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를 사랑한 두향의 절의(節義)
퇴계(退溪)선생은 조선시대 송나라의 주자학을 연구 발전시켜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주장한 대 철학자로 해동군자(海東君子)란 별칭이 있는 유명한 분입니다. 그러나 천추에 이름을 남기는 대 학자도 가정적으로는 부인복이 없는 것 같다. 첫째부인은 허(許)씨 부인으로 21세에 결혼하여 7년 만에 산고 끝에 사별하고 두 번째 는 권(權 )씨 부인과 30세에 재혼하였으나 47세에 또 사별하고 둘째아들마저 잃게 되는데, 비록학문으로는 크게 이루었으나 가정적으로는 불운이 겹친 분이었다.
이렇게 실의에 빠져있는 퇴계에게 정조 대왕이 산수가 수려한 단양에 군수를 제수한다. 단양에 부임한 퇴계는 관기(官妓)로 있는 두향(杜香)을 만나는데, 낭랑18세 절세미인이 가야금과 시조. 운 률 을 잘하여 퇴계에게 상대가 되어주니 서로가 시문을 통하여 정분을 쌓았다.
묘하게도 그즈음에 퇴계선생맏형 이해(李邂)가 충청도 관찰사로 부임하자 형제간에 한 지방에 목민관으로 있으면 백성들이 곱지 않는 시선으로 보는 오해가 있을까봐 부임 9개월 만에 단양을 떠나 경상도 풍기군수로 떠나게 된다. 단양을 떠나기 전날 밤 두향은 퇴계와 깊은 정을 나누고 정든 임을 보내며 작별시조한수를 읊는다.
이별이 하도 서러워/ 잔 잡고 슬피 울제 / 어느덧 술 다하고 / 임마저 가려 하네/꽃피는 봄날을 /홀로 어찌할까 하노라/
이별의 시조를 읊고 난후 두향은 속치마를 벋어 퇴계 앞에 펼치며 전별시 한수를 써달라고 간청하니 퇴계는 붓을 들고 아래와 같이 시한구절을 남기고 다음날 단양을 떠났다.
사별이 탄성(死別已呑聲) 생별상 측측(生別相惻惻)
죽어서도 이별이라는 소리는 나오지 않고/ 살아서도 이별은 슬프기 그지없더라! /
이때가 두향은 18세 퇴계는 48세였는데 짧은 만남이 생전에 마지막이 되었던 것이다. 퇴계가 떠난 후 두향은 후임으로 오는 군수에게 부탁하여 기적(妓籍)에서 제적토록 부탁하여 다시 여염집 아녀자로 돌아온 후 퇴계와 같이 풍류를 읊고 즐겼던 장화나루 건너편 강선대 부근에(충주호입구) 움막집을 짓고 수절하며 살았다.
두향이 이별 후20년이 지나 38세(퇴계68세)때 퇴계를 그리워하는 연착(戀着)된 마음이 더욱 깊어져 잊을 수가 없었다. 집에서 가꾸던 매화분과 퇴계가 이별할 때 써준 속치마를 단양군 이방을 시켜 안동도산으로 보낸다. 이방은 도산에 당도하여 매화분과 속치마를 전하며 속치마에 다시 시한수를 부탁하자 퇴계는 자기심정을 화답으로 써주었다.
상간일소 천응허(相看一笑 天應許)/ 유대불래 춘욕거(有待不來 春欲去)/서로한번보고 웃는 것은/ 하늘이 허락하는 것이네/기다려도 오지 않으니/ 봄날은 다 가려고 하는구나.
이렇게 화답시를 써주고 도산계곡 정화수를 한 동이를 퍼서 보낸다.
퇴계는 두향이가 보낸 매화 분을 보면 두향을 보는듯하고 찬바람과 눈 속에서도 고고청청 시들지 않고 아름다운 꽃과 향기를 발산하는 설중매를 두향이로 의인화(擬人化)하여 옆에 두고 애지중지 가꾸었다고한다. 도산서당에 기거하면서도 주변에 매화나무를 심어 도산 매원(陶山梅園)을 조성하여 매화꽃과 향기를 즐겼다. 매화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매화 한시만 무려 118수를 지어 매화 시첩을 후세에 남기기도 했다.
한편 두향은 퇴계가보낸 도산계곡 맑은 물을 매일 한 종지 마셨는데, 어느 날 물맛이 역한 냄새가 나고 그릇마저 깨져버렸다. 두향이 불길한 예감이 들어 안동으로 불원천리 찾아갔으나, 퇴계는 두향이 보낸 매화 분을 가리키며 “매화분에 물을 주어라”는 유언을 남기고 운명하고 상중이었다. 상주들은 두향과 퇴계 간의 연정관계를 알지 못한지라 상문도 못하고 장지 언덕배기를 먼발치에서 바라만보고 단장의 심정으로 단양으로 돌아왔다.
두향은 구담봉 언덕(충주호언덕)에서 투신자결을 결심하고 죽은 뒤 시신은 퇴계와 같이 풍류를 즐기든 강선 대(충주호입구)옆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열두 폭치마를 뒤집어쓰고 단 양호 푸른 물에 몸을 던졌다.
열녀는 불경이부(烈女不更二夫)라는 고사가 문득 생각이 난다. 비록 짧은 기간에 사랑과 풍류를 나누고 불귀의 몸이 되었지만 관기이기 전에 한사람의 아녀자로 지아비를 위하여 기적에서 벋어나 평생을 수절하며 외롭게 살다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자 뒤따라 자기의 일생도 임을 따라 절명하는 절개와 의리가 오늘날 이혼을 밥 먹듯 쉽게 하는 사람들의 사표(師表)가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400여년이 지난 근래 단양군에서는 두향이 시문학과 절의(節義)를 기리기 위하여 해마다 “두향 문학 제“를 성대히 베풀고 살던 곳에 교명도 ”두향초등학교“로 이름을 붙여서 부르고 그녀의 절의를 기리고 있다니 권장할만한 다행스런 일이다.
첫댓글 한사람을 위해 수절한 두향이 현세대 여성들에게 큰 울림을 주는것 같습니다.
한번준 마음은 변함이 없는 절개에 고개가 숙여 지는구려 선배님 좋은글 감사합니다.
산악회 총무국장이란 중임을 맏아 노고가 많습니다.
ㄴ언제나 부지런하게 카페를 운영하시는 안선생 경의를 표합니다.
선배님 건강히 잘 계시죠
뵈온지도 오래된것 같습니다
3월 산행에 뵙기를 청허합니다.
네 동참할께요
고맙습니다.항상 건강하시고 즐거운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