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그리 처참하게 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결국 가미가제로 대표되는 "인명경시사상"이 가장 컸다.
사람의 목숨을 그야말로 뭣같이 아는 거라. 죽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보내고, 내보내고서는 살아돌아올 가능성에 대해 굳이 따지려 하지 않고, 보급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정신력만 강조한다.
말하자면 주먹구구라는 것인데... 20세기를 살던 구시대의 군대가 바로 일본군이었다.
무기가 아닌 바로 그런 무개념이 일본을 패배로 몰아넣었다.
가미가제만 하더라도 그렇다. 가미가제로 자원 - 이라고 쓰고 강요라 읽는다. - 할 정도의 조종사라면 그래도 전투기를 조종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미군의 폭격기가 일본을 공격할 때 그것을 막으려 출격해야 할 그런 이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귀중한 조종사들을 일본 군부는 적 함선에 육탄돌격하라 죽으라 내보낸다.
물론 싸움을 하다 보면 적을 죽이기 위해 나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거나 개인의 신념에 의한 용기였지 이처럼 아예 죽으러 가라 명령하는 것은 아니었다.
일본인의 표현을 빌자면,
"죽을 각오로 싸우는 것과 죽으러 가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라고나 할까?
실제 어느 일본군 조종사의 증언에 따르면 가미가제와 그를 호위하기 위한 편대가 출격하기 전 한 조종사가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고 한다.
"오늘 폭탄을 100% 적함에 명중시킬 자신이 있습니다. 그러면 살아돌아와도 됩니까?"
그러자 사령장관이던 우가키 마토메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허락할 수 없다."
그렇다. 싸우는 것이 아니라 죽는 거다.
싸워서 이기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죽는 것이다.
말하자면 기왕 진 싸움이니 배가르고 자빠지자는 건데, 이를테면 일본군 지휘관들의 허위적인 미의식을 위해 조종사들로 하여금 희생을 강요한 것이다.
진충보국, 살신성인, 목숨을 버려 나라를 구한다.
참 좋은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좋으면 자기가 먼저 들이받지?
그러나 그들은 전쟁이 끝나고도 스스로 책임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오직 처음부터 대미개전에 반대했던 오오니시 타키지로만이 죽어간 조종사들에 감사한다며 스스로 배를 갈랐을 뿐이다.
바로 그런 무책임함이 결국 이기지 못할 전쟁을 일으켰다.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진주만 폭격을 감행했다.
병력을 뿔뿔이 남태평양의 섬에 흩어 놓아 보급도 제대로 해주지 않아 서로 잡아먹는 지경에 이르게 했고, 임팔에서는 보급에 대한 아무런 대책 없이 작전을 치르다 싸워서 죽기 전에 먼저 굶어서 죽는 경우가 더 많았다.
물론 이때에도 일본 지휘부는 전혀 책임을 지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고서도 오히려 큰소리를 치며 사회의 주류로서 행세했다.
역시나 죽어간 것은 젊은 병사들과 초급장교들 뿐.
정작 명령을 내리는 그들은 안전한 곳에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았고,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온갖 호사를 누리다 편안히 죽었다.
그렇게 사람 목숨을 뭣같이 아는 자들이 전략을 제대로 짤까?
전술을 제대로 개발할까?
무기를 제대로 효율적으로 만들어낼까? 보급은? 차라리 원자폭탄이 축복이라는 것이 미군의 상륙을 앞두고 그 인간들이 그를 대비한다고 준비한 것이 바로 1억 총옥쇄였기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같이 죽자는 거다.
일본을 지키기 위해 1억 일본의 국민들이 다 함께 같이 죽자는 거다.
아마 실제 원자폭탄을 떨구지 않고 미군이 바로 상륙했다면 십만 단위가 아닌 백만, 아치 천만 단위의 사람들이 죽어나가야 했을 것이다.
물론 그래도 그들은 죽지 않고 살아남겠지.
살아남아 여전히 온갖 부귀와 영화를 누리려 했을 것이다. 죽은 사람만 불쌍할 뿐, 죽은 건 그들 자신이 아닐 터이니.
세상에 가장 쓸데없는 것이 그래서 "애국심"이다.
항상 그렇다.
애국심을 강조하는 사람 치고 정작 자신이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경우는 없다.
희생을 강조하는 사람치고 자신이 어떠한 이유로든 희생하는 사람도 없다.
말 뿐이다. 항상 말 뿐이다.
높은 자리에 있을 수록, 명령하는 위치에 있을 수록, 그래서 더 많은 것을 갖고 있고 누리고 있고, 그래서 더 많은 책임이 따를수록, 그들은 결코 책임을 지지 않는다.
오로지 희생되는 자들만이 그 책임을 대신할 뿐이다.
세키 유키오 대위가 출격 전날 남긴 말이다.
“나처럼 우수한 파일럿을 죽이다니, 일본도 끝이로군. 시켜만 준다면, 나는 특공(다이아다리, 자살공격)을 하지 않아도 500kg 폭탄을 항모 비행갑판에 명중시키고 돌아올 수 있다. 나는 내일, 천황폐하를 위해서라든지, 일본제국을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고, 가장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 가는 것이다. 일본이 진다면 아내가 미국인들에게 어떤 짓을 당하게 될지 알 수 없다. 나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죽는 것이다.”
세키 유키오 대위는 제로센 21형을 몰고 미해군 호위항모 세인트 로에 격돌하여 격침, 전사한다.
물론 내 솔직한 속내를 말하라면 "잘 했다!"다.
일본이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한 개인 한 개인을 귀중하게 취급하고, 그래서 헛된 망상에 휘둘리기보다는 냉정하게 판단하여 행동하려 했다면 일제에 의한 식민지 지배는 더 길어졌을 테니까.
일본이 스스로 저와 같은 미친 짓을 벌이지 않았다면 그나마 해방조차도 언제 맞을 수 있을 지 기약할 수 없었을 테니까. 고마운 일이다.
저들의 저러한 미친 짓거리는. 죽어간 사람들이야 안타깝지만, 역시나 그보다는 우리의 일이 먼저니까.
다만 안타까운 것은 저 시절 일본에 의해 교육받은 자들이 너무 많은 탓인제, 언제부터인가 뼛속까지 저들을 닮아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사람 목숨 몇 정도야... 사람 몇 죽는 게 그리 대단해? 기껏해야 몇이나 죽는다고? 그보다는 국익이야! 경제성장이야! 발전이야!
몇 사람의 희생으로 이만한 것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큰 이익인가?
지난 수십 년 간 질리도록 보아 온 모습이다.
와우아파트가 무너지고,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는 순간 그 끔찍한 결과를 몇 번이고 보아야 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바뀌지 않는 것은, 결국 우리 역시 저들과 너무나도 닮아 있는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을 계량화하고, 사람의 생명을 댓가로 무언가를 이루려 하던 저들과 너무나도 닮아 있는 때문이다.
과연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을, 가치를 소홀히 여기는 나라가 제대로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
강대국이 될 수 있을까?
진정으로 잘 살 수 있을까?
그래도 사람들은 믿는다.
몇몇의 희생으로 모두 잘 되면 되지 않겠느냐고.
물론 그 몇몇에는 자신은 들어가 있지 않다.
그것을 결정하는 사람도, 그것을 지지하는 사람도 자신이 그 몇몇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면서 말하는 것이 애국과 애족과 희생과 헌신. 과연 그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래서 부쩍 두렵다.
지금이라고 하는 현실이.
갑자기 생각나서 찾아본건데 예전에 보았던 SF소설 은하영웅전설에 이런 말이 나오더라.
애국심만큼 싸고 편리한 도구는 없다. 선동꾼이나 애국꾼에게 속아서는 안된다. 그들은 자신만 살아남아 죽음을 찬미한다. 그들은 희생과 헌신을 극구 칭찬한다. 다른 사람이 그들을 위해 희생되지 않으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한개인의 인권을 위해 국가의 총력을 퍼붓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은하영웅전설은 일본 소설이었지..
원문주소: http://gall.dcinside.com/list.php?id=worldwar2&no=41714&page=1&search_pos=-39882&k_type=1000&keyword=DevilFocus
첫댓글 은영전에서 소위 '애국자'란 놈들을 비웃던 얀웬리가 생각나네요... '애국심'을 모두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런 비열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은 잊어선 안 되겠죠?
전체주의자들이 입만 살아 우국충정을 떠들어댈때 '나 자신'을 위해 분연히 총들 들고 일어선 수많은 용사들이 있었기에 이땅에 이나라가 세워지고 지켜질 수 있었습니다. 학생때 극기훈련을 할때 구호 중에 '나를 버리자'라는 구호가 있었는데 그 구호 속에서 우리나라가 후진국에 머물러 있는 이유를 찾을 수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