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 93년5월13일 화요공부방_최대경 교우님

□김제원 교무님 설법

어제는 부처님 오신 날이였고 토요일 일요일에는 법회였고 관등 축원 기도 하면서
교도님들 교당에 자주 오셔서 영육 쌍전 하기가 어려우리라 생각이 드네요.
연타로 하니깐 오늘 숫자가 많이 줄어들었네요.
제가 영육쌍전을 공부하다가 얼마나 좋았는지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대종사님이 어떤 뜻으로 이렇게 자세하고 간단하게 넣어 두셨을 까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대경교우님이 강연을 해 주셨는데, 잘해주셨습니다.
대경교우님 강연을 들으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신앙생활은 힘들다. 중생은 중생소리만 하는 것입니다.
중생은 맨날 힘들다라는 생각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승님 만나고 오면 마음이 편안해 지고 힘을 얻고 못 할것도 할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런 과정을 통해서 성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경 교우는 원불교 만난지 만 2년도 안된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기대치가 커서 제가 째려보곤 했습니다.
제 눈치 보느라고 애썼는가 봅니다.
영육쌍전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영육쌍전 그러면 참 기분이 좋습니다.
영도 육도 다 맞다고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말씀인거 같습니다.
영육쌍전이라는 말씀은 좋습니다.
하지만 실행을 하다보니깐 대경교우같이 때로는
교무도 밉게 보이고 때로는 단원도 밉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공부가 어떻게 보면 쉽고, 어떻게 보면 어렵습니다.
어려운거 같습니까?
어렵다는 표현이 맞다고 할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어렵다고 할 수도 있는데, 교리의 내용을 보면 가장 빨리 보살이 되는 방법,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가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한군데서만 쓸모가 있을려면 한가지만 잘하면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쓸모가 있고 저기서도 쓸모가 있으려니깐
이것저것 할것이 많으니깐 어려운 것입니다.
옛날에는 한 가지만 하기도 어려운데 우리 대종사님께서는 욕심도 많으셔서 다 하라는 것입니다.
영육쌍전 법은 우리 원불교의 어떤 기반을 조성해 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신적 기반이며 물질적 기반을 마련해 주신 사상입니다.
기반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설도 기반시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도로, 철도항만 등이 기반시설입니다.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 미얀마에서 기반 시설이 잘 되어 있지 않아서 다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영육쌍전은 원불교 사상의 기반입니다.
역사적인 것은 대종사님의 영산 방언 공사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9인 제자는 농사꾼이 별로 없었고, 대부분 유학자들이셨습니다.
그런 분들을 데리고 책 공부를 시키지 않고 뻘밭에 넣어 놓고 일해라 한 것입니다.
여러분들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9인 제자는 시키는 대로 다 하셨습니다.
뻘밭에서 일하고 나면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겨울에 난방 시설이 있겠습니까? 아니면 샤워시설이 있겠습니까?
겨울에도 그것을 하셨습니다.
대종사님께서는 저녁에 또 공부를 시키십니다.
40~50분 시키고 경행을 10분 정도 합니다.
만약에 대종사님이 자비로우셔서 자게 놔두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역사적으로 이야기를 해보면
종교집단에서 주로 해왔던 것은 형이상적인 것 즉, 마음적인 부분에 많이 두어서
과거에 도인이 더 많았습니다. 수양이 상당히 깊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과거에는 상당히 형이상적으로 많이 공부하기도 하였고
일반인들은 도덕을 떠나서, 먹고 살기 정신없고
군주는 영토 넓히는 것에 힘썼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군주들은 전쟁터에 산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놓고 보면 과거 유교는 상제에다가 바칩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에게 바칩니다.
그런데 혁명을 일으킨 사람이 있습니다.
수운 선생님께서는 인내천 (人乃天) 사상을 내셨습니다.
하늘이 하늘만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곧 하늘인 것입니다.
혁명을 일으킨 사람에게 늘 그렇듯 유생들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전봉준 남녀 차별을 타파하였습니다. 이것이 동학농민운동입니다.
역사적으로 동학난이 참 중요한 의의가 있습니다. 한 세기의 방향을 틀어버린 것입니다.
전봉준 역시 능지처참으로 죽었습니다.
대종사님은 머리가 얼마나 좋은지 잘리지 않고도 혁명을 일으키셨습니다.
대종사님은 과거에 있던 물질적인 축에서만 있었던 것이 경쟁과 전쟁입니다.
현재에 산업혁명이 일어나서 생긴 것이 제일 큰 것이 전쟁과 생존 경쟁입니다.
우리나라에 4,19 혁명이 일어 났습니다.
지금 4.19 혁명을 일으킨 사람이 정치적인 분야에 가서 뻘짓거리를 하고 있습니다.
일시적인 전복은 변화가 오지 않습니다.
노사가 때로는 화합이 되지 않으면 저항도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근원적인 해결책은 아닙니다.
산업혁명, 종교혁명이 일어나기도 하고, 공산주의 혁명도 일어나기도 하지만
이 세상을 평화롭게 이끌지 못하고 결국 불안을 가중시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대종사님은 마음의 혁명을 일으키신 겁니다.
네가 네 몸과 마음을 잘 써라, 즉 물질에 현혹되지 말고 물질을 잘 활용해라
제가 교화를 하다보면, 교당에 조금 재미가 붙인 사람은
자기가 생활 속에서 나태한 시간, 뻘 짓거리 하던 것을 줄이지 않고
그것은 그대로 하면서 학교 공부하는 시간에 교당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당에 와서 열심히 합니다. 그러면 교당에서 이쁨을 받습니다.
사람들 눈에는 신심이 있는 거 같다라고 봅니다.
그렇게 교당공부를 하다보니깐 성적이 떨어지게 되고,
결국 과학 공부를 한다고 교당 전화를 받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텔레비전 보는 시간과 잠 자는 시간은 줄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교당에 와서도 줄이지 않고, 공부를 해도 줄이지 않는 것입니다.
영육 쌍전은 학교공부만 해라가 아닌, 교당일만 열심히 해라가 아닙니다.
그러면 뭔가요?
영육 쌍전은 공시간을 줄여라 하는 것입니다.
텔레비전 보는 시간, 잠자는 시간, 노는 시간을 줄여라 하는 것이 기본적인 논조입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대종사님께서 혁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원불교는 공부하는 교단이요, 보은하는 교단입니다.
자신의 마음 공부를 해서 마음만 편해지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공부한 것에 대해서 보은하는 것입니다. 사은의 은혜에 보은해야 하는 것입니다.
보은하기 위한 마음공부입니다.
일심보은이요 보은일심이라고 합니다.
대산종사님께서 수계농원에 갔습니다. 수계농원은 생강 농사와 여러 농사를 하는 곳입니다.
이곳에 근산 지혜원 선생님을 보냈습니다.
이 분은 늦게 출가하셨는데 굉장히 잘 사신 분이셨습니다.
정산종사님께서 그 분이 출가해서 오시니깐 올 사람이 왔다며 너무 기뻐하셨습니다.
영육쌍전의 토대를 잘 들어내신 분이 근산님과 승산님이십니다.
농원에서 일하시면서 출가위까지 올라가신 분입니다.
똑같이 농사를 지으신 분들 중에 원불교 다니신 분들은 돈도 버시고 법위도 올라가신 겁니다.
이게 다른 것입니다.
수계농원에 반농반선(半農半禪) 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아까 우리 대경교우님 이야기를 들어보면,
회사일 교당일 반씩하고 있습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마음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농반성이 전농전선(全農全禪)으로 바뀝니다.
직장에서는 돈 벌기 위한 활동이요,
아침에 선하고 마음을 정화하기 위한 활동이다 하는 것은 반농반선입니다.
직장에서 일하는 것이 선하는 것이요, 아침에 선하는 것이 직장에서 일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원불교의 대종사님의 생각이십니다.
그런데 우리 교도님들 중에 이걸 하시고 계신 분들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씩 원문으로 보겠습니다.
앞부분에 대종사님께서는 과거에 대한 분석을 해 주셨습니다.
과거에는 세간 생활을 하고 보면 수도인이 아니라 하므로 수도인 가운데 직업 없이 놀고 먹는 먹는 폐풍이 치성하여 개인, 가정, 사회 국가에 해독이 많이 미쳐 왔으나
정전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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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 생활은 뭘까요?
시장에 가서 갈치 팔고, 떡볶이 파는 분들 도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옷 사러 갔는데 옷 파는 아줌마가 있습니다.
이 분들은 돈 벌려고 하는 속세인일 뿐입니까?
이런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그것은 자기도 그럴 것입니다.
직업의 유무에 따라서 수도인의 유무가 없다는 것입니다.
꼭 머리 깎고 수양을 해야 수도인이다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세간생활을 하는 것은 수도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장사하는 사람, 결혼 한 사람, 사업하는 사람,
일 열심히 하는 사람은 수도인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진다면
원불교의 영육 쌍전의 기본도 출발을 못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머리 깍은 사람, 결혼하지 않은 사람만을 우러러 보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원불교의 기본도 알지 못하고 처처불상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서품 16장에 보면,
한가한 생활, 정결한 생활
이것이 스님들의 대체적인 생활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종사님께서는 개인적으로 편벽된 수양, 보은하지 않은 삶, 직업도 없고,
자신의 수양만 최고 인줄 알고 자신의 가족은 돌보지 않는 것은 수도인으로 폐풍이고,
사회인으로써는 은둔주의이고 해독이라고 보셨습니다.
고려시대 같은 경우, 절에 딸린 밭이 있어서 그 일은 노비를 시켰습니다. 참 웃긴 일입니다.
유교의 경우 현실 속에서 적극 참여하자라고 하였지만, 나중에는 이것이 망한 것입니다.
그래서 조선이 망한 것입니다.
불교는 편벽된 신앙만하고, 편안한 것만 하고 있습니다.
석가모니 초기에는 이렇지 않았습니다.
초기에는 우리 원불교와 비슷한 모습이였습니다.
석가모니 당대에는 은둔주의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다보니깐 편안한 것만 쫒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중생들은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기독교는 타력신앙에만 의지하고 있습니다.
자기 마음관리에는 미약한 모습입니다.
이것은 종교가 형이상에 떨어져서 가난하게 되고, 현실참여가 되지 않고
국가에는 피해만 주게 되는 것입니다.
대종사님께서는 이제부터는 묵은 세상을 새 세상으로 건설하게 되므로라고 표현을 해 주셨습니다.
건설하게 되므로라는 표현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시대가 개벽의 시대로 당연히 그렇게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종사님의 일제시대 때 말씀하신 겁니다.
그 당시에는 얼마나 앞선 것인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대종사님의 과거에 대한 분석과 비판입니다.
대종사님께서는 자비가 없고 모지십니다.
폐풍이 치성하여 국가에 해독이 많이 미쳐 왔으나, 와 같이 강한 표현을 해 주셨습니다.
새 세상의 종교는 수도와 생활이 둘이 아닌 산 종교라야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수도와 생활이 적당히 잘 조화를 맞추자가 아닌, 수도와 생활이 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조화시키자는 것이 아닙니다. 수도가 생활이고 생활이 곧 수도라는 것입니다.
공부와 일, 동과 정, 영과 육, 도학과 과학을 하나로 이야기 하신 겁니다.
과거에는 정신 수양 잘하면 도인이였습니다. 과거에는 좌선만 잘해도 박수 받았습니다.
지금은 좌선 잘하고 낮에 생산성이 없으면 가난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둘이 아닌 살아있는 종교라야 하셨습니다.
그런데 원불교라야 한다라고 하지 않고 산 종교라야 하셨습니다.
산 종교를 뒤집으면 원불교는 죽은 종교, 권위에 찌든 종교, 타락한 종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의품에
<승속의 차별이 없어지고, 법률과 도덕이 서로 넘나든다, 공부와 사업이 서로 구애되지 않는다>
일제 시대 떄 이런 말씀을 하신 겁니다.
성질 급한 사람은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들고 일제 시대에 압제 있는 시대에 이런 말씀하고 있으니깐
얼마나 웃기겠습니까?
묵은 세상과 새 세상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얼마나 남녀차별이 심했습니까?
새 세상인 지금은 여남차별입니다. 지금은 남자가 힘을 못 씁니다.
과거에는 수직적 사회였고 지금은 수평 사회가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유심과 유물의 사상이 상당히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대종사님의 영육쌍전은 형이상과 형이학을 중도 화합시킨 겁니다.
대단히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종교가의 새로운 혁명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내일 시험이 있다라고 말하면 뭐라고 할까요?
교외에 와서 기도하라고 합니다.
대종사님은 “이것은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종교도 얼마나 너것 내것만 분리 했습니까?
대종사님께서는 모든 교리를 통합활용하자, 좋은 것은 다 진리다라고 하셨습니다.
출가 재가 얼마나 구분했습니까?
여러분들 지금도 제가 스님이면 만날 때마다 삼배를 해야 합니다.
재가는 출가를 하늘같이 받들어야 합니다.
저희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공부와 사업 많이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일반인들은 나는 돈 벌고 편안하게 살고 가끔 신앙처에 가서 영혼을 달려주겠다 합니다.
이것은 영육쌍전의 반의 반도 못한 것입니다.
대종사님의 영육쌍전은 그것이 아닙니다.
과거에는 기도도 형식 불공 위주였습니다. 지금은 실지, 사실불공의 합력이라는 것입니다.
종교의 혁명을 일으킨 것입니다.
제가 왜 원불교를 이렇게 믿겠습니까?
대종사님의 이런 매력에 빠진 것입니다.
대종사님의 사상은 모순된 것이 없고, 정말 시대에 맞습니다.
우리가 잘못 생각하면 죵교인은 답답하다. 종교는 종교일 뿐이다.
고리타분하다는 생각을 가지지만 우리 원불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원불교는 돈 더 잘 벌고, 시집도 잘 가고, 장가도 잘 가고, 도인도 그 속에서 됩니다.
재가가 출가위까지도 올라가곤 합니다.
사회 생활하면서 교당을 몇 개나 창립하고, 돈을 더 잘 버셨습니다.
원불교 일하면서 내가 돈을 못 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내가 아직은 법력이 적다. 아직은 내가 경험이 적고, 확신이 적다라고 생각하세요
원불교 교리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로 대종사님 법대로 회사를 운영하시는 회사가 있습니다.
탄탄히 잘 나갑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묘해서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 속에 마음의 원리를 법으로 잘 승화시켜서 잘 되는 이치가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교무이니깐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제가 경험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제불조사 정전의 심인인 법신불 일원상의 진리와 수양, 연구 , 취사의 삼학으로써 의식주를 얻고 의식주와 삼학으로써 그 진리를 얻어 영육을 쌍전하여 개인 ,가정, 사회, 국가에 도움이 되게 하자는 것이니라.
정전 본문 중 |
대종사님께서 말씀하신 영육쌍전의 방법은 3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의식주를 얻어라
의식주를 얻으라는 것은 돈을 벌어라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돈을 버는데 뭘로 버나요?
땀, 아부와 아첨, 노력으로 돈을 법니다.
대종사님은 진리와 삼학으로써 돈을 벌어라 하셨습니다.
막노동에 일하는 목수가 있었습니다.
출근하면서 “학교 다닐 때에 공부 좀 할걸, 부모 잘못 만나서 내가 이렇다”하면서 갑니다.
못 질하고 망치질 할 때 “ 죽겠다 죽겄어” 하고 한숨을 쉽니다.
그러다가 손 찍어 버리고 사다리에서 떨어져 버려 병원에 가서나
퇴근하면서 술로 하루를 마감합니다.
대종사님의 영육 쌍전은 돈을 벌지 말고 영만을 수양해라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되, 진리로 벌어라는 것입니다.
일원상의 진리를 말할 수 있습니다.
일원은 법신불의 우주만유의 본원이요, 제불제성의 심인이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자들의 심법, 성자들의 혈성같은 경우는 심인을 가져다가 씁니다.
여기서는 심인(心印)이라고 표현해 주셨습니다.
제불조사의 정전의 심인인 법신불 일원상을 진리로 삼아라는 것은
내가 가슴에 욕심을 품고, 마지못해서 한다고 일하는 사람과,
제불제성의 심인을 품고 일하는 사람의 차이는 어떻겠습니까?
공부적 삼학과 일시적 삼학이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공부적 삼학이라는 것은 근원적인 것에 바탕이 되어 돌고 도는 것입니다.
일시적 삼학은 하고 나서 땡인 것입니다.
아무데나 삼학을 들이 댈려고 해도 준비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원불교를 만나서 영육 쌍전을 할려고 해도 기초가 안 되어있고,
단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이것이 어렵습니다.
대경교우의 경우 일하고, 단장하고, 인터넷 부장을 하면서
나중에는 몇 개를 포기하셨다고 하였는데
저는 대경교우보다 10배의 일을 하지만 전 하나도 접지 않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그것은 삼학의 삼대력의 차이입니다.
종법사님 저보다 몇 배 더 일하십니다.
하지만 그 분 포기하는 거 하나 없이 일 더 잘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력, 수양력의 차이인 것입니다.
진리와 삼학으로 일하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진리와 삼학으로 일하는 것은 일원상을 품고, 스승을 마음을 품고
하지만 사람들은 불신 탐욕, 나태로 하는 것입니다.
저녁에 뻘짓거리든 다하면서 안된다 안된다 하는 것입니다.
진리와 삼학으로 생활을 하는 사람이 불법으로 사는 사람이고, 불법으로 돈을 버는 사람입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습니다.
아르바이트는 뭐 하러 간건가요? 돈 벌러 간거지요
찻집에 손님들이 별 까탈스러운 손님들이 많았습니다.
앉아서 손님들을 욕하다 보니깐 훨씬 일이 힘든 것입니다.
한 달이 지나고 나자, 사장이 돈 주면서 그만 나와도 괜찮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같은 일을 하는데 진리와 불법으로 하였습니다.
어차피 돈 벌거면 이 속에서 마음공부를 해보자 현실 경전 공부를 해보자 생각을 하였습니다.
일심으로 일을 하게 됩니다.
사장이 1달 후에 돈 주면서 10만원을 더 주고, 계속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 둘의 공통점은 돈을 벌러 가는 것입니다.
왜 어떤 사람은 중간에 잘리거나, 팁도 못 받고,
어떤 사람은 팁도 받고, 대우 받고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차이가 뭘까요?
나태심으로 하다보니깐 훨씬 피곤한 것입니다.
똑같이 목수를 하고, 똑같을 자동차를 운전해도 일심으로 한다면 다른 것입니다.
돈을 벌었으면 사람들은 무엇을 하나요?
차를 업그레이드를 하고 아파트를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육쌍전이 아닙니다.
돈을 벌면 그 다음에는 진리를 얻어라는 것입니다.
둘째, 진리를 얻어라.
돈을 벌고 나서 그 다음에 진리를 얻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동시성입니다.
의식주와 삼학으로써 진리를 얻으라는 것입니다.
과거 종교 같은 경우는 진리를 삼학으로 얻으라고 합니다.
하지만 대종사님께서는 돈과 삼학으로 진리를 얻으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설사 있다고 하더라고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공부하기가 힘든 것입니다.
돈 벌면 그 다음 순서가 놀러 가는 것입니다. 여행 가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여행 가는 것을 장려합니다.
여행이라는 것은 견문을 넓히는데 아주 좋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삼학이 빠지고 여행을 가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를 얻으면 괜찮은데,
돈이 있으면 명예, 권리, 미색을 얻을려고 합니다.
과거에는 돈이 있으면 명예 권리 미색을 얻으려고 합니다
이것은 생활 속에서 불법이 아닌 생활 속에서 즐기자라는 것 밖에 없습니다.
대종사님꼐서는 돈을 벌면 즐기자가 아닌, 진리를 얻어라는 것입니다.
초기 단원들은 금주, 절약절식 ,저축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원불교는 적당히 활용하자고 하셨으니깐, 풍요하게 쓰는 것이 좋다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의식주와 삼학을 통해서 진리를 얻는 것이 중요합니다.
셋째, 도움이 되게 하자
개인, 가정 사회, 국가에 이게 가장 핵심인 것입니다.
돈을 벌어라는 것은 육신이고,
진리를 얻으라는 것은 영입니다. 그 속에도 영육쌍전이 다 속해 있는 것입니다.
원불교를 가장 잘 다니는 사람은 어디를 가든 도움을 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영육쌍전을 잘 하는 사람이고, 사은에 보은하는 사람입니다.
직장에 가면 직장에 도움이 되고 친구를 만나면 친구에 도움이 되고
교당에 가면 교당에 도움이 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국 무아봉공하자는 것이고, 공도자가 되자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이기심이 있는 사람, 돈에만 목표가 있는 사람은 중생 중에 사람인 것입니다.
도움이 되자고 하는 것은 3가지
1. 정신적으로 도움이 되게 하자.
2. 육신적으로 도움이 되게 하자.
3. 물질적으로 도움이 되게 하자.
이것은 <자기 형편에 따라> 라는 조건이 있습니다.
자신이 경제가 없으니깐 정신과 육신을 빼 버립니다.
뭔가 핑계를 잡는 것이지요.
도움이 되게 하자는 것은 정신 육신 물질 자기 형편되는 대로 하자는 것입니다.
도움이 되게 할려고 할 떄 사은의 위력이 그 사람을 에워싸게 되는 것입니다.
사회에서 일반인들은 어떻게 하고자 하는데 인과를 망하는 것을 보는데 ,
우리 마음 속에 도움이 되려고 한다면 그 마음을 누가 싫어합니까?
친구 집에 갔는데 손님으로만 있다가 오면 그 다음부터 그 친구 집에 갈 때 싫어 합니다.
그것은 그 친구 집에 갔을 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 가슴에 일원상이나 부처님의 심법을 품었느냐?
내 서원에 바탕으로 하는 것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 근산님 같은 경우 일생을 농원에서 사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조용히 인재양성을 하셨습니다.
농원에서 일하셔서 원불교학과학생들을 장학금을 주신 겁니다.
누군가가 편할려면 누군가가 애쓰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영육쌍전은 재가 출가 상관이 없습니다.
직장생활이 너무 바뻐서 영하기엔 너무 시간이 없습니다하는 분이 계신데,
이것은 아직 영육쌍전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직장생활을 일심으로 하면 이것도 영인 것입니다.
직장에서 정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보십시요.
이것도 그냥 일 속에 파무치는 것이 아니라 일심으로 해 보십시요
만나는 사람을 처처불상으로 해 보십시오
누가 싫어하겠습니까?
영육쌍전을 하나만해도 내가 신앙생활을 해도,
계획표가 나와야 하고 유무념으로 체크가 되지 않으면
이것은 관념론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영육쌍전을 잘하면 돈도 잘 벌고, 장가도 잘 가는 것입니다. 시집을 잘 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심이 많은 사람도 사심이 많은 사람을 싫어합니다.
사심이 많은 사람도 공심이 많은 사람을 좋아합니다.
조금만 손해보면 더 큰 이익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곳에 오신 분들은 복 많이 받으십시요
감사합니다(합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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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마음공부방 ◆
930513_영육 쌍전 법_최대경교우님강연_김제원 교무님 설법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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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5.14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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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 고맙다. 이연교우.. 나 이날 참석못했는데 덕분에... 김제원 교무님의 영육쌍전법 법문은 정말 좋지요.
이연교우님 감사합니다...^^
후기도 좋고~ 음악도 좋고~~ 감사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