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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아프리카 지원 구미 후퇴로 중요성이 커지는 TICAD가 완수한 역할이란 / 9/19(금) / 닛폰닷컴
TICAD 9에 참가한 각국·기관의 수뇌들. 앞줄 중앙은 이시바 시게루 수상, 향해 오른쪽 옆은 구테레스 유엔 사무총장=2025년 8월 20일 요코하마시(FRANCKROBICHON/Pool via REUTERS)
2025년 8월, 제9회 아프리카 개발 회의(TICAD 9)가 요코하마시에서 개최되어 아프리카에서 49개국이 참가했다. 32년에 걸쳐 TICAD가 수행한 역할을 미루면서 국제정세가 크게 변화하는 가운데 일본의 아프리카 지원을 생각한다.
◇ 탈냉전으로 데뷔
TICAD는 1993년 이래, 일본 정부가 주도해, 현재는 유엔, 유엔 개발 계획(UNDP), 세계은행, 아프리카 연합의 사무국인 아프리카 연합 위원회(AUC)와 공동으로 개최하고 있다. 2013년부터는 3년마다 일본과 아프리카에서 번갈아 열리고 있다.
"구미에서는 당시, 아프리카에 대한 「원조 피로(aid fatigue)」가 이야기되고 있었다. 거기에 일본이 아프리카 지원에 나서면서 미국 워싱턴의 아프리카 관계자들로부터 TICAD는 획기적인 노력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렇게 상기시키는 사람은 TICAD가 시작된 1993년 정부개발원조(ODA) 담당 1등 서기관으로 워싱턴의 일본대사관에 근무하던 와카바야시 히데키 씨다. 100개가 넘는 일본의 국제협력 NGO가 가맹하는 네트워크 조직, 국제협력 NGO센터의 사무국장을 거쳐 현재는 동 센터의 정책 어드바이저를 맡는다.
일본의 경제성장은 '버블 붕괴'로 멈춰있었지만, ODA 예산은 여전히 '신종적'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국제적인 원조액은 세계 제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편 아프리카를 동서진영의 세력다툼, 대리전쟁의 장으로 삼았던 냉전이 종식되면서 서방국가들은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을 약화시키고 원조를 감소시켰다.
일본 외교의 큰 목표 중 하나는 유엔 개혁에 의한 상임 이사국 진출이며, TICAD에는 아프리카 각국의 지지를 받을 의도가 있었다고 여겨진다. 와카바야시 씨는 "그러한 의도를 아프리카 각국은 어쩐지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일본에는 레어메탈 확보 등의 경제적인 사정도 있었다고 인정하면서 각국은 일본의 등장을 환영하는 분위기였다"고 증언한다.
아프리카 각국이 대체로 일본의 원조를 환영한 것은, 지원에 있어서의 진지한 자세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ODA는 지원처의 요망을 근거로 해 지원 내용을 결정하는 「요청주의」가 기본이다. 와카바야시 씨는 비판이 많은 중국의 지원을 염두에 두고 일본의 지시가 아니라 현지의 요청에 성실히 응하겠다는 자세가 평가로 이어졌다. 지원처에 빚만 남기거나 현지 기업이나 노동자를 쓰지 않고 일본에서 노동자를 데려가는 일도 없고, 필요한 기술 등을 현지에 뿌리내린다. 그 자세로 원조를 계속해 온 것이, 아프리카 뿐만이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평가되고 있다」라고 해설한다.
◇ 지원의 조류를 바꾸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은 1980년대 이후 아프리카 각국을 중심으로 재정적자 감축과 시장 자유화, 공영부문 축소 등으로 대표되는 구조조정 정책을 추진했다. 그런데 이 정책은 많은 나라에 빈곤과 교육 보건의 후퇴를 초래했다. 이러한 반성으로부터, 각국의 채무를 면제해, 보건·교육·환경·젠더 등 「사회 개발」을 중심으로 한 과제를 주테마에 두고 국제적 목표를 설정하자는 구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TICAD에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 아프리카 일본협의회의 이나바 마사키 공동대표에 의하면, 이 구상을 본격적으로 토의하는 다자간 포럼의 하나로서 기능한 것이, 98년의 TICADll이었다. 시간을 거쳐, 2001년에 유엔이 정리한 「밀레니엄 개발 목표」(MDGs)로 이어져, 구조조정으로부터 사회 개발을 중심으로 한 지원이 세계 조류가 된다. 이나바씨는 「TICAD는 그 터닝 포인트를 담당했다」라고 이야기한다.
이후 아프리카 각국에서 경제가 성장하면서 시장으로서의 아프리카가 주목받게 되자 TICAD도 변화한다. 13년의 TICADV에서는, 「원조로부터 민간 투자에」라고 하는 생각아래, 아프리카 수뇌와 일본 기업 대표가 직접 대화를 실시하는 세션이 실시된 것 외에, 아프리카의 신진 인재 1000명에게 일본의 대학에의 유학과 일본 기업에서의 인턴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아프리카의 젊은이를 위한 산업 인재육성 이니셔티브(ABE 이니셔티브)」가 발표되었다.
◇ 신자유주의의 영향
제2차 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국제공조 관여가 저하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원조 활동을 해 온 미 국제 개발청(USAID)은 해체되었다. 도상국 지원을 둘러싼 상황 변화에 대해서, 이나바씨는 「광범위한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공중 위생은 시장성이 낮고, 수익을 올리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문맥에서는 투자를 웃도는 성과가 요구되어, 「원조는 낡았다」라고 하는 생각이 되어 있다」라고 해설한다.
이번 TICAD 9에서는, 지금까지 일본이 주도해 온 아프리카와의 협조나 사회 개발 중시의 흐름이 유지되었다. 게다가 일본은, 「자유로 열린 인도 태평양(FOIP)」의 비전 아래, 「인도양·아프리카 경제권 이니셔티브」의 대처를 표명해, 아프리카 대륙이 임하는 인도양의 여러 나라와도 제휴를 강화할 방침을 내세웠다.
와카바야시씨는 「미국이 국제 협력에의 관여를 줄이고, 유럽도 예산을 삭감하고 있다. 그러한 상황이기 때문에, 아프리카 제국은 일본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라고 지적한다. 세계 조류가 다시 크게 바뀌고 있는 가운데 일본의 아프리카 지원은 새로운 접근이 요구되고 있다. 일본이 제시한 이니셔티브는, 회답의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 청년 창업 활발하게
아프리카에 한정하지 않고, 근년의 일본의 국제 협력을 둘러싼 움직임 속에서 특징적인 것이, 젊은이들에 의한 사회 과제 해결로 이어지는 창업의 움직임이다.
우간다를 거점으로 우물용 선불 요금 시스템 「SUNDA」의 보급을 도모하는 「Sunda Technology Global」는, 그러한 스타트업 기업의 하나다. 대표의 츠보이 아야씨는 파나소닉을 휴직해, 국제 협력 기구(JICA)의 청년 해외 협력 대원으로서 2018년에 우간다에 가서, 우물의 유지 관리등을 개선하는 활동에 종사했다.
구호단체가 정비한 우물 관리를 위해 주민들로부터 우물 이용료를 징수하다가 주민들의 집을 한 채 한 채 돌아보고 겨우 받을 수 있는 상황. 모은 돈이 적절히 관리·사용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하는 불안이나, 사용량에 의하지 않는 정액제에 대한 불만이 배경에 있었다고 한다.
츠보이 씨는 현장 경험을 근거로 해 우물을 원격 관리할 수 있는 수전이나 모바일 머니를 조합한 기기를 독자적으로 개발했다. 파나소닉에 복직 후, 동기기의 보급을 회사의 사업으로 하는 것도 모색했지만, 퇴사해 창업을 단행했다.
츠보이 씨는 이번, TICAD에 처음으로 자사 부스를 출전해, 2개의 이벤트에 등단했다. 부스에는 아프리카 각국 장관 외에 일본 국회의원 부처 기업 등 200명 이상이 다녀갔다. 우간다에 진출하는 일본 기업은 조금씩 늘고 있어, 이것을 계기로 일본의 관민이 원팀으로 임해 가고 싶다」.츠보이 씨의 꿈은 부풀어 오른다.
외무성의 사업으로 30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와카바야시 씨는, TICAD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본에서 멀리 떨어져 문화 언어 인종도 다른 아프리카에서 많은 일본인이 친근감을 갖고 활동하고 있다. 일본에도 많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오게 되었다. 만약 TICAD가 없었다면 일본과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관계는 희박해졌을지도 모른다.
【Profile】
미사와 카즈요시 / 프리 라이터, 편집자, 홍보 컨설턴트. 1967년 홋카이도 출생. 코베 신문 기자로서 한신·아와지 대지진이나 지방 자치, 복지 문제등을 취재. 「국제 개발 저널」기자·편집자를 거쳐, 피스윈즈·재팬 등 국제 협력 NGO나 국제 협력 기구(JICA)에서 홍보 업무에 종사한다. 의존증으로부터의 회복에 임하는 NPO의 활동에도 관련된다. 전문 분야는 국제협력, 방재, 복지.
日本のアフリカ支援 欧米後退で重要性増す TICADの果たした役割とは
日本のアフリカ支援 欧米後退で重要性増す TICADの果たした役割とは
9/19(金) 11:30配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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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澤 一孔
TICAD 9に参加した各国・機関の首脳ら。前列中央は石破茂首相、向かって右隣はグテレス国連事務総長=2025年8月20日、横浜市(FRANCK ROBICHON/Pool via REUTERS)
2025年8月、第9回アフリカ開発会議(TICAD 9)が横浜市で開催され、アフリカから49カ国が参加した。32年にわたってTICADが果たした役割をひもときながら、国際情勢が大きく変化する中での日本のアフリカ支援を考える。
ポスト冷戦でデビュー
TICADは1993年以来、日本政府が主導し、現在は国連、国連開発計画(UNDP)、世界銀行、アフリカ連合の事務局であるアフリカ連合委員会(AUC)と共同で開催している。2013年からは3年ごとに、日本とアフリカで交互に開かれている。
「欧米では当時、アフリカに対する『援助疲れ(aid fatigue)』がささやかれていた。そこに日本がアフリカ支援に乗り出したことで、米ワシントンのアフリカ関係者からTICADは画期的な取り組みとして受け止められた」
こう思い起こすのは、TICADが始まった1993年、政府開発援助(ODA)担当の1等書記官としてワシントンの日本大使館に勤務していた若林秀樹氏だ。100を超える日本の国際協力NGOが加盟するネットワーク組織、国際協力NGOセンターの事務局長をへて、現在は同センターの政策アドバイザーを務める。
日本の経済成長は「バブル崩壊」で止まっていたものの、ODA予算はなお「右肩上がり」で年々増え 、国際的な援助額は世界第1位となっていた。一方、アフリカを東西陣営の勢力争い、代理戦争の場としていた冷戦が終結し、欧米諸国はアフリカへの関心を弱め、援助を減少させた。
日本外交の大きな目標の一つは、国連改革による常任理事国入りであり、TICADにはアフリカ各国の支持を取り付ける思惑があったとされる。若林氏は「そうした思惑をアフリカ各国は何となく気付いていただろう。日本にはレアメタル確保などの経済的な事情もあった」と認めつつ、各国は「日本の登場」を歓迎する雰囲気だったと証言する。
アフリカ各国がおおむね日本の援助を歓迎したのは、支援にあたっての真摯(しんし)な姿勢を認めたからだ。日本のODAは支援先の要望を踏まえて支援内容を決める「要請主義」が基本だ。若林氏は批判の多い中国の支援を念頭に、「日本からの指示ではなく、現地の要請に誠実に応えるという姿勢が、評価につながった。支援先に借金だけを残したり、現地の企業や労働者を使わずに日本から労働者を連れて行ったりすることもなく、必要な技術などを現地に根付かせる。その姿勢で援助を続けてきたことが、アフリカだけでなくアジアでも評価されている」と解説する。
支援の潮流を変えた
国際通貨基金(IMF)や世界銀行は1980年代以降、アフリカ各国を中心に財政赤字削減や市場自由化、公営部門の縮小などに代表される「構造調整政策」を進めた。ところが、同政策は多くの国々に貧困や、教育、保健の後退をもたらしてしまった。この反省から、各国の債務を免除し、保健・教育・環境・ジェンダーなど「社会開発」を中心とした課題を主テーマに置いて国際的目標を設定しようという構想が動き出した。
TICADに市民社会の声を届ける活動をしているアフリカ日本協議会の稲場雅紀共同代表によると、同構想を本格的に討議する多国間フォーラムの一つとして機能したのが、98年のTICAD ll だった。時を経て、2001年に国連がまとめた「ミレニアム開発目標」(MDGs)につながり、構造調整から社会開発を中心とした支援が世界潮流となる。稲場氏は「TICADはそのターニングポイントを担った」と話す。
その後、アフリカ各国で経済が成長し、市場としてのアフリカが注目されるようになると、TICADも変化する。13年のTICAD Vでは、「援助から民間投資へ」という考えの下、アフリカ首脳と日本企業代表が直接対話を行うセッションが実施されたほか、アフリカの若手人材1000人に日本の大学への留学と日本企業でのインターン経験の機会を提供する「アフリカの若者のための産業人材育成イニシアチブ(ABEイニシアチブ)」が発表された。
新自由主義の影響
第2次米トランプ政権の発足以降、米国の国際協力への関与が低下している。世界各国で援助活動にあたってきた米国際開発庁(USAID)は解体された。途上国支援を巡る状況変化について、稲場氏は「広範な貧困層を対象とした公衆衛生は市場性が低く、収益を上げることは難しい。しかし、新自由主義の文脈では投資を上回る成果が求められ、『援助は古い』という考え方になっている」と解説する。
今回のTICAD 9では、これまで日本が主導してきたアフリカとの協調や社会開発重視の流れが維持された。さらに日本は、「自由で開かれたインド太平洋(FOIP)」のビジョンの下で、「インド洋・アフリカ経済圏イニシアチブ」の取り組みを表明し、アフリカ大陸が臨むインド洋の諸国とも連携を強化する方針を打ち出した。
若林氏は「米国が国際協力への関与を減らし、欧州も予算を削減している。そうした状況だからこそ、アフリカ諸国は日本の動向を注視している」と指摘する。世界潮流が再び大きく変わりつつある中、日本のアフリカ支援は新たなアプローチを求められている。日本が示したイニシアチブは、回答の一つになるかもしれない。
若者の起業活発に
アフリカに限らず、近年の日本の国際協力を巡る動きの中で特徴的なのが、若者たちによる社会課題解決につながる起業の動きだ。
ウガンダを拠点に井戸用のプリペイド料金システム「SUNDA」の普及を図る「Sunda Technology Global」は、そうしたスタートアップ企業の一つだ。代表の坪井彩氏はパナソニックを休職し、国際協力機構(JICA)の青年海外協力隊員として2018年にウガンダへ赴き、井戸の維持管理などを改善する活動に従事した。
援助団体が整備した井戸の管理のため、住民から井戸の利用料を徴収していたが、住民の家を一軒一軒回って、やっと払ってもらえる状況。集めたお金が適切に管理・使用されないかもしれないという不安や、使用量によらない定額制についての不満が背景にあったのだという。
坪井さんは現場経験を踏まえ、井戸を遠隔管理できる水栓やモバイルマネーを組み合わせた機器を独自に開発した。パナソニックに復職後、同機器の普及を会社の事業にすることも模索したが、退社して起業に踏み切った。
坪井氏は今回、TICADに初めて自社ブースを出展し、2つのイベントに登壇した。「ブースにはアフリカ各国の大臣のほか、日本の国会議員、省庁、企業など200人以上が訪れてくれた。ウガンダに進出する日本企業は少しずつ増えており、これを契機に日本の官民がワンチームで取り組んでいきたい」。坪井氏の夢は膨らむ。
外務省の事業で、30年を超えて続いているものはそれほど多くない。若林氏は、TICADの意義を次のように語る。「日本から遠く離れ、文化、言語、人種も違うアフリカで、多くの日本人が親近感を持って活動している。日本にも多くのアフリカの人が来るようになった。もしTICADがなければ、日本とアフリカ諸国との関係は希薄になっていたかもしれない」。
【Profile】
三澤 一孔
フリーのライター、編集者、広報コンサルタント。1967年、北海道生まれ。神戸新聞記者として阪神・淡路大震災や地方自治、福祉問題などを取材。「国際開発ジャーナル」記者・編集者を経て、ピースウィンズ・ジャパンなど国際協力NGOや国際協力機構(JICA)で広報業務に従事する。依存症からの回復に取り組むNPOの活動にも関わる。専門分野は、国際協力、防災、福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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