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꽃 단상
지난 4월부터 창원 도심 원이대로에는 S-BRT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우리에게 낯선 BRT란 간선급행버스체계로 자차보다 버스 운행을 우선시하는 도로망이라고 한다. 도계광장에서 가음정사거리까지는 올 연말까지 완공하고 추후 마산 육호광장까지 연장시킨다고 한다. 버스 정류소가 주행 도로에 설치되어 기존 중앙 녹지대는 걷어내 차로 양측에 분리 녹지대로 옮겨 재설치한단다.
70년대 주거지역과 산업단지를 분리시킨 계획도시로 출범한 창원은 도로망이 잘 구축되고 공원 녹지공간이 많음이 특징이다. 이번에 도로망 개편 공사가 진행 중인 원이대로엔 잔디가 입혀진 중앙 분리대에 배롱나무와 향나무가 조경수로 심겨 자랐다. 특히 배롱나무가 꽃을 피우는 여름부터 가을은 삭막한 도시 미관을 한층 아름답게 해주었는데 이번 도로 공사로 모두 뽑혀 나갔다.
앞서 두 문단에서 개편되는 창원 도로망을 언급함은 조경수로 잘 자라던 배롱나무가 사라지게 되는 아쉬움에서다. 배롱나무 원산지는 중국 남부여서 내한성이 비교적 약해 우리나라 남부지역부터 퍼져나가 잘 자란 명소들이 많다. 담양 소쇄원과 식영정, 경주 서출지, 안동 병산서원 등은 수령이 오래된 배롱나무로 알려졌다. 의령의 의병장 곽재우를 기리는 충익사 배롱나무도 아름답다.
배롱나무는 경주 양동 양반가 정원은 물론 향교나 서원의 뜰에 조경수로 심어 키웠다. 동래 충렬사와 같은 선현 사당에도 고목 배롱나무가 운치를 더해준다. 고창 선운사나 강진 백련사 사찰 경내도 여름내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서울의 고궁에도 볼 수 있고 세종 신도시 거리에서도 흔한 수종일 테다. 배롱나무는 가로수로보다 도시 미관을 돋보이게 하는 조경수 기능을 하고 있다.
배롱나무는 당나라 도읍 장안 자미성(紫微城)에 많이 심었기에 자미화(紫微花)로 불렸다. 본디 보라색 꽃이었는데 우리나라엔 붉은색이 들어왔나 보다. 조선 전기 강희안이 남긴 ‘양화소록’에는 사람들이 자미화 이름은 제대로 읽히지 않아 백일홍으로 불렀다고 한다. 꽃이 백일 동안 오래 피어 백일홍나무다. 세월이 흘러 연음으로 부른 배기롱나무가 줄여져 배롱나무가 됨이 유력하다.
한 송이 꽃이 백일 동안 피어 있는 게 아니라, 먼저 핀 꽃은 저물어 꽃잎이 지고 나면 위로 올라가면서 새로운 송이가 꽃잎을 펼쳐 꽃대 하나에서 여러 개 꽃이 이어달리기로 꽃을 피운다. 가지 끝마다 원뿔형 꽃대가 뻗어 굵은 콩알 크기 꽃봉오리를 맺어 꽃을 피울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꽃잎은 예닐곱 장씩으로 모두 오글쪼글 주름이 잡혀 이글거리는 태양도 주름을 펴지 못한다.
배롱나무는 꽃이 오래도록 피는 특징 외 나무껍질의 색다름도 눈길을 끈다. 고목의 표면은 연한 붉은빛이 감도는 갈색이고 얇은 조각으로 벗겨 떨어지면서 흰 얼룩무늬가 생겨 반질반질해 보인다. 이런 나무를 파양수(怕揚樹)라 하는데 부끄럼이나 간지럼을 잘 탄다고 봤다. 실제로 수피를 긁어보면 간지름 타는 것처럼 흔들려 보이나 착시이고 식물은 자극을 전하는 신경 세포가 없다.
도청 고위직으로 정년퇴직한 고향 친구에게 들은 말이 있다. 친구는 젊은 날 본청에서 몇몇 부서를 옮겨가며 열심히 일해 일찍 사무관이 되고 인재개발원 교수도 역임했다. 중년에 만났던 어느 선출직 지사는 유난히 배롱나무 식재를 좋아했다고 한다. 아마 그 시절 재일본 거류민들이 모국에 헌수와 식수 운동을 펼쳤던 때였는데 도청 소재지 창원에 심은 배롱나무도 많을 듯하다.
오늘은 초등 친구들과 지기들에게 보내는 아침 시조로 ‘배롱꽃’을 남겼다. “홍살문 경계 너머 화사한 꽃 무더기 / 가지는 성글어도 옹글고 비틀어져 / 간지름 타는 수피로 백일 동안 핀단다 // 매섭게 지킨 절개 후세가 기려주고 / 양반가 고택 정원 운치를 더해주는 / 역사에 빛나는 향훈 오래오래 전한다” 엊그제 도청 뜰로 나가 배롱나무가 피운 꽃을 사진으로 담아 같이 보냈다. 23.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