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아병적小兒病的: 언행이 유치하고 감정이 극단으로 흐르기 쉬운
{바른 믿음} 정이철 <정태홍 목사의 신학의 발전과 진보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https://archive.md/31iMn
다음은 위 링크 글에서 옮긴다. 굵은 글씨는 내가 굵은 글씨로 쓴다.
나는 평소에 정태홍 목사가 제법 책들을 쓰고 비성경적인 사상을 전파하는 사람들의 허점을 비판하는 영상을 자주 만들어서 올리는 것을 보고 응원했다. 정태홍이 성격(인격)으로는 평균적 인간의 상태에 이르지 못하다는 것을 이전에 있었던 일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학문적이고 수준 있는 글을 쓰는 재주가 그에게 있다고 인정하였는데, 이 책을 보니 그것은 오해였던 것 같다. 이 책을 보고, 정태홍이 안타까운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주장의 옳고 그름을 논하는 글에서 상대 인격을 공격해 상대 주장이 그릇됐음을 말하려는 야비한 태도를 논리학에서는 “인신공격의 오류”라고 말한다.1) 그 대표 예가 누워서 침 뱉는 줄을 모르는 소아병적 환자 Wolf이철이 ‘죽음을 앞에 두고 존 머레이 목사님에게 보내신 편지에서 그리스도 능동 순종에 감사하신 그레샴 메이첸 목사님’을 두고 “말년에 노망이 들었나, 보다.”는 망발을 일삼았던 예다. 그런데 ‘평균 이상의 인간 상태에 이른 성인군자의 인격(?)’으로 예장 고신 정태홍 목사 인격을 모독한 Wolf이철은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에서도 ‘인신공격의 오류’를 저지름으로써 자신이 인격이 “평균적 인간의 상태에 이르지 못”한 소아병적 야비한 인격임을 증명한다. 다음은 “평균적 인간의 상태에 이르지 못”한 화인 맞은 양심으로 거짓증거를 일삼은 책,2)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 202쪽~203쪽에서 옮기는 글이다. 굵은 글씨는 내가 굵은 글씨로 쓴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에 대해 이상한 열정을 보이는 사람들이 율법이 요구하는 삶을 사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이상하게 그들의 성품이 야비하고 간교하다는 사실을 더 자주 보았다. 가장 율법에 대해 많이 말하는 사람의 성품과 삶이 율법과는 오히려 거리가 멀다는 것을 여러 번 확인했다. 왜 그럴까? 율법 타령 좋아하는 그에게 성령의 지배하심이 없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이미 거론했지만3) ‘예장 합동 꼴뚜기(서철원)파 Wolf들의 스승을 향한 그릇된 존경이 낳은 서철원 교조주의, 서철원 교조주의가 낳은 야비하고 간교한 소아병적 보복 심리’를 또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서철원 목사님이 “칼빈도 깨닫지 못한 성화론”이라며 주장하신 성화론, ‘선포(믿음 고백)으로 이루는 저절론 성화론’의 옳고 그름을 묻는 글, {페북} 손성은 목사님 담벼락 글에 서철원 목사님 인격을 모독하는 댓글이 있었다. 서철원 목사님이 총신신대원 교수 시절 “성격(인격)으로는 평균적 인간의 상태에 이르지 못”하셨음을 뜻하는 댓글이었다. 즉, 서철원 목사님 인격을 ‘인간 이하의 인격’으로 말한 댓글이었다. 그 댓글을 쓴 사람은 신대원 시절 서철원 목사님에게 배웠다는 허진행 목사였다. ‘선포로 이루는 저절로 성화론’의 옳고 그름을 묻는 글에서 허진행 목사는 ‘인신공격의 오류’를 저지르는, 수준 낮은 인격을 보여 준 것이다. 속담대로 “누워서 침 뱉는” 병신 육갑 짓, 후레자식 짓을 한 것이다. 비록 지금은 나 역시 “예장 합동 꼴뚜기(서철원)파”라는 조롱어를 계속 써가며 누워서 침 뱉는 후레자식 짓을 하고 있지만, 옳고 그름을 묻는 글에 ‘인신공격의 오류’를 저지르며 내 은사님이기도 하신 서철원 목사님 인격을 모독한 허진행 목사 댓글을 읽었을 때 성인군자가 아닌 내 마음속에는 열불이 일어나 이 후레자식을 두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쌍욕을 내뿜었다.
그런데 만약 허진행 목사가 어떤 그릇된 주장을 한다고 하자. 나는 소아병적 보복 심리로 ‘허진행 목사 수준 낮은 인격’을 언급함으로써 그 주장이 그릇됐음을 암시해야 할까? 아니면, ‘허진행 목사 수준 낮은 인격’과 상관없이 ‘그릇된 주장’만을 두고 논술해야 할까? 혹은 만약 허진행 목사가 진리 문제에서 바른 주장을 한다고 하자. 나는 소아병적 보복 심리로 ‘허진행 목사 수준 낮은 인격’을 언급해 그 주장이 그릇됐음을 암시함으로써 내 무덤을 스스로 파야 할까? 왜 예장 합동 꼴뚜기(서철원)파 Wolf들은 소아병적 보복 심리가 진리 문제에서 자신들 눈을 가려 자신들이 파놓은 이단의 무덤 속에 자신들이 빠져 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모를까?
<정태홍 목사의 신학의 발전과 진보를 진심으로 기원한다.>에서 Wolf이철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태홍은 다음과 같은 말을 처음부터 추가하였다.
“성경에 명시적으로 아담이 영생을 가진 상태라고 말하는 구절은 없다!”
정태홍의 말처럼, 아담이 영생하는 자로 창조되었다고 명시하는 내용은 성경에 없다. 그렇다고 아담이 머지 않아 죽을 사람으로 창조되었고, 하나님의 자식도 아닌 이상한 사람으로 창조되었다는 내용도 성경에 없다. 그러므로 아담의 상태는 추론의 문제이다. 성경 66권의 흐름, 그리고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에 비추어서 추론해야 한다. 나는 평소에 아담이 하나님의 자식도 아니고 영생도 없는 상태로 창조되었다는 행위언약-능동순종 주장들의 이론을 반박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추론을 자주 동원했다.
“명시적으로 …… 말하는 구절은 없다!”??? 그래서 “추론의 문제이다.”??????? ㅉㅉㅉ!!! Wolf이철이 나에게 관심도 없는 까닭으로 도돌이표 비평문을 쓰는 게 힘들다.
그동안 나는 입이 아프도록 ‘인간 본성의 네 가지 상태’에서 ‘타락 전 아담은 죄를 지을 수 없는 영화(영생)의 상태가 아닌 가변의 상태, 서철원 목사님 용어를 빌려 말하면 “피조물이 이를 수 있는 최상의 단계”가 아닌 가변의 상태였음’을 가르치는 신학이 ‘Wolf이철에게는 곧 {성경}인 서철원 신학’임4)을 앵무새처럼 말해 왔다. 또한 {개혁신앙 푸르내}와 {개혁주의 마을}에 ‘{기독교개혁신보} 이남규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이루신 모든 순종]’을 링크했다. 또 링크한다.
‘{기독교개혁신보} 이남규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이루신 모든 순종]’
http://repress.kr/24025/
다음은 위 링크 글에서 옮기는 글이다.
아담과 율법
우리가 먼저 알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진 자가 단순히 타락 전 아담의 상태로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영광의 상태에 오른다는 것이다.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고전 15:47~49)라고 말씀하신다. 따라서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됐을지라도 아직 하늘에 속한 상태는 아니었다. 창조된 아담의 생명을 하늘에 속한 생명으로 묘사하면 이 말씀과 어긋난다. 아담은 이 땅에서 자란 식물의 열매가 필요했으며, 그 몸은 영화롭게 된 몸이 아니었다. 따라서 아담의 상태는 ‘온전한 상태’(status integritatis)였으나 ‘영광의 상태’(status gloriae)는 아니었다.
우리 개혁신앙의 위대한 선조이신 어거스틴(아우구스티누스) 선생님께서 {신국론: 하나님의 도성 제13권}<23항>에서 인용해 해설하신 고린도전서 15장 47절~49절이 ‘원시 의를 가진 온전한 상태로 지으심을 받았던 아담은, 죄를 지을 수 없는 영생(영화)의 상태가 아닌, 자유의지로 하나님께 순종할 수도 있고 불순종할 수도 있는 가변의 상태였음’을, ‘아담은 영광(영화)을 누리는 상태, 서철원 목사님 용어로 “피조물이 이를 수 있는 최상의 단계(상태)”로 지으심을 받지 않았음’을 “명시적”으로 증거한 구절이다.5)
다음은 수차례 옮긴 도돌이표 인용으로 {서철원 박사 교의신학 ③: 인간론} 91쪽에서 옮기는 글이다.
아담은 원하면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능력, 원하면 죄를 지을 수 있는 능력, 자유의지를 가졌다.
다음도 수차례 옮긴 도돌이표 인용으로 {서철원 박사 교의신학 ⑦: 종말론} 128쪽에서 옮기는 글이다.
처음 창조 시 아담이 범죄하지 않았으면, 아우구스티누스가 가르친 대로 자연적인 몸이 영적 몸으로 변화됐을 것이다. …… 처음 창조된 몸이 영적 몸으로 변화되는 것은 자연적 과정이 전혀 아니다. 그것은 창조주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영생에 이르도록 영적 몸으로 변화케 하시는 것이다.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 다음 역시 그동안 수차례 옮긴 도돌이표 인용으로 {서철원 박사 교의신학: 그리스도론 ④} 226쪽에서 옮기는 글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영혼과 육체가 합치는 정도가 아니라 피조물이 이를 수 있는 최상의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
1) 예장 합동 꼴뚜기(서철원)파 Wolf들에게 여러 욕설을 서슴지 않으며 그들 인격을 공격했던 내가, 그동안 그들 인격을 두고 “평균적 인간 상태에 이르지 못”했음을 논술해 왔던 내가 “인신공격의 오류”를 말하니, 속담 “누워서 침 뱉기”나 ‘내로남불’을 떠올리며 나를 “평균적 인간 상태에 이르지 못”한 야비한 사람으로 생각할 분도 있으리라. 다시 말하면, “평균적 인간 상태에 이르지 못”한 인격으로 야비한 글쓰기를 해 온 사람으로 여길 분도 있으리라. 그런데 내 글쓰기를 “야비한 글쓰기”로 평가하는 분이 있더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내 글쓰기는 “평균적 인간 상태에 이르지 못”한 소아병적 인격을 보여 준 예장 합동 꼴뚜기(서철원)파 Wolf들을 향한 반동이었다는 점, 그들 야비한 글쓰기를 업그레이드해 되돌려주는 글쓰기였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평가로 생각하기에 신경 쓰고 싶지 않은 것이다.
2)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를 읽자마자 이를 두고서 글을 쓸 참이었다. 그런데 회사에 속한 비정규직(?) 노동자라서 Wolf이철 글쓰기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참고로, 회사 규정상 올해 8월 15일이 만 60세 정규직 정년 퇴임 일이었다. 그래서 ‘비정규직’으로 적고 물음표를 적었다.
3) <예장 합동 꼴뚜기(서철원)파 Wolf진남은 ‘거짓 음해’ 글을 그만 쓰기 바란다. ②>
https://cafe.daum.net/reformedcafe/jMaU/275
4) {개혁신앙 푸르내} 검색창에 ‘피조물이 이를 수 있는 최상의 단계’를 검색하면, 그 글들이 나온다.
5) 어거스틴 <‘행위언약’과 ‘마지막 아담의 표상으로서 첫째 아담’>: 불후의 확증편향 난독증 환자 Wolf진남
https://cafe.daum.net/reformedcafe/jMaU/154
첫댓글 너무 웃기지 않습니까? 같은 편일때에는 동영상 올려주고, 뭐 초야에 묻혀있는 신학 고수 대접을 해주더니, 반기를 드니 바로 찍어 누릅니다. 조폭 두목과 거짓의 아비가 따로 없습니다. 절대 이 사람의 영향력이 후대로 흘러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