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불모산행
“붉게 핀 꽃송이를 오가며 볼 때마다 / 오목한 꽃잎 안에 독도가 그려지고 / 뾰족한 바위 봉우리 아침 해가 비친다 // 희디흰 꽃송이를 되돌아 들여보니 태극기 물결 이룬 기미년 만세 함성 / 안응칠 하얼빈 쾌거 총소리가 들린다” 광복절에 다시 떠올려 본 ‘무궁화’ 시조 전문이다. 평소 안부를 나누는 지기들에게 이른 아침에 무궁화꽃과 함께 대형 태극기 사진을 카톡으로 보냈다.
아침 식후 반나절 산행을 위해 등산화를 신고 현관을 나섰다. 반송 소하천과 나란한 외동반림로를 따라 걸어 동정동을 출발 진해 장천동으로 가는 첫차 운행 시내버스를 탔다. 시내를 관통해 남산터미널에서 성주사역으로 건너간 안민터널 앞에서 내렸다. 남천 상류에 해당하는 천선동에는 자동차 정비 업체가 나왔고 당산나무 곁으로는 산업단지가 조성되어 마을은 오래전 사라졌다.
천선동 산업단지에서 제2 안민터널 공사 현장으로 이어진 자투리땅에는 어딘가 사는 일가족이 텃밭을 가꾸었다. 수확이 끝난 옥수숫대는 말라도 고구마는 넝쿨을 뻗쳐 잘 자라고 있었는데 공사장 들머리 토사가 이랑을 덮쳐 애써 지은 농사를 망쳐 텃밭 임자는 속이 상할 듯했다. 제2 안민터널 공사 현장에서 상수원 수원지 곁을 지나자 역시 태풍으로 토사가 흘러내린 흔적들이 보였다.
성주사 바깥 주차장에는 아까 길바닥을 덮쳤던 토사물을 임시로 옮겨와 쌓아둔 야적장이 있었다. 지난주 한반도 내륙을 관통해 북으로 종단한 태풍 카눈이 바람의 피해는 적어도 비는 많이 뿌렸다. 도심에도 곳곳이 침수된 보도를 접했는데 산중 사찰에는 여기저기 태풍이 휩쓸고 간 피해가 역력했다. 산문에는 백중 우란분절 제와 수능 수험생 백일기도가 있다는 펼침막이 내걸렸다.
예전 산문 바깥에 용화전의 석조 관세음보살입상은 절 경내 관음전을 지어 옮겨 안치했다. 용화전이 있던 자리 부근 최근 일주문을 세워 단청은 칠하지 않은 채 예서체 편액이 걸려 있었다. 다포식 팔작지붕 일주문은 2본의 주 기둥에 4본의 보조 기둥이 받쳤다. 미완의 일주문을 보니 내가 청년기 고향 마을 주자 영정을 모신 도동사가 퇴락해 단청을 새로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절 경내로 드니 자매나 동기인 듯한 두 젊은 여성이 새벽 예불을 마치고 법당 층계를 내려서고 있었다. 개량 법복 차림으로 미루어 간밤은 템플스태이로 숙소에 머물고 날이 밝아오는 이른 시각 법당을 찾은 듯했다. 절 마당은 이번 태풍으로 흙살이 파여 씻겨 골이 진 곳이 더러 보였다. 스님은 안거 수행 중이라 나오지 못하는지 한 처사가 빗자루로 마당을 정갈하게 쓸고 있었다.
법당 뜰과 지장전 전각 둘레는 여러 개 연화분을 두어 홍련이 피어 눈길을 끌었다. 산문 바깥 늪이나 연지에는 연꽃이 거의 저물었는데 산중 사찰에서는 아직 시들지 않은 꽃잎을 볼 수 있었다. 지장전 곁에는 밤새 꽃잎을 펼쳐 진한 향기를 뿜었을 옥잠화가 꽃잎을 오므려 닫아 비녀처럼 보였다. 관음전을 돌아가니 아침 해가 떠오르는 저 멀리 불모산 정상부가 아스라이 바라보였다.
이제는 불모산 언저리 숲에서 아침나절 내가 할 일이 기다렸다. 맑은 물이 소리 내어 흘러가는 개울을 건너기 전 배낭에 넣어간 삶은 옥수수를 하나 꺼내 먹었다. 한동안 앉아 쉬었던 바윗돌에서 일어나 활엽수가 우거진 숲으로 들어 고사목이 된 참나무 그루터기를 살폈다. 삼림욕을 겸해서 숲속을 누빈 성과는 있어 갓을 펼쳐 자색으로 물들어가는 영지버섯을 몇 무더기 찾아냈다.
야트막한 산등선을 넘으니 가까이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건넜던 개울과 다른 골짜기로 성주사 수원지로 모여드는 계곡이었다. 물이 넉넉하게 흐르는 계곡을 건너니 휴일을 맞아 절과 산을 찾아온 사람들이 다수였는데 맨발로 곰절 황토 숲길을 걷는 이들도 보였다. 내 등 뒤는 영지버섯이 채워진 배낭에서 알맞은 무게감이 느껴졌다. 산문을 벗어나 진해에서 오는 버스를 탔다. 23.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