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영국 런던 코벤트가든 오페라극장에서 본 로열발레단 `잠자는 숲 속의 미녀` 공연은 품격 그 자체였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드레스는 박물관에 전시될 정도로 고풍스러웠다. 장인이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바느질한 수공예 의상이었다.
무용수들의 몸짓도 한 없이 우아했다. 왕립 발레단 답게 `로열(Royal)`한 공연이었다.
발레단 역사는 193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N.드 발루아가 만든 빅웰스발레단이 시작이었다.
1940년 새들러스웰스발레단으로 이름을 바꿨다가 1957년 왕실 헌장을 받고 로열발레단이 됐다.
전설적인 발레리나 마고트 폰테인(1919~1991년)과 모이라 시어러(1926~2006년), 안무 거장 프레데릭 애시톤(1904~1988년),
로버트 헬프먼(1909~1986년), 케네스 맥밀란(1929~1992년), 존 크랭코(1927~1973년) 등이 왕실 발레의 전통을 만들었다.
로열발레단이 상주하는 코벤트가든 오페라극장 곳곳에는 그 전설같은 거장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전시된 의상들은 발레 역사를 대변한다.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등 고전 발레와 `맥베스` `햄릿` `신데렐라`
`로미오와 줄리엣` 등 드라마틱 발레까지 주옥같은 작품들이 무대에 올라 관객들을 감동시켰다.
로열발레단은 인근 웨스트엔드 뮤지컬들과 경쟁하기 위해 화려하고 품격 있는 무대와 의상으로 승부한다.
그리고 계속 작품을 수정 보완한다. 대표작인 `잠자는 숲 속의 미녀`는 2006년 예술감독 모니카 마슨과 크리스토퍼 뉴톤,
무대 디자이너 피터 파머가 업그레이드시켰다. 공주에게 마법을 건 사악한 요정이 바닥으로 사라지고 왕자가 배를 타고
덩쿨을 헤쳐나가는 장면은 첨단 기술이 적용됐다. 왕자에게 잠든 공주를 보여줄 때는 대형 영상을 이용한다.
로열발레단 관계자는 "1946년 이 작품을 초연한 후 계속 안무와 무대를 수정했다.
물론 안무가 프레데릭 애쉬톤과 케네스 맥밀란이 만든 로열발단 특유의 고귀한 스타일은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이 발레단 춤은 굉장히 정교하다. 오버하지 않고 절제되고 정제된 동작을 추구한다. 특히 상체 움직임이 굉장히 여성스럽다.
옛 자료를 고증해서 당시 의상을 치밀하게 재현해 완성도 있는 발레 미학을 추구한다.
무용수들은 높은 점프와 깔끔한 회전 동작, 우아하고 귀족적 몸짓으로 춤을 춘다.
로열발레단의 대표작 `잠자는 숲 속의 미녀`는 고전 발레 형식을 엄격하게 지키면서도 흥미로운 장면을 넣었다.
탄생 축하연에는 쥐로 분장한 무용수와 마녀가 마차를 타고 나타나 어린이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고양이와 늑대 춤도 익살스럽다.
세계 각국에서 온 다양한 인종의 무용수들에게도 놀란다. 왕실 전통을 지키기 위해 자국 무용수들만 고용할 것 같은 편견을 깬다.
오히려 개성이 강한 무용수들을 품격 있게 조화시키는게 로열 발레의 미학이다.
특히 흑인과 동양인 단원들이 눈에 띈다. 한국계 무용수도 있다. 일본 후쿠오카에서 재일 교포로 태어난 최유희 씨(30)다.
2002년 스위스 로잔콩쿠르 1위를 차지한 그는 스폰지처럼 음악과 춤을 흡수해 이듬해 로열 발레단의 선택을 받았다.
빛나는 재능과 치열한 노력 덕분에 입단 5년 후 퍼스트 솔로이스트(주역 무용수)가 됐다.
발레단 최고 등급인 프린서펄(수석)보다 한 단계 아래다.
최씨는 "예술에는 `여권`이 필요없다. 다행히 로열발레단은 모든 인종을 다 받아주는 단체다. 그 덕분에 독특한 춤을 창조한다.
만약 인종 차별이 있었다면 지금 여기에 나는 없었을 것이다. 세계 어디를 가나 내가 한국인이라는게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2월 26일(현지 시간) 로열 발레단 대표 공연인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주인공 오로라 공주 역할을 처음으로 춤췄다.
고난도 테크닉과 정교한 동작, 긴 공연 시간(휴식시간 40분 포함해 3시간) 때문에 연륜과 실력, 체력을 모두 갖춘 발레리나만
주인공을 맡을 수 있는 작품이다. 파티 장면에서 한 다리에 몸을 의지한 채 세계 각국 왕자들을 맞이하는 춤에서는 온 몸이
후들거려도 웃으면서 춤춰야 한다.
그의 공연날에 찰스 윈저 영국 황태자가 찾아왔다. 로열발레단은 영국 왕실의 후원을 받고 있다.
세상을 떠난 고 다이애나 황태자비가 발레를 사랑해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찰스 황태자는 오페라광이지만 발레 공연도 자주 찾는다.
[전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