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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상 씨는 『금강경』을 만난 이후 하루도 경전을 손에서 내려 놓은 적이 없다. |
백발이 성성한 사내가 앞치마를 둘렀다. 손놀림이 빨라진다. 사내는 뿌옇게 김이 올라오는 국수 사발을 빈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는다.
오전 11시. 무료급식소 하심정은 금세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섭씨 30도를 웃도는 초여름 날씨도 빈자의 허기를 누그러뜨리지 못했다. 사람들의 표정엔 기다림이 역력했다. 쉴 틈이 없었다. 주방과 홀을 오가며 정신없이 음식을 날랐다.
부처님께 공양하듯 한가득 잔치 국수를 담아 테이블에 올려놓기를 수십 번. 사내의 이마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혔다. 옷이 흥건히 젖고 있었다.
도반 권유로 고희에 금강경과 인연
70대 중반 고령의 나이임에도 젊은 사람들과 함께 하심정에서 무료급식 봉사를 하며 황혼을 보내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대우자동차 전 부사장 한기상(74) 씨였다. 한 시간 쯤 지났을까. 그는 식당 구석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잠시 땀을 식혔다. 이어 선반위에 놓인 『금강경』을 버릇처럼 꺼내들었다. 그리곤 제1분 ‘법회인유분’을 독송하기 시작했다.
“세존께서 공양시간이 되자 발우(鉢盂)를 들고 사위대성에 들어가 걸식을 했다…차례로 걸식을 마친 세존은 본처에 돌아와 공양(供養)을 다 드시고 의발을 거두어 다 치우고…자리를 펴고 앉았다.” (世尊, 食時 著衣持鉢 入舍衛大城乞食 於其城中. 次第乞巳 還至本處 飮食訖 收衣鉢)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출가자들은 빈곤한 자, 부유한 자를 가리지 않고 탁발을 했다. 마을사람들은 그 뜻을 잘 알아 형편껏 음식을 올렸다. 남녀노소 빈부여하를 막론하고 음식을 주고 받는 그 현장에는 ‘자비’만이 온누리에 가득했다.
“내가 있는 이곳이 바로 2500년 전 부처님이 계셨던 그 자리이거늘….” 한 씨는 다시 한 번 일상이 깨달음의 순간이요, 매 순간 깨어있으라고 설한 『금강경』의 가르침을 가슴 깊이 되새겼다. “‘마음’을 비우고 그 자리에 ‘자비’를 채우자. 오직 ‘하심’뿐이다.”
한 씨는 급식소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국수 가락처럼 급식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생각했다. ‘우리네 삶의 자취가 굶주림의 기록임을. 다음 생은 차라리 등꽃 보라나 되어 화라락 지고 싶다(김명인 作 저 등나무꽃 그늘아래 中)’고.
한 씨가 『금강경』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2004년, 대우자동차에서 연구소장으로 재직할 당시 부하 직원이었던 정재영 씨의 고집스런 권유 때문이었다. 『금강경』 예찬론자인 정 씨는 대우자동차의 실질적인 책임자이자 상사였던 한 씨의 집을 밥 먹듯 찾아갔다.
한국 자동차 산업계를 대표하는 리더가 남을 이롭게 하면 자신을 이롭게 할 수 있다는 불교의 ‘자리이타’ 정신을 기업의 경영철학으로 삼는다면 개인은 물론 회사의 발전에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 씨의 지난한 노력에도 한 씨의 마음은 좀처럼 동요되지 않았다. 맹목적인 종교적 신념에 대해서 경계했을 뿐 아니라 한 씨 나름대로 참다운 삶의 방식에 대한 자신만의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98년 퇴직 이후 그는 삶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갖게 되면서 종교적 신념과 믿음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 씨에게 부처님의 법을 전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정 씨가 불현듯 떠올랐다. 때마침 정 씨와 연락이 닿았고 서울대 금속학과 후배인 바른법연구원 김원수 원장의 소식을 접하게 됐다.
이후 정 씨는 매일 새벽 한 씨와 경기도 원당에 있는 ‘바른법연구원’을 찾아가 함께 ‘금강경 독송’을 시작했다. 정 씨의 노력이 14년 만에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금강경』을 사이에 둔 세 사람 (한기상, 김원수, 정재영)의 질긴 인연이 맺는 거룩한 순간이었다.
한 씨는 독실한 불교 집안에서 자랐다. 전생에 많은 공덕을 지어서일까. 충남 서산이 고향인 한 씨가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다닐 때 누이(서울 선애사 정관 스님)와 여동생(경주 안심사)이 나란히 수덕사와 개심사로 출가했을 정도로 한 씨의 집은 불교와의 인연이 깊었다.
서산에서 제법 규모가 큰 정미소를 운영하던 한 씨의 부모님은 늘 그에게 불자라면 마땅히 ‘삼보’를 존경하고 공양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래서일까. 서산 지역 절에서 시주를 나온 스님들이 매일 정미소를 찾았고 그 지중한 인연으로 두 명의 혈육이 출세간의 길을 걷는 출가 수행자가 된 것이다.
방학만 되면 한 씨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쌀이며 수박, 참외같은 과일을 한보따리 등에 지고 수덕사와 견성암에 오르기가 일쑤였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수덕사 스님들은 탁발하러 마을에 내려올 때면 한 씨를 찾았고 시주에 대한 보답으로 그에게 경전 내용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바른법연구원서 매일 가행정진
그런 그가 불교의 귀의한 것은 50년이 지난 뒤였다. 신진자동차(GM대우 전신)에 말단 사원으로 입사해 대우자동차 부사장을 역임하기까지 꿈과 열정을 가지고 앞만 보며 달려온 그에게 있어 황혼의 언저리에서 만난 『금강경』은 바로 ‘진리’였다.
그렇게 바른법연구원과 인연을 맺은 이후 한 씨는 정 씨와 함께 『금강경』을 독송하며 마음 속에 ‘불법으로 지혜를 얻고 생사의 용심을 바쳐 열반의 세계를 이룩한 부처님을 죽을 때까지 시봉하겠다’는 큰 원을 세웠다. 이후 한 씨는 4년 간 자시(子時) 가행정진 발원을 세우고 용맹정진했다.
밤 1시부터 5시까지 금강경을 독송하고 염불하며 찌든 마음의 때를 벗겨냈다. 마음을 비운 자리에는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광명’이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이 남을 탓하는 마음을 부처님께 바치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 되어, 부처님 시봉 잘 하기’를 매일 같이 발원했다
무료급식 봉사로 ‘탐심’ 닦아
한 씨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미륵존여래불’을 염송하며 내가 만나는 저 사람이 부처님 전에 신심발심해서 복 많이 짓기를 발원했다. 간혹 미운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을 위해 108배를 하고 『금강경』을 독송하며 자신의 삿된 감정을 부처님께 바치려 애썼다.
상(相)을 갖게 되면 결국 타인과 부딪힐 수밖에 없고 이는 『금강경』에서도 가장 경계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부처님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생각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탐진치에서 헤어나지 못함이 다반사지요. 놓치고 방심하고 계율을 어기고 실망하더라도 부처님을 향하는 마음으로 살려고 노력할 수밖에요. 그게 고통을 여의고 참다운 마음의 평화를 찾아가는 부처님의 길임을 이제는 너무도 잘 압니다.”
한 씨는 모든 사람을 부처님으로 생각하고 귀하게 여긴다. 입이 닳도록 ‘부처님 감사합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를 읊조린다.
“마음을 낮춘 그곳에서 마음 닦음이 시작되고, 지혜는 욕심을 내려놓은 그 자리에서 나옵니다. 또 지혜가 생겨야 능력이 생겨 좋은 일을 할 수 있는데 지혜가 생기려면 탐욕을 닦아내야 합니다. 몸으로 봉사하는 것이 탐심 닦는 데는 제일이지요.”
하루의 해가 지기 저물기 시작했다. 봉사를 마치고 의자에 앉은 그는 다시 『금강경』을 펼쳐들었다. 그리곤 금강경 사구게를 되뇌었다.
“집착 있는 모든 것은 꿈과 같고 허깨비나 물거품과 그림자와 이슬 같고 번갯불과 같으므로, 응당 모두 이와 같이 관하여야 하느니라…. ”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아침이면 해가 뜨고 저녁이면 해가 지는 일상에서 우주와 인생의 비밀은 곧잘 발견된다. 땅거미가 내리는 일몰의 시간, 수평선 너머로 테두리를 이울며 지고 있는 해를 바라보던 한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황혼이 그의 얼굴을 살구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첫댓글 나무마하반야바라밀........()()()
한 사람에게 전법을 하기 위하여 12년의 세월이 걸렸다는 부분에서 가슴이 뭉클하면서 나는 어떤 자세로 부처님법을 전하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원을 세우고 한 걸음씩 나아가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여기서도 보게 됩니다. 금강경독송을 놓지 않으시는 모습과 봉사를 통한 수행의 자세도 눈여겨 보셔야 할 듯 합니다.곳곳이 보현행원입니다. 인생의 황혼이 아닌 절정기에 밝은법 만나신 우리님들 감사하면서 나아가야겠습니다. 일찌기 부처님의 밝은 법에 눈뜨게 해주신 부처님 고맙습니다._()_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어릴 때 부터 부처님 법과 가까이 있음이 정말 소중한 인연임을 다시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그 인연으로 황혼에 귀의하심을 보면서 말입니다.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그 모습이 정말 부처님이십니다.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ㅕ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_()()()_
감사합니다.마하반야바라밀_()()()_
...고맙습니다.._()()()_
마하반야바라밀...
아직도...뭐가 뭔지...해매고 있는....오직 밝은 마음....나무마하반야바라밀...._()_
하심의 자세, 감사하는 마음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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