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떼들에게로의 망명》 물 떠먹으러 등잔불을 들고 밖으로 나간다. 그 아스라한 빛이 분별해주는 삶의 넘어짐. 그러나 부엌에 가보니 새 찍어먹을 물도 없다. 꺼지려고 하는 불을 꺼치고 가슴의 불로 아예 샘으로 간다. 뚜벅뚜벅…… 거기가 샘이라고 시집을 내보내다니. 가엾어라 발앞의 어둠이여.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몇몇을 빼면 대개 첫 시집 이후의 것들이지만 그 사이에는 '사이' 이외 별게 없어 보인다. 그래도 대수롭지 않은 척 앉아 있자니 날이 저물어 베란다 창에 별이 몇 와 있다. 이 세월 위에 안장을 얹어 '탈' 수는 없는가. 없으니까 별이 얼얼하게 빛난다.
《젖은 눈》 오, 저 물 위를 건너가는 물결들 처럼,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문자 바깥까지 나가 내 몸뚱어리로 집도 짓고 나무도 심고……또 그 소출로 술도 사먹고 마음에 오는 빛도 좀 구경할 수 있는 날을 위해 다시 이 삐뚤어진 책 그릇을 들고 글자를 얻으러 나선다. 아니다 아니다 버리러!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문: 문 열고 들어가도 될까요? 답: 그래요. 그 대신 문은 돌로 막아버려요.
문: 나가고 싶은데 문은 어디죠? 답: 당신!
무너질 데라고는 나 자신뿐! 거길 깨고 나갈 밖에.
나갈 문도 없이 집을 짓는다. 그게 사랑이다. (그리고 능청이다. 삶 말이다.)
시화집
《별의 감옥》(Project·409, 1993) 나는 지금 어디를 두리번거리고 있는지. 두 눈 가려버리고 싶다. 자꾸 눈앞을 가리는 이 들, 는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