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는 우리 인생이다"
- <빛으로 그린 그림> 출간 기념, 사진작가 배병우와의 만남 현장
↑ 배병우 작가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소나무 사진
소나무를 찍는 사진작가 배병우. 그의 작업실은 경기도 파주시 헤이리 마을에 있다. 전국 산천과 지구촌을 돌며 소나무를 찍는 그는 정작 그곳에 잘 머물지 않는다. 그럼에도 작업실은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학기 중에는 학생들이 책을 보러 오고, 시간 날 때는 지인들을 초대해 조촐한 파티를 벌이는 공간이다. 인터파크도서 독자들은 지난 7월 10일 토요일 오후, 배병우 작가의 헤이리 작업실에 방문했다. 그는 사진에서 물든 듯한 먹색 티셔츠를 입고 사람들을 반겼다.
"저쪽에는 물이 있고, 이쪽 냉장고에는 시원한 맥주가 있고. 뭐 자유롭게 둘러보세요. 이따가 우리 고등어 샌드위치 만들어 먹어요. 석쇠에 고등어를 구워서 빵에 얹어 먹으면 그게 참 별미거든요."
↑ 책 소개와 함께 지난 프로젝트 - 종묘, 창덕궁, 스페인의 알람브라 궁전을 이야기하는 배병우 작가
그는 최근에 첫 번째 단행본 <빛으로 그린 그림>을 출간했다. 굵직한 프로젝트를 다룬 전작들과 달리 사진 애호가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고, 앞으로 어떤 작업들을 해 나갈지 살피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책이다. 20대 청춘 시절의 마라도, 바다 사진, 그리고 소나무 사진들부터 종묘, 창덕궁, 알람브라 궁전, 타이티까지. 국내외 여행을 다니며 촬영한 작품들이 가득하다.
그 중 배병우 작가를 유명하게 만들어 준 것은 단연코 ’소나무 사진’이다. 2005년에 엘튼 존이 그의 소나무 사진을 1만 5000파운드에 구입하면서 이슈가 되었다. 엘튼 존은 그 사진을 자신의 별장에 걸었다고 한다.
"예술가 위에는 ’콜렉터’가 있죠. 그런 거 보면 사람팔자도 그렇고 작품팔자도 그런 거지." 매번 재치 있는 입담으로 좌중의 웃음을 터트리는 그다.
연필로 기사를 쓰거나 드로잉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카메라 역시 보도용으로 사용하거나 예술을 표현하는 도구로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배병우 작가의 생각이다. 그렇게 볼 때, 배병우에게 카메라는 그림을 그리는 ’붓’이다. 그의 붓 끝에서 그려지는 기품 있는 선이 한국의 옛 그림들을 떠오르게 만드는 것은 그의 오랜 생각이 담긴 결과이다.
회색 콘크리트로 지어진 건물 1층은 국내외 배송 준비를 마친 사진들이 튼튼한 판자로 포장되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양의 전통,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부른다는 평과 함께 그의 작품은 이제 세계 속 각종 경매의 인기 품목으로 자리 잡았다.
↑ 2010년 잘츠부르크 음악축제 공식 포스터
2010년 잘츠부르크 음악축제 공식 포스터로 배병우 작가의 사진이 선정되었다. 독일에서 출판된 배병우 사진집 <Sacred Wood(성스러운 나무)>에 실린 사진이다.
서재를 둘러보는 사람들에게 일단 먹고 다시 오자며 그가 외쳤다. "불 피워라. 고등어 구워라!" 평소에도 요리와 미식을 즐긴다는 그. 2층 작업실 중앙에는 부엌이 있었다.
↑ 2층 작가의 서재
2층 서재는 작가가 1970년대부터 모은 책들로 빼곡하다. 그는 ’북 콜렉터’라는 별명이 있다.
↑ 고등어 샌드위치 만드는 중
상상하기 애매했던 고등어 샌드위치. 직접 먹어보니 맛있었다. 그는 작가의 ’지역성’이 작가의 ’메인’이 된다고 여긴다. 삼십 대 무렵부터 ’한국의 미’는 무엇일까 진지한 질문을 던지던 그는 소나무에서 답을 찾았다고 한다. 소나무는 그 자체가 우리 민족과 닮아 있었다.
1984-5년부터 올해까지 26년 째 소나무를 찍어온 그는 ’경주 소나무’를 으뜸으로 친다. 목재로 쓰여 지는 평범한 나무와 달리 경주 왕릉의 소나무들은 영혼 상승의 매개체가 된다는 믿음에서이다.
↑ 여러 출입증 사이에 눈에 뛰는 창덕궁 상시출입증
여러 출입증 사이에 창덕궁 상시출입증 명찰이 눈에 띈다. 일찍이 출간했던 <창덕궁-배병우 사진첩>의 흔적이다. 또한 소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소재를 어떻게 해석하는가를 더 중요하게 본다. 자신의 사진을 두고 ’옛날 사진’이라는 혹독한 비평이 있었던 십여 년 전, 소재를 바꿀까 고민을 했었는데 오랜 생각 끝에 바꾸지 않기로 결정했던 것은 소나무를 더 잘 ’해석’하고 싶었던 욕구에서였다.
현재는 전혀 달라졌음이 물론이다. 이를 통해 ’고수하면, 인생에서 자기 차례가 한 번은 온다.’고 말하며 좌중을 다시 웃긴 작가는 ’남만 우르르 쫓아다니면 절대 안 된다는 교훈’이 되었다는 지난 시절을 회고했다. 그는 여전히 하나의 주제를 잡으면 짧게는 2~3년, 길게는 20~30년씩 붙잡고 씨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배병우 작가를 만나러 온 독자들
학생부터 직장인까지 다양한 독자들이 찾아왔던 만큼 질문도 다채로웠다.
↑ 배병우 작가에게 질문하는 독자
궁금한 사람들은 더 있다가도 된다는 작가의 말에 질문이 길어져 약속된 시간이 훌쩍 넘었다. 그에게 누군가 질문을 던진다. "배병우에게 사진이란?" 그러자 대뜸 ’밥벌이’라고 답한다. 지금도 한창 ’영업 중’ 임을 강조하며, 뒤돌아 볼 것 없이 계속 걸어가겠다고 말한다. 앞으로도 소나무로 먹고 살 것이라 덧붙이며 호탕한 웃음을 날렸다.
작가가 말하길, 사진을 찍을수록 초기의 작품이 더 괜찮게 보인다고 한다. 전작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사진을 찍는 이유이고 남은 과제는 전작을 뛰어넘는 사진을 찍는 것이라니. 이것은 곧 자신과 경쟁하겠다는, 겸손함과 자신감이 적절이 조합된 다짐 아니었을까.
소나무와 계절의 흐름을 더 잘 ’그리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카메라와 있는 순간이 항상 행복하다는 그의 말이 사진의 여백을 채웠다. 맛있는 고등어 샌드위치를 맛보고 작가와의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고, 마지막으로 배병우 작가의 사인을 받으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야 했다.
↑ 독자에게 사인을 해주는 배병우 작가
그의 사인에도 우직한 소나무 한 그루가 자라난다.
글/사진: 인터파크도서 명예기자 전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