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3 (외 3편)
임선기
시장통 얼기설기 전선줄 어지러운 상가건물 사이 작은 하늘에도
너는 있다
너는 그러나 이튿날 그 김밥집에 앉아 들여다보아도 가뭇없다
벌써 기억이고 물이 빠지고 있다
앵두나무 아래 마당 위 자주 와 있던 하늘의 표정
닭이 모이 쪼며 돌아다닐 때
내려오고 싶어 하던 눈치가 있었다
눈이 분분히 내릴 때
앵두나무 아래 서 있던 네가 보인다
풍경 2
시간을 운구하는 손이여
오늘 아침도 스러지고
침상이 비었다
병에 꽂혀 있던 시간이여
창밖 눈[雪]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그리고 분수가 있는 사거리
커다란 꽃 속에서 보았다
시간이 질주하는 것을
시간을 운구하는 손이여
마름질하는 기억이여
招魂
너무 나무라지 말아요
이 들 앞에서 계절을 앉아 있으니
너무 나무라지 말아요
저녁이 짖는 이 들을 가로질러 지나곤 했으니
나는 여린 말에서 온 사람
너무 나무라지 말아요
숱한 밤을 지나 이제 환해졌으니
이곳은 갈 곳 없는 곳
마음이 위안입니다
너무 나무라지 말아요
그림자 쪽으로 지는 해를
지난날들을
비의 文章 4
비 온다
언제나 첫 비
가슴에서 오는 비는
언제나 첫 비다
새벽에 어둠에
대낮처럼 멀리 떨어지는 비
불 켜지 말고 들어야 듣는 비
온다
이 시각 누가 비탈을 오르는가
비탈이 비탈이 되는 이 시각
다시 빗소리
혼자 아득한 곳을 가고
세상의 모든 차양을 두드리면서도
단 하나의 차양을 위한 비
온다
사랑의 定義는 사랑에
오래 있어야 한다
—시집『꽃과 꽃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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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기 / 본명 임재호. 1968년 인천 출생. 1994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파리10대학교에서 수학한 후 연세대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 시집『호주머니 속의 시』『꽃과 꽃이 흔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