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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태극기 사랑을.... 태극기 게양이 곧 나라사랑입니다!”
작열하는 8월의 태양 볕이 달아오르듯이 2016년 리우 올림픽을 덥히는 열기행렬은 열대야로 잠 못 이루게 하는 여러 날을 더 뜨겁게 달궈대기도 했다.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경기장을 후끈케 한 우리 선수들의 선전에 맞춰 시상대에 오르는 태극 깃발을 바라볼 때면 가슴 속에 스미는 뿌듯함에 심장은 더 크게 용솟음친다.
야구를 좋아하는 팬은 물론이고 별반 흥미가 없는 사람이라 해도 미국 메이저리그(MLB)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이 경기에 나서 펼치는 활약상을 대하면 한국인임이 못내 자랑스러워 짐 또한 느끼게 된다.
젊은 선수들이 세계 최고 프로야구 본고장인 미국 무대에서, 그것도 데뷔 1~2여년에 불과한 선수들이 어떤 두려움도 없이 당당하게 맞서 완벽한 제구력과 최고 구속(球速)을 뿌려대며 삼진아웃으로 덩치 큰 1류 선수들을 셧아웃 시키는가 하면 입이 떡 벌어질 대형 장외 홈런까지 펑펑 쏘아대는 맹활약으로 팀 승리를 이끄는 장면을 보면 가슴 벅찬 감동을 맛보게 된다.
어디 야구선수 뿐이겠는가?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을 받던 1998년 5월, 전 국민이 급박하게 휘몰아친 구조조정으로 실의에 잠겨 허리띠를 졸라매며 낙담해 하던 그 때 홀연히 등장한 미 LPGA(여자프로골프협회) 박세리 선수가 소진해가던 국민의 마음을 치유하며 힘을 실어 주던 당시를 많은 국민들이 잊지 못해한다.
운동에는 다소 둔감한 필자라 해도 지난날 박세리 선수가 해저드에 빠진 볼을 치기 위해 맨발로 들어가 골프채를 휘두르던 그 때를 잊을 수 없다.
거기에 세계야구의 큰 흐름을 이끌고 있는 미국과 일본 무대에서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며 한국을 빛내고 있는 운동선수들과 국가 대항전에서 야구 강대국들을 연파하며 우승 트로피를 높이 들어 올리던 선수들을 떠올리면 마치 나 자신이 주역이라도 된 양 가슴 찡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곳에는 필연적으로 국가를 상징하는 국기, 자랑스런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이렇듯 스포츠 경기에서 우리가 승리하고 우리나라 태극기가 경기장을 누빌라치면 누구라도 가슴벅찬 감동과 함께 최고조의 기분을 만끽하게 됨은 단 하나의 이유이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너와 나는 한국인’이라는 이유!
이렇듯 우리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로 멋진 활약을 펼칠 때면 경기장면을 중계하는 현지 중계 카메라는 어김없이 관중석 이곳저곳에서 휘날리는 태극기에 카메라를 들이대는데 그럴 때마다 파란 눈의 이방인들이 우리 선수를 응원하는 이니셜 문구를 들고 환호하는 가하면 종이위에 그려진 태극모양 수기를 들고 흔들어 대는 모습을 클로즈업 시킨다. 그 때의 감동은 여느 때 보다 더해지게 마련이다.
잊지 못할 그 때 그 장면
지금부터 꼭 10년 전인 2006년 3월16일 미국에서 제2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대회가 열렸다. 대한민국이 극적으로 일본을 격파한 뒤 한 선수가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그는 마운드의 흙을 파내고 거기에 태극기를 꽂았다. 그 장면을 그대로 중계 카메라가 잡았고 외신을 통해 전 세계에 타전됐다.
태극기(太極旗) 일대 서사시(敍事詩)였다. 미 캘리포니아 애너하임 시 에인절 스타디움에서 열린 일본과의 4강전에서 숙명의 대결 일본과 맞닥뜨린 한국은 8회 말 당시 한국의 주장이던 이종범 선수가 적시 2타점 2루타를 터뜨렸다. 일본으로부터 전세를 완전히 돌려 세웠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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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9회말 현재 미 프로야구에서 마무리 투수로 맹활약하고 있는 오승환 선수가 일본의 마지막 타자(다무라)를 삼진으로 처리하자 더그아웃(dugout)의 모든 선수가 그라운드로 몰려나와 서로 얼싸안고 환호성을 지르며 한데 얼렸다. 구대성과 이종범 선수가 태극기를 들고 다른 모든 선수들이 그 뒤를 따라 경기장을 한 바퀴 돌았다. 경기장을 메운 대부분 관중들이 기립해 박수를 보냈음은 말할 나위 없었다. 그리고 서재응 선수가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았다.
현장 중계를 지켜보던 필자 또한 가슴 속 타오르는 진한 열정, 스스로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에 얼마나 감격해 했는지, 지금도 그 때를 떠올리면 한여름 말로 다 표현키 어려운 시원한 청량제로 온 몸을 감싼 듯한 느낌을 지울 길 없다.
당시 언론은 이렇게 보도했다.
○…한국대표팀 서재응이 16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시 에인절 스타디움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은 뒤 웃고 있다. 에인절 스타디움에 세계 야구역사에 한 획을 긋는 대 서사시가 펼쳐졌다. 한국을 위한, 한국인을 위한 명 드라마였다.
○…에인절 스타디움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았다. 오승환이 9회말 2사 후 다무라를 삼진으로 잡는 순간 한국 선수들은 일제히 마운드로 몰려나와 서로 얼싸안고 환호성을 질렀다. 구대성과 이종범이 대형 태극기를 들고 나머지 선수들이 그 뒤를 따라 그라운드를 한 바퀴 돌았으며 마지막에 서재응이 태극기 2개를 마운드 위에 꽂았다.
○…에인절 스타디움은 한국이 일본전 승리를 확정하고 선수들이 그라운드를 도는 동안 자리에서 모두 일어서 “대∼한민국”을 외치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일부 관중들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글썽거리기도 했으며 선수들이 사라진 후에도 한 동안 자리에서 떠날 줄 몰랐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에 2패를 당하고 탈락 위기에 몰린 일본 덕아웃은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오 사다하루 일본 감독은 입을 꽉 다문 채 고개를 숙였으며 간판타자 스즈키 이치로는 카메라를 피해 고개를 돌리더니 욕설을 내뱉으며 분통을 터트렸다. 일본 선수들은 두 팔 사이에 고개를 파묻은 채 얼굴을 들지 못했다
각 나라의 국기(國旗)는 그 나라를 대표하고 나타내는 상징물이다. 전 세계 모든 독립 국가들은 국기(國旗)를 보유한다. 외국에 자기 나라를 알리는 대표적 존재물이자 독립적인 보유물인 것이다.
그러기에 보편적인 경우 현실에서는 태극기를 잊고 있다가도 어느 날 기념일을 통하거나 외국에 나가서 우연하게 국기를 대할 때면 진한 감동과 함께 가슴 뭉클해지는 심회를 받게 된다. 그런데도 평소 우리는 일상에서 태극기의 소중함을 크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
太極旗 사랑, 太極旗 게양은 愛國의 출발점
보수시민단체의 기자회견장이나 대소규모 집회장을 취재하다보면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게 있다. 태극기(太極旗)다. 때에 따라 성조기와 유엔기도 나부낀다. 좌파 내지 종북세력들이 주최하는 행사와 다른 점이 바로 손에 든 태극기를 흔들며 사회자의 유도나 발표자의 논리적이고 격정적인 발언이 이어질 때마다 함성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어 분위기를 달군다.
모두가 하나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게 바로 태극기의 힘이고 위력이다. 하지만 친북좌파 ․ 종북세력들이 주(主)가 되는 집회현장에선 태극기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태극기가 있어도 국기에 대한 경례나 애국가 제창이 없을 때가 많다. 아니 있더라도 어떤 이들은 애써 회피하거나 눈을 감고 외면하는 현상이 일기도 한다.
지난 5월18일 서울광장에서 5.18 민주화운동 서울기념식이 열렸다. 이 행사를 보도한 언론 사진과 동영상 중 눈에 띄는 대목이 있어 관심을 모았다. 행사에 참석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애국가가 4절까지 제창되는 동안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겨 있는 장면이다. 한 때 국기에 대한 예의 표시와 애국가 제창 없는 기자회견 등 일련의 현상들이 우리사회 논쟁으로 비화된 적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보수진영의 집회현장에서 물결을 이루며 모두의 심정을 뭉클하게 자아내던 태극기가 행사가 끝나면 애물단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고 만다는 사실이다. 대체로 수거가 되지만 일부 태극 깃발은 의자 아래 버려지거나 찢겨져 바람에 나뒹굴며 쓰레기더미에 파묻혀 말 그대로 쓰레기 화 되고 만다는 점이다.
태극기는 나라의 상징이다. 국가를 대표하는 현장에는 어김없이 그 나라의 국기(國旗)가 위치한다. 외교관이 탄 차량에도, 그가 묵는 숙소에도, 국가대표 간 축구경기에서도, 올림픽 메달을 땄을 때에도 해당 국가의 국기가 올라간다. 그럴 때면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며 국가(國家)에 대해, 국기에 대한 예를 표하며 감격에 젖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내가 태극기를 들었을 때, 또 태극기를 지녀야 할 때는 외면하려 하고 있으니 이래서야 되겠는가?
61회 현충일, 우리 동네 태극기 게양은?
벌써 오랜 전 얘기다. 현역으로 사단 참모로 재직하던 때의 일이다. 지금은 합참의장과 국방장관직을 끝으로 공직에서 은퇴하시고 더 넓은 시각에서 국가안보를 위해 일심(一心)으로 전력하고 계시는 지휘관께서 8.15광복절을 맞아 이런 지시를 내리셨다. “정훈공보참모, 지금부터 각 부대 군인 아파트를 아무도 몰래 가서 태극기 게양 실태를 확인해서 보고 하라”. 곧바로 출발해 전체 여단급 부대 군인아파트 실태를 조사해서 보고를 드린 기억이 새롭다.
2016년 6월6일은 61회째 맞는 현충일. 거룩한 희생으로 대한의 독립과 나라 위해 희생하신 호국선열을 추념하며 거리마다 집집마다 반기(半旗)를 게양하고 오전 10시 전국 동시 1분 동안 묵념에 잠기는 날이기도 하다.
이 날 아침 8시30〜9시40분 서울 강동구의 필자가 거주하는 아파트에서 동네 일대를 돌아보며 태극기 게양 실태를 확인해 봤다. 거의 매번 거르지 않고 해온 일이기에 ‘올해는 어떨까’ 일말의 기대감도 있었다. 전날부터 아파트 관리소에서 방송을 통해 ‘태극기 게양’ 계몽운동을 한 탓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이었다. 애초부터 예상을 초월한 기대는 없었다 해도 그럼에도 ‘혹시나’ 했는데 기대는 ‘역시나’로 끝났다.
전체 16개동 2938세대가 거주하는 아파트 중 9개동(洞)을 체크하며 확인한 결과 1개동 많은 곳은 188세대가 거주하고 작아도 160세대는 거주하는데, 이 중 태극기를 게양한 아파트는 38세대에 지나지 않았다. 1개 동(洞) 중 단 한 집만 게양한 곳도 있었다. 200여 세대가 거주하는 동에서도 가장 많이 게양한 집이 아홉 집이었다. 물론 이 중 절반이 넘는 27세대는 조기(弔旗)를 게양했지만 그렇지 않은 집도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정작 이상한 것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내걸린 태극기는 조기가 아니었다. 또 아파트 내 도로 양쪽 깃봉에 설치된 태극기도 마찬가지로 경축기념일에 게양하는 식 그대로였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여러 사람이 공감하고 일체감을 형성할 수 있을 텐데, 그저 ‘하게 돼 있으니까’ 하는 행정 편의 주의적 속성인 것만 같아 씁쓰레한 생각이 한동안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특정한 일부 세력들을 제외하고 국민 대부분이 ‘나라사랑’과 ‘애국(심)’을 얘기하고 마음을 다진다. 그런데도 꼭 해야 할 필요한 시기엔 어떻게 하는 게 나라사랑이고 애국심인지 잊어버릴 경우가 있는 건 아닌지 되뇌게 되는 경우도 있지는 않는가 한다.
서울중앙지법은 2월 지난해 4월 1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추모 집회 당시 태극기를 불태운 혐의로 기소된 000씨가 “국기모독죄는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 위헌”이라며 낸 위헌법률심판청구 신청을 “국기 또는 국장이 상징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유지라는 헌법적 가치를 보호하려는 입법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며 기각했다.
그러면서도 국기를 불태운 김 씨에 대해선 국기모독죄가 아니라고 무죄를 선고했다.
그날 현충일 저녁, TV 방송 뉴스는 전국의 고속도로가 연휴를 보내고 귀경하는 차량들로 꽉 막히고 있다는 내용과 함께 꼬리를 문 차량행렬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태극기 게양운동 앞장서는 4․19혁명 공로자회 경기도지부
토요일이던 지난 4월9일 오전, 경기도 수원 화성 행궁 일원에는 주말임에도 청년, 학생, 40대 주부에서 70, 80대 할아버지들에 이르기까지 세대를 초월한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행사를 준비하던 이재영 4․19혁명 공로자회 경기도지부장의 “사람이 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던 걱정은 말 그대로 기우에 불과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행사장은 참여자로 꽉 들어차고 충분하게 준비했음에도 이들에게 나눠줄 태극기 스티커며 팜플렛 등이 부족할 정도였다.
4․19혁명 공로자회 도지부가 시행하는 ‘태극기 퍼레이드’ 행사장에서다. 이 날 행사는 1960년 4․19혁명의 주역들이자 국가로부터 건국포장을 수여받은 국가유공자 보훈단체인 4․19혁명 공로자회 도지부가 국가정체성을 수호하고 나라사랑 실천의 일환으로 대한민국의 얼굴이며 국가의 상징인 태극기 선양과 위상을 높이고자 처음으로 준비한 태극기 퍼레이드 한 마당 행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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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는 대한민국 얼굴’ ‘애국가는 대한민국 영혼’ ‘무궁화는 대한민국 사랑’이라 적힌 피켓들이 이 날의 행사를 대변해주고 ‘태극기 사랑’ 어깨띠를 두르고, 태극기가 수놓아진 스카프를 머리에 질끈 동여매거나 목선을 따라 모양을 내고 퍼레이드에 나선 참석자들의 얼굴 표정에서 태극기 사랑 마음이 내내 묻어나고 있었다.
퍼레이드 행렬 선두에 대형태극기를 펼쳐들고 화성행궁에서 -팔달문 - 중동사거리 - 팔달문 - 화성행궁으로 이어지는 짧지 않는 거리를 손에 든 태극기와 피켓을 흔들고 지날 때면 거리를 지나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멈추고 대열을 향해 손을 흔들며 함께 대열로 합류하는 이들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태극기를 향한 마음엔 연륜의 차이도, 남녀의 구분도 따로 없어 보였다. 그게 바로 하나 된 마음이요, 태극기가 보여준 힘이었다.
이 날 태극기 퍼레이드를 계획한 이는 지난 2013년 경기도 지부장으로 취임한 4․19소녀로 더 잘 알려진, 1960년 4․19 당시 18세 학생 신분으로 전 날 밤 직접 종이 위에 그린 태극기를 가슴에 품은 채 시위대의 진입을 저지하는 진압 경찰을 뚫고 지프차 위에 올라가 가슴의 태극기를 꺼내 흔들며 ‘민주주의’를 지키자고 연호했던 이재영 지부장이다.
태극기 퍼레이드가 끝난 한참 후 필자와 만나 얘기를 나눈 이 지부장은 변함없는 태극기 사랑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나 태극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지요.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대한민국 사람이 아니거나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사람들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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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퍼레이드와 관련해서도 어디서 크게 후원해 준 단체나 개인도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것 같고, 꼭 해야만 될 일이어서 스스로가 나서게 됐다”고 말한 이 지부장은, 4․19 당시와 연계해 “전 날 밤 2시까지 해서 만들었어요. 가슴에 넣고 다녔지요. 그리고 광화문 방향으로 움직이는 지프차에 한 여학생의 도움을 받으며 차 지붕위로 올라갔습니다. 누군가 남자들이 다리를 잡아 주데요. 거기서 태극기를 꺼내들고 흔들며 목이 터지도록 외쳤습니다. ‘부정선거 다시 하고, 우리 주권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하고요.
이재영 지부장은 4·19민주혁명 유공자로 2010년 4·19혁명 50주년을 맞아 그 공로를 인정받아 건국포장을 수상했다. 이는 정부가 50주년을 맞아 그동안 민주혁명에 헌신하고도 유공자 선정이 안 된 272명을 포상하게 됐는데 뒤 늦게 서야 포상 자에 합류했다.
그의 태극기 사랑은 계속 이어진다. 더 많이 더 널리 확산하기 위해 지역 내 각 기관 단체들을 수시로 찾아 이 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한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활동과 모자이크 기법을 이용한 나라사랑 태극기 대회의 수시 개최와 함께 청소년 보훈캠프 활동에도 열정을 쏟고 있다.
‘태극기 사랑은 곧 나라사랑’이라는 지론으로 여력이 다할 때까지 자신의 역할을 다 하겠다는 이재영 도지부장의 말 한마디가 그 어떤 청년의 열정보다도 더 깊이 있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광화문 광장에 태극기 게양을
서울 광화문광장에 태극기 게양대 설치문제로 국가보훈처와 서울시가 대립하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광복70주년을 맞아 서울 광화문광장에 높이 45.815m 태극기 게양대를 영구 설치하고자 서울시와 협의해 왔다. 하지만 서울시가 거부했다. 대신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옆 시민열린마당에 한시적으로 설치하거나 정부 서울청사 또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같은 국가 소유 시설 부지가 바람직하다고 하고 있어 현재까지 양측이 각자 입장을 밝힌 데서 논의가 진전되지 않고 있는 상태다.
국가보훈처는 “국민의 87%(2015. 10월 여론조사 결과)가 찬성하고 서울시와 보훈처가 업무협약까지 맺은 사안에 대해, 광화문광장 허가권을 갖고 있는 서울시가 태극기 게양대 설치 불가를 통보했다”해 유감을 표하며 국무총리실 산하 행정협의조정위원회의에 조정 신청을 내며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시가 광화문광장에 태극기 게양대를 설치할 수 없다며 불가 통보를 한 이유를 보면 ▲권위적이며 전근대적이란 것 ▲시민들의 보행에 불편 초래라는 안전 상 이유를 들었다. 일부 심의위원들은 여기에 덧붙여 ‘광화문광장에 태극기를 영구 설치하는 것은 시대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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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태여 故 손기정 옹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시상식장으로 가지 않더라도 태극기와 관련된 아픔은 많다. 성격이 다르지만 한명숙 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011년 태극기를 밟은 채 故노무현 前 대통령 분향소에서 헌화해 보수애국진영의 격분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검찰은 국기 모독죄를 적용할지 검토했지만 “모독 의도가 없었다”며 각하 처분하고 말았다.
광화문광장은 수도 서울의 중심이자 조선 500년 역사를 통해 늘 깨어 있는 역사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세종대왕의 백성을 위한 애민정신과 누란의 위기에서 국가를 구한 이순신 장군의 나라사랑 정신, 육조거리(광화문광장)에 들어선 이·호·예·병·형·공조판서와 각 부서 관리들의 국민을 향한 눈과 귀가 한데 어울린 곳이다.
여기에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대형 태극기가 게양돼 휘날릴 때 조선 500년 도읍지 한양(서울)의 태조 이성계로부터 이어진 오늘의 광화문 역사가 국민의 자긍심은 물론 애국심과 나라사랑 정신을 더 크고 깊게 하지 않을까!
결국 서울시가 내세운 거부 표시는 한낱 진영논리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나라사랑의 한 표현 방식이 ‘태극기 사랑’이고 ‘태극기 게양’이라면 광화문광장에 대형 국기게양대 설치를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할 것이다. 불원간 광화문광장에서 대형 태극기가 휘날릴 그 날을 그려본다.(konas)
이현오 / 코나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