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스트림무비의 시사로 론 레인저를 보고 왔습니다!!
좋은 기회 제공해주시는 익무에 언제나 감사하고 있어용.
고어 버빈스키와 조니뎁의 결합. 서부극이라는 실패하기 쉬운 장르. 쾌락영화의 달인 제리 브룩하이머 제작.
네 많은 면에서 이 영화는 캐리비안의 해적을 떠오르게 합니다.
기대 이상의 흥행을 했던 캐리비안 시리즈의 뒤를 잇는 디즈니의 효자 프랜차이즈가 될 수 있을까요?
뚜껑을 연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불안한 출발입니다.
저는 고어 버빈스키가 이렇게 야심으로 가득찬 감독인줄 몰랐어요.
미소는 나오지만 그렇게 큰 영화적 재미는 주지 못했던 마우스 헌트 같은 코미디영화나
실패적인 리메이크였던 링 -미국판-에 이름을 올리던 이 낯선 이름의 감독이 해적 블록버스터를 들고 나온다고
했을 때 팔장을 끼우고 극장에 들어선건 사실이었습니다.
물론 대스타 조니 뎁이 함께 하긴 했지만 해적영화가 레니 할린의 커리어를 어떻게 끝장냈는지 우린 다 알고 있죠.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고 팔장이 곧바로 풀리더니 의자에서 몸을 떼고 스크린에 빨려들어가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었어요.
초유의 '놀이기구가 원작인' 영화. 비웃기 딱 좋은 케이스였습니다만 버빈스키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았죠.
물론 이 시리즈를 이야기할 때 조니 뎁을 빼먹는다면 토핑없는 피자를 먹는 기분일 겁니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말했으니 저는 패스할게요. 대신 버빈스키 감독이 시리즈의 흥행과 함께
프랜차이즈의 장악력이 높아질 수록 이미지에 대한 확고한 비전과 거대한 야심을 드러내길 주저하지 않았단 점을
지적하고 싶어요. 일종의 판타지와 결합된 캐리비안 시리즈는 이러한 야심을 거의 아무런 순화없이 스크린으로
고스란히 옮길 수 있는 최적의 스케치북이었어요. 세상의 끝에서의 이계의 표현은 정말 아름답고 멋졌죠.
그러면서 약간 과욕이 느껴지기도 했구요. 사실 망자의 함까지 거의 완벽한 대중영화의 표본을 제시하던
캐리비안이 휘청 거린건 3부에서였습니다. 이미지에 대한 야심이 가득차있는데 시나리오는 어쩐지 헐거웠어요.
엄청난 이미지의 배우들이 포진했지만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각본 안에서 소모되고 말았습니다.
주윤발을 그렇게 후지게 써먹다니 말이 되나요.
론 레인저는 그렇게 침몰 직전에 발을 뗀, 갈아타는 타이밍에서 완벽했던 버빈스키가 다시 들고 돌아온
묘하게 닮은 쌍둥이입니다. 여전히 감독의 장악력은 세상의 끝에서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고(2억 달라라니!)
조니 뎁은 여전히 매력적인 돌아이 연기를 하며 주연을 받쳐주는 '사실상의 주연'을 자처하고 있죠.
기시감을 꿰뚫을 묘약은 새로운 장르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물 위에서 칼 싸움을 하던 사내들은 이제 말을 타고 광활한 사막으로 달려나갔어요.
대포가 빵빵 거리며 주던 무게감의 자리를 총이 탕탕 몸에 박히는 묵직함으로 바꿔나갔고
더 이상 주인공들은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칼 싸움을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한 방 싸움이 된 이상
액션의 성격은 바뀌어야 했지만 버빈스키가 망자의 함에서 극단까지 몰아부쳐 쾌락을 선사했던
아크로바틱한 액션 설계는 그대로 들고 왔어요. 판타지가 선사하던 시각적 쾌감은
거대자본이 뒷받침해준 시원한 로케이션으로 대신 했습니다. 하지만 초반에 말했듯 이 조합은
최적의 결과물을 만들진 못하고 말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영화를 보며 이상하게 WWW가 떠올랐어요. 네, 전설적인 실패작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입니다.
영화는 시작하며 한 꼬맹이가 서커스를 돌아다니다가 '재미도 있고 배울 것도 많은' 천막 안으로
들어서는 걸 보여줍니다. 어두운 공간에서 아이는 간식을 먹으며 박제된 멋진 것들을 보죠.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태도를 단적으로 암시하는 장면입니다.
영화는 놀라움으로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피곤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볼거리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일을 해주고도 있습니다. 사색에 젖거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기도 하지만 헐리웃 공장에서
만드는 꿈의 영화들이 지향하는 바는 또렷하죠. 버빈스키의 활극은 이러한 지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거대한 곰의 앞을 지나며 한가로이 땅콩을 씹고, 호기심에 가득찬 눈으로 원껏 구경하지만
위험따위는 없습니다. 그 안락한 시각적 즐거움. 그것은 해적활극이나 서부극으로 총알과 불꽃이
뒤섞이는 순간에 관객을 던져넣지만 절대적으로 안전이 보장되는 롤러코스터보다 더 평안한
영화라는 즐거움의 대상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다는 감독의 선언이죠.
그리고 톤토와의 만남. 이제 본격적인 론 레인저의 이야기로 초대장을 던지고
우린 호기심 가득한 어린아이처럼 다음 모험담을 기대하며 그 이야기에 사로잡히고 싶어집니다.
이 초대장은 멋집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지 못했어요.
베리 소넨필드의 역시나 야심찬 리메이크작이었던 와와웨는 스팀펑크와 흑인(이지만 윌 스미스) 총잡이를
앞세운 파격적인 서부극이었습니다. 특유의 농담들이 가득 차 있었고, 클라이막스의 타란툴라는 볼 만 했어요.
하지만 웃음은 파편이 될 뿐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가 되진 못했고, 볼거리가 많은 건 분명했지만
감독의 야심이 흘러넘친 덕분에 오히려 영화의 기본기는 다소 부실했죠. 론 레인저는 이런 단점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톤토는 누가 봐도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사내입니다.
그가 소개되는 오프닝 시퀸스(늙은 톤토 말구요)를 보면 단박에 그를 더 보고 싶어지죠.
다소 간단한 코믹 연기도 조니 뎁은 타이밍의 완벽한 조절로 웃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단연코 다를 거라고 선언했던 캐리비안의 잭 스패로우와 확실히 다른, 과묵하면서도 순수하고
자신의 원칙에 충실한 인디언 톤토는 특유의 돌아이같은 행동과 때때로 정색하며 뱉는 말과 행동으로
관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요.
하지만 우린 시퀸스나 컷을 보기 위해서 극장에 달려가는 건 아니잖아요.
이런 농담들은 웃기긴 한데 영화 전체의 흐름이 자꾸 끊기고 늘어지는 탓에 완벽하게 녹아들지 못합니다.
론 레인저의 탄생이라고 볼 수 있는 부치가 레인저들을 몰살하는 장면까진 정말 좋지만
대표적으로 소모되는 캐릭터인 레드 헬레나 본햄 카터가 소개되는 술집 시퀸스는 한심하기 그지 없어요.
상아다리를 이용한 농담은 와와웨의 하반신 불구 농담이 떠오르는 기이한 센스에 가깝고
저주받은 보물은 캐리비안의 망령이 아직 스크린에 떠도는 듯 한 착각이 들게 만드는 맥거핀입니다.
이 후 각 시퀸스간의 연결이 삐걱거리는 느낌은 지속적으로 드는데
하필 이 영화가 액자구조라 이런 허술한 연결을 대충 떼우고 있단 의심마저 들어요.
톤토는 어떻게 탈출하고, 부치를 처음 잡을 때 이들은 대체 어떻게 그렇게 효과적인 이동과 잠복을 감행할 수 있었으며
대규모 전투의 타이밍은 어떻게 된 것이고 클라이막스에서 이들은 어떻게 그 곳에 있었으며...
모두 구멍입니다. 누가 물어보면 영화는 정색하고 "그러게?' 하고 넘어가고 말아요.
일종의 농담이지만 자꾸 필요이상으로 반복되면 그냥 각본이 게으르다고 느껴질 뿐입니다.
물론 그렇게 하는 영화들도 많지요. 하지만 2억 달라 이상 들어간 블록버스터가 자꾸 이런 핑계를 대고 있으니
좋게 봐주기가 어려워요. 차피 이 모든 게 늙은 톤토가 서술하는 일종의 뻥카라는 걸 생각하면 감안할 수 있는
문제이긴 하지만 그런 특징을 확연하게 드러내고 있지도 않죠.
그리고 이건 사실 취향적인 문제인데 캐리비안에서도 그렇고
약간 답답이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조니뎁의 자유로운 돌아이와 상극을 만들어 하모니를 만드는 방법을 쓰는데
개인적으로 저는 답답이를 싫어해서... 거기다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정도면 거의 민폐급이죠.
둘이 쑥덕 쑥덕 하는 건 즐겁긴 했습니다만 루머로 돌던 조지 클루니와 조니 뎁이었으면 이것보다 훨씬
재미있었을 거 같긴해요. 뭐 잘 생겼으니 모두 용서가 될 테지만요.
사실 이 둘의 조합보단 실버와의 코미디가 더 재미있더군요. 실버의 정체는 알 수 없지만 말이죠.
툴툴 거리고 있습니다만 저는 이 영화의 속편을 보고 싶긴 합니다.
클라이막스의 리듬감을 보면 버빈스키가 확실히 너네를 즐겁게 해줄 테니 꽉 잡고 있어. 라며 달려드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져요. 이 양반은 적어도 이런 쾌감을 만들어 내는 면에 있어서는 뻥카가 아니라
실력이 있는 감독입니다. 서부극이 바탕으로 하고 있는 사막의 광할함과 인디언이 걸어온 운명을 돌이킬 때
씁쓸함과 상실감, 일종의 허무함은 장르가 가질 수 밖에 없는 태생적인 문제겠죠. 그걸 버리라고 윽박지르는 것도 아니구요.
하지만 연출이나 얼개에 있어서 확실히 감독이 잘못 판단한 부분이 있다고 느껴지고
특히나 이렇게 허술한 각본에 오케이한건 문제가 있다고 느껴집니다. 더 잘할 수 있잖아요. 안 그래요?
흥행이 어려울 거 같아요.
혹시 모를 속편이 나온다면 다이어트 좀 하고, 각본에 더 신경을 써 줬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망자의 함을 극장에서 보면서 아주 지리는 줄 알았습니다.
버빈스키는 다시 그런 순간을 안겨줄 가능성이 높은 감독이고
조니 뎁의 톤토는 몇 번 정도는 더 봐줄 수 있는 매력적인 캐릭터에요.
클라이막스의 신나는 기분은 잠깐이지만 황홀했구요.
더 잘할 수 있잖아요. 한 번만 더 기회를 줄 수 있었음 좋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