 없는 시간 돈으로 살수도 없고 팔수도 없는 시간 누구에게나 똑같이 분배되어 있는 시간이 시간을 창조적으로 활용하느냐 무의미하게 낭비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성패(成敗)와 흥망과 화복(禍福)과 성쇠(盛衰)와 영고(榮枯)가 결정된다.
시간에 대한 열 가지의 지혜를 강조한다.
1. 독서하는 시간을 가져라. 정신의 세계가 넓어질 것이다.
2. 사색하는 시간을 가져라. 지혜의 샘이 솟으리라
3. 운동하는 시간을 가져라. 행복의 문이 열리리라.
4.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라. 성취의 기쁨을 느끼리라.
5. 사랑하는 시간을 가져라. 행복의 문이 열리리라.
6. 일하는 시간을 가져라. 정신의 양식을 얻으리라.
7. 휴식하는 시간을 가져라. 몸과 마음의 피로를 잊으리라
8.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라. 이해와 공감의 기쁨을 솟으리라.
9. 꿈꾸는 시간을 가져라. 미래의 계획이 설 것이다.
10. 노래하는 시간을 가져라. 정신의 양식을 얻으리라.
성년은 한창 나이요. 젊은 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다. 신은 새벽이다. 새벽이 다시 올 수 없다. 때를 보아 마땅히 각고면려(刻苦勉勵)하고 분투 노력하여라.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젊은 학생들에게 특히 강조하고 싶은 인생의 고훈서다. 시난득이이실야(時難得而易失也)의 원도훈(原道訓)에 나오는 말이다.
시간은 얻기 어렵고 잃어버리기 쉽다. 가장 낭비하기 쉬운 것이 시간이다. 한번 가버린 시간은 다시 찾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초를 아껴야 하고 촌음(寸陰)을 소중하게 활용해야 한다.
인생에서 시간 관리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 시간은 보배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생명처럼 아끼고 존중하고 활용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 내 시간을 사랑하여라. 그것이 내 인생을 사랑하는 것이다.
▶️ 盛(성할 성)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그릇명(皿; 그릇)部와 음(音)을 나타내는成(성; 쌓아 올리다)으로 이루어졌다. 접시에 신에게 바치는 음식을 높이 괴다, 전(轉)하여 성함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盛자는 '담다'나 '성하다', '성대하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盛자는 皿(그릇 명)자와 成(이룰 성)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成자는 고대에 사용하던 창을 그린 것으로 '이루다'는 뜻을 갖고 있다. 盛자의 갑골문을 보면 皿자 주위로 여러 개의 점이 찍혀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넘치다'는 뜻의 益(더할 익)자이다. 그 옆에는 成자가 있는데, 이는 고대에 치러지던 제기의식을 표현한 것이다. 고대에는 전쟁에 나가기 전 신에게 제사를 지내 승리를 기원했었다. 盛자는 그러한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제기의식이 성대하게 치러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성하다'나 '성대하다'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盛(성)은 ①성하다(기운이나 세력이 한창 왕성하다) ②성대하다 ③두텁다 ④많다 ⑤무성하다 ⑥장하게 여기다 ⑦담다 ⑧높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높을 융(隆), 왕성할 왕(旺), 창성할 창(昌), 우거질 번(蕃), 필 발(發), 일어날 기(起), 일 흥(興),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쇠할 쇠(衰)이다. 용례로는 매우 왕성하게 유행함을 성행(盛行), 융성과 쇠망을 성쇠(盛衰), 아주 크고 왕성함을 성대(盛大), 크고 훌륭한 상황을 성황(盛況), 한여름으로 더위가 한창인 여름을 성하(盛夏), 성대한 세상을 성대(盛代), 흙을 쌓음을 성토(盛土), 몹시 성냄을 성노(盛怒), 사업이 썩 잘됨을 성업(盛業), 잘 되어 가는 운을 성운(盛運), 풀이나 나무 따위가 우거지어 성함을 무성(茂盛), 한창 성함을 왕성(旺盛), 기운이 기운차게 일어남을 융성(隆盛), 몹시 왕성함을 극성(極盛), 성하여 잘 되어 감을 창성(昌盛), 자손이 늘어 퍼지는 것을 번성(蕃盛), 힘차고 왕성함을 강성(强盛), 매우 성하고 기운참을 흥성(興盛), 크게 번성함을 대성(大盛), 세상 일은 무상하여 한번 성한 것은 반드시 쇠하게 마련이라는 말을 성자필쇠(盛者必衰), 젊은 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뜻으로 시간을 아끼라는 말을 성년부중래(盛年不重來), 한여름의 심한 더위를 일컫는 말을 성하지열(盛夏之熱), 가득 찬물이 조금도 새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물이 빈틈없이 꽉 짜여 있음이나 지극히 정밀함을 이르는 말을 성수불루(盛水不漏), 차윤이 개똥벌레를 모았다는 뜻으로 가난한 살림에 어렵게 공부함을 이르는 말을 차윤성형(車胤盛螢), 영화롭고 마르고 성하고 쇠함이란 뜻으로 개인이나 사회의 성하고 쇠함이 서로 뒤바뀌는 현상을 일컫는 말을 영고성쇠(榮枯盛衰), 맛이 좋은 음식으로 많이 잘 차린 것을 뜻하여 성대하게 차린 진귀한 음식을 일컫는 말을 진수성찬(珍羞盛饌), 날마다 새로운 것이 생기고 다달이 왕성하여 짐을 일컫는 말을 일신월성(日新月盛), 한 번 성하고 한 번 쇠함이나 성하는 때도 있고 쇠하는 때도 있음을 이르는 말을 일성일쇠(一盛一衰) 등에 쓰인다.
▶️ 年(해 년/연, 아첨할 녕/영)은 ❶형성문자로 禾(화)는 벼, 음(音)을 나타내는 人(인) 또는 千(천)은 많음을 나타낸다. 年(연)은 가을에 많은 수확이 있음, 익다, 나중에 벼가 자라는 기간에서 연월(年月)의 해란 뜻으로 쓰고, 익다의 뜻은 稔(임)으로 쓴다. ❷형성문자로 年자는 '해'나 '나이', '새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年자는 干(방패 간)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방패'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年자는 禾(벼 화)자와 人(사람 인)자가 결합한 것이기 때문이다. 年자의 갑골문을 보면 人자 위로 禾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볏단을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을 표현한 것이다. 볏단을 등에 지고 간다는 것은 수확을 마쳤다는 뜻이다. 농부들에게 한 해의 마무리는 당연히 추수가 끝나는 시점일 것이다. 그래서 年자는 한해가 마무리되었다는 의미에서 '해'나 '새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年(년, 녕)은 ①해 ②나이 ③때, 시대(時代) ④새해, 신년 ⑤연령(年齡) ⑥잘 익은 오곡(五穀) ⑦콧마루 ⑧사격의 하나 ⑨사람의 이름 ⑩익다 ⑪오곡(五穀)이 잘 익다 그리고 ⓐ아첨하다(녕)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한 해 동안을 연간(年間), 한해의 마지막 때를 연말(年末), 새해의 첫머리를 연초(年初), 일년 단위로 정하여 지급하는 봉급을 연봉(年俸), 해의 첫머리를 연두(年頭), 십 년 단위로 햇수를 셀 때 쓰는 말을 연대(年代), 사람이나 생물이 세상에 난 뒤에 살아온 횟수로 나이의 높임말을 연세(年歲), 직장에서 직원들에게 1년에 일정 기간씩 주는 유급 휴가를 연가(年暇), 지나가는 날이나 달이나 해를 연화(年華), 해마다 하게 되어 있는 관례를 연례(年例), 그 해의 안 또는 한 해 동안을 연중(年中), 한 해의 마지막 때를 연모(年暮), 지난해를 작년(昨年), 올해의 다음 해를 내년(來年), 열 살 안팎의 어린 나이를 충년(沖年), 매해나 하나하나의 모든 해를 매년(每年), 앞으로 남은 인생을 여년(餘年), 곡식이 잘 되고도 잘 여무는 일 또는 그런 해를 풍년(豐年), 완전히 성숙하지도 않고 아주 어리지도 않은 사내 아이를 소년(少年), 평상시의 해를 예년(例年), 한 해의 마지막 때와 새해의 첫머리를 아울러 이르는 말을 연말연시(年末年始), 한 해 동안 하루도 쉬는 일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연중무휴(年中無休), 풍년이 들어 백성이 즐거워 함을 이르는 말을 연풍민락(年豐民樂), 세월이 매우 오래다는 말을 연구월심(年久月深), 나이가 젊고 한창 성함을 일컫는 말을 연부역강(年富力强), 나이가 많거니와 덕도 아울러 갖춤을 일컫는 말을 연덕구존(年德俱存), 백 년을 기다린다 해도 황하의 흐린 물은 맑아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오랫동안 기다려도 바라는 것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백년하청(百年河淸), 권세는 10년을 넘지 못한다는 뜻으로 권력은 오래가지 못하고 늘 변함 또는 영화는 일시적이어서 계속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권불십년(權不十年), 백년을 두고 하는 아름다운 언약이라는 뜻으로 부부가 되겠다는 약속을 일컫는 말을 백년가약(百年佳約), 부부가 서로 사이좋고 화락하게 같이 늙음을 이르는 말을 백년해로(百年偕老),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는 뜻으로 마흔 살을 이르는 말을 불혹지년(不惑之年), 천명을 알 나이라는 뜻으로 나이 오십을 이르는 말을 지명지년(知命之年), 삼 년 간이나 한 번도 날지 않는다는 뜻으로 뒷날에 웅비할 기회를 기다림을 이르는 말을 삼년불비(三年不蜚), 언제나 깍듯하게 대해야 하는 어려운 손님이라는 뜻으로 사위를 두고 이르는 말을 백년지객(百年之客), 벽을 향하고 아홉 해라는 뜻으로 한 가지 일에 오랫동안 온 힘을 쏟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면벽구년(面壁九年), 냄새가 만 년에까지 남겨진다는 뜻으로 더러운 이름을 영원히 장래에까지 남김을 일컫는 말을 유취만년(遺臭萬年) 등에 쓰인다.
▶️ 不(아닐 부, 아닐 불)은 ❶상형문자로 꽃의 씨방의 모양인데 씨방이란 암술 밑의 불룩한 곳으로 과실이 되는 부분으로 나중에 ~하지 않다, ~은 아니다 라는 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새가 날아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음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不자는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不자는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씨앗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不자는 '부'나 '불' 두 가지 발음이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不(부/불)는 (1)한자로 된 말 위에 붙어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작용을 하는 말 (2)과거(科擧)를 볼 때 강경과(講經科)의 성적(成績)을 표시하는 등급의 하나.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다섯 가지 등급(等級) 가운데 최하등(最下等)으로 불합격(不合格)을 뜻함 (3)활을 쏠 때 살 다섯 대에서 한 대도 맞히지 못한 성적(成績)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아니하다 ③못하다 ④없다 ⑤말라 ⑥아니하냐 ⑦이르지 아니하다 ⑧크다 ⑨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 그리고 ⓐ아니다(불) ⓑ아니하다(불) ⓒ못하다(불) ⓓ없다(불) ⓔ말라(불) ⓕ아니하냐(불) ⓖ이르지 아니하다(불) ⓗ크다(불) ⓘ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불) ⓙ꽃받침, 꽃자루(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不動),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일정하지 않음을 부정(不定),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덕이 부족함을 부덕(不德), 필요한 양이나 한계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을 부족(不足),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편리하지 않음을 불편(不便),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옳지 않음 또는 정당하지 아니함을 부정(不正),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속까지 비치게 환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불투명(不透明),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가능(不可能), 적절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부적절(不適切),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는 원수나 죽여 없애야 할 원수를 일컫는 말을 불구대천(不俱戴天), 묻지 않아도 옳고 그름을 가히 알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불문가지(不問可知), 사람의 생각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도 없다는 뜻으로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오묘한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가사의(不可思議),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일컫는 말을 부정부패(不正腐敗), 지위나 학식이나 나이 따위가 자기보다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함을 두고 이르는 말을 불치하문(不恥下問),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는 뜻으로 마흔 살을 이르는 말을 불혹지년(不惑之年), 필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음을 일컫는 말을 불요불급(不要不急), 휘지도 않고 굽히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어떤 난관도 꿋꿋이 견디어 나감을 이르는 말을 불요불굴(不撓不屈), 천 리 길도 멀다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먼길인데도 개의치 않고 열심히 달려감을 이르는 말을 불원천리(不遠千里) 등에 쓰인다.
▶️ 重(무거울 중, 아이 동)은 ❶형성문자로 부수(部首)에 해당하는 里(리)는 단순히 자형(字形)상 이 부수(部首) 글자에 포함되었다. 음(音)을 나타내는 東(동, 중)과 사람(人)이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다는 뜻이 합(合)하여 '무겁다'를 뜻한다. 重(중)은 물건을 들어 올리거나 움직이거나 動(동)할 때의 손에 오는 느낌, 무게, 무거움, 또 일을 충분히 하다, 겹친다는 뜻에도 쓰인다. 또 童(동)이라고 써서 重(중)을 나타내는 경우도 많았다. ❷회의문자로 重자는 '무겁다'나 '소중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重자는 里(마을 리)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마을'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重자는 東(동녘 동)자와 人(사람 인)자가 결합한 것이기 때문이다. 東자는 본래 끈으로 사방을 동여맨 보따리를 그린 것이다. 금문에 나온 重자를 보면 人자 아래로 東자가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등에 짐을 지고 있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重자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무겁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보따리에는 곡식의 씨앗과 같은 매우 중요한 것이 담겨있다. 왜냐하면, 重자에는 '소중하다'나 '귀중하다'라는 뜻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重(중, 동)은 (1)무엇이 겹쳤거나 둘이 합쳤음을 뜻함 (2)크고 중대함을 나타냄 등의 뜻으로 ①무겁다 ②소중하다, 귀중하다 ③자주하다, 거듭하다 ④무겁게 하다, 소중히 하다 ⑤삼가다(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 조심하다 ⑥보태다, 곁들이다 ⑦붓다(살가죽이나 어떤 기관이 부풀어 오르다), 부어 오르다 ⑧더디다 ⑨겹치다 ⑩아이를 배다 ⑪많다 ⑫두 번, 또 다시 ⑬심히 ⑭늦곡식, 만생종(晩生種) ⑮젖 ⑯짐 ⑰무게, 중량(重量) ⑱위세(位勢), 권력(權力) ⑲임시 신위(神位) ⑳사형(死刑) 그리고 ⓐ아이, 어린이(동)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윗 상(上),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가벼울 경(輕)이다. 용례로는 매우 귀중하고 소중함을 중요(重要), 같은 것이 두 번 이상 겹침을 중복(重複), 매우 중요하게 여김을 중대(重大), 중요한 자리에 있어 비중이 큰 사람을 중진(重鎭), 같은 사물이 거듭 나오거나 생김을 중출(重出), 거듭 겹치거나 겹쳐지는 것을 중첩(重疊), 매우 위중한 병의 증세를 중증(重症), 큰 힘으로 지구가 지구 위에 있는 물체를 끄는 힘을 중력(重力), 태도가 점잖고 마음씨가 너그러움을 중후(重厚), 중요한 점이나 중시해야 할 점을 중점(重點), 중요한 자리에 임용하는 것을 중용(重用), 무겁게 내리 누름으로 강한 압력을 중압(重壓), 중요한 책임을 중책(重責), 부담이 많이 가게 과하는 것을 중과(重課), 건물 등의 낡고 헌 것을 다시 손대어 고침을 중수(重修), 공경하고 중하게 여김을 경중(敬重), 매우 조심스러움을 신중(愼重), 높이고 중히 여김을 존중(尊重), 다른 사물과 견주어지는 사물의 중요성을 비중(比重), 용서할 수 없을 만큼 중대함을 엄중(嚴重), 매우 귀중함을 소중(所重), 귀하고 소중함을 귀중(貴重), 가벼움과 무거움으로 중요하지 아니한 것과 중요한 것을 경중(輕重), 어떤 일에 중점을 둠을 치중(置重), 몹시 무거움을 과중(過重), 더 무겁게 함 또는 더 무거워짐을 가중(加重), 몸의 무게를 체중(體重), 매우 중요함이나 더할 수 없이 소중함을 막중(莫重), 점잖고 묵직함으로 친절하고 은근함을 정중(鄭重), 한 말을 자꾸 되풀이 함을 이르는 말을 중언부언(重言復言), 오래 동안 몹시 앓고 난 뒤를 일컫는 말을 중병지여(重病之餘), 겹겹으로 포개져 있는 모양을 일컫는 말을 중중첩첩(重重疊疊), 겹겹이 높이 솟아 삐죽삐죽함을 일컫는 말을 중중촉촉(重重矗矗), 흙먼지를 날리며 다시 온다는 뜻으로 한 번 실패에 굴하지 않고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남을 일컫는 말을 권토중래(捲土重來), 밖으로 드러내지 아니하고 참고 감추어 몸가짐을 신중히 함을 이르는 말을 은인자중(隱忍自重), 매우 사랑하고 소중히 여김을 일컫는 말을 애지중지(愛之重之), 복은 거듭 오지 않으며 한꺼번에 둘씩 오지도 않음을 일컫는 말을 복불중지(福不重至), 죄는 크고 무거운 데 비하여 형벌은 가볍다는 뜻으로 형벌이 불공정 함을 이르는 말을 죄중벌경(罪重罰輕), 무거운 물거운 지고 먼 곳까지 간다는 뜻으로 중요한 직책을 맡음을 이르는 말을 부중치원(負重致遠) 등에 쓰인다.
▶️ 來(올 래/내)는 ❶상형문자로 来(래/내)는 통자(通字), 간자(簡字), 倈(래/내)는 동자(同字)이다. 來(래)는 보리의 모양을 나타낸 글자이다. 아주 옛날 중국 말로는 오다란 뜻의 말과 음(音)이 같았기 때문에 來(래)자를 빌어 썼다. 나중에 보리란 뜻으로는 별도로 麥(맥)자를 만들었다. 보리는 하늘로부터 전(轉)하여 온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래서 오다란 뜻으로 보리를 나타내는 글자를 쓰는 것이라고 옛날 사람은 설명하고 있다. ❷상형문자로 來자는 '오다'나 '돌아오다', '앞으로'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來자는 人(사람 인)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사람'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來자의 갑골문을 보면 보리의 뿌리와 줄기가 함께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來자는 본래 '보리'를 뜻하던 글자였다. 옛사람들은 곡식은 하늘이 내려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來자는 점차 '오다'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來자가 이렇게 '오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夂(뒤져서 올 치)자가 더해진 麥(보리 맥)자가 '보리'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來(래)는 ①오다 ②돌아오다 ③부르다 ④위로하다 ⑤이래 ⑥그 이후(以後)로 ⑦앞으로 ⑧미래(未來) ⑨후세(後世) ⑩보리(볏과의 두해살이풀)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갈 거(去), 갈 왕(往), 머무를 류/유(留)이다. 용례로는 올해의 다음 해를 내년(來年), 오늘의 바로 다음날을 내일(來日), 죽은 뒤에 가서 산다는 미래의 세상을 내세(來世), 다음에 오는 주를 내주(來週), 겪어 온 자취를 내력(來歷), 후세의 자손을 내예(來裔), 외국인이 한국에 오는 것을 내한(來韓), 적이 습격해 오는 것을 내습(來襲), 오고 가고 함을 내왕(來往), 손님이 찾아옴을 내방(來訪), 와 계신 손님을 내빈(來賓), 찾아 오는 손님을 내객(來客), 와 닿음을 내도(來到), 남에게서 온 편지를 내신(來信), 다음에 다가오는 가을을 내추(來秋), 어떤 결과를 가져옴을 초래(招來), 아직 오지 않은 때를 미래(未來), 금전을 서로 대차하거나 물건을 매매하는 일을 거래(去來), 앞으로 닥쳐올 때를 장래(將來), 가고 오고 함을 왕래(往來), 그 뒤로나 그러한 뒤로를 이래(以來), 사물의 내력을 유래(由來), 변하여 온 사물의 처음 바탕을 본래(本來), 이르러서 옴이나 닥쳐 옴을 도래(到來), 올 때는 갈 때의 일을 모른다는 뜻으로 양면을 다 알지는 못함을 이르는 말을 내부지거(來不知去), 지나간 일은 어찌할 도리가 없지만 장차 다가올 일은 조심하여 이전과 같은 과실을 범하지 않을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내자가추(來者可追), 오는 사람을 막지 말라는 뜻으로 자유 의사에 맡기라는 말을 내자물거(來者勿拒), 오가는 사람 즉 자주 오가는 수많은 사람을 이르는 말을 내인거객(來人去客), 오는 사람을 금해서는 안 됨을 이르는 말을 내자물금(來者勿禁),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라는 뜻으로 고생 끝에 낙이 온다라는 말을 고진감래(苦盡甘來), 흙먼지를 날리며 다시 온다는 뜻으로 한 번 실패에 굴하지 않고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남을 일컫는 말을 권토중래(捲土重來), 즐거운 일이 지나가면 슬픈 일이 닥쳐온다는 뜻으로 세상일이 순환됨을 가리키는 말을 흥진비래(興盡悲來), 서로 변론을 주고받으며 옥신각신함을 일컫는 말을 설왕설래(說往說來), 부근에 있는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먼 곳의 사람들이 흠모하여 모여든다는 뜻으로 덕이 널리 미침을 이르는 말을 근열원래(近悅遠來), 여러 말을 서로 주고 받음 또는 서로 변론하느라 말이 옥신각신함을 일컫는 말을 언거언래(言去言來), 동지를 고비로 음기가 사라지고 양기가 다시 온다는 뜻으로 나쁜 일이나 괴로운 일이 계속되다가 간신히 행운이 옴을 이르는 말을 일양내복(一陽來復), 뜻밖에 닥쳐오는 모질고 사나운 일을 일컫는 말을 횡래지액(橫來之厄), 눈썹이 가고 눈이 온다는 뜻으로 서로 미소를 보냄을 이르는 말을 미거안래(眉去眼來), 찬 것이 오면 더운 것이 가고 더운 것이 오면 찬 것이 감을 일컫는 말을 한래서왕(寒來暑往),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온다는 뜻으로 뜻을 같이하는 친구가 먼 데서 찾아오는 기쁨을 이르는 말을 유붕원래(有朋遠來), 밥이 오면 입을 벌린다는 뜻으로 심한 게으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반래개구(飯來開口), 과거의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미래를 미루어 짐작한다는 말을 이왕찰래(以往察來), 추위가 물러가고 무더위가 온다는 뜻으로 세월이 흘러감을 이르는 말을 한왕서래(寒往暑來)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