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에 데뷔한 이미자가 1965년 이신명 감독이 만든 영화 ‘열풍(熱風)’의 주제가인 ‘울어라 열풍아’를 부른 것은 24세 때, 한창 성가가 오르고 있던 시기였다. ‘열풍’은 일제 말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여 두 남녀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애틋하게 엮어나간 영화다.
엄앵란, 김석훈이 주연한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이미자의 애조 띤 노래도 대중의 심금을 크게 울려 오늘날까지 널리 애창되고 있다.이미자의 청아하고도 애잔한 목소리와 노래가 지닌 애상적 정서가 잘 어울렸던 것 같다.
한산도 작사, 백영호 작곡의 이 노래 가사는 이렇게 흐른다.
못 견디게 괴로워도 울지 못하고/ 가는 임을 웃음으로 보내는 마음/그 누구가 알아주나 기막힌 내 사랑을/ 울어라 열풍아 밤이 새도록
임을 보낸 아쉬움에 흐느끼면서/ 하염없이 헤매 도는 서러운 발길/ 내 가슴의 이 상처를 그 누가 달래주리/ 울어라 열풍아 밤이 새도록
가사가 말해주듯 사랑하는 사람과 괴롭고도 아쉽게 이별한 여인이 그 서럽고 안타까운 심정을 하소연하는 내용이다. 우리 민족의 전통적 정서라 할 수 있는 ‘별한(別恨)’을 담은 이 노래는 가슴을 에는 듯한 애상적인 곡조로 흐를 수 있는 사설이다.
어떤 음원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유명한 가수 중에 여자 가수 다섯 사람, 남자 가수 한 사람모두 여섯 사람이 이 노래를 저마다의 독특한 기법으로 부른 노래를 한꺼번에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이 지닌 음색, 성량, 창법을 구사하여 이 노래를 부르는데, 같은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다른 맛, 느낌, 정서로 풀어내고 있었다. 그것이 곧 그 가수들이 지닌 개성임은 물론이겠다.
가수에 따라 각혈하듯 노래를 토해내기도 하고, 비음에 선율을 얹어 애절하게도 부르고, ‘꺾기’ 창법을 써서 구성지게 엮어내기도 하고, 한 맺힌 사연을 절절히 호소하듯 풀어내기도 하고, 시를 낭송하듯 억양을 다져가며 읊어내기도 하고, 남자 가수는 독특한 장단과 강약을 능란하게 주무르듯이 불러, 모두들 이미자의 처음 노래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같은 노래가 이토록 서로 다른 느낌을 자아내게 하는 것은 자신의 개성적인 창법은 물론 편곡의 힘도 크겠지만, 그 노래를 바라보는 가수의 태도 즉 곡의 해석(解釋)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편곡도 창법도 그 해석에 따라 달리 구사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노래들을 듣는 사람이 어떻게 듣느냐 하는 것은 물론 듣는 사람의 문제다. 가수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자기 노래에 공감해 주기를 바라고, 그러기 위해 온갖 기법과 장치를 동원했겠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감상자의 자유로운 감성에 달렸을 뿐이다.
어찌 노래를 부르는 일만 그럴 것인가. 삶의 모든 일이 다 그럴 터이다. 우리는 흔히 ‘인생관’을 말한다.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 즉 자기 삶에 대한 스스로의 해석 문제다. 그 해석에 따라 삶을 설계하고, 그에 의해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가게 된다.
누구나 인생관을 지니고 살아야 하겠지만. 뚜렷한 인생관을 설정하여 살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 확고한 인생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그리 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가수가 곡에 대한 자기 해석이 없이 타고난 목소리로만 부른다면, 그 노래가 성공할 수 있을까.
물론, 자기의 독특한 인생관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성공적인 삶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삶을 나름대로 해석하며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삶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게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때 ‘성공’이란 매우 주관적인 것이어서, 어떠한 형태의 것이든 스스로 만족할 수 있으면 ‘성공’이라 할 수 있겠지만, 자신의 인생관이 성공을 기약해 주는 것도 아니고, 그 성공이 곧 사회정의로 연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가수는 자기가 부르는 노래에 대한 자기만의 해석을 가져야 하듯, 삶에 있어서도 의도적인 것이든 삶의 양태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든, 자기 삶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을 지닐 필요가 있다. 가수의 노래와 자신의 삶이 성공하고 못하고는 나중의 문제다.
가수는 노래를 부르고 나면 성공 여부가 이내 결정되지만, 삶의 성공 여부는 언제 결정되는 것일까. 삶은 입학시험처럼 합격, 불합격으로 판가름 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이란 끊임없는 해석과 그에 따른 삶의 모습 정립, 그리고 그 실천의 과정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삶이란 가수가 한 곡의 노래를 부르는 과정과 같을지도 모른다. 가수가 최선을 다해 한 곡의 노래를 부르고 무대를 내려오듯 우리도 그렇게 삶의 무대를 내려가는 것이다. 그렇게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노래의 성공 여부가 무대를 내려오는 순간에 달린 것처럼 삶의 성공 여부도 죽는 순간에 달린 것이라 볼 수 있다.
나는 오늘도 떨치고 싶은 것은 떨쳐버린 한촌의 하루를 살고 있다. 그리고 오늘도 언제나처럼 해거름 산을 오르고 내리며 하루를 마감한다. 지금 내가 해석하며 살고 있는 내 삶의 방법이다. 저 나무가 산을 고요히 살다가 그 자리에서 잦아들어 흙이 되듯, 그렇게 살다가 저 산의 바람과 더불어 잦아들고 싶다. 가수가 무대를 내려가듯 그렇게 가고 싶을 뿐이다.
가수는 노래에 대한 자기 해석을 따라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크든 작든 갈채를 받으며 무대를 내려갈 것이다. 어쩌면 관중의 식은 손짓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가수는 나름대로의 역량을 다 바쳐 한 곡의 노래를 끝낼 것이다.♣(2017.11.5.)
첫댓글 가수가 내 개성으로 노래를 부르듯 삶도 열정적으로 그렇게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지요.
성공의 여부는 그 후의 문제겠구요.
성공하고싶지 않은 삶이 어디있겠습니까,
내가 만족하면 잘 살은 삶이겠지요.
좋은 글 잘 감상했습니다~
잘 감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살아갈 일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