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지루하고 지루했던 장마같은 기다림은 끝났다. 올 여름, 제대로 된 공포영화를 기다려온 많은 팬들 앞에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쓰리-몬스터]는, 그 동안의 기다림은 바로 이 영화를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한다. 박찬욱은 이제 무르익은 장인의 솜씨로, [착신아리][오디션]의 미이케 다카시는 형언할 수 없는 몽환적 분위기로, [메이드 인 홍콩]의 재기 넘치는 홍콩영화의 차세대 선두주자 프루트 챈은 관객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엽기적 내러티브로, 우리들의 허기를 충족시켜주고 갈증을 해소시켜 준다. [쓰리-몬스터]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버릴 데가 하나도 없다.
매년 여름, 공포를 소재로 한 단편 세 개를 모아 개봉되는 [쓰리] 시리즈는, 동남아 3개국의 합작 영화로서 지난해 처음 시작되었다. 한국/태국/홍콩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쓰리] 1편에서는 한국의 김지운, [낭낙]으로 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연 논지 니미부트르, [첨밀밀]의 홍콩의 진가신 감독이 참여했었다. 급성장하고 있는 아시아 영화산업의 현단계가 [쓰리] 시리즈에는 압축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 일본. 홍콩의 3개국 합작으로 제작된 [쓰리] 2편은 참여 멤버나 질적인 면에서 훨씬 업그레이드되어 있다. 3명의 감독들은 물론, 이병헌 강혜정 염정아 임원희가 캐스팅 된 [컷]의 스텝진에도 [올드보이][살인의 추억]의 미술을 맡은 류성희나 [복수는 나의 것][4인용 식탁]의 영화음악을 맡은 복숭아 프레젠트가 참여하고 있다. 미이케 다카시의 [박스]에는 프로덕션 디자이너 히하시 사사끼, 일본의 떠오르는 별 하세가와 교코의 이름이 있고, 프루트 챈의 [만두]에는 왕가위와 함께 오랫동안 작업해 온 촬영의 크리스토퍼 도일을 비롯해서 [진용][패왕별희]의 작가인 릴리안 리, [천녀유혼][첨밀밀]의 아트 디렉터 이청만, 그리고 배우로는 양가휘와 [택시3]의 베일링의 이름이 들어 있다.<
아시아의 대표적 영화 장인들 크레딧으로 가득한 스텝, 캐스팅의 면모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기대를 부풀릴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헛된 욕망이 아니다. 3편의 영화 중 어느 한 편에만 특별히 힘이 힘이 모아져 있지 않다. [컷][박스][만두] 등 각각의 영화들은 독특한 스타일과 역량으로 우리를 매혹시킨다.
박찬욱 감독의 [컷]은 잔인한 유머로 가득한 공포 영화다. 영화 속의 영화로 시작된 도입부부터 우리들은 압도당한다. 클로즈업 쇼트 화면 우측에는 미묘한 표정의 중년 남자가 보인다. 카메라가 한 바퀴 회전하면 그 남자의 반대편 목에 입을 대고 있는 한 여자가 보인다. 뱀파이어, 흡혈귀의 럭셔리 한 식사장면으로 시작되는 [컷]의 도입부는, 곧 그것이 영화 촬영의 한 장면이다. 하지만 지금부터다.
류지호(이병헌 분/류승완, 김지운, 봉준호, 허진호 등 네 감독 이름의 합성어)는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 터널 속으로 들어가는 그의 차 옆 자리에는 한 여자가 앉아 있지만, 곧 이어지는 감독의 집 주차장으로 차가 들어가는 쇼트에서는 류지호 감독만이 보인다. 감독의 집 실내는 도입 부분의 영화 촬영장과 똑같이 되어 있다. 감독이 촬영장 셋트를 자신의 집과 똑같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감독의 아내(강혜정 분)는 피아니스트다. 아직 그녀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예고없이 정전이 되고 곧 누군가에 의해 의식을 잃는 감독, 그가 눈을 떴을 때, 다른 얼굴과 크로스 커팅이 이어진다. 감독의 클로즈업 쇼트와 아내의 클로즈업 쇼트, 그리고 프레임은 조금씩 확장되면서 미디엄 클로즈업, 미디엄, 롱 쇼트로 이어지는 교차편집은 감독의 당혹스러움이 점점 더 커지는 것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컷]의 주 공간은 영화촬영 셋트다. 무대미술은, 평온한 가정에 침입한 괴한(임원희 분)이 극한 상황으로 등장인물을 몰아가는 내러티브와 긴밀하게 상관되어 있다. 허공의 수많은 지점과 연결된 가는 선에 묶여 피아노 의자 위에 앉아 있는 강혜정의 모습은 그 자체가 시각적으로 매우 충격적이다. 광각렌즈를 사용해서 밀폐된 실내를 일그러뜨리며 확장시키는 카메라와 빠른 속도로 광기에 사로잡혀 가는 인물들의 감정 상승곡선을 서명하게 드러내는 연출의 솜씨는 너무나 능숙하다.
테러리스트는 류감독의 작품에 모두 엑스트라로 출연한 경력을 갖고 있다. 그는 이번 범행을 위해 자신의 아내를 죽이고 감독의 집을 찾아 왔다. 삶의 배수진을 친 그는 피아니스트인 감독의 아내 손가락들을 하나씩 도끼로 잘라가고, 감독이 부인을 살리고 싶으면 소파 위에 묶여 있는 또 한 어린아이를 목졸라 죽이라고 명령한다.
이런 범죄의 이유는, 감독이 착하기 때문이다. 돈도 많고 해외 유학도 다녀왔고 잘생겼고 천재감독이라고 재능도 인정 받았고 게다가 착하기 때문에 참을 수 없다는 것이다. 부자들은 성질이 모두 나쁘고 가난한 사람들이 비교적 착한데, 모든 것을 가진 감독이 착하기까지 하면 [우리같은 사람들은 뭘 먹고 살라는 얘기냐]는 것이다. [워디꺼정 착한지 함 보잔 말이유]라며 감독이 행한 나쁜 짓들을 고백하라고 다그친다. 그러나 고개를 푹 숙이고 감독이 하는 말은 [착해서 죄송합니다]이다. 이게 다인가? 그렇지 않다.
여기서 테러리스트의 반사회적 성격장애에 대해 길게 토론할 필요는 없다. 그것보다는, 주제를 표출해가는 박찬욱 감독의 스타일리쉬한 연출을 눈여겨 보는 것이 좋다. 광기에 사로잡혀 가는 이병헌도, 능청스러운 테러리스트 임원희도, 화장이 지워진 채 공포에 질린 얼굴의 강혜정도 좋은 연기를 보여주지만, 영화 속 감독의 말처럼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배우는 죽고 감독만 사는 영화가 아니지만, 능숙하게 카메라를 움직이며 주제를 장악하는 연출의 솜씨는 이제 그가 대가급의 반열로 들어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이케 다카시의 [박스]는 몽환적 상상력이 지배하는 공포 영화다. 서커스 단원인 쌍둥이 자매 교코와 쇼코, 그리고 그녀들의 의붓 아버지 히키티의 삼각관계에 비극의 씨앗이 있다. 어린 시절 화재로 숨진 쇼코의 환상은, 지금 성인이 된 교코의 삶을 지배한다. 소설가가 되어 있지만 교코는 악몽 속에서 항상 쇼코를 본다. 그녀의 상처가 시작된 지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박스]다. 그러나 내러티브는 선형적 질서 위에서 형성되어 있지 않다. 이야기는 파편화되어 흩어져 있으며 그것은 느리고 느린 카메라의 움직임이나 몽환적 미술로 더욱 안개 속에 숨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17년만에 죽은 언니에게서 날아온 초대장. 언니의 이름으로 된 흰 장미꽃과 초대장보다 더 공포스러운 것은, 궤짝 안에 짐을 꾸겨 넣듯 집어 넣은 언니의 마지막 모습이다. 미이케 다카시 영화는 서서히 목을 죄어오는 심리적 공포에 촛점을 맞춘다. 새끼줄처럼 비틀린 내러티브 자체에서 발생되는 공포나, 엽기적 장면의 연출이 아니라, 영상 이미지의 마력적 흡인력으로 우리를 공포의 근원으로 끌고 간다. 이미지 공포다.
[쓰리-몬스터] 시리즈의 압권은 [만두]다. 젊어지는 마력적 효과를 갖고 있는 만두, 그 소문을 듣고 비밀리에 찾아오는 중년의 부인 칭, 만두를 제조하는 여자(베일링 분)는 30대로 보이지만 실제 자신의 나이는 할머니라고 밝힌다. 비밀은 만두에 있다. 만두 속의 재료는 낙태아다. 인간의 추악한 탐욕을 추적하는 크리스터퍼 도일의 뛰어난 카메라, 그리고 하얀 밀가루와 핏덩이 태아가 함께 놓여 있는 부억을 형상화 한 이청만의 미술도 좋다.
만두를 먹는 칭은 남편(양가휘 분)이 젊은 여자들을 만나며 외도를 하자 자신도 젊어지겠다는 욕망으로 만두가게를 찾은 것이다. 자신의 딸을 성폭행 한 아버지, 그 아이를 수술한 후유증으로 폭포처럼 하혈을 하며 죽은 딸, 딸의 죽음을 겪으며 자신의 남편을 칼로 살해한 어머니의 비극은, 젊어지려는 욕망 뒤에 감춰진 또 다른 비극을 드러낸다. 중국 대륙에서 홍콩으로 온 만두 빚는 여자, 대륙에서 밀반입한 낙태아로 빚는 만두와 그것을 먹는 홍콩 사람들의 관계에는 1국2체제인 중국/홍콩의 미묘한 정치적 관계가 내포되어 있다.
근친간에 있는 태아일수록 회춘 효과가 좋다는 만두의 비밀은 충격적인 라스트씬으로 이어진다. 출산을 앞두고 자신의 자궁 속으로 쇠꼬챙이를 찔러 넣는 칭의 잔혹함은, 우리 내면의 더러운 욕망을 형상화 한 것이다. 자궁 밖으로 빠져나오는 붉은 핏덩이, 어린 아이의 형체를 또렷이 하고 있는 태아의 모습과, 태연하게 만두를 먹는 부인의 표정은 세계의 양면이다. 하얀 만두 속에 은은하게 비치는 붉은 만두의 속살은, 외형적 세계의 평온함 속에 숨겨진 삶의 추악함을 상징적으로 압축하고 있다.
공포의 드러냄이라는 방법적 측면에서는 모두 다르지만, 이 세 편의 영화 중 분명히 어느 한 편은 당신의 기호에 맞을 것이고 당신의 영화적 욕망을 충족시켜 줄 것이다.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