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누는 삶, 연기적(緣起的) 삶에 눈떠야 합니다"
“나는 해월 스님이 좋아요./매일 우리를 반겨주시고/부처님처럼 인자하게 웃으시며/반겨주시는 걸 보니/부처님 같아요.(중략)/약방에서 할머니께서 침을 맞고 돌아오시니/병이 다 나았어요./우리 할머니 병을 고쳐주신/해월 스님이 좋아요.”
진정한 건강법
공주시 중동 147번지, 불광한의원과 붓다마을(불교서점, 불교용품점)이 마주하고 있는 골목길에 들어서자 알 수 없는 법열이 솟구쳤다. 붓다마을에서 흘러나오는 찬불가 소리를 들으며 기분좋게 불광한의원에 들어섰다.
“자, 이제 침 맞으면 좋아질 거다. 오늘 침 잘 맞으니 참 이쁘구나.” “스님, 고맙습니다.” 스님과 환자 사이에 흐르는 그 애틋한 분위기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마음을 먼저 열어야 합니다. 환자가 마음문을 열고 의사를 신뢰할 때 병세가 급속도로 호전됩니다.”
환자를 부처가 될 귀한 존재로 여기며 환자에게 다가가다 보면 오랜 병에 뒤틀린 환자의 마음 또한 봄눈 녹듯 열리고, 해묵은 지병이 사그라질 때가 많다.
“사람이 병이 들면 병에 마음을 빼앗기고 삽니다. 마음의 평형상태가 깨졌기 때문에 육체적인 고통도 더 심해지는 겁니다.”
스님은 환자의 굳어진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서 우스갯소리며 설법을 해주면서 스님 역시 마음 공부를 한다. 실로 개원한 지 이제 만 12년이 된 불광한의원은 스님의 가장 좋은 수행처요, 수많은 환자들은 스님을 진리로 이끌어주는 선지식이다.
“진정한 건강은 불법을 깨쳤을 때 이룰 수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살고자 애쓴다면 설혹 병에 걸린다 해도 병에 마음을 빼앗기는 일은 없으니 고통이 덜하고, 완쾌도 쉽습니다.”
새벽예불로 하루를 열며 대의왕(大醫王)이신 부처님 닮기를 지극하게 서원하는 스님은 아주 가끔 산사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수행하다 몸이 불편해 해월 스님을 찾은 눈푸른 납자들은 “아주 좋은 일을 한다”며 덕담을 건네곤 하는데, 그 수행승들처럼 산사에서 원없이 수행에만 전념하고픈 욕심이 생길 때도 있다.
하지만 곧바로 마음을 추스른다. 87년도 선방에서 한 철 보내며 용맹정진할 때 전법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았던가. 수행과 전법이 둘이 아닐진대, ‘저잣거리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부처로 섬기며 그들의 고통을 어루만져 주면서 살아가리라’는 원력을 새롭게 곧추세운다.
고향에서 하는 정토화 작업
“스님들은 대부분 출가하면 집을 떠나야 한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스님들마다 고향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지역사회문제도 해결해가면서 전법한다면 낯선 곳보다는 훨씬 나은 여건에서 출발할 수 있으니 더욱 잘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출가 후 은사이신 활안 스님을 잠시 시봉하고, 송광사 선방에서 한철 난 것을 제외하면 줄곧 고향인 공주에서 전법해온 스님의 말씀이 참으로 인상깊다. 고향의 뭇사람들로부터 마음 깊이 존경받고 있는 스님을 보면서 선풍을 크게 드날린 중국의 마조도일 선사의 일화(오랜만에 고향인 촉국으로 돌아온 마조 선사를 보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환영했는데, 그 때 한 노파가 “대단한 스님이 오시는가 했더니 겨우 키쟁이 마씨네 강아지(자식)로구먼”라고 하자 마조 선사가 “고향에는 올 것이 못 되는구나! 동네 할머니는 아직도 옛일로나 나를 알아볼 뿐이니”라고 중얼거리며 곧 강서로 돌아갔다.)가 생각나 미소지어졌다.
“일생을 부처님전에 바치고 철저하게 수행하시면서 불법을 전하는 아버님을 뵈면서 어릴 적부터 아버님처럼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왔지요.”
큰바위 얼굴이었던 스님의 아버님은 법륜종 제2세종정을 지내신 혜련당 일화 스님이시다. 지난 해 말 입적하신 일화 스님은 불교의 대중화를 위해 여생을 바치신 분이다. 마곡사에서 금담 스님을 은사로 동진출가, 마곡사불교전문강원에서 대교과를 수료하고, 동국대학에서 수학하였으며 여러 해 동안 교단에서 후학을 양성하다가 원효사를 창건하셨기에 그 원력이 더욱 지중했으리라.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승려의 아들로 절에서 생활한 스님은 그 인연만큼이나 깊게 아버님의 진리로 향한 삶을 이해했고, 아니 아버님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한의학을 전공하게 된 것도 아버님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한편 스님의 출가 인연은 아주 우연치 않은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대학에서 불교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한의사보다는 불교운동이 더 시급하다는 생각은 줄곧 갖고 있었는데, 80년 10월 27일의 충격이 내 삶의 방향을 확실하게 잡아 주었지요.”
10·27법난, 무장한 군인들이 성스러운 부처님 도량을 군홧발로 짓밟은 그 치욕적인 불교탄압의 현장을 직접 목격한 스님은 큰 충격을 받았다.
“‘불교계의 힘이 미약하기에 이런 수모를 겪는구나’하는 생각, 그 때 출가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지요.”
출가해서 많은 이들에게 불법을 전하고 불교계 자체 내의 힘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이 용솟음쳤다. 군종병을 지원, 법회를 주관하며 군인들의 가슴에 불법을 심어주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고 제대 후 곧바로 득도하여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원효 유치원생들과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계신 해월 스님. 저잣거리에서 이웃과 함께 수행하며 포교하며 동분서주하는 해월 스님은 금강사회복지관과 불우시설인 양지마을, 신원사 국제선원 등에 찾아가 침을 놓아주는 등 의료시혜를 베풀면서 한의학을 전공한 보람도 느끼고, 법회 출신 청소년들이 훌륭하게 성장해서 불교의 동량이 되었을 때 마음 뿌듯하지만 가끔 산사의 수행이 그립니다. |
문제아는 없다. 모두가 불성존재다
원력이 큰 만큼 할 일이 너무나 많아 불광한의원장 소임은 오히려 부업 같다. 원각회, 공주교대불교학생회, 울림불교학생회, 보리수불교학생회 등 법회만 해도 일주일에 대여섯 차례고, 불자들의 이런저런 요청 또한 스님을 바쁘게 한다. 요새는 주례를 맡아달라고 성화여서 출타할 일이 잦다. 신랑신부의 행복을 축원해주고, 예식장에 모인 많은 사람들에게 은연중 불법을 심어줄 수 있기에 법회시간만 겹치지 않는다면 가능한 한 들어주기로 작정한 것이다.
“지도법사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나 봅니다.”
1984년부터 꼬박 17년째 지도해오고 있는 울림불교학생회 같은 경우 매년 12월 31일에는 ‘울림의 밤’을 열고 있는데, 스님 뵙고 싶어 왔다는 졸업생들의 함성으로 이 축제의 장에서 스님의 인기는 절정에 이른다.
요즘 청소년 문제가 심각하다는 보도가 생각나 청소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여쭈었다.
“나는 여태까지 문제아를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습니다. 모두가 불성을 지닌 귀한 존재라는 것을 확실하게 믿고 모든 사람을 귀하게 대해야 합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나와 남이 똑같이 귀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게 한다면 문제아가 생길 리 없습니다.”
청소년 문제는 개인 문제라기보다 사회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사회에서 횡행되고 있는 문제들, 특히 절대빈곤, 실업, 가정폭력, 이혼, 살벌한 경쟁 등등 수많은 어른들의 문제가 청소년 문제를 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어떻게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어둠 속을 배회하는 청소년들로 하여금 불성존재임을 깨닫게 할 것인가?
“이제는 나누는 삶,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연기적 삶이 생활화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서로서로를 의지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은혜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기만 잘 살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한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자식 교육만 해도 자기 자식만 가르쳐서는 제대로 기를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서로 경쟁하는 것만 가르쳐왔고, 그 경쟁의 과정에 패배하여 자신의 삶을 마구 내팽개치듯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경쟁에서 이긴 사람도 진 사람도 다 문제입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자명하지 않습니까? 어릴 때부터 끊임없이 일러주어야 합니다. 부처님의 삶, 연기적 삶에 눈뜨고 봉사하며, 전법해야 합니다.”
해월 스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을 울렸다. 삶의 현장에서, 실천수행하는 스님의 말씀이기에 더욱 곡진하게 들려왔다. 불현듯 “마음이 청정하면 국토가 청정하다”는 원각경의 말씀이 생각났다. 그렇다. 우리 모두 부처님 말씀 대로, 우리 스님 말씀대로 연기적 삶, 나누는 삶을 실천한다면 이 국토가 청정해지리라. 참으로 행복한 세상, 맑고 평화로운 정토를 일굴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