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농원 옆에 농사의 달인이 가꾸는 밭이 있다. 주요 주인은 50대 초반의 미혼 여성이다. 어떤 날은 그의 어머니가 밭에 나오신다. 어떤 날은 오빠가, 어떤 날은 여동생 부부가 함께 오지만, 대부분은 그가 혼자 온다. 직장이 있는 여동생은 주말에 밭일을 거든다. 바쁜 일이 있는 날에는, 온 가족이 함께 오기도 한다.
그는 오전에는 마을 근처에 있는 다른 하우스로 출근하고, 오후에만 200평 남짓의 밭에 온갖 것을 기른다. 오후에만 출근하는 그의 밭에서 풀을 찾아보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그의 어머니는 우리도 함께 걸어 다니는 밭두렁 격인 통로도 풀 한 포기 없이 뽑으신다. 우리 복숭아 농원과 붙어 있는 그의 밭에 풀씨가 날아가는 것을 나는 늘 걱정한다.
그의 가족들이 밭에서 일하는 동안, 어떤 말소리도 들리지 않아서 누군가 일을 하고 있는 줄을 알아채기가 어렵다. 티격태격 툴툴대기 일쑤인 우리 농원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내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라디오라도 꼭 켜고 있는 나와는 전혀 다른 생소한 풍경이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라 만날 때마다 거의 비슷하다.
그들은 온 마음을 다해 식물들을 마주 보고 대화하는 것 같다. 핀셋으로 배추의 벌레나 달팽이를 잡고 있는 그의 진지한 모습은 진짜 농부란 저런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허리를 깊게 수그리고 그일 말고는 세상 모든 일이 하찮아서 관심 없다는 듯 최선을 다한다. 식물에 대한 예의를 지켜나가는 자세에 경외심이 든다.
깨밭을 맬 때도 마찬가지다. 깨가 다치지 않게 이리저리 젖혀가면서 숨죽여 신중하게 풀을 뽑는다. 등에 물통을 짊어지고 채소 한 포기마다 물을 주고 있는 모습은 너무 진지해서 말을 붙이기 조심스럽다. 반듯반듯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식물들은 말없이 정성을 쏟는 그 가족의 모습을 닮아 무럭무럭 잘 자란다.
그들이 농사짓는 또 하나의 특징은 빠르지 않다는 것이다. 매번 바빠서 급하게 손을 놀리는 우리와는 다르다. 천천히, 느리게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손놀림은 배추도 열무도 그 어떤 채소도 다치지 않게 신중한 움직임이 보인다. 그러면서도 어느 순간에 해야 할 일들이 깔끔하게 처리되어 있는 것을 보면 놀라울 따름이다.
만날 때마다 환하고 조용한 그의 미소가 반가워서 그 밭을 지날 때면, 꽁지발을 들고 고개를 돌려가며 그를 찾게 된다. 가족 모두가 맑고 깨끗한 인상이다. 환하게 인사를 건네고, 몇 마디 이야기가 끝나면, 또다시 조용한 동작으로 식물들을 향해 시선을 옮긴다.
농사의 달인들이 가꾸는 텃밭은 참외도 수박도, 고추와 가지, 쪽파, 콩, 깨 등이 건강하다. "내가 제일 행복해~"라고 노래를 부르는 듯 싱그럽게 커 간다. 주인인 그가 밭에서 일하면서도 찡그린 얼굴 한 번 하지 않고 온화한 표정으로 대했을 테니 식물인들 어찌 행복하지 않겠는가.
인심도 후한 옆 텃밭 주인과 블루베리와 복숭아를, 고추와 옥수수를 한아름씩 주고받으며 이웃으로 정겹게 얽혀가고 있다. 그와 인사를 나누고 나면, 내 마음까지 환해진다. 싱그러운 식물들에게 좋은 기운을 받아서 그런지 맑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그는 진짜 농사의 달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