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용어500(27)유정~위패작성법~이운
360. 유정 (惟政)
사명대사 유정(1544~1610)은 조선의 스님으로 자는 이환(離幻)이고 호는 송운(松雲) 또는
사명(四溟)이다. 속성은 임(任)으로 밀양에서 출생하여 13세에 <맹자(孟子)>를 읽다가 출세할 뜻을
품었고 뒤에 황악산 직지사 신묵선사(信黙禪師)를 찾아가 출가하였다.
18세에 선과(禪科)에 급제하여 32세에 선종의 주지가 되었으나 굳이 사양하고 묘향산에서 청허의 정법을 받았다. 금강산 보덕사에서 3년을 지내고 또 청량산, 팔공산, 태백산으로 다녔다.
43세에 옥천산 상동 앞에서 하룻밤 소낙비에 뜰에 꽃이 모두 떨어지는 것을 보고 무상을 절실히 깨달아 문도(門徒)들을 보내고 오랜 동안 참선하였다. 46세에 오대산 영감란야에 있다가 역옥(逆獄)에 걸렸으나 무죄 석방되었다. 이듬해 금강산에서 3년을 보내고 1592년 왜구(倭寇)가 침입함에 의병을 모집,
순안(順安)에 가서 청허의 휘하에서 활약하였다.
청허(서산대사)가 늙어서 물러난 뒤 승군(僧軍)을 통솔, 명나라 장수와 협력하여 평양을 회복하고
권율장군(權慄將軍)을 따라 영남 의령에 주둔 전공을 많이 세웠다.
1954년에는 명나라 총병 劉綎(유정)과 의논하여 왜장 가등청정을 울산 진중으로 세 번 방문하여
왜적의 뱃속을 송두리째 뽑아 보았다.
그때 가등청정이 말했다. “조선에 보배가 있는가?”
그러자 스님이 대답했다. “없다. 보배는 일본에 있다.”
가등청정이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스님이 대답하기를,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당신의 머리를 보배로 생각하고 현상금까지 걸었으니 보배가 일본에 있는 것
아닌가?”
가등청정은 놀라면서도 찬탄하였다.
선조대왕께서 스님을 대궐로 불러 평생의 일을 물었다.
“지금 국세가 이러하니 대사가 퇴속한다면 백리(百里)의 책임을 맡기고
3군을 통솔하게 하리라” 그러나 스님은 사양하였다. 영남으로 돌아가서 용기산성과 팔공산성,
금오산성 등을 쌓고 양곡과 무기를 저축한 후 인신(印信)과 전마(戰馬)를 도로 바치고 산으로 물러가기를 청하였으나 조정에서 허락하지 않았다.
1597년 명장 마귀(麻貴)를 따라 울산의 도산에 이르고 이듬해 또 휴정을 따라 순천의 예교(曳橋)에 이르러 큰 공을 세웠다.
1604년 국서(國書)를 받들고 일본에 가서 덕천가강을 보고 말했다.
“두 나라 백성들이 오랫동안 전란에 시달렸으니 내가 그 고난을 구제하러 왔노라” ‘가강’도 신심을 내어 부처님같이 대우하여 강화를 맺고 포로가 되어 갔던 사람 3500명을 다시 찾아 데리고 이듬해 돌아왔다. 선조대왕은 가상히 여겨 가의대부(嘉義大夫)를 시키고 어마(御馬)와 저사표리(紵絲表裏)를 하사하였다.
스님은 청허선사가 입적한 이듬해 묘향산에 가서 상례를 치르고, 1607년 치악산으로 갔다가 선조의
부고를 듣고 서울에 와서 배곡하였다. 후에 병이 나서 해인사로 가서 머물다가 광해 2년 8월26일
67세의 일기로 입적하셨다. <본서 사명대사 참조>
361. 육도윤회 (六道輪回)
윤회란 나고 죽는 것이 반복되어 수레바퀴처럼 돌아간다는 것을 뜻한다. 중생이 미혹하여 번뇌를
일으키고, 번뇌로 말미암아 온갖 업을 짓는다. 이 업(業)의 차별에 따라 삼계육도에 돌아가며 태어나는
것이다.
중생이 선업을 지으면 천상, 인간, 아수라의 선도(三善道)에 태어나고 악업을 지으면 지옥, 아귀, 축생의 악도(三惡道)에 태어나고 설사 사람이 되었더라도 어리석고 고통과 장애가 많은 환경을 받게 된다.
업(業)을 짓는 것을 쉬지 아니하면 윤회는 끝없이 계속된다. 설령 선업을 지어 천상에 나더라도 그 업은
유한하기 때문에 즐거움도 유한하며, 그 다음 과보를 받게 되므로 윤회와 생사가 끝없이 반복되며 생사의 고통이 끊임이 없다.
육도(六道)는 부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이고, 이것은 윤회하는 세상을 말씀하신 것이기도 하면서
심리상태를 나타낸 것이기도 하다.
부처님은<대사자후경>에서 다섯 가지 태어날 곳(가띠,gati)을 말씀하셨는데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천신이 그것이다. 가띠(gati)를 중국에서는 취(趣)라고도 옮겼고 도(道)라고도 옮겼다.
한편 <합송경>에서는 청정범행을 닦기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를 언급하면서 아수라도 아울러
언급하고 있다. 이처럼 5도에다 아수라를 넣으면 6도가 된다.
한역 경전들에는 5취, 6취, 5도, 6도가 고루 나타난다. 그런데 <60화엄경>에는 이 네 단어가 모두 다
쓰이고 있다. 후대로 올수록 6도로 정착이 되어 육도윤회로 불리게 된다.
육도(六道) 가운데 지옥(niraya)은 천상과 해탈의 원인이 되는 공덕이 없고 행복이 없는 곳이라고
설명한다. 아귀(pata)는 아버지를 뜻하는 삐따(pata)에서 파생된 말이며, 베다의 조상신들과 관계가 있다. 후손이 올리는 제사음식을 바라는 존재라는 일차적인 의미에서 ‘굶주린 귀신’으로 불교에서 정착되었다.
축생(tiracchana)은 ‘옆으로’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었는데 동물들은 직립보행을 못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아수라(asura)는 베다에서 항상 천신들과 싸우는 존재로 묘사가 되고 있어서 투쟁적인 신들을 일컫는 존재로 불교에 받아들여진 것이다.
인간(manussa)은 마누(manu)의 후손이란 뜻인데 불교에서는 마음(mano)이 탐, 진, 치와 불탐, 부진,
불치로 넘쳐흐르기 때문(ussanna)에 붙은 이름이라고 설명한다. 천신(deva)는 ‘빛나는 존재’라는 뜻인데 사대왕천 이상의 세상에 거주하는 신들을 말한다.
초기 경에는 육도(六道)는 분명히 중생이 사는 세상(loka)을 뜻하고 있다. 그런데 이 중생이 사는 세상은 모두 심리상태의 반영이라고 불교는 설명한다. 지옥은 지옥과 어울리는 극도로 나쁜 심리상태를 가진
중생들이 나서 머무는 곳이다.
색계 천상들은 선(禪)이라는 고도의 행복과 고요함과 집중이 있는 곳이라 한다. 그러므로 예를 들면
색계의 범중천은 이 천상과 어울리는 초선의 심리상태를 가진 중생들이 나서 머무는 곳이다.
이처럼 고통스럽거나 행복하거나, 저열하거나 고상한 다양한 세상은 모두 다양한 심리상태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의도적 행위들의 반영이다. 이러한 의도적 행위를 불교에서는 업(業)이라고 합니다.
나아가 아비담마에서는 이러한 육도를 세상(ioka)과 마음(citta)모두에 적용시켜서 설명한다.
즉 욕계 세상에 사는 인간이 색계세상의 마음을 일으키고 있으면 그때 그가 일으키는 마음은 욕계의
마음이 아니고 색계의 마음이라고 한다.
이처럼 육도는 마음상태 그 자체를 뜻하기도 한다. 즉 지옥의 마음을 내면 그 순간은 그것이 지옥이요,
천상의 마음을 내면 그 순간은 그것이
천상이라는 뜻도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우리는 매순간 고귀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내도록 노력해야한다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일으키고 있는 심리상태들이 결국은 내가 사는 이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며,
앞으로 태어날 세상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362. 육바라밀 (六婆羅蜜)
대승을 실천하는 보살에게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덕목이 있다.
그것은 육바라밀(六婆羅蜜;Sad-paramita)이라 불리 우는 것으로 보살의 영원한 생활 자세이자
완성해야 할 수행의 덕목인 것이다.
‘바라밀’이란 ‘파라미타:Paramita'의 음역으로 도피안(到彼岸,para) 즉, 저 언덕에 이른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우리가 사는 현실계계가 생사윤회를 거듭하는 이쪽 언덕(此岸)이라고 할 때, 그 같은 고통이 소멸된
이상세계를 저 언덕(彼岸)으로 표현하고 거기에 도달한 상태를 바라밀이라고 하며 여섯 가지로 보살이
닦아야 할 수행의 완성을 육바라밀(六婆羅蜜)이라 한다.
육바라밀(六婆羅蜜)은 다음과 같다.
ㆍ보시바라밀(布施婆羅蜜) ㆍ지계바라밀(持戒婆羅蜜)
ㆍ인욕바라밀(忍辱婆羅蜜) ㆍ정진바라밀(精進婆羅蜜)
ㆍ선정바라밀(禪定婆羅蜜) ㆍ지혜(반야)바라밀(智慧(般若)婆羅蜜).
1. 보시바라밀 (布施婆羅蜜)
재물ㆍ무외(無畏)ㆍ법(法)을 남김없이 주고 베풀면서도 주었다는 생각마저 버림으로써 자기 자신의
탐심을 끊고 집착을 떠나며 또한 타인의 가난함을 도와주는 윤리적인 실천. 즉 자기가 소유한 것을 남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행위이다. 이러한 자선행위는 원시 경전에서도 커다란 공덕으로 설명되고 있다.
대승불교에 이르면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가 특히 강조된다. 무주상보시란 선행을 하고도 그것을 자랑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을 말한다.
보시에는 재보시(財布施), 법보시(法布施), 무외보시(無畏布施)으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재보시는 금전이나 재물과 같은 경제적 시여(施與)로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법보시는 진리를 가르쳐 줌으로써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이다. 무외보시는 공포나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람에게 안심을 시켜주는 것이다.
이러한 보시 행위는 주는 시자(施者)와 받는 자(受者), 주는 물건(施物)이 모두 깨끗해야 한다.
이를 삼륜청정(三輪淸淨)이라 한다.
재물 없이도 베풀 수 있는 7가지 보시 공덕을 무재칠시(無財七施)라고 한다.
<본서 무재칠시 참조>
2. 지계바라밀 (持戒婆羅蜜)
재가ㆍ출가 모두 크고 작은 일체의 계율을 굳게 지켜 악업을 멸하고 몸과 마음의 청정을 얻는 것
즉 계율을 잘 지키면 부처님 세계에 든다.
계율에는 섭율의계(攝律義戒)ㆍ섭선법계(攝善法戒)ㆍ섭중생계(攝衆生戒)
세 종류가 있다.
보통 오계, 십계 등은 섭율의계(攝律義戒) 또는 지악계(止惡戒)라고도 한다. 이것보다는 적극적인
선행(善行)의 실천을 강조하는 십선계(十善戒)가 있다. 살생 대신 방생을 하며 도둑질 대신 보시를
하는 등 10업을 선(善)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섭선법계(攝善法戒) 또는 행선계(行善戒)라고 한다.
나아가 모든 행위를 중생의 이로움을 위해 행하는 사섭법(四攝法)같은 행위는 섭중생계(攝衆生戒)
또는 이타계(利他戒)라고 부른다.
계(戒)에는 근본오계(根本五戒)ㆍ팔관재계(八觀齋戒)ㆍ십중대계(十重大戒)ㆍ48경계(四十八輕戒)ㆍ
사미(니)십계(沙彌(尼)十戒)ㆍ비구 250계(比丘二百 五十戒)ㆍ비구니348계(比丘尼三百四十八戒) 등
여러 가지가 있다.
3. 인욕바라밀 (忍辱婆羅蜜)
타인으로부터 받는 모든 박해나 고통을 잘 참고, 도리어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원한과 노여움을 없애고, 모든 법을 밝게 관찰하여 마음을 편안하게 안정하는 것 즉 온갖 모욕과 어려움을 참는 것을 말한다.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지나친 욕망을 제어하는 것이 인욕이다. 남이 나를 해롭게 해도 보복하지 않고 상대를 오히려 불쌍히 여기는 것도 인욕이다.
인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복인(伏忍)으로 비위에 거슬리는 일이 생기면 화나는 마음을 참는 것이다.
둘째는 유순인(柔順忍)으로 어떤 경우를 당하더라도 유순함을 잃지 않는 것이다.
셋째는 무생인(無生忍)으로 보살의 지위에 오른 사람은 성낼 일도, 참을 일도 없게 된다는 것이다.
넷째는 적멸인(寂滅忍)으로 생사고해를 뛰어넘어 본래부터 고요한 상태를 말한다.
인욕에 관한 유명한 얘기로는『법화경』에 나로는 상불경보살(常不輕菩薩)로 그는 누가 자기를 욕하거나 꾸짖어도 “난 당신을 존경합니다. 당신은 미래의 부처님이므로”하고 예배했다고 한다.
인욕은 자기에 집착하지 않고 평화스러운 마음으로 상대에 애정을 가질 때 비로소 얻어 지는 것이나 남과 융화하기 위해서는 인욕의 태도가 필수적이다.
4. 정진바라밀 (精進婆羅蜜)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착한 행을 힘써 행하면서 여러 바라밀을 꾸준히 실천하여서 게으른 마음을 버리고 좋은 법을 점점 더 발전시키는 것.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 마음으로 바르게 생각하고 항상 부지런하여 물러섬이 없는 것을 말한다. 즉 안으로 자기완성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밖으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헌신하기를 멈추지 않는 행위다.
바른 정진은 몸으로 착한 일을 하고 입으로 부드러운 말을 하며, 생각은 늘 진리의 세계에 머물도록 해야 한다. 팔정도의 정정진(正靜進)도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 정진으로 무장된 사람은 어떠한 역경(逆境)에 부딪쳐도 물러서지 않으며 용기를 잃지 않는다. 어떤 곳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앞으로 나간다면
못 이룰 것이 없을 것이다.
5. 선정바라밀 (禪定婆羅蜜)
마음이 산란하여 지는 것을 멈추고 삼매(三昧)의 행을 행하여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것 즉 선정은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요히 사색하는 것을 말한다. 흔히 명상이라든가 마음을 닦는다고 하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평정을 얻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어지러우면 침착하지 못하고, 침착함을 잃으면 판단을 그르치게 된다.
선정을 닦기 위해서는 삿된 생각, 허영심, 분별심을 버려야 한다. 이러한 선정은 걸어 다니거나(行)ㆍ
멈춰있을 때나(住)ㆍ앉거나(坐)ㆍ누워있거나(臥)ㆍ또는 말하거나(語)ㆍ침묵할 때(黙)ㆍ움직이거나(動)ㆍ고요히 있을 때(靜)에 상관없이 언제나 실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6. 지혜(반야)바라밀 (智慧(般若)婆羅蜜)
반야는 지혜라고 번역한다. 이 지혜바라밀은 어리석음을 버리고 모든 진리를 밝게 아는 지혜이며,
또는 그 진리를 체득하는 것 즉 모든 사물의 이치를 환히 꿰뚫어 보는 지혜를 말한다.
이것은 사량분별을 통해 얻는 통속적인 지혜가 아니라, 선정에 의해 얻어지는 직관지(直觀知)이므로
지혜라 번역하지 않고 원어 그대로 반야라 이름하는 것이다.
이러한 지혜는 듣고 배우고 생각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본래 갖추어져 있는 것을
그대로 내보이는 것이다.
이 같은 육바라밀은 대승불교의 실천덕목으로 팔정도와 깊은 관계가 있다.
지계는 팔정도의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과 관계가 있다.
정진은 정정진(正靜進), 선정은 정념(正念), 정정(正定)과 관계가 있다.
그리고 지혜는 정견(正見), 정사(正思)와 관계가 있다.
그렇지만 보시와 인욕은 팔정도 어느 항목과도 관계가 없는 육바라밀 특유의 것이다.
이것은 대승불교가 자기수행과 해탈보다는 이웃에 대한 헌신과 봉사에 더 큰 주안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한편『화엄경』에서는 방편바라밀ㆍ원바라밀ㆍ역바라밀ㆍ지바라밀 등 사바라밀(四波羅密)을 보태어
십바라밀 수행을 제시하고 있다.
<본서 십바라밀 참조>
애인(愛人 : 육바라밀) - 춘원 이광수 -
님에게는 아까운 것이 없이 무엇이나 바치고 싶은 이 마음
거기서 나는 보시(布施)를 배웠노라.
님께 보이고자 애써 깨끗이 단장하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지계(持戒)를 배웠노라.
님이 주시는 것이면 때림이나 꾸지람이나 기쁘게 받는 이 마음
나는 거기서 나는 인욕(忍辱)을 배웠노라.
자나깨나 쉴 사이 없이 님을 그리워하고 님 곁으로만 도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정진(精進)을 배웠노라.
천하 하고 많은 사람중에 오직 님 만을 사모하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선정(禪定)을 배웠노라.
내가 님의 품에 안길 때의 기쁨도 슬픔도
님과 나와의 존재도 잊을 때도
거기서 나는 살반야(薩般若)를 배웠노라.
이제 알았노라 님은 이 몸께 바라밀을 가르치려고
짐짓 애인의 몸을 나툰 부처시라고…
363. 6성취 (六成就)
경전의 처음에 그 경(經)이 설해진 때의 장소나 청중들을 기록한 부분을 통서(通序)하고 하는데
통서(通序)의 내용은 다음 6항으로 구분하는데, 이 6항(項)이 완비되어야 비로소 교(敎)가 설(說)해지기
때문에 이것을 육성취(六成就)라고 한다.
1) 信成就(여시,如是) ; 믿음을 나타내는 것.
2) 聞成就(아문,我聞) ; 들었음을 나타내는 것.
3) 衆成就(여대비구중,與大比丘衆) ; 참여한 청중을 나타내는 것.
4) 時成就(일시,一時) ; 말한 때를 나타내는 것.
5) 處成就(재사위국,在王舍城) ; 말씀하신 장소.
6) 主成就(불,佛); 부처님께서 말씀, 하신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즉, 요즈음 문장을 쓸 때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원칙인 6가 원칙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은 불교에는 이미 사용하고 있었다 하겠다.
364. 육신통, 삼명 (六神通,三明)
삼명육통(三明六通)중 삼명(三明)은 불 보살 등이 가지고 있는 초인적인 능력으로
① 숙명명(宿命明)으로 번뇌가 다함으로서 얻는 지혜로 과거사를 모두 아는 것을 말하며,
② 천안명(天眼明)은 미래의 과보를 모두 아는 것을 말하며,
③ 누진영(漏盡明)은 번뇌가 다함으로써 얻는 지혜를 말한다.
육통(六通)은 아라한이 가지고 있는 불가사의한 힘으로 신족통ㆍ천안통ㆍ천이통ㆍ타심통ㆍ숙명통ㆍ
누진통을 말하며 범어 ‘abhijna'의 번역으로 선정(禪定)을 통한 수행으로 얻는 작용이며 걸림없이
자재(自在)한 초인적이고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작용을 일컫는다.
즉, 육신통(六神通)은 불, 보살 등이 가지고 있는 초인적인 여섯 가지의 신통력을 말한다.
신족통(神足通);시공간적 제한을 받지 않고 움직이는 것.
천안통(天眼通);시공간적 제약을 받지 않고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것.
천이통(天耳通);시공간적 제약을 받지 않고 사람, 동물, 귀신 등의 모든 소리를 다 들을 수 있는 것.
타심통(他心通);모든 중생의 마음을 아는 것.
숙명통(宿命通);중생의 오랜 과거의 숙명을 아는 것.
누진통(漏盡通);번뇌가 다하여 다시 번뇌로 인한 업을 짓지 않는 것.
위의 여섯 가지 신통력 중 노력하면 한두 가지는 가질 수 있으나 누진통만은 깨달은 부처님 아니면
얻을 수 없는 신통력이다. <본서 신통참조>
365. 육화경 (六和敬)
‘화경(和敬)’이라 할 때, ‘화(和)’는 밖으로 다른 사람의 선(善)과 함께 하는 것이며, ‘경(敬)’은 안으로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보살이 중생과 더불어 함께 할 때 밖으로는 중생이 행하는 선(善)을 함께 하고,
안으로는 항상 자신을 낮추므로 ‘화경’이라 이름 하였다.
교단의 화합에는 이화(理和)와 사화(事和)가 있다. 이화는 성자들이 열반(涅槃)을 증득하는 원리에
입각한 화합이고, 사화는 평범한 승려들이 법(法)의 행의를 통하여 화합하는 것으로,
육화경은 곧 사화에 속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교단의 화합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덕목으로 삼고 있는데,
이것을 통하여 사원생활의 불화(不和)와 분열(分裂)을 막고 있다.
육화경(六和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신화경(身和敬)은 함께 예배하여 신업(身業)을 닦는 것,
② 구화경(口和敬)은 함께 찬영(讚詠)하여 구업(口業)을 닦는 것,
③ 의화경(意和敬)은 같은 신심으로 의업(意業)을 밝혀가는 것,
④ 계화경(戒和敬)은 모두 계율을 지켜서 불법을 함께 따르는 것,
⑤ 견화경(見和敬)은 모든 법(法)의 공(空)한 이치를 바로 보고 함께 실천 하는 것,
⑥ 이화경(利和敬)은 의식을 함께 하여 이익을 고루 나누는 것이다.
이 여섯 가지가 모두 남에게 선행을 일깨워 주는 것이므로 화(和)라 하고, 안으로 겸손하여
남의 명예와 이익을 존중하는 것이기 때문에 경(敬)이라고 한 것이다.
☀
육화경은 그 실천성을 구체적으로 나타내기 위하여 달리 표현하기도 한다.
① 몸으로 화합함이니 같이 살라.(신화공주:身和共住) 신화동주(身和同住)
신화동주(身和同住)는 몸과 몸의 기운이 화합해야 함께 같은 공간에서 살 수 있다. 자비심을 바탕으로
몸과 말과 마음의 행위가 서로를 배려하여야 한다. 공동 생활공간에서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성실하게
실천하고 나아가 다른 사람에 대하여 너그럽고 배려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② 입으로 화합함이니 다투지 말라.(구화무쟁:口和無諍)
구화무쟁(口和無諍)은 많은 병이 입으로 먹는 것 때문에 생기고, 많은 불화가 입으로 말하는 것 때문에
생긴다. 순간의 이익과 편리를 위해 또는 일시의 통쾌함을 위해, 우리는 거짓말, 이간하는 말,
상처 주는 말, 그리고 유혹하는 말 등을 한다.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 드러나고 진실과 함께 인격도
드러난다. 정직하고 자비스러우며 배려하는 말의 습관을 실천해야 한다.
③ 뜻으로 화합함이니 같이 일하라.(의화동주:意和同事)
의화동사(意和同事)는 다시 말하면 마음이 서로 화합해야 함께 지내며 기뻐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견해나 이익, 습관보다 상대를 우선시하면서 스트레스가 생기지 않도록 자신을 다듬어야 한다.
그러면 함께 사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④ 계로 화합함이니 같이 수행하라.(계화동수:戒和同修)
계화동수(戒和同修)는 같은 규칙으로 화합해야 함께 노력하면서 자기를 수정하고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다. 나는 나의 규칙을 주장하고 너는 너의 규칙을 주장하면 갈등과 다툼이 생겨난다. 공동으로 공경하고 수순할 수 있는 규칙에는 국가의 법률, 사회적 상식, 습관, 도덕, 윤리 등과 그 단체만의 규칙이 있다.
공동의 규칙에 각 개인이 수순해야 공동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을 원만하게 얻는다.
⑤ 바른 견해로 화합함이니 함께 해탈하라.(견화동해:見和同解)
견화동해(見和同解)는 다시 말하면 목표와 방향성 그리고 방법을 보는 견해가 일치하고 화합해야
공동의 견해를 가질 수 있다.
승단 안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 중심에 놓고 공동의 견해를 삼는다. 이것이 귀의법이다. 일반 단체에서도 전원이 동의하는 공동의 견해를 세우면 그 견해를 바탕으로 화합하고 서로 공경할 수 있다.
⑥ 이익으로 화합함이니 균등하게 나누라.(이화동균:利和同均) 등이다.
이화동균(利和同均)은 이익이 생기면 공동의 이익으로 돌리고 개인은 검소하고 청렴한 생활을
기본으로 한다. 보살핌이 더 필요한 사람이 생기면 공동의 동의하에 배려할 수 있다.
따뜻하고 간결한 생활을 근간으로 한다.
366. 윤장대 (輪藏臺)
윤장대는 전경신앙(轉經信仰)과 관련된 유물로 경(經)을 안에 넣고 돌릴 수 있도록 만든 장치이다.
윤장(輪藏)은 중국 양나라의 부흡(傅翕)이라는 사람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다는 설이 있다.
부흡은 540년 송산에 쌍림사(雙林寺)를 세우고 대장경 열람에 편리하도록 윤장을 고안했다고 하는데,
윤장이라는 것은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문고판과 같은 작은 책들을 한 곳에 모두 꽂아두고 책장을
돌려가며 찾기 쉽게 만든 책꽂이와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처럼 윤장(輪藏)은 당초 경전을 쉽게 찾을 수 있게 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나,
후에 이것을 돌리기만 해도 경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을 쌓고 또한 복(福)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 전경신앙(轉經信仰)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전경신앙은 이러한 윤장(輪藏)이나 경통(經筒)에 경을 넣고 돌리는 행위로부터 성립된다. 경을 넣어 둔
경륜(徑輪)을 돌리면 세세생생 쌓은 죄와 업장(業障)을 소멸시킬 수 있고, 마귀의 장애(障碍),
몸과 마음의 병, 기근, 원한 등 8만 4천의 업장을 소멸시킬 수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만약 선남자 등이 발심하여 경통이나 경륜을 돌리면 경륜 안에 있는 경을 무수 만 억 번
염송하는 것과 같고 그 공덕이 불가사의하다고 한다. 또한 현세에 모든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고,
길상원만하고 시방의 일체 제불과 무수한 용, 하늘이 항상 도와준다고 한다.
오늘날 전경신앙이 가장 성행하고 있는 곳은 티베트이다. 지금도 티베트에서는 불자들이 길을 갈 때나
쉴 때나 한상 경륜을 돌리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사원 입구에서도 여러 대의 경륜[마니차]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티베트 사람들은 경통이 한 바퀴 도는 것은 사람이 경을 한번 염송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며, 이를 통해 업장을 소멸시키고 많은 공덕을 쌓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전경신앙의 근거는 다음의 몇 가지 경전에서 찾아진다.
『경륜이익십만공덕경(徑輪利益十萬功德經)』에는 “내가 미래에 문자 모양을 만들어 돌리면 너희들에게 이익이 될 것이다(아어미래시,전작문자형이이익여등:我於未來時, 轉作文字形而利益汝等)”라고 한 간접 증거가 있고,
『마니전집(摩尼全集)』에서는
“해탈경륜을 바람이 부는 높은 곳에 올려놓으면 모든 중생이 이익이 된다
(해탈경륜치어고처, 풍소표처중생계가득이익:解脫徑輪置於高處, 風所飄處衆生皆可得利益)”고 했다.
또한 『수풍광속(水風廣續)』에서는 “경륜을 돌리는 공덕은 무량공덕이라 설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조선시대 윤장대는 예천 용문사 윤장대(보물제68호)가 유일무이한 유물이다.
<사찰100美100選 下卷177쪽, 허균 글, 불교신문사>
367. 위빠사나와 간화선
위빠사나 수행을 주수행(主修行)으로 삼는 절이나 명상(冥想)을 지도하는 단체가 꽤 늘어가고 있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미얀마, 스리랑카 등 남방불교권의 주된 수행방법입니다.
그들은 위빠사나야말로 붓다께서 정각(正覺)을 이루신 유일한 수행법이라고 확신합니다.
한국에 위빠사나 수행이 전해진 시기는 1988년 전세계(全世界)
위빠사나 전파의 원조격인 미얀마의 마하시스님(1904~1982)의 제자이며, 마하시 수행센터
〔미얀마의 양곤에 있는 동시에 3,000여 명이 수행할 수 있는 규모로 전 세계에 40여 개의 분원을 두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수행 도량입니다〕의 원장인 미얀마의 승려 우빤디따가 삼각산 승가사에서 30여 명의 한국 스님들에게 21일 동안 위빠사나를 지도하신 것을 계기로 삼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불교가 인도에서 발생하여 그 전파 경로가 인도-중국-한국-일본으로 이어지는데 이를 북방불교라 하고, 인도-스리랑카-미얀마, 태국 등의 경로로 전해진 불교를 남방불교라 합니다.
흔히 북방불교를 대승불교라 하고 남방불교는 무조건 소승불교 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말 그대로 큰 오해입니다.
불법을 실천하는 정신에는 대승과 소승을 편의상 구별하여 설명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남방불교를 모두 소승불교라 말하는 것은 아주 큰 병폐입니다. 내면을 보면 한국불교야말로
대승이라 큰소리치지만, 도리어 소승불교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소승은 혼자 깨달음을 추구하고 다른 이는 구제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승 쪽의 비판인데,
한국불교가 어디 제대로 혼자라도 ‘깨달음’을 강렬히 추구하는 것처럼 보입니까?
더욱이 소승의 깨달은 자인 독각(獨覺)을 모신 독성전이 있고, 스님들과 신도들도 그 독각에 예배하고
기도를 하는 것이 현실인데, 한국 불교가 무슨 대승불교 운운하며 그들을 소승이라고 폄하할 수 있는
자격이 되는가 말입니다. 이것은 겉으로 드러난 사정이고, 잘 드러나진 않지만 수행의 측면에서
조계종에서 인정하는 유일한 수행법인 간화선과 남방의 위빠사나를 비교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 문제는 위빠사나 수행법을 이해하셔야 설명이 가능하니,
지금부터 간단하게 위빠사나 수행법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위빠사나vipassana는 아함부 경전 중 『대념처경(大念處經)』이라는 경에 의지합니다. 부처님도 하셨다고 주장하는 이 위빠사나 수행법은 한마디로‘마음 챙김’입니다. 순간순간 일어나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채는’ 수행법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을 어떤 이는 육조단경 좌선품에 나오는 생각생각 중에 자성의 청정함을
관찰하라(念念中自見淸淨心:염염중자견청정심) 와 유사한 수행으로, 마음의 본성을 관하는 돈오적
(頓悟的)수행이라고 까지 확대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합니다.
위빠사나의 ‘마음 챙김’대상은 몸ㆍ느낌ㆍ마음ㆍ법(身·受·心·法:신수심법)의 네 가지입니다.
이를 사념처라 하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신념처(身念處): 자신의 몸을 부정(不淨)하다고 관하는 것입니다. 이 관법은 육신의 욕망을
제어하는데 제일입니다. 즉, 이성을 보고 성욕이 일어나면 그 이성을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나의 신체는 똥, 오줌, 고름, 가래 등으로 가득하다고 마음을 챙기는 것입니다.
둘째, 수념처(受念處):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육근:六根〕의 감각의 느낌들이 ‘고(苦)’라고 관찰하는
것입니다. 즉, 어떤 비싼 옷이 좋아서 입고 싶은 욕심이 나면 그 옷을 생각하는 마음을 돌려, 입고 싶어
하는 마음 그 자체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옷을 꼭 입어야 하는 이유가 사실은 허망한
마음이라고 마음을 챙길 수 있습니다.
셋째, 심념처(心念處): 마음을 무상(無常)하다고 관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무상은 ‘항상한 것은 없으니 지금 순간에 집착하지 말라’는 의미이지, 내게 내재한 불성까지도 허망하다, 덧없다, 가치가 없다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한국불교의 신도들에 대한 근시안적 설명법의 문제 중 하나이지만 무상을 대부분 허망하거나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설명해 놓으니, 불교를 모르는 이들은 ‘불교는 허무주의 종교다’라고 오해할 빌미를
주는 것입니다.
심념처의 핵심은 지금 이 순간 내가 확신하고 있는 마음도 사실은 영원히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근거가 없다는 것이고, 이것은 다시 말해 나의 지금의 확신이 언젠간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마음으로 챙기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넷째, 법념처(法念處): 제법(諸法)이 무아(無我)라고 관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적이 있지만
‘제법무아’야말로 불교의 기본명제인 삼법인(三法印)중 가장 핵심적인 말입니다.
즉, 우리가 ‘이것이 진리다, 저 것이 진리다’라고 생각하는 그 법이 사실은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관하는 것이 법념처인데, 너무 어렵고 설명을 하려면 저도 난감하니 이 정도로 넘어 가겠습니다.
다만 법념처의 목표인 제법무아는 반야심경의 공(空)과 둘이 아니라는 사실만은 기억해 두십시오.
위빠사나 식으로 설명하면 ‘진리에 집착하지 말고 진리를 추구하는 현재의 그 마음을 챙겨라’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의 핵심인 사념처에 대한 제 설명을 보시고, 간화선을 수행하시는 분들은 위빠사나에
과한 평가를 했다고 하실 것 같고, 위빠사나를 수행하시는 분들은 설명이 추상적이고 세밀하지 못하다고 책망하실 것이 염려가 됩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려 저는 간화선만 하는 수행자도 아니고, 또 위빠사나 수행만을 하는 수행자도 아니니
당연히 그런 말을 들어도 변명할 처지는 못 됩니다.
다만, 저는 한국불교에 이 점만은 꼭 밝혀 두고자 합니다.
간화선의 몰록 깨닫는 돈오법이 아니면 수행의 가치가 없다는 쪽에 대해서는, 중국 송나라의
대혜종고(1089~1163)에 의해 제창된 간화선법으로 온전한 깨달음에 이른 사람이 1,000여 년 동안
몇 명이었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간화선의 병폐로 무늬만 선(禪)을 추구하는 무리가 양산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
그리고 깨달음의 100점짜리 간화선을 수행해도 10점 밖에 이룰 수 없다면,
위빠사나가 설령 50점짜리 수행법이라도 20 점을 받을 수 있는 수행방법 중의 하나라면 엄밀히 말해
오히려 사람에 따라 권장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되어 집니다. 더욱이 위빠사나를 간화선법에 대항하는,
더 나아가 간화선법을 가로막는 열등한 수행법이라고 매도해야 할 근거는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엔 위빠사나의 입장에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점은, 간화선은 실제 경전에 있는 부처님의 수행법이
아니고 방편으로 나온 수행법이고, 위빠사나는 대념처경 등에 분명히 있으니
‘이것이 성불(成佛)의 수행법이다’라고 확대 해석하는 것도 곤란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일반불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방법이 최고의 수행법이라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쉽고 편리한 것이
우리에게 항상 최고를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수행법에도 적용된다. 는 말씀입니다.
⌾ 조계종이 남방불교에 큰소리 칠 수 없는 정도를 넘어 ‘치욕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조계종에서 오늘도 분쟁의 중요한 요인으로 등장하는 ‘구족계’수계의 유무의 문제입니다.
구족계를 수지해야 비로소 비구로서 승가의 일원이 되지, 그렇지 않으면 만년 사미로 사부대중 측에
끼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조계종은 소위 승단 정화 이후(이승만의 말 한마디로 대처승들로부터 전국의 대부분의 본·말사 를 인수하게 된 후) 급하게 한국 최대의 종단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에서 율장에 따른 구족계를 제대로 받은 스님이 조계종에 사실상 없었습니다.
고육지책으로 1973년 비구로서의 상좌부 율맥을 이어온 태국의 스님들을 모셔와 구족계를 수계하여
율맥을 복원하게 됩니다. 여기에 개인적 의견을 내는 것은 불필요한 오해를 살 소지가 충분하니,
사실을 뒷받침해 주는 기록을 간략히 소개하는 것으로 그치겠습니다.
“한국불교는 승단 정화 이후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다. 비구라면 구족계를 받아야 하는데 구족계의 계맥이 단절되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태국의 고승을 초청하여 구족계를 받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태국의 고승들이 한국에 와서 남방 전통의 구족계를 수여했다.
이것은 한국불교 교단사에서 크나큰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해서 한국불교 교단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바로 한국의 승려들이 상좌불교 국가인
태국의 고승들을 초청하여 상좌부 전통의 비구계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태국의 장로들은 한국불교의 승단에 태국의 계맥을 전해 준 것에 대해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세계불교에서의 태국불교(Thai Buddhism in the Buddhist World)』라는 책에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스님들이 다른 불교국가에서 학업을 추구하도록 파견돼 왔다. 최근 몇 년간 상좌부 불교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한국 승단은 한국 스님들을 상좌불교 국가들로 보낼 뿐만 아니라,
자국 내에서의 상좌부 수계도 환영하고 있다. 1973년(불기 2516년)에 태국 상좌부 스님들이
서울에서 수계식을 열기 위해 초대를 받고 가서 약 마흔 분의 한국 스님들을 상좌부 계단에 맞아들였다」
(불교평론 44호, 2010년 가을호 마성 스님)
368. 위산 경책 (僞山大圓禪師警策)
위산영우선사의 경책문은 독립된 한 권으로서 불교의 역대 명문 중의 하나에 속한다.
위산영우(潙山靈祐, 771~853) 선사는 당나라 때 스님으로서 위앙종(潙仰宗)의 초조이며
속성은 조(趙)씨이고 복건성(福建省) 장경(長慶) 출신이다.
15세에 출가하여 절강성(浙江省) 항주(杭州) 용흥사(龍興寺)에서 경ㆍ율을 배우고, 백장회해의 문하에
들어가 법을 이었다. 위산은 그가 주석한 대위산(大潙山)을 가리킨다.
선사는 특히 경책문 때문에 강원에서는 잘 알려진 분이다.
『유교경』과『사십이장경』, 이 위산경책문을 묶어서 불조삼경(佛祖三經)이라고 일컫는다.
위산 스님은 당시에 수행자들이 점점 게으르고 위의를 갖추지 않으며 승려의 본분을 지키지 않으므로,
드디어 이 경책문을 지어서 그들을 경책하여 수행의 정도로 돌아오게 하였다.
369.위앙종 (潙仰宗)
위앙종의 개산조 위산영우선사가 밤늦게 백장선사를 찾아갔다.
“화로의 불 좀 돋구어 주지 않겠나.” “불씨가 없습니다.”
백장선사가 화로를 헤집더니 이렇게 소리쳤다.
“이것은 불씨가 아니고 무엇인가” 위앙종 개산조인 위산영우선사는 백장선사의 가르침을 받아 득도한다.
선종 5가 가운데 가장 먼저 흥기한 위앙종은 백장선사, 위산영우선사, 앙산혜적선사로 이어지는 종풍을 계승한 종파다.
위앙종의 기본사상은 상생, 상생, 유주생(想生,相生,流注生)등 삼종생(三種生)이다.
앞의 상생(想生)은 주관적 사유를 일으키는 마음으로 번뇌에 덮힌 마음이며,
뒤의 상생(相生)은 객관세계에 대한 분별을 일으키는 마음이며,
유주생(流注生)이란 주관과 객관세계가 끊임없이 변화하여 미세한 번뇌를 끊임없이 일으키는 마음이다.
마음의 작용을 분석한 이 삼종생(三種生)을 통해 각각 마음의 작용을 뚫어 불성(佛性)을 깨닫는 수행론을 이야기한다.
심리학적인 방법론에 근접한 위앙종의 불성론은 본체와 현상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요구한다.
위앙종은 당말(唐末) 오대에 걸쳐 번성했으나 송대(宋代)에 들어와 쇠퇴했다.
선승 회아지소는 <인천안목>에서 위앙종의 종풍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대가 강을 건너려 하면 나는 곧 배를 끌고 온다. 산이 막혔으나 연기를 보고 불이 있음을 알고,
담이 막혔으나 뿔을 보고 소가 있음을 안다.”
370. 위패작성법
1. 스님과 신도 모두 손아래 사람이 윗사람 재를 지낼 때에는 복위(伏爲)라 하고,
손윗사람이 아랫사람의 재를 지낼 때에는 기부(記付)라 한다.
2. 재를 지내는 사람 앞에 ‘行’(행)자를 쓰는 뜻은 이 재를 아무개가 봉행, 거행한 다는 뜻이므로
재를 지내주는 사람, 즉 재를 주관하는 사람의 이름 앞에 반드시 ‘行’(행)자를 써야 한다.
3. 천혼문은 부처님전에는 천혼재자라고 하고 영단시식에는 봉청재자라고 한다.
4. 신원적(新圓寂)은 원래 스님들에게 쓰는 말이지만 요즘은 승속 함께 쓴다.
다만 상가집에서 장례지낼 때만 쓰고 반혼재와 초재부터는 쓰지 않는다.
5. 본관(本貫),공(公),씨(氏)등의 경칭은 부처님전에는 부르지 않고 영단시식 할 때만 부른다.
6. 망(亡),후인(後人),유인(孺人)등은 유교 것이므로 쓰지 않는 것이 좋다. 불교적 입장에서 보면
불생불멸(不生不滅)이므로 먼저 간 사람이라는 의미로 ‘선’(先)자를 써야 한다.
7. 영가에게는 모생(某生)은 쓰지 않는 것이 좋다.
8. 아들, 며느리, 딸, 사위, 돌아가신 분의 부인, 남편등을 천혼문에 함께 기재하 더라도
불전 축원시 읽는 순서는 첫째 직계인 자녀를 복위로 하여 선부, 선모 영가라고 부르고
두 번째 손자 손녀 등을 복위로 하여 선조부, 선조모라 부른 다. 돌아가신 분의 남편이나
부인을 먼저 불러도 된다. 영단 창혼시에는 선조 부, 선조모, 선엄부, 선자모라고 부른다.
9. 위패 한 장에 부모 두 분을 같이 쓸 때에는 이름 밑에 양위영가(兩位靈駕)라고 쓴다.
10.종조부는 할아버지의 형제로 큰할아버지와 작은 할아버지를 말한다.
11.손아랫사람이 손윗사람 재를 지낼 때 영단시식에는 남자는 본관 다음에 공(公)자를
여자는 본관 다음에 씨(氏)자를 쓰고 불러도 된다.
예) 선조부(선엄부) 전주이공 모인 영가 선조모(선자모) 전주최씨 모인 영가
그러나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 재를 지낼 때는 위패에 ‘公’자나 ‘氏’자을 쓰지 않는다.
1.위패 쓰는 법(위패를 마주보고 왼쪽이 남자)
행효자(行孝子)OOO복위(伏爲)
망 엄부(亡嚴父) OO후인(OO后人) 김 OO영가(靈駕)
망 자모(亡慈母) OO유인(OO孺人) 김 OO영가(靈駕)
위패 쓰는 법(위패를 마주보고 왼쪽이 남자) 행효자(行孝子)OOO복위(伏爲) 망 엄부(亡嚴父) OO후인(OO后人) 법명 김 OO영가(靈駕) 망 자모(亡慈母) OO유인(OO孺人) 법명 김 OO영가(靈駕) |
2.호칭
조부(외조부):할아버지(외할아버지) 조모(외조모):할머니(외할머니)
엄부:아버지 자모:어머니.
사형:손위형제 모두(형,오빠,사촌,고종사촌 등)
사제:손아래 남자형제 사매:손아래,위 여자형제(언니,누나,여동생)
망애자:자식
백부(백모):큰아버지(큰어머니) 숙부(숙모):작은 아버지(작은 어머니)
삼촌:결혼하지 않은 아버지의 모든 형제
당숙:아버지의 사촌 형제 당고모:아버지의 사촌 여자형제
가부:남편 실인:부인
동서:남편 형(동생)의 아내 올케:오빠(동생)의 부인
고모:아버지의 여자 형제 이모:어머니의 여자 형제
서랑:사위 자부:며느리
빙부:장인 빙모:장모
종조부(외종조부):아버지의 작은 아버지(형제분들 포함)
종조모(외종조모):아버지의 작은 어머니
기부:윗사람이 아랫사람 제 지낼 때
수자령(일체)영가:태아(모두)영가
유주무주 선망부모 일체 영가:모든 조상일체
청신남, 청신녀:이름을 모르는 분
후인:남자 유인:여자
천 혼 문(薦魂文) 원아 금차 지극지정성 생전효행 사후건성 (천도재, 49재, 기일재)~재 지신 천혼재자 모도 모시 모처 거주 행효자(녀): 모인 ooo 등 복위 소천망 선엄부(선자모) 후인(유인) ooo영가 이차인연공덕 앙몽 삼보대성존 가피지묘력 삼탈삼계지고뇌 초생구품지요방 획몽관정 반야낭지 활연개오 즉왕생극락지대원 <생축> 원아 금차 지극지정성 사후 모일재 지신 천혼재자 모처 거주 행효자(녀): 모인 등 보체 앙몽 삼보대성존(지장대성존)가피지묘력 00 재후 각기 다생겁래 업장소멸 육근청정 사대강건 병고액난 영위소멸 수명장원 복덕구족 심중 소구소망 만사여의원만성취지대원 |
▶불전에 천혼축원 할 때와 영단에 시식 할 때의 예
불전 천혼축원시 | 영단 창혼시 | |
손자가 할아버지 재를 지낼 때 | 행효손자 모인 복위 선조부 모인 영가 선조모 모인 영가 | 행효손자 모인 복위 선조부 모관 모인 영가 선조모 모관 오인 영가 |
손자가종조부(모) 재를 지낼 때 | 행효손자 모인 복위 선종조부(모)모인영가 | 생효손자 모인 복위 선종조부(모)모관모인영가 |
자녀가 부모 재를 지낼 때 | 행효자 모인 등 복위 선부 모인 영가 선모 모인 영가 | 행효자 모인 등 복위 선엄부 모관 모인 영가 선자모 모관 모인 영가 |
며느리가 시부모 재를 지낼 때 | 행효자부 모인 복위 선시부 모인 영가 선시모 모인 영가 | 행효자부 모인 복위 선시부 모관 모인 영가 선시모 모관 모인 영가 |
아내가 남편 재를 지낼 때 | 행실인 모인 복위 선가부 모인 영가 | 행실인 모인 복위 선가부 모관 모인 영가 |
남편이 부인 재를 지낼 때 | 행가부 모인 기부 선실인 모인 영가 | 행가부 모인 기부 선실인 모관 모인 영가 |
부모가 자식의 재를 지낼 때 | 행부 모인 기부 선자 모인 영가 | 행부 모인 기부 선자 모인 영가 |
조카가 백,숙부 재를 지낼 때 | 행효질자(녀)모인복위 선백부(숙부)모인영가 | 행효질자(녀)모인 복위 선백부(숙부)모관 모인 영가 |
백부,숙부가 조카 재를 지낼 때 | 행백부(숙부)모인기부 선질자(질녀)모인영가 | 행백부(숙부) 모인 기부 선질자(질녀)모인 영가 |
동생이 형 재를 지낼 때 | 행제 모인 복위 선형 모인 영가 | 행제 모인 복위 선형 모관 모인 영가 |
형이 동생 재를 지낼 때 | 행형 모인 기부 선제 모인 영가 | 행형 모인 기부 선제 모인 영가 |
사촌동생이사촌형 재를 지낼 때 | 행사촌제 모인 복위 선사촌령 모인 영가 | 행사촌제 모인 복위 선사촌형 모관 모인 영가 |
사촌형이사촌동생 재를 지낼 때 | 행사촌형 모인 기부 선사촌제 모인 영가 | 행사촌형 모인 기부 선사촌제 모인 영가 |
☞佛前에 薦魂祝願 할 때와 靈壇에 施食 할 때의 例
佛前 薦魂祝願時 | 靈壇 唱魂時 | |
손자가 할아버지 재를 지낼 때 | 行孝孫子 某人 伏爲 先祖父 某人 靈駕 先祖母 某人 靈駕 | 行孝孫子 某人 伏爲 先祖父 某貫 某人 靈駕 先祖母 某貫 某人 靈駕 |
손자가종조부(모) 재를 지낼 때 | 行孝孫子 某人 伏爲 先從祖父(母) 某人 靈駕 | 行孝孫子 某人 伏爲 先從祖父(母) 某貫 某人 靈駕 |
자녀가 부모 재를 지낼 때 | 行孝子 某人 等 伏爲 先父 某人 靈駕 先母 某人 靈駕 | 行孝子 某人 等 伏爲 先嚴父 某貫 某人 靈駕 先慈母 某貫 某人 靈駕 |
며느리가 시부모 재를 지낼 때 | 行孝子婦 某人 伏爲 先媤父 某人 靈駕 先媤母 某人 靈駕 | 行孝子婦 某人 伏爲 先媤父 某貫 某人 靈駕 先媤母 某貫 某人 靈駕 |
아내가 남편 재를 지낼 때 | 行室人 某人 伏爲 先家夫 某人 靈駕 | 行室人 某人 伏爲 先家夫 某貫 某人 靈駕 |
남편이 부인 재를 지낼 때 | 行家夫 某人 記付 先室人 某人 靈駕 | 行家夫 某人 記付 先室人 某貫 某人 靈駕 |
부모가 자식의 재를 지낼 때 | 行父 某人 記付 先子 某人 靈駕 | 行父 某人 記付 先子 某人 靈駕 |
조카가 백,숙부 재를 지낼 때 | 行孝姪子(女)某人伏爲 先伯父(叔父)某人靈駕 | 行孝姪子(女)某人 伏爲 先伯父(叔父)某貫某人靈駕 |
백부,숙부가 조카 재를 지낼 때 | 行伯父(叔父)某人記付 先姪子(姪女)某人靈駕 | 行伯父(叔父) 某人 記付 先姪子(姪女)某人 靈駕 |
동생이 형 재를 지낼 때 | 行弟 某人 伏爲 先兄 某人 靈駕 | 行弟 某人 伏爲 先兄 某貫 某人 靈駕 |
형이 동생 재를 지낼 때 | 行兄 某人 記付 先弟 某人 靈駕 | 行兄 某人 記付 先弟 某人 靈駕 |
사촌동생이사촌형 재를 지낼 때 | 行四寸弟 某人 伏爲 先四寸兄 某人 靈駕 | 行四寸弟 某人 伏爲 先四寸兄 某貫 某人 靈駕 |
사촌형이사촌동생 재를 지낼 때 | 行四寸兄 某人 記付 先四寸弟 某人 靈駕 | 行四寸兄 某人 記付 先四寸弟 某人 靈駕 |
371. 의식 (意識) ☀불교에서 나온 말
안, 이, 비, 설, 신, 의(眼,耳,鼻,舌,身,意)의 육식(六識)가운데 하나다.
의식(意識)을 제6식이라 한다. 의근(意根)에 의한 식(識)이란 뜻으로 불심(佛心)의 모든 현상의
총상(總相)을 요별(了別)하는 작용을 한다.
☀
초기불교에서 육식(六識)은 인식 기관과 인식 대상 그리고 주의력이 있을 때 생기는 현상으로 본다.
부파불교에서는 눈, 귀, 코, 혀, 몸의 의식을 전오식(前五識)이라고 하고, 마지막 마음의 식인 의식(意識)을 제6식(第六識)이라고 한다.(『아비달마대비바사론』, 대정장, T27, 374중).
유부 아비달마에 따르면, 전오식은 그것과 동시에 존재하는 눈의 기관[眼根] 내지 몸의 기관[信根]을
근거로 하지만, 여섯 번째 의식의 경우 이미 소멸한 앞 순간의 육식을 근거로 하는데, 이를 안근 등
전오식의 근거에 준하여 '의근(意根)'이라 하였다.
이는 마치 어느 때 아들로 불리던 자가 그 때가 지나면 아버지로 불리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의근은
전오식의 근거가 되기도 하고, 제6의식의 근거도 되어 여섯 종류의 대상을 전체적으로 취할 수 있다.
유부 아비달마에서 마음이란, 일차적으로 눈[眼根]을 근거로 하여 감각적 대상인 형색[色境]을 식별하고, 마음의 기관[意根]을 근거로 하여 비감각적 대상인 법의 대상[法境]을 식별하는 것이다.
테라와다 아비담마에서도 육식은 기본적으로 초기불교와 내용을 같이 한다.
대승불교의 유식사상(唯識思想)에서는 육식을 넘어서는 자아의식으로서 제7식 말나식과
근본식인 제8식 아뢰야식을 설정하였다. 그러나 육식의 의미는 기본적으로 초기·부파불교와 같다.
372. 이심전심 (以心傳心) ☀불교에서 나온 말
선종(禪宗)의 경우 문자(文字)에 의존하지 않고 경론(經論)에도 의지하지 아니한 채 곧 바로
스승과 제자가 대면해 마음에서 마음으로 법을 전하는 것을 이심전심이라 한다.
어느 날 석가 세존(世尊)이 제자들을 영취산(靈鷲山)에 모아놓고 설법을 하였다.
그 때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
세존은 손가락으로 연꽃 한 송이를 말없이 집어 들고(拈華) 약간 비틀어 보였다.
제자들은 세존의 그 행동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가섭만이 그 뜻을 깨닫고 빙그레 웃었다(微笑).
그제야 세존도 빙그레 웃으며 가섭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는 정법안장(正法眼藏: 인간이 원래 갖추고 있는 마음의 덕)과
열반묘심(涅槃妙心: 번뇌를 벗어나 진리에 도달한 마음), 실상무상(實相無相: 불변의 진리),
미묘법문(微妙法門: 진리를 깨치는 마음),
불립문자 교외별전(不立文字 敎外別傳: 언어나 경전에 따르지 않고 이심전심으로 전하는 오묘한 진리)이 있다. 이것을 너에게 주마.” 이렇게 하여 불교의 진수는 가섭에게 전해졌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는 말이나 글이 아닌 마음과 마음으로 전하였다고 한데서 유래한다.
불교의 심오(深奧)한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말이다. 현대의 ‘텔레파시가 통한다.’와 유사한 의미이다.
373. 이십오유(二十五有)
육도를 통틀어 고제(苦諦)라(고통의 세계)한다.
유(有)는 존재란 뜻. 중생이 나서 변경하고, 죽어 변경하는 미(迷)의 존재를 25종으로 나눈 것을 말한다.
(중생의 윤회하는 세계를 25종으로 분류한 것 →삼계와 육도)
⑴사악취(四惡趣):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아수라(阿修羅).
⑵사주(四洲): 동승신주(東勝身洲), 남섬부주(南贍部洲),서우화주(西牛貨 洲), 북구로주(北俱盧洲).
⑶6욕천(六慾天): 사천처유(四天處有), 도리천처유(도利天處有), 염마천유 (炎摩天有), 도솔천유
(도率天有), 화락천유(化樂天有), 타 화자재천유(他化自在天有).
⑷색계칠천(色界七天): 초선천(初禪天), 대범천(大梵天), 제이선천(第二禪 天), 제삼선천(第三禪天),
제사선천(第四禪天), 무상천(無 想天), 정거천(淨居天),
⑸사무색계(四無色界): 공무변처천(空無邊處天)·식무변처천(識無邊處天)· 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
비상비비상처천(非想非非想處天)
374. 이운 (移運)
일정한 장소에 안치되어 있는 괘불(掛佛)이나 가사(袈裟), 사리(舍利) 등을 다른 장소로 옮길 때 행하는
의식을 이운의식이라 한다.
괘불이운ㆍ불사리이운ㆍ승사리이운ㆍ불전이운ㆍ경함이운ㆍ법신이운ㆍ시주이운 등이 있다.
괘불이운은 재(齋) 등을 위해서 괘불을 내어 걸 때 행하는 의식이다.
우선 팔부신중들이 와서 도량을 옹호하는 옹호게(擁護偈)를 하고 부처님의 덕을 찬탄하는 찬불게(讚佛偈)ㆍ출산게(出山偈)를 한 후 염화게를 한 뒤 꽃을 뿌리고 “나무영산회상불보살”을 3회 염송한다.
등상게(登床偈)ㆍ사무량게(四無量偈)ㆍ영산지심(靈山至心)으로 귀의정례하고 헌좌게(獻座偈)로 좌를
마련한 후 차를 올리는 다게를 한다.
수설대회소(修說大會疏)를 읽어 괘불을 이운 하게 된 동기를 밝히고 축원하여 소망을 아뢰고
그 성취를 기원하게 된다. 이후의 절차는 각각의 재의식을 따라 행한다.
사리이운(舍利移運)은 옹호게로 시방의 모든 현성과 범천왕, 도량의 팔부신중을 청해 옹호케 하고
사리게(舍利偈)를 하여 부처님사리를 찬탄하고 염화게를 하고 꽃을 뿌리며 부도에 이른다.
헌좌게(獻座偈)로 좌를 마련하고 차를 마련해 사리탑에 드리는 다게를 행한다.
가사이운(袈裟移運)은 옹호게로 시작하여 가사송(袈裟頌)을 한다. 꽃을 뿌리고 법고를 3번치고
요잡한 후 헌불게ㆍ헌좌게ㆍ다게를 하고 마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