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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선도 삼원
지리풍수의 잘못된 속설들
출처: http://www.danhak.org/board_chunmunlec/1729
1. 의복풍(醫卜風)의 근본
예로부터 지리풍수(地理風水)와 복술(卜術)과 의술(醫術)은 하나의 이치로 통한다고 한다.
의복풍(醫卜風)의 근본이치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의학은 장부의 왕약허실(旺弱虛實)을
사주(四柱, 卜術)는 오행의 왕약한열(旺弱寒熱)을
지리풍수는 지기(地氣)의 왕약순역(旺弱順逆)을 밝히는 학문이다.
의학이나 복술에 대하여는 기회가 있으면 차론하기로 하고
지리에서 왕약은 기운(산세)이 강한가 약한가의 문제이고
순역은 산세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은 順이고 거스르는 것이 逆이 된다.
지리에서 순역(順逆)을 밝히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산의 기운이 똑같이 맺힌 자리라 하더라도 기운이 역하는 곳의 영향력은
기운이 순한 자리의 그 것보다 대략 열 배의 강한 영향력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혈穴을 찾을 때에는 기운이 逆하는 자리에서 찾아야 한다.
순과 역을 세세히 살펴 알지 못하면서 산소자리의 좋고 나쁨을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순역을 무시하고 어떤 인물이 나온다고 말하는 것은 허황된 것이다.
2. 공동묘지
공동묘지제도는 일제하에서 만들어진 제도이다.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의 땅이 좁고 국토가 황폐해 질 것을 염려해서 공동묘지를 만든 것은 아니다.
그들은 우리나라의 산세가 좋아 인물이 많이 날 수 있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산허리 요소요소에 쇠말뚝을 박아 민족의 정기를 끊으려 하였고
바로 이러한 취지에서 명당에 산소 쓰는 것을 막으려고 공동묘지라는 방법을 고안한 것이다.
지금은 일본인들이 산허리에 말뚝을 박는 것보다 더한 일이 이 땅에 사는 자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으니
개탄을 금치 못할 일이다.
개발과 토석채취의 명분으로
수려한 정기가 서린 산허리를 무분별하게 끊고 파괴하는 행위는 민족의 정기를 끊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개발도 하여야 할 것이고 토석채취도 필요하다.
그러나 백두대간의 정기를 훼손하지 않고 이를 피해서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쓸모 없는 산을 깎아서 개발을 하여도 충분할 것을 굳이 백두대간의 허리를 끊어야 하는지 애통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우리나라 공동묘지는 모두 산맥에서 벗어나 있다.
그런가 하면 습하고 비탈지고 산의 귀퉁이 또는 산 옆구리. 골짜기. 등에 공동묘지 터를 잡고
그곳에만 묘지를 만들게 하였던 것이다.
공동묘지 안에 묘지를 만들면 아무런 피해도 없다고 선전하였으며
공동묘지에 묘를 쓰지 않으면 가혹한 체형도 가했다는 어른들의 말씀도 들을 수 있었다.
일부 사람들은 아직도 이 일을 알지 못하고 공동묘지에 들어가면 변고가 없다고 한다.
우리민족은 조상의 유골을 잘 모시는 것을 효도로 알고 예를 다하는 민족이다.
그러한 민족이므로 화장을 강요하면
반란이나 소요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화장보다는 공동묘지 쪽으로 제도화하였던 것이다.
3. 巳時 하관문제(택일문제)
지리풍수를 가르키는 어느 단체에서는 주로 巳時에 하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巳時는 오전 9:30 에서 오전 11:30 사이의 시간을 말한다.)
巳時하관은 이치적으로는 그 근거가 없다.
굳이 근거를 들자면 하관일 아침 6시부터 땅을 파기 시작하면
오전 10-11시쯤 하관하게 되고 하관을 마치고 나면 점심식사를 하고 집에 돌아가기에 적당한 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인체의 기혈도 활동이 왕성한 때와 미쇠한 때가 있듯이 산의 혈도 마찬가지이다.
하관은 산의 기혈의 왕쇠시간에 살펴서 시간을 맞추어야지 후손의 편의에 맞추어서는 안될 것이다.
택일도 생기, 복덕을 따지는 등 '천기대요'식의 택일법이 정설처럼 되어있다.
그러나 천기대요는 북방택일법이라고 하여 중국인들도 저급하게 여기는 택일법임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4. 石物 등
비단 호화분묘에서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비석과 상석을 비롯해서 축대에 이르기까지 석물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분묘에서 석물을 사용하는 것은
석물을 제공하는 산과 그것을 사용하는 봉분이 둘 다 망가지는 효과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첫째 필요한 암석은 어디선가 채취를 하여야 하는데 채취를 당하는 산이 망가지게 마련이다.
통째로 산을 부수어 캐는 곳 뿐 아니라 일부에서 암석을 채취하여도 산이 망가지기는 마찬가지이다.
돌 혹은 바위는 산에서 기혈의 흐름에 중요한 영항을 미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산소에 축대를 쌓게 되면 후손들간의 불화가 발생하는 등 산소에 아주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한 비싼 돈을 들여 석관을 쓰는 곳도 있는데
이 또한 후손들이 무지한 탓에 돈을 들여가면서까지 자신들의 화(禍)를 자초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5. 윤달이나 청명, 한식에 성묘를 한다는 속설
이 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다.
이러한 설이 내려온 유래는 다소 어처구니가 없다.
내력인즉 하인을 부리던 양반들이 조상을 중히 여기는 우리의 전통사상에서 하인이라고 해서
조상의 산소에 가는 일을 막기 어려웠던데에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묘안이 윤달과 청명 한식이다.
윤달은 3년에 한 번씩 돌아오고 청명 한식은
언 땅이 풀리고 새싹이 나기시작하는 시기이므로 하인들이 덜 바쁜 시기이다.
따라서 하인 부리는 시간을 확보하기가 용이했기 때문에 이런 말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윤달이나 청명 한식에 묘지를 손질하고 성묘하라고 한 것을 정법(正法)으로 알고 있으나
이것이 양반이 하인을 부리기 위해 고안해낸 묘안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를 따르는 것은 옛부터 자기의 집안이 하인의 집안이었거나
상민의 집안이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니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리풍수의 정법은 윤달과 본달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력(自然歷)인 절기(節氣)를 기준으로 그에 해당하는 길일을 택하여야 한다.
이와 유사한 속설이 또 있다.
자식이 결혼할 때 부모가 결혼한 달은 피해서 택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 것이다.
이건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하다보면 부모가 태어난 달에 태어날 아이들은 세상에 나오면 안 된다는 말까지 나와야 한다.
결혼은 분명히 경사이며 부모가 결혼한 달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그런 달은 경사가 겹치는 좋은 달이다.
괜한 법칙을 만들어서 혹세무민(惑世誣民)하기 위한 낭설일 뿐이다.
6.조상의 유골을 화장하는 문제
근래에 들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납골당과 조상의 유골을 화장하는 문화는 본래 일본인이 바라고 원하는 것이었다.
그에 편승하여 이를 사회적으로 공론화 하여
성묘나 묘지 관리의 번거로움을 들면서 조상의 유골을 화장하여
납골당이라는 곳에 한데 모아 놓거나 아예 없애버리는 것을 흔히 볼수 있다.
이것은 나를 낳아주신 조상과 나의 인연의 고리를 완전히 끊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주변에서 종종 유골을 화장하여 집안이 몰락하거나 변을 당하는등 화를 입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화장하는 문화는 우리가 조상에 대한 공경심을 생각해서도 해서는 않될 일이지만
지금의 나 자신의 근본을 불태워 버린다는 것 또한 인간의 도리라고 볼 수 없다.
주역에서도 자식이 그 부모를 죽이거나 제자가 스승을 폭행하거나 하는 일들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고 했다.
이미 땅속에 묻혀 있는 부모의 시신은 가만히 놔두면 자연스럽게 흙으로 돌아갈 것인데
성묘의 불편함 때문에 공연히 마음을 내서
화장을 하자고 하는 사회에서 어찌 자식에게 효도를 바라고 제자에게 공경을 바랄 수 있겠는가.
화장을 하여 부모의 시신을 없애는 일은 차라리 부모의 산소를 잊고 성묘를 하지 않으니만도 못한 일이다.
7. 토란에 대하여
명당에는 토란이 들어 있는 경우가 있다. 보통 하나에서 여섯 개 이상 들어있는 경우도 있다.
토란이란 땅의 기운이 뭉쳐서 흙이 돌처럼(돌은 아님) 단단하게 뭉쳐진 것으로
모양은 동그란 구슬모양으로 크기는 어른의 주먹크기 보다 조금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다.
그런데 이 토란이 나왔을 때 토란을 혈穴의 증거 정도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토란을 파 내고 그 자리에 시신을 안장시키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토란은 혈이라는 증거 이상의 이미가 있으니 토란을 보게 되면
토란이 나온 깊이에서 더이상 파 내려가지 말고 토란 위에 시신을 안치시켜야 옳은 것이다.
그리고 토란을 손상시켜서는 안된다.
토란을 보고 그 것을 깨보거나 발로 밟아 부셔보거나 혹은 기념으로 집에 가져오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위험한 행동이다.
토란을 손상시킨 사람은 요절하거나 우환이 생기거나 하는 불행을 겪게 되며
그 자리에 안치된 시신의 후손도 이와 비슷한 불행를 겪게 되니
토란은 있던 자리에 그대로 보존시켜야 하고 꺼내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만약에 나쁜 감정을 섞어서 토란을 훼손시킨다면 그 사람은 멸문의 화를 입을 수도 있으니 토란은 신중히 다루어야 한다.
선도수행
[선도]
조식수행과 건강
출처: http://www.danhak.org/board_sundo/260
1. 질병의 원인
수많은 질병
질병의 종류를 일일이 나열하고자 하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
또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이름이 없는 질병까지 포함하면 그 종류는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이렇게 많은 질병의 발생과 퇴치에 대하여 현대의학의 시각에서는
실로 병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하고 복잡한 분석과 대책이 나와 있다.
그러나 선도의 체계에서는 단순 명료한 하나의 틀로 모든 질병을 설명한다.
원인은 사기(邪炁)
앞에서 말한 하나의 틀이란, ‘정기(精炁)’와 ‘사기(邪炁)’로 구분하는 것이다.
즉, 기는 인체에 유익한 정기와 해로운 사기의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이 중에서 질병은 사기에 의해 발생된다.
사기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경맥(經脈)과 낙맥(絡脈)을 타고 인체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오장육부(五臟六腑)의 기능을 약화시키다가,
인체의 허약한 부분에 자리 잡고 뭉치게 되면 그 부분에서 질병이 발생하는 것이다.
오장육부의 허실(虛實)배합에 따라 질병의 종류가 나누어지며,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러나 근본 원인은 사기(邪炁) 하나로 귀착(歸着)된다.
어떤 질병을 놓고 볼 때, 그 원인은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므로, 어느 한 가지만을 딱 꼬집어서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원인을 추적하다보면 가장 꼭대기에는 사기(邪炁)가 있는 것이다.
사기의 발생은 음식물과 풍한서습(風寒暑濕) 등 여러 원인이 있지만,
가장 주된 원인은 감정손상(感情損傷:스트레스)을 받을 때 발생된다.
모든 병이 마음에서 온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질병의 예방은 마음으로부터
감정손상은 스스로가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데서 받게 된다.
조식수행을 통하여 마음을 다스리는 훈련이 숙달되면 웬만한 일로는 감정을 손상 받지 않게 된다.
스스로가 스트레스를 스트레스로 받아들이지 않고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면 사기는 발생되지 않는다.
따라서 질병도 예방할 수 있게 된다.
2. 정기(精炁)와 사기(邪炁)
정기는 마음이 편하고 고요한 가운데에 발생하며, 사기는 마음이 격동(激動)하는 가운데에 발생하는 기운이다.
정기(精炁)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활력을 주고 질병에 대한 방어체계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사기(邪炁)는 이와 반대로 질병을 발생시키는 역할을 한다.
조식수행(調息修行)을 할 때에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는 이유는
기(炁)를 쌓아서 정기(精炁)를 발생시켜 축적해 나가기 위해서이다.
일반적으로 조식수행을 통하여 기를 쌓는다고 할 때의 기는 정기를 가리킨다.
이 두 종류의 기는 인체에 서로 상반된 영향을 미치므로, 어느 쪽이 우세한가에 따라 건강과 질병으로 나뉘게 된다.
정기와 사기의 관계를 북창(北窓) 정염(鄭?) 선생의 용호비결(龍虎秘訣)에서는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의 관계라고 하였다.
이 말의 뜻은 일반적으로는 도저히 서로 어울릴 수 없는 관계를 의미한다.
직역하면, 얼음과 숯불의 성질이 정반대여서 서로 용납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즉, 몸 안에 정기(精炁)가 강하면 사기(邪炁)는 녹아서 없어질 수밖에 없다.
면역력이 강해서 방어체계가 확고한 오장육부(五臟六腑)에는 질병이 침투할 수 없는 것이다.
반대로 사기가 강하면 정기는 힘을 쓸 수 없게 되고 질병이 침투하게 된다.
복잡한 현대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바보가 아닌 이상 한번도 화내지 않고 감정(感情)의 기복(起伏) 없이 살아가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화나고, 슬프고, 짜증날 때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질병의 근원인 사기는 어김없이 발생한다.
그만큼 현대인은 질병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3. 질병예방과 조식수행
현대인들은 당뇨, 비만, 고혈압, 암 등 각종 성인병에 시달리고 있다.
현대의학에서는 모든 질병에 대한 공통적인 예방책으로 적당한 운동과 스트레스 해소를 들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한 단계 앞선 예방책을 들라면,
조식수행(調息修行)으로 정기(精炁)를 양성하는 것이 질병예방에 대하여 보다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비만 등의 경우
비만은 그 자체도 문제이거니와 당뇨나 고혈압을 비롯한 각종 성인병으로 발전하는 등의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비만이 되는 원인은 많은 칼로리의 섭취와 적은 소비에 기인한다.
따라서 비만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칼로리를 많이 소비해야 한다.
칼로리를 많이 소비하는 방법이 운동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을 것으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운동 외에 조식수행으로도 칼로리를 소비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거동(擧動)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데 무슨 칼로리를 소비하느냐고 하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조식수행(調息修行)은 다음 장에서 설명할 정기신(精炁神)을 기르는 과정에서
인체 내에서 지방을 산화시키면서 많은 칼로리를 소비하여 비만에 대단한 효과를 발휘한다.
또한, 비만은 과도한 식탐(食貪) 때문에 오는 경우가 많은데, 식탐의 원인은 인체기능의 부조화에 있다.
조식수행은 신체의 기능을 전반적으로 정상으로 복구시키게 되므로, 식사량도 필요한 만큼만 저절로 조절이 된다.
따라서 조식수행을 통하여 비만은 근본적으로 치유되는 효과를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정신질환과 조식수행
현대인들은 스트레스로 인한 육체적 질병뿐만 아니라,
불면증과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으로도 시달리는 경우가 많이 있다.
조식수행은 무엇보다도 마음을 다스리는 정신수행(精神修行)이다.
조식수행(調息修行)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정신질환이 생길 리가 없지만,
일반적인 정신질환이라면 아주 심각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 달 정도의 수행만으로도 큰 치료효과를 볼 수 있다.
운동과 휴식으로서의 조식수행
조식수행은 지방을 산화시킬 뿐만 아니라, 휴식의 효과도 함께 동반하여 피로를 회복하는 효과가 있다.
조식수행은 폐기(閉炁)와 피로회복이라는 두 가지 효과를 함께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피로회복의 효과는 하루 이틀만 해보아도 바로 느낄 수가 있다.
정력(精力)과 조식수행
한편, 조식수행은 심장(心臟)과 신장(腎臟)의 기능을 제일 먼저 강화시킨다.
그리하여 차례차례로 각 장부(臟腑)에 연쇄효과를 일으키며, 마침내는 전체적인 기능을 강화시키게 된다.
먼저 신장기능이 강화되는 까닭에 정력(精力)의 강화로 이어져 성욕(性慾)이 증가하게 된다.
여기서 절제를 하지 않으면 수행의 진전에 방해가 되니, 이는 경계해야 한다.
질병의 예방과 조식수행
암(癌)을 비롯한 오장육부(五臟六腑)의 각종 질병도 사기(邪炁)가
오장육부에 자리 잡는 것을 정기(精炁)가 약해 사기를 방어하지 못한 데서 기인하는 것이다.
병이 발견된 정도면 상당히 진척된 시기이므로 치료하기도 간단하지는 않다.
암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각종의 현대 양약들은 극약처방에 가까운 것이 많아서,
이런 약을 쓰고 나면 후에 생약제로 치료할 때 잘 듣지 않는 부작용도 있다.
따라서 조식수행(調息修行)을 통하여 정기(精炁)를 발생시켜
사기(邪炁)의 성장을 억제하는 것이 질병예방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조식수행을 어느 정도 하게 되면
모든 질병에 대한 예방의 효과가 있게 되는가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것이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앞으로 설명할 소주천(小周天)의 완성만으로도 대부분의 질병은 예방할 수 있다.
건강차원으로 조식수행을 한다면 소주천을 완성하고 꾸준히 수행을 지속한다면
충분히 일생을 질병에 대한 고통 없이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상은 정신수행(精神修行)의 세계, 즉 깨달음을 향한 수행이 된다.
이상에서 지극히 간단한 논리로 질병에 대하여 설명하였지만,
선도수행의 체계에서는 그 이치가 복잡하지 않고 지극히 단순하다.
질병이 단순한 원인에서 출발하여 수많은 종류의 질병으로 분화하듯이,
조식(調息)이라는 단순한 방법의 수행으로
무병장수(無病長壽)를 넘어 마침내는 해탈(解脫)의 경지에도 이르게 되는 것이다.
선도 수행법의 종류
출처: http://www.danhak.org/board_sundo/257
선도수행법(仙道修行法)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폐기(閉氣)를 통한 조식수행(調息修行)과 주문(呪文)을 낭송하면서 하는 주문수행으로 나눌 수 있다.
조식수행은 조식으로써 마음을 비우고 정신을 밝혀나가며 태허에 이르기 위한 수행이며,
주문수행은 주문을 낭송하면서 주문에 정신을 집중하여 마음을 비워 태허에 이르러 신통력을 얻기 위한 수행이다.
다른 말로는 조식수행을 우도(右道), 주문수행을 좌도(左道)라고 한다.
조식수행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삼시충을 잡아내야 성공이 가능하며,
주문수행도 마찬가지로 삼시충을 제거한 후에야 통령을 이루고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주문수행 중에서도 은형법이나, 취인장물법 등과 같이 저급한 주문은 삼시충에 관계없이 통령이 가능하다.
이처럼 수행하는 방법에 따라 주문수행과 조식수행으로 나눌 수 있으나,
같은 계제에서는 조식수행자를 상위로 보며 조식수행도 계제가 높아짐에 따라 여러 가지 신통한 능력이 곁가지 처럼 생기게 된다.
[정기신]
정
출처: http://www.danhak.org/board_jungkisin/264
연정화기(鍊精化炁)
정(精)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정력(精力)이라는 일상적인 용어가 비슷하긴 하지만 조식수행에서 말하는 정은 보다 현학적(玄學的)인 개념이다.
내경(內經)에 이르기를 정은 곡식에서 생긴다고 하였다.
정은 사람이 음식을 섭취하여 만든 원초적인 에너지인 셈이다.
내경에서는 정은 태어나서 사춘기에 이르기까지는 계속 채워지며 그 양이 증가하는데,
사춘기가 지나면서 누정(漏精)되기 시작하여 나이가 들어 늙게 되면 정이 고갈되어 사람은 죽게 되는 것이라 하였다.
용호비결(龍虎秘訣)에서 조식수행은 일찍 시작하는 것이 귀하다고 하였는데,
그 이유는 사춘기 때 정이 가장 왕성하기 때문이다.
정은 오행으로는 수(水)에 해당하며 오장(五臟)으로는 신장(腎臟)이 주관한다.
조식수행을 하면 정은 기로 화(化)하는데 '정이 기를 낳는다' 혹은 '기른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것을 연정화기(鍊精化炁 - 수행으로 정이 기를 낳는다)라고 한다.
가정에 비유하면 아버지의 재산과 지위가 올라가면 어머니도 같이 올라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기
출처: http://www.danhak.org/board_jungkisin/268
연기화신(鍊炁化神)
기는 정이 양(陽)의 개념인 것에 대해 음(陰)의 개념이다.
정에서 비롯되어 음양이 어우러지듯이 정을 보좌한다.
가정에서 어머니가 아버지를 내조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래서 기는 정을 보좌한다고 하는 것이다.
기는 수행을 통하여 신으로 화(化)하는데, 다른 표현으로는 ‘기가 신을 낳는다’고 한다.
어머니가 자식을 낳아 기르듯이 기는 신을 낳고 보호한다.
이것을 연기화신(鍊炁化神 - 수행으로 기로써 신을 낳는다)이라고 한다.
기에는 강한 것과 부드러운 것이 있다.
기는 부드러워야 신으로 화할 수 있다.
강한 기는 굵고 짧게 호흡을 하는 지식(止息)에서 나오고, 부드러운 기는 가늘고 길게 하는 조식으로 생겨난다.
강한 기는 차력에서 보듯이 파괴력이 목적이고, 부드러운 기는 깨달음이 목적이다.
강한 기는 신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결국에는 신으로 화한 부드러운 기를 이길 수 없게 된다.
이것이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기는 오행으로는 목(木)이 되고 오장(五臟)으로는 간(肝)이 주관한다.
기가 넘쳐 분수를 모르고 날뛰는 사람을 일컬어 ‘간이 부었다’고 하는 말은
기를 주관하는 오장이 간이 되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인간의 몸에는 4개의 소통길이 있다.
인간의 몸에 소통(疏通)되는 통로가 4가지가 있다.
혈관(血管)이 통하고 신경(神經)이 통한다.
그리고 태아에서 받아 성장한 기(炁)가 통하고 수행자가 호흡으로 천지만유로부터 얻은 기(炁)는
뇌와 심장 현관(玄關)을 통하여 전신에 소통되는 길이 퍼져 있다.
몸속에 저장된 炁가 이렇게 인간의 몸에서 작용을 하여 지혜롭게 깨달음을 얻게 하고 늙음도 늦추게 하는 것이다.
신
출처: http://www.danhak.org/board_jungkisin/270
연신환허(鍊神還虛)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신은 기에서 나온 것이다.
신은 오행으로 화(火)에 해당하며 빛으로 상징된다. 오장(五臟)으로는 심장(心臟)이 주관한다.
이러한 관계로 도가에서는 심장을 신의 안방이라고도 한다.
신은 정과 기와는 달리 크고 작은 양의 개념이 아니고 밝고 어두운 빛의 개념이다.
정기가 왕성하면 신은 밝게 빛나고, 정기가 쇠약하면 신은 빛을 잃게 된다.
자식이 부모의 보호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쌓인 기가 신으로 화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
어떠한 욕망이나 생각도 일으키지 않고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혀야 기로써 신을 기를 수 있게 된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마음의 상태가 가능하지는 않다.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노력을 하다 보면 잠깐 동안씩 고요해 지면서 차츰 나아지다가
마침내는 마음이 완전히 비워지는 허(虛)의 상태까지 이르게 된다.
그 때 즈음이면 이미 상당한 경지에 올라 있게 된다.
신은 몸의 주인이다
신은 몸의 주인이고, 마음은 신의 주인이다.
이 두 가지사실은 대단히 중요하다.
신은 정과 기에 의지하여 빛을 발하는데, 정기가 고갈되면 신은 의존할 근거가 없어
그 빛을 잃어 마침내 몸을 떠나게 되어 사람이 죽게 되는 것이다.
정기신을 기르면 건강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신이 몸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한편, 마음은 신의 주인이므로 마음이 가면 신도 따라 가고, 신을 보좌하는 정과 기도 자연히 따라간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인 까닭은 바로 마음이 신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조식수행을 할 때 시선을 아래에 두고 의식(마음)을 오로지 단전에 두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음과 신의 주종관계에 대한 설명을 좀 더 이어보자.
신은 마음의 빛이다
신을 빛의 개념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의 빛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태양이나 전등의 빛처럼 눈에 보이는 빛이 아니라 마음의 빛이다.
눈에 보이는 빛은 형이하학(形而下學)적 개념이지만, 마음의 빛은 형이상학(形而上學)적인 개념이다.
정기신을 설명하고 이해시키기 어려운 이유는 형이상학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구분도 실은 이 또한 상대적 개념이다.
"귀신이 어디 있냐고 하면서 죽으면 모두 끝이다." 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귀신이 형이상학의 개념이 되지만, 귀신을 보면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에게는 귀신은 이미 형이하학이기 때문이다.
어떻든 신은 조식수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만큼 수행의 꽃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정신이라는 단어는
정기신을 줄인 말로 근원을 거슬러서 유래를 살피면 도가의 전문용어이다.
기를 뺀 이유는 아마도 근원인 정의 최종 목적은 신의 배양에 있기 때문인 듯하다.
마음의 빛인 신은 시공을 초월하여 모든 곳에 도달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신이 도달하지 않는 곳은 없으며, 알 수 없는 것도 없다.
신은 그 밝음의 범위 내에서는 전지전능하다.
다만, 신의 밝기에 따라 능력의 고하(高下)가 있을 따름이다.
밝을수록 보다 멀리 보다 많은 것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을 넘어서는 곳까지 도달해서 알 수 있게 된다.
수행을 통하여 스스로 길러낸 마음의 빛인 신이 도달해서 알게 되는 것이 곧 깨달음이다.
도의 세계에서 모든 일은 마음으로부터 비롯한다.
수행 중에 나타나는 마장과도 마음으로 싸우며, 보는 것도 아는 것도 모두가 마음으로 이루어진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은 마음으로 나누는 대화이며,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도 그 내막은 석가와 가섭존자(迦葉尊者)간의 마음의 대화이다.
예로부터 대덕고승이나 계제가 높은 도인들간에는 의사를 소통하는데 말이나 글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한쪽에서 마음을 일으키면 신은 자연히 따라 움직이고,
상대방의 거울 같은 마음이 이것을 감지하여 상대방의 의중을 읽었던 것이다.
깨닫기 위해서는 신을 길러야 한다
모든 것을 완전히 깨닫기 위해서 마음이 허(虛)로 들어가야 하는 이유는 우주의 근원이 허(虛)이기 때문이다.
연신환허(鍊神還虛 - 신을 연마하여 허로 돌아감)라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 부분은 다음의 역즉위선逆則爲仙에서 좀더 자세히 설명)
신이 멀리 허(虛)에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대단히 밝아야 가능하다.
마음이 가고자 하여도 신의 밝기가 부족하여 따라가지 못하면 알 수가 없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모르는 것이 많아 답답한 것도 신이 밝지 못하여 연고를 밝히지 못하는 이유에서이다.
사람에게는 각자의 정과 기에 해당하는 만큼의 신이 있다.
예감이나 예지력, 텔레파시 등은 모두 신의 작용이다.
다만, 신이 충분히 밝지 못하여 분명하지 않을 따름이다.
조식수행에서 현상(現象)과 회광반조(回光返照)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는 모두 마음의 빛으로 미래와 과거를 비추어 보는 것이다.
수행의 단계에서 소주천 말기쯤부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눈앞에서 눈이 내리는 것이 보이는가 하면 밝은 빛이 현상되어 보이기도 한다.
이 때가 비로소 수행을 통하여 신의 밝기가 사람들과는 구별되기 시작하는 단계이다.
처음에는 현상이 희미하게 나오다가
수행이 깊어질수록 점차 밝게 보이는 이유는 수행을 통하여 신의 빛이 점점 밝아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보고자 하는 것이 현상으로 나오지 않고 엉뚱한 것들이 나오다가
신이 더욱 밝아지면 마침내 궁금하고 알고 싶은 것들이 현상으로 나오게 된다.
이렇게 차근차근 정기신을 길러서 신이 밝아지면 궁극적인 깨달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상에서 정기신의 상호관계와 육체와 신의 관계 그리고 마음과 신의 관계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천지인’이나 ‘정기신’ ‘육체와 신 그리고 마음’ 이들 삼자의 관계는
삼위일체의 개념으로서 만유에 대한 설명이 되므로 이 관계를 이해하면 비단 조식수행뿐만 아니라
동양문화 전반에 걸쳐서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소주천]
소주천이란
출처: http://www.danhak.org/board_sojuchun/338
단전(丹田)으로 기운이 내려가는 것을 느낀 후에 폐기(閉氣)를 꾸준히 하게 되면,
그릇에 물이 차서 넘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는 단전에서 조금씩 왼쪽으로 넘쳐 흐르게 된다.
수행자가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왼쪽으로 가는 행적이 있는 것 같다가
점점 무난하게 왼쪽으로 밀려간다.
이제 단전에서 좌협으로 길이 열려 소주천(小周天)이 시작되는 것이다.
수행에 계속하여 정진함에 따라 기운이 좌협을 거쳐 명치, 우협, 하단전으로 한바퀴 돌게 되는데, 이를 소주천이라 한다.
좌협: 왼쪽 옆구리선을 따라서 맨 아래 갈비뼈의 끝부분
명치: 가슴의 정 중앙선을 따라서 갈비뼈가 좌우로 갈라지기 시작하는 부분.
우협: 오른쪽 옆구리선을 따라서 맨 아래 갈비뼈의 끝부분
하단전: 단전보다 한치 아래, 한치 안쪽으로 들어간 부분에 위치함.
< 소주천의 행로 >
무위자연
출처: http://www.danhak.org/board_sojuchun/340
소주천의 행로를 설명하기 전에 소주천과 대주천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원칙이 무위자연이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은
도가의 기본사상으로 노력은 자연의 이치에 맞게 하고, 결과는 인위적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무위자연은 ‘될 대로 되라’ 와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
원인이 없으면 결과가 없듯이, 노력이 없으면 결실도 없다.
원인이 되는 일을 함에 있어서는 이치에 순응하여(법도에 따라) 최선을 다하되,
결과만큼은 기다리라는 의미이다.
하늘(자연)의 이치에 순응한 노력은 당연히 결실이 있을 것이고,
노력은 있었으되 하늘(자연)의 이치에 어긋난 노력이면 결실이 없게 된다.
뱃속에 있는 아이를 빨리 보고싶다고 해서 한 달만에 속성으로 꺼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빨리 소주천을 이루고 싶은 마음에 기를 인위적인 마음으로 보내면
기는 제 갈 길로 가지 않고 엉뚱한 방향으로 가게 된다.
태아는 뱃속에서 길러져 열 달이 되면 자연히 세상 밖으로 나온다.
단전에 있는 기도 충분히 길러지면 스스로 알아서 자연히 제 갈 길로 이동하게 된다.
단전에서 출발하여 원신출태에 이르기까지 조식수행의 전 과정은 이런 점을 유념해야 한다.
단전에 구멍이 열림
출처: http://www.danhak.org/board_sojuchun/341
폐기를 꾸준히 하게 되면 그릇에 물이 차서 넘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는 단전에서 조금씩 왼쪽으로 넘쳐흐르게 된다.
수행자가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왼쪽으로 가는 행적이 있는 것 같다가 점점 무난하게 왼쪽으로 밀려간다.
이것을 두고 단전에서 하나의 길이 열렸다고 말한다.
단전에서 좌협으로 길이 열리는 것으로 소주천이 시작되는 것이다.
단전에서 좌협으로
출처: http://www.danhak.org/board_sojuchun/342
단전에서 넘친 기는 좌협으로 이동해 간다.
기가 좌협으로 이동하면 제법 통증이 있다.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히 거북스럽고 따끔따끔하다.
감각으로 봐도 탁구공 정도의 크기로 느껴진다.
이 때 빨리 이루고자 하는 조급한 마음에서 인위적으로 소주천을 돌리기 위해 힘을 주어 밀면
기는 가야 할 곳으로 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간다.
단전에 기가 넘치면 자연히 스스로 넘어가 좌협으로 가는 것이므로 절대로 억지로 밀어서는 안 된다.
왼쪽으로 움직여 나갈 때 한 번에 쭉 가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처음에 무엇인가 있는 듯 없는 듯 하다가
수행을 거듭하면 행로가 분명해지면서 좌협에 기운이 차게 된다.
왼쪽으로 나갈 때 힘으로 밀면 기운이 좌협에서 머물지 않고 등뒤로 넘어가거나 엉뚱한 곳으로 가 버리기도 한다.
럭비공을 바닥에 힘껏 튀기면 어느 곳으로 튈 지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억지로 밀지 않고 자연스럽게 가만히 폐기를 계속하면 기운은 갈 자리까지만 가서 그 행로를 멈춘다.
이 때쯤이면 조식의 수준은 약 35초 정도가 된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호흡의 길이가 35초 정도가 되면 좌협까지 가는 것이 아니라 그 만큼 수행을 열심히 하면
조식의 길이가 35초 정도가 된다는 것이다.
호흡의 길이를 여기에 맞추기 위해 기를 쓰고 호흡을 늘리려 하는 이가 있을 것 같아 미리 일러두는 바이다.
좌협에서 명치로..
출처: http://www.danhak.org/board_sojuchun/343
기가 좌협까지 충분히 간 후에는 이 곳에서 상당기간 머무르며 성숙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명문을 향하여 대각선으로 서서히 진행한다.
보통사람은 하루 약 2~3시간 씩 수행하여 2개월 정도는 걸리겠으나,
하루 5시간 이상 수행할 수 있는 전문수행자는 1개월 정도면 가능할 것이다.
이 때에도 힘으로 밀려고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조식만 해야 한다.
좌협에서 밀게 되면 기운이 뒤로 넘어가거나, 다리 아래로 내려가거나, 위로 올라가는 일이 생긴다.
절대 힘을 주거나 밀지 말아야 한다.
의식적으로 힘을 주거나 밀지 않는다 하더라도 호흡이 자연스럽지 못하거나
호흡의 길이를 억지로 늘려 무리가 생기면 호흡에 힘이 들어간다.
이런 경우 또한 기운이 밀리게 되어 제 행로를 벗어나는 일이 생긴다.
자신이 편하게 쉴 수 있는 호흡이 어느 정도인지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알 수 있는데
처음에는 대개 무리인 줄 알면서도 긴 호흡을 하려고 애를 쓴다.
호흡은 지속적으로 하면 누구나 길어지게 되어 있으니 자연적으로 길어지도록 항상 여유 있는 호흡을 해야 한다.
조식만 잘 하면
자연히 좌협이 꽉 차고 부지불식간에 자리를 떠서 조금씩 조금씩 명치 쪽 대각선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명치에서 우협으로..
출처: http://www.danhak.org/board_sojuchun/345
명치까지 올라온 기운이 실해지면 다시 우협으로 길이 열린다.
기가 명치까지 도달할 즈음이면 조식의 길이는 약 40초 정도가 된다.
명치끝까지 도달하고 나서 전문수행자의 경우 하루 약 5시간 이상 1개월 가량 수행을 지속하면,
다시 우협을 향하여 대각선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이 행로를 숙달시키되 호흡에 조금도 고통이 없도록 자연스럽게 행해야 한다.
우협에 도달할 때쯤 되면 이상한 현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여기서 보이는 현상들은 이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다.
눈이 펄펄 내리는 것이 보이는가 하면, 비가 오는 모습이 보이는 경우도 있고,
밝은 빛의 덩어리가 보이는가 하면, 유성이 지나가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사람마다 각기 다르므로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수행함에 있어 마음이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으면 때때로 마음의 빛이 보여진다.
그런데 사람들은 무엇이든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경향이 있다.
현상이 잘된 것이든 잘못된 것이든 보고 나면
자신도 이제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위치에 서게 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일 때보다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때가 신(神)은 쑥쑥 자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현상이나 물체가 보이는 것은 수행자 자신이 수행의 공덕은 부족하고
마음이 앞서 보는 것을 염(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상이 보이는 이유는 신(神)이 밝아졌기 때문이다.
이 때가 신의 밝기가 수행을 하지 않는 사람들과 구분되는 시기이다.
이제 신이 밝아지기 시작하는 것을 소모한 것이다.
이것은 잘못된 수행자의 정신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다.
올바른 현상을 보았다고 할 수 있으려면 세상천지가 빛으로 보이며,
내가 그 속에 잠겨있는 것을 경험하여야 한다.
이 때는 마음과 심장이 한결 가볍고 기분이 상쾌하다.
이것이 선도수행의 참모습인가 하는 것을 느끼며 ,내가 다른 사람과 스스로 구분되어진다,
우협에서 기가 자리할 즈음이면 조식의 수준은 약 45초 가량 되는데,
여기에서 더 발전해 나가기가 가장 힘이 든다.
여기에서의 호흡이 인간으로 할 수 있는 호흡의 한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힘이 든다.
호흡공부는 하기 싫어지는데 이는 현상되는 것을 보는 데만 자꾸 마음이 쏠리며 체력소모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현상을 보는데 마음을 두면 수행의 발전을 보기가 어려운 이유는
신이 가면 기도 따라가서 기가 신을 소비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기와 신의 배양이 더디어 진다.
기의 배양이 늦어지면 수행의 진전도 느려진다.
기가 우협에 이를 즈음이면 신이 어느 정도 자라서 무엇을 보고자 하면 형체가 나타난다.
초보자에게 현상이 보여졌다고 하면 조급한 마음으로 현상보기를 갈구하고 있었던 때문이다.
현상을 보고자하는 것은 수행의 정신자세가 잘못된 것이니 수행자는 깊이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초기에 나타나는 현상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수행이 멀리 진전되어 기가 충분히 배양되면,
신이 아주 밝아져서 궁금한 일이나 앞날의 일들을 신이 비추어서 현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우협에서 하단전으로..
출처: http://www.danhak.org/board_sojuchun/346
전문수행자의 경우 하루 5시간 정도의 수행을 1개월 가량 지속하면 기는 우협에서 단전 쪽으로 진행한다.
단전 쪽으로 이동한 기운은 단전보다는 한치 아래 한치 안쪽에 자리하는 느낌이다.
여기가 하단전이며, 이 때의 조식의 수준은 약 55초 가량 된다.
보이는 현상도 간혹 나타난다.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런 것에 관심을 두지 말고 조식에만 집중하여야 한다.
자연스레 일어나는 현상은 어쩔 수 없지만,
의식을 두고 현상을 보고자 하는 것은 이 단계에서는 올바르지 않으므로 경계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 때 혜광이 나오는데, 처음에는 희미하게 나온다.
공부가 진전되면서 차츰 밝아져서 둥근 원모양의 형광 빛이 보인다.
공부가 익을수록 빛은 점점 밝아지고, 나중에는 마음만 일어나도 형광빛이 보인다.
기가 우협에서 다시 단전까지 돌아가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힘주어 밀거나
의식적으로 보내고자 하여서는 안 된다.
소변볼 때 주는 힘 이상을 가하게 되면 기는 제 갈 길을 가지 않고 다른 길로 간다.
이 때는 기는 충분히 차면 자연히 넘쳐서 밀려 옮겨가는 것이라는 것을 항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여기까지가 소주천의 과정이다.
요약하면 단전에 기가 충분히 축적되면 기운이 길을 열고 스스로
단전 → 좌협(左脅) → 명치(명문) → 우협(右脅) → 하단전
를 통해 돌게 되는데, 이렇게 한 바퀴 돌아가는 것을 소주천이라 하는 것이다.
소주천이 완성되면 이 과정에서는 아침 해뜰 무렵에 동쪽을 보고 정좌하고 앉아
기를 전신으로 운행해 볼 수 있다.
단전의 기를 노궁(손바닥 중심)으로 보내고 다시 용천(발바닥 중심)으로 보내는 연습을 해봐도 좋다.
기를 의식적으로 전신으로 보내고 다시 단전으로 회수하는 연습을 해 보되, 여기에만 몰두하면 안 된다.
기를 어떻게 운행해 볼 수 있는지 잠시 행하여 실험해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끝내야 한다.
소주천 다지기
출처: http://www.danhak.org/board_sojuchun/348
소주천(小周天)을 완성함으로써 이제 조식수행의 기초를 다진 것이다.
수행자의 노력 여하에 따라 혼자서도 수행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밑바탕을 만든 것이라고 여기면 된다.
소주천을 완성한 이후 대주천(大周天)이 시작되려면
단전에서 오랜 기간 기운을 숙성시키는 공덕(功德)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수행자가 여기서 인내(忍耐)하지 못하고 탈락하기 쉽다.
하루 12시간 이상의 수행으로 약 3년가량의 공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기간에 수행자는 소주천 행로에서 가끔 기감(炁感)을 느끼게 된다.
명치에서 기(氣)를 느끼는가 하면 좌협(左脅)에서 느끼기도 하고, 우협(右脅)에서 기를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증상들은 소주천(小周天)의 행로를 확고히 다지는 과정이다.
하루 12시간 이상의 정진으로 약 3년가량 공덕을 쌓아 하단전에서 기가 충분하게 성숙되면,
소주천을 운행하던 하단전의 기는 아랫배 임맥(任脈)쪽으로 길을 열게 된다.
이제 대주천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기는 사타구니의 회음혈쪽으로 밀려가는데, 이때에도 의식적으로 힘을 주거나 밀어서는 안 된다.
조식(調息)을 통해 폐기(閉炁)를 계속하면
기는 충만하게 되어 자연히 길이 열려서 스스로 회음혈(會陰穴)쪽으로 밀려 독맥(督脈)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이때 수행자 스스로도 기가 넘어갔는지 조차도 알 수 없는 정도가 되어야 한다.
대주천의 시작을 마음에 염두해 두고 힘으로 밀어보려 하는 생각을 해서도 안 된다.
오로지 하단전에서 기운을 완숙시켜 수행에 정진하는 중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넘어가도록 해야 한다.
즉, 대주천(大周天)을 염두에 둘 필요 없이 오로지 조식(調息)에만 전념하라는 뜻이다.
【참고】소주천(小周天)을 완성한 이후 대주천(大周天) 과정에서부터 단전(丹田)이라고 언급되는 것은
하단전(下丹田)을 의미하는 것으로, 단전(丹田)보다 한 치 아래 한 치 안쪽에 위치한다.
찌꺼기론
출처: http://www.danhak.org/board_sojuchun/350
정기(精炁)는 마음이 고요한 가운데서 만들어진 우리 몸에 유익한 맑은 기운이다.
이에 반해, 풍사(風邪)는 마음이 요동치는 가운데서 만들어진 해롭고 탁한 기운이다.
이것을 사기(邪炁)라고도 한다.
감정손상(스트레스)을 받아서 만들어진 기(炁)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사랑하는 아내를 잃는 정도의 감정손상을 일생에 두 번 받으면
인간은 암(癌)이나 각종 질병으로 10년 내에 사망하게 된다는 기록이 있다.
그만큼 감정(感情)을 손상 받는 것이 인간에게 해롭다.
필자가 수행 중에 현상으로도 보았는데, 감당하기 힘든 감정손상은 몸 전체를 위축시키고,
위축된 몸 상태에서는 신장(腎臟)이 독소(毒素)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해 탁한 기운이 나왔다.
신장에서 나온 탁한 기운은 위로 올라와 심장(心臟)을 친 후,
다시 뇌에까지 이르러 뇌는 혼란스러운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었다.
이때 혈액생성을 관장하는 뇌의 부위가 이상반응을 일으켜 척추에서 혈액이 생성될 때,
이상적혈구와 미완성백혈구를 생성하였다. 대부분의 이상적혈구는 백혈구에 의해서 잡혀 먹히지만,
미쳐 잡혀 먹히지 않은 이상적혈구가 몸을 돌다가 자리 잡는 부위에 암세포가 발생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미완성백혈구는 백혈구에 의해 잡혀 먹히지 않기 때문에, 백혈병이 발생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여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것을 보았다.
그만큼 감정손상이 인체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감정손상을 받지 않도록 마음을 평안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행의 이치는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의 이치이다.
이중에서 풍사(風邪)와 정기(精炁)는 상극(相剋)의 이치가 적용된다.
정기가 왕성하면 풍사가 물러나고, 풍사가 왕성하면 정기가 물러난다.
북창(北窓) 정염(鄭廉) 선생의 용호비결(龍虎秘訣)에서는 정기(精炁)와 풍사(風邪)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풍사(風邪)는 혈맥(血脈) 속으로 스며들어 몰래 몸속을 돌아다니는데,
이것이 사람을 죽이는 흉기가 되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그것이 오래 되어 경맥에 전해져서 고황(膏肓: 심장의 위와 아래)에 깊이 들게 되는데,
그런 연후(然後)에는 의원을 찾아 약을 써도 이미 때는 늦은 것이다.
의원은 병이 난 후에 병을 다스리지만, 선가(仙家)에서는 병이 생기기 전에 미리 병을 다스린다.
정기와 풍사는 물과 불 같아서 서로 어울리지 못하므로,
정기가 머무르면 풍사는 저절로 달아나서 백가지 맥(脈)이 자연히 유통되고,
삼궁(三宮:상단전[백회], 중단전[강궁], 하단전[기해])의 기운이 자연스럽게 오르내리게 될 것이니,
무슨 까닭에 질병이 생기겠는가?
좀더 정성을 다하여 부지런히 수행을 한다면, 반드시 수명을 연장하여 죽을 기한을 물리치게 되겠지만,
그 찌꺼기만 얻더라도 평안하게 천명을 마칠 수 있으리라.”
즉, 건강은 조식수행(調息修行)에 있어서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찌꺼기 정도로 표현하였다.
용호비결에서 조식수행의 찌꺼기라고 말하는 건강은 소주천(小周天)의 완성 정도로도 족하다는 표현일 것이다.
[대주천]
대주천이란
출처: http://www.danhak.org/board_daejuchun/352
소주천을 완성하고 하루 12시간 이상 수행에 정진하여 3년 가량 다지기를 하며
하단전에서 기운을 성숙시키면 기운이 하단전에서 출발하여 회음쪽으로 향하기 시작하여
임맥과 독맥을 한 바퀴 도는 과정을 대주천이라 한다.
【참고】대주천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기운을 밀어서 임맥과 독맥을 한 바퀴 돌리는 것이 아니다.
기운을 인위적으로 힘을 가하여 돌려서는 어떠한 수행의 공효도 얻을 수 없게 된다.
힘을 가하여 기(炁)를돌리게 되면 삼시충을 볼 수 가 없다.
오로지 부드러운 조식에만 정진하면서 기운이 스스로 임맥과 독맥을 한 바퀴 돌게 되어야 하는 것이다.
< 임맥도 >
< 독맥도 >
회음에서 뇌호로..
출처: http://www.danhak.org/board_daejuchun/356
소주천을 오랜 기간 정진하면 단전의 기는 하단전에서 아래쪽 임맥을 통하여 회음혈을 거쳐
등뒤의 미추혈을 지나 독맥으로 자연스럽게 상승되어 진행한다.
이렇게 임맥과 독맥을 통하여 몸의 정 중앙선을 한바퀴 돌아서 다시 단전으로 내려가는 과정을 대주천이라 한다.
중국의 도가서적이나 많은 사람들이 '뇌호'를 '옥침혈'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
그러나 옥침혈은 독맥상에는 없는 혈이며 독맥상에 있는 것은 '뇌호혈'이다.
옥침혈은 뇌호의 양 옆에 있는 혈이다.
임맥을 지나 독맥의 신도혈까지 도달하는데는 하루 12시간 이상 수행하여 3개월 정도는 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회음혈을 지나고 독맥을 통해 기운이 올라가는 과정에서
기는 모든 경맥과 락맥을 타통시켜, 어떠한 질병도 물리치게 된다.
굳이 의식적으로 기운을 보내려고 하지 않아도 기운이 운행하면서 질병 부위나 허약한 부위를 치료하는 것이다.
조식과 폐기를 계속하되 소주천때와 마찬가지로 기가 자연적으로 통하게 해야지,
절대로 인위적으로 힘을 주거나 밀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쉬지 않고 정진하면 기는 충만하게 되어 회음을 채우고 등뒤의 독맥을 타고 상승하여,
뇌호를 지나 머리 위의 백회(니환궁)까지 올라간다.
독맥으로 올라가는 중간에 막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있지만,
이 때에도 절대 의식이나 힘으로 밀면 안 된다.
신경 쓰지 않고 조식을 통한 폐기를 계속하면 막혔다고 생각되는 부분도 다시 열려 기가 통하게 된다.
수행 중 자세를 바르게 하지 못하고 움직이면 기가 독맥을 벗어나 옆으로 가게 되며,
이 때 기가 이동한 곳에서는 지글지글하는 느낌을 받는다.
기가 회음혈을 지나 독맥의 신도혈에 도달할 때까지는
소주천의 경우처럼 기운이 지나가는 것이 뚜렷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소주천에서 기운이 지날 때는 따끔따끔하며 거북한 감이 있으나,
임맥에서 독맥을 향할 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고 조금은 미미하다고 느껴진다.
독맥의 신도혈에 기운이 도달하면 여기서부터는 기운이 자리하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다.
독맥을 타고 신도혈에서 뇌호혈까지 기운이 진행하는데는 하루 12-3시간 가량 정진하여 약 3개월 정도가 걸린다.
기운이 상승하면 뇌호혈에 머물게 되는데,
이 때 호흡을 무리하게 밀거나 힘을 가하면
농구공 만한 크기의 보이지 않는 물체를 얹고 다니는 것 같으며 상당한 무게감을 느끼게 된다.
이 시기에는 더욱 조심하여 힘을 가하지 말고 부드럽고 순하게 호흡하여야 한다.
무게감이 너무 심하면 호흡을 3-4초 가량 후퇴하여 진행하면 뒷머리의 감각은 사라지고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다.
정상으로 돌아온 다음에는 원래의 호흡 길이로 돌아와 다시 정진한다.
이 정도에서의 조식의 수준은 약 1분 30초 가량이 된다.
그리고 다시 뇌호혈에서 백회쪽으로 진행하는데는 하루 약 12-3시간 가량 정진하여 2개월 정도의 기간이 필요하다.
【金蝌】
금과
금과는 최초의 입정에 들었을 때 맨 처음 보이는 것으로,
기운이 백회를 넘기 바로 전 즉 삼시충 중에서 상충이 나간 직후에 볼 수 있다.
세 개의 형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아주 천천히 돌고 있는 모습이며, 꼬리의 모양이 혜성의 꼬리와 유사하다.
공덕을 많이 쌓은 사람은 수행을 시작하여 단전이 열릴 때나 대주천이 시작될 때 보이기도 하나,
이 때에는 형상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고 희미하게 보인다.
그러나 상충이 나간 직후에 보일 때는 형상이 뚜렷하게 보이며 금과가 의미하는 바도 스스로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공덕이 부족한 사람은 볼 수 없다.
현빈일규(玄牝一竅)
출처: http://www.danhak.org/board_daejuchun/359
이렇게 길이 열려 뇌호를 지난 기는 머리 위 백회(니환궁)를 통과하게 되는데, 이것을 현빈일규라고 한다.
용호비결에서 말하는 현빈일규 백규개통(玄牝一竅 百竅皆通)은 이 때를 이르는 말이다.
현빈일규는 수행의 커다란 분기점이다.
수행에 있어서는 일차적인 성공을 의미하며, 비로소 도계(道界)에 첫 발을 들여놓는 순간이다.
이 때에는 인간의 문인 백회(百會)가 열리면서 하늘의 문인 삼태극(三太極)과 연결된다.
하늘의 삼태극과 인간의 백회가 연결되는 이 때에는
하늘의 기운이 내게 들어오는 것인지 내 마음이 하늘로 스며드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아울러 인간세상의 오욕칠정으로는 맛볼 수 없으며, 글과 말로서는 형용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인간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황홀감이 찾아온다.
그 동안 의심가거나 궁금했던 것들이 일순간에 모두 풀리게 되고,
현빈일규를 이루고 나면, 이 때부터는 다른 사람에게 질문을 하러 갈 일이 없어진다.
이 후로는 의심가는 것들이 종종 확연하게 풀리게 된다.
이 때 수행자는 흥분하거나 동요하지 말고 수행자에게 일어나는 현상에 대하여
일체의 생각이나 의식을 버리고 자연스럽게 무위(無爲)로서 받아들이기만 하여야 한다.
수행으로 얻게 되는 첫 번째 깨달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때쯤 조식의 수준은 약 1분 40초 가량 된다.
백회가 열리고 나면 피부의 탄력이나 투명도가 눈에 띄게 달라지며
주름살도 펴지는 등 신체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확연하게 일어난다.
이것은 그 동안 막혔던 기의 모든 통로가 완전하게 뚫렸다는 증거이다.
이 때가 되어야 비로소 완전한 태식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현빈일규를 체험하고 나면 스스로는 마치 허물이라도 벗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나도 달라지고 세상도 달라져서 새롭게 다시 태어난 기분이 든다.
불가에서는 이 때를 초견성(初見性)이라고 한다.
백회가 열리면서 알게 되는 것은
인간의 두뇌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단계의 것까지 참으로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그 동안 고생하며 수행한 보상이 확연하게 얻어지는 순간이다.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전생을 볼 수 있는 등 일반인에게 없는 여러 가지 신비한 능력도 생기게 된다.
수행자가 여기서 자만하게 되면 수행의 진전은 더 이상 없게 된다.
더욱 분발하여 마음을 크게 다지고 앞으로 정진해나가야 한다.
< 현빈일규 >
백회에서 하단전으로..
출처: http://www.danhak.org/board_daejuchun/360
조식을 통한 폐기를 계속하면 기는 독맥을 타고 머리를 넘어서 몸 앞쪽으로 내려온다.
눈썹 사이에 있는 인당혈을 거쳐 입안을 통하여 이제는 임맥이 열려 기는 가슴 정중앙선으로 내려간다.
마치 마르지 않는 샘처럼 계속 정진하여 폐기하면
임맥의 길이 완전히 열려 기는 마침내 다시 배꼽아래 단전까지 도달하게 된다.
여기까지 이르면 대주천은 완성되며 임•독 양맥(兩脈)이 완전히 뚫리고 도계(道界)의 초계(初階)과정을 마치게 된다.
대주천이 완성되면 선계에 왕래하는 것도 잦아지며, 예지력도 생겨나고,
본인의 삼생(三生)을 확연하게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삼생도 볼 수 있다.
간간이 자신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물론이고 인체 내부의 오장육부도 들여다 볼 수 있다.
태식(胎息)
출처: http://www.danhak.org/board_daejuchun/361
태식은 어머니의 배 안에 있을 때와도 같은 상태의 숨쉬기를 말한다.
태식이라는 용어를 어쩔 수 없이 숨쉬기로 표현을 하였지만,
태식은 태아의 상태에서처럼 기가 막힘 없이 소통되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태식에서 ‘태(胎)’라는 글자에 집착하여 용어의 해설에 많은 혼란이 있는 것 같다.
혹자는 태식을 조식수행의 궁극적인 경지라고 하면서 황홀하게 설명하는가 하면,
소주천시 단전에 구멍이 열리는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대주천시 단전에 구멍이 열리면 태식이라고 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호흡이 사라지는 듯한 경계(無呼吸之息)를 태식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태식에 대한 정의는 제 각각이다.
태식의 유래
태식의 유래를 살펴보면 노자의 도덕경이나 위백양의 참동계에는 태식이라는 이름의 용어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노자의 도덕경 능위(能爲)편에는 "혼백을 잘 관리하여 하나가 되어 능히 분리되지 않으며,
오로지 기를 길러서 기가 부드러워지면 “갓난아이와 같이” 되지 않겠는가?”
載營魄抱一(재영백포일) 能無離乎(능무리호) 專氣致柔(전기치유) 能嬰兒乎(능영아호)
하여 태식을 가리키는 문구가 나온다.
태식이란 용어는 용호비결에서 처음 보이기 시작한다.
용호비결에서는“현빈일규를 얻음으로써 기가 다니는 모든 통로가 뚫리며 태식은 구멍 가운데에 쉬는 숨이다.”
玄牝一竅(현빈일규) 百竅皆通矣(백규개통의) 胎息於竅中(태식어규중) 라고 하였다.
구멍 규(竅) 자를 썼는데 여기에서의 구멍은 기가 소통하는 통로를 의미한다.
대주천에서 백회가 열리면 태식이 완전하게 이루어진다는 의미의 문장이다.
태식은 무엇인가
태아일 때에는 탯줄이 어머니의 임맥(任脈)에 연결되어,
어머니가 숨을 쉬면 기는 막힌 곳 없이 태아의 온 몸을 돌게 된다.
사람은 태어나서 탯줄이 끊어지고 스스로 숨을 쉬게 되면서 부터 점
차 기가 다니는 통로가 좁아지고 막히기 시작한다.
폐기가 성숙되어 진기가 왕래하는 모든 통로가 태아의 상태처럼 다시 뚫리게 되면
태식이 완전하게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이다.
즉 태식은 태아의 상태에서처럼 진기가 몸의 구석구석을 막힘 없이 소통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무엇을 태식이라고 하는가.
정기신을 설명하는 도표에서 보듯이 폐기는 연정화기(鍊精化氣)의 단계이고,
태식은 연기화신(鍊氣化神)의 단계를 의미한다.
도표(수행의 전과정)에서는 폐기와 태식을 구분했지만, 실은 태식은 폐기가 성숙되어 이어지는 단계이다.
“기가 부드러워져서 신으로 화(化)하는 단계의 폐기를 태식”이라고 한다.
태식을 하는 방법이 폐기와 달리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때부터 폐기 대신 태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태식은 책에 따라 문맥에 따라서 소주천부터 무호흡지식(無呼吸之息)까지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태식은 특별한 호흡법이 아니며, 어느 한 순간에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태식은 계절이 바뀌듯이 폐기가 성숙되어 서서히 들어서게 되는 단계이며,
점차 무르익으면서 태식이 능해진다고 한다.
대주천이 시작되기 직전부터 서서히 태식으로 들어서기 시작해서 대주천에 들어서게 되면 태식에 능해졌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백회가 열리고 현빈일규를 얻으면 이 때부터 완전한 태식을 얻게 되는 것이다.
태식은 몸에 기가 실해져서 온 몸으로 퍼져나가 소통하는 상태를 의미할 뿐이며
다만 그것이 얼마만큼 왕성하게 잘 소통하느냐의 차이는 있더라도
폐기와 태식은 별개의 용어가 아니라 폐기가 성숙되면 태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주천화후(周天火候)
출처: http://www.danhak.org/board_daejuchun/363
화후는 수행자가 신장과 방광사이에서 실제로 느끼는 열감(熱感)이다.
대주천이 완성될 무렵에 뱃속이 텅 빈 것처럼 크게 열리면서
열감이 삽시간에 온몸으로 퍼져나가게 되는데, 이것을 주천화후(周天火候)라 한다.
수행자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대략 대주천이 완성되기 전에 주천화후가 일어난다.
조식의 길이로는 정좌하고 있을 때 2분 호흡까지는 가능해야 하며
평상시에도 1분 50초 조식은 별 문제 없이 가능해야 한다.
이후로는 폐기가 잘 진행되면 주천화후는 항상 일어나는데
엄동설한(嚴冬雪寒)에 눈 속이나 얼음물 속에서도 장시간 수행을 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주천화후로 몸에 퍼진 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주천화후가 제대로 이루어진 후 대주천이 완성되면
아랫배의 단전과 머리 위의 백회(니환궁)가 소리가 울리듯 서로 응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임독맥이 완전히 소통되기 때문이다.
옛 문헌에는 이를 가리켜 정상에 ‘붉은 안개’ 혹은 ‘노을’이 피어오른다 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일어나는 기운은 공부가 어느 단계에 이르면 볼 수 있게 된다.
이 기운의 강약을 보고 그 사람의 공부수준이 높은가 낮은가를 바로 알 수 있다.
자신의 공부수준을 말로써 과장해 보아야 소용없는 일이다. 진실은 정상에서 나오는 기운의 강약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삼시충(三尸蟲)
출처: http://www.danhak.org/board_daejuchun/364
인간은 본래 선한 본성을 타고 태어났다.
그런데 인간의 몸 속에 기생충처럼 서식하고 있는 삼시충이라는 벌레가 온갖 욕망을 부추겨,
인간으로 하여금 악업(惡業)을 짓도록 하는 것이다.
이들은 인간이 죄를 지어 쌓게 되는 업(業)을 먹이로 해서 사는 벌레들이다.
그래서 이것들은 항상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충동질을 하는 것이다.
삼시충을 몸에서 제거해야 비로소 인간은 죄를 짓고 싶은 충동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는 것이다.
상충(上蟲), 중충(中蟲), 하충(下蟲)의 세 가지의 충(蟲)이 있으므로 삼시충이라고 한다.
대주천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이 세가지 충이 차례로 자신의 몸에서 빠져나가게 되는데,
수행자 스스로가 확인할 수 있다.
삼시충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순서는 대주천이 시작되기 직전에 하충이 먼저 빠져나가고
현빈일규가 일어나기 직전에 상충이 다음으로 빠져나간다.
마지막으로 대주천이 완성되기 직전에 중충이 몸에서 빠져나가게 된다.
하충(下蟲)
하충(下蟲)은 그 색깔이 희게도 보이고 검게도 보인다.
모양은 누에를 닮았으며 크기는 어른의 가운데 손가락보다 약간 크며 평소 하체에 머물러 있다.
대주천 들어가기 시작하면 하충은 단전에서 출발해서 임맥으로 밀려오는 기(氣)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하체의 수많은 땀구멍과 모공을 통하여 제각기 빠져나가 어디론가 사라진다.
상충(上蟲)
상충(上蟲)은 평소 머리에 머물고 있으며 노란 새의 모양이므로 황조(黃鳥)라고도 한다.
현빈일규(玄牝一竅)가 있기 직전
즉 기가 백회를 통과하기 직전에 역시 밀려오는 기(氣)의 압력을 못견디고 내 몸에서 빠져나가게 된다.
황조가 머리에서 빠져 나오고 나면 그 몸통이 부풀려 지는데,
그 키는 어른의 키와 비슷하며 몸통은 어른의 한아름 정도 된다.
몸에서 빠진 상충은 나의 주변을 배회하며 다시 들어오려고 기회를 엿보는데,
근엄하게 응시를 하면 다시 들어오지 못하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다.
만약 다시 들어오는 일이 생기게 되면 수행은 더 이상의 발전을 하지 못하고 현빈일규를 얻을 수 없게 되어
지금까지의 고생한 보람을 얻지 못하니 아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중충(中蟲)
중충(中蟲)은 모양이 뱀과 같고 색깔은 거무스레한 구렁이와 흡사하다.
두 마리가 있으며 한 마리는 머리를 심장에 꽂고 꼬리는 단전에 두고 있으며
다른 한 마리는 반대로 머리를 단전에 두고 꼬리는 심장에 꽂고 있다.
두 마리가 서로 엇갈려서 또아리를 틀고 있는데 그 모습은 마치 태극의 모양과 같다.
머리를 심장에 꽂고 있는 충이 먼저 인간의 사악한 마음을 일으키게 하면
머리를 단전에 두고 있는 충은 행동을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
인간은 본시 하늘로부터 선한 마음을 받았다.
그러나 이 중충이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동시에 조종하여서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이끄는 역할을 한다.
중충은 삼시충 중에서도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하므로
무거울 중(重)자를 써서 중충(重蟲)이라 해야 할 것도 같으나 일반적으로 중충(中蟲)이라 쓰고 있다.
인간이 선한 행동을 하였다면 본시 하늘로부터 받은 성품을 따른 것이고,
악한 행동을 하였다면 삼시충의 조종을 받은 것이다.
대주천이 완성되기 직전에 중충은 견디지 못하고 몸에서 빠져나가게 되는데,
빠지고 나면 용의 모습으로 변한다.
이 때 몸에서 나온 중충은 멀리 가지 않고 수행자의 주위를 빙빙 맴돌게 된다.
여기서 멀리 쫓아 보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수행자가 방심한 틈을 타서 다시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몸 속에 들어오면 다시는 떠나 보낼 수 없으며,
수행자는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보내는 방법은 이 충을 향하여 ‘이 놈, 나는 이제 하늘로 올라가야 하니
너는 여기서 머뭇거리지 말고 어서 내 앞에서 사라져 네 갈 길로 가거라’ 하고
호되게 꾸짖으면 중충은 그 길로 사라지고 다시 오지 않는다.
삼시충이 몸에 다시 들어오는 이유는
내 마음에 탐욕이나 삿된 시기심 등을 완전히 없애지 못하고
마음 한구석에 이러한 욕심들이 일어날 수 있는 근원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욕심을 다 버리지 못한 상태에서는 삼시충을 향하여 아무리 호통을 쳐도 다시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기를 임독맥으로 운행시킴에 있어서 기가 충분히 축적되어 자연히 운행된 것이 아니고
힘을 가하여 인위적으로 운행시켰거나 혹은 단약(丹藥)에 의존하여 기의 운행을 촉진시켰다면 삼시충을 볼 수 없다.
그것은 수행을 통하여 충분하게 길러진 정(精)과 기(氣)와 신(神)의 합일체의 힘이 아니면
삼시충은 물리칠 수가 없기 때문이며, 도정道程의 한 경계를 넘어섰다는 것을 스스로 자각할 수도 없다.
단약을 복용하여 수행에 정진하는 힘을 얻는 것은 좋으나 단지 삼시충을 쫒기위하여 약을 썼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삼시충 제거의 의미
출처: http://www.danhak.org/board_daejuchun/367
삼시충을 제거하고 나면 몸과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고 상쾌해 지며,
모든 일이 즐겁게 맞아질 뿐 아니라 수행이 한 단계 넘어간 것을 스스로가 알게 된다.
매사가 즐겁게 맞아지는 이유는
몸 안의 정(精)은 본시 하늘의 선한 성품을 본받은 것인데 반해 삼시충은 근본이 악한 성품이기 때문이다.
삼시충은 악하고 삿된 마음에 의탁해야 존재할 수 있다.
수행을 통하여 마음을 비우고 모든 욕망을 떨쳐 버리면 이들이 존재할 환경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수행의 깊이가 깊어져 삼시충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이 맑고 눈이 밝아지면
삼시충이 견디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다.
도둑이 남의 집에 숨어 있다 들키면 도망가는 것과 같이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삼시충이 몸에서 빠져나가게 되면 악한 마음은 뿌리가 뽑히게 되어
수행자는 하늘에서 받은 순수한 참마음인 선한 성품만이 남게 된다.
삼시충의 제거는 조식수행에서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도정(道程)에서 어느 단계 이상이 되면 삼시충의 제거 없이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삼시충이 제거되면 마음의 때를 완전히 씻었다는 증거가 되며 다음 단계로 넘어갈 준비가 된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주천화후도 이룰 수 없고, 결태도 있을 수 없으며,
주문수행을 한다고 해도 성공할 수도 없다.
또한 삼시충이 제거되지 않으면 수행자 스스로 선계에 왕래할 수 없다.
따라서 삼시충을 제거하여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없이
대주천이나 계제(階際) 혹은 선계(仙界)를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삼시충의 제거는 소위 기독교에서 말하는 뱀으로부터 비롯된 원죄(原罪)를 씻은 것이 되며
동양학에서 인간의 본성을 말할 때
성선설(性善說)과 성악설(性惡說)로 나누는 것도 이 경계를 두고 논한 것으로 여겨진다.
[원신출태]
원신출태(元神出胎)란
출처: http://www.danhak.org/board_wonsin/368
원신(元神)이란, 오랜 고행으로 자신의 근본을 밝혀 완성된 수행의 결정체로 수행자의 영적(靈的)인 분신(分身)이다.
대주천을 완성하고 계속하여 수행에 정진함에 따라 단전에서 결태(結胎)가 되어
점차 성숙하며 위로 부상하여 백회를 통하여 출태(出胎)하게 된다.
원신출태 이후에는 인간의 몸에 소통(疏通)되는 통로가 4가지가 있다.
血管이 통하고 神經이통한다.
그리고 氣가통하고 수행자가 노력으로 얻은 炁가 머리와 심장에서 전신에 소통되는 길이 퍼져 있다.
우주속에 녹아있는 대기로부터 받아드려
몸속에 저장된 기가 이렇게 인간의 몸에 작용을 하여 늙음을 늦추게 하는 것이다.
신체의 노화가 느려져 오히려 같은 나이대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 훨씬 젊어지게 된다.
그래서 옛부터 조식수행을 불로장생의 비술(秘術)로 불러온 것이다.
원신결태(元神結胎)
출처: http://www.danhak.org/board_wonsin/370
소주천에 이어 대주천을 이루고 삼시충을 제거하기까지도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리의 일상생활과 스스로의 욕망은 수행을 함에 있어 언제나 마장이 되고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갖은 역경을 견디고 수행에 정진하여 소주천과 대주천을 완성하고 단전에 결태가 시작되면,
이제 드디어 원신출태을 향한 수행을 시작하게 된다.
대주천을 완성한 후 몸 안의 삼시충을 제거하면, 기(炁)는 다시 단전에서 성숙되어져 결태가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사람은 임신하여 10개월만에 출산하나, 이 호흡의 임신(결태)은 보다 긴 시간과 정진을 필요로 하며,
다시 임맥을 거슬러 머리 위 백회를 통해 출태(出胎)하게 된다.
전문 수행 자라면 10개월이면 족 할 것이다.
이 단전의 결태는 수행자의 원신(元神)이 기나긴 수행의 공덕으로 단전에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결태에서 출태까지의 기간은 각자의 정진 여부와 수행자의 상태에 따라 차이가 있어서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결태의 단계에서 수행자의 조식 수준은 2분 30초 가량이 되어 있을 것이다.
< 원신결태 >
원신부상(元神浮上)
출처: http://www.danhak.org/board_wonsin/372
단전에 결태된 원신이 자라 출태하기 까지는 긴 시간의 양육과정이 필요하다.
단전에 결태된 원신이 자라면 마치 여자가 임신한 것 같이 복통이 있고 속이 메스껍고 구토증세도 생긴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조식호흡과 폐기에 정진하면
단전에 결태된 원신은 점점 자라 이번에는 임맥을 타고 거슬러 가슴 위로 올라간다.
이 때에도 결태된 원신 스스로 올라가는 것이지 절대로 의식으로 밀거나 힘을 주면 안 된다.
어린아이(결태)가 임맥을 따라 가슴 위로 올라가기 시작하면 참기 어려운 고통을 느끼게 된다.
매스껍고 배 안이 꽉 찬 것 같으며 음식이 넘어가지 않고 구토증세도 생길 수 있다.
혹시 수행이 잘못 되어 부작용이나 병이 생긴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고통덩어리 같은 것이 올라간다.
여기에서 수행을 포기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현상은 수행과정의 정상적인 현상이고 다시 한 고비를 넘어가는 것이니,
개의치 말고 고통을 극복하고 계속 정진해 나가야 한다.
고통이 너무 심하여 이를 참지 못하고 약으로 안정을 시키는 경우도 있는데,
가능한 한 약을 먹지 않고 정진하는 것이 좋다.
정말 참기 힘들어 약물을 취하여야 한다면 ‘수비경면주사’를 복용해야 한다.
수비경면주사를 복용하면 고통이 멈추고 심신이 안정되어 다시 수행에 정진할 수 있다.
오랜 기간 정진하여 결태된 원신이 부상하여 백회까지 올라가면 그 때 비로소 출태를 하게 된다.
선가에서 말하는 이른바 원신출태(元神出胎)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원신이 부상할 때는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긴 세월의 성공이 바로 눈앞으로 다가왔다는 설레임과 더불어 정신적인 기쁨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벽오 선생은 이 때에 용기를 얻어 더욱 정진하여 잠을 자지 않고 수행에 몰두했다고 한다.
원신출태 이후까지 60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수행을 계속했다고 한다.
공부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고 난 후에야 다시 잠자리에 눕게 되었는데,
이 때는 오히려 잠도 오지 않고 허리가 바닥에 닿는 느낌마저 새삼스러웠다고 한다.
< 원신부상 >
원신출태(元神出胎)
출처: http://www.danhak.org/board_wonsin/374
원신이 백회(니환궁)로 출태를 하는 과정에서는 언어로는 어떻게도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의 밝음을 보게 된다.
현빈일규에 이어서 다시 한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불가의 탱화나 선가의 그림을 보면 도인의 머리 위에 연꽃 같은 것이 있고,
그 안에 작은아이가 가부좌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원신출태을 묘사한 것이다.
불가에서는 이를 금강불괴지체(金剛不壞之體)라고 한다.
원신을 출태하게 되면 머리 위에서 세 가닥의 빛이 나오게 되는데, 이를 정상삼화(頂上三火)라고 한다.
백회(니환궁)에서 출태된 원신은 아직 갓 태어난 어린아이와 같으므로 지속적인 양육이 필요하다.
원신은 수행자가 정진하고 있으면 조용히 수행자의 머리 위에 앉아있는데 그도 역시 수도하는 자세로 앉아 있다.
원신은 수행자가 계속 정진하면 점점 자라 차츰 주변을 돌아다니기도 한다.
그러다가 주변에 소란스러운 소리가 많이 난다던가 사람의 왕래가 있으면 없어져 버린다.
다시 주변이 조용하여지면 나타나 머리 위에 수도하는 자세로 앉아 있다.
처음에는 작은 소리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잘 없어지다가 조금 자라면 쉽게 사라지지 않고 머리 위에 고요히 앉아 있다.
계속 수행에 정진하면 원신은 점점 자라 몸과 같은 크기의 등신대가 된다.
처음에는 어린아이와 같으므로 몸 주변이나 집 주변만을 돌게 하는 등의 작은 경험을 쌓게 하고
비오는 날 같은 경우에는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 등 조심스럽게 키우다가,
점점 익숙해지면 멀리도 보낼 수 있다.
원신이 출태되면 간혹 입정(入定)에 들어 1일 1식도 가능하고,
입정(入定)에 들어서는 임의적으로 육체에서 원신을 분리하여 천상의 선계까지 들고 나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영육(靈肉) 등신대의 원신(元神)은 또 하나의 나로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나를 대신하여 여러 가지 일을 하게 된다.
또한 원신은 하늘의 문인 삼태극을 통과하여 선계를 왕래하게 되는데,
그 곳에 관하여는 [단학요강]에서 수행 문답에 소개하였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그리고 이 곳에 대하여는 상세히 말하기 곤란한 어려움이 있으므로
수행이 성공하여 직접 가서 보기를 간곡히 바랄 뿐이다.
소주천을 이루고, 대주천을 이루고, 단전에 결태되어 원신출태까지 완성하였다면
수행자는 이미 소주천 대주천의 炁路는 완전 소통이 되어 조식에 들면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통하게 된다.
호흡의 길이로 이야기한다면 조식으로 2분 40초 가량은 유지해야 한다.
혹 가다가 입정(入定)시 선계(仙界)를 왕래할 때는 1일 1식(1日 1息 - 하루에 한 번 호흡)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옛 문헌에는 오직 정성으로 9년을 공을 쌓아야 한다고 하였지만,
처음 수행에 입문하는 사람이라도 진정한 스승을 만나서 전문적으로 타상타념(他想他念) 없이 한다면
6년만으로도 그 자리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6년을 하루같이 전문적으로 조식수행만 하는 사람이라면 입신의 경지까지 이룰 수 있을 것이나
게으른 사람이라면 몇 십년을 한다고 한들 성과가 없을 것이므로 수행의 기간을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 원신출태 >
정상삼화(頂上三火)
출처: http://www.danhak.org/board_wonsin/376
수행이 이 경지까지 이르면 불가의 탱화나 선가의 그림에서 보는 것 같이 머리 위에 빛이 뜨게 된다.
이는 수행의 경지가 높아지면 생기는 것인데, 빛이 세 갈래로 뻗치므로 정상삼화(頂上三火)라고 한다.
삼화를 완전하게 하기 위하여는 벽곡수행을 하여야 한다.
이 수준까지 도달하였다면 수행자의 원신은 그 밝음이 가히 궁극의 대각(大覺)까지 기약할 수 있다.
여기까지가 원신출태의 과정이다.
이제 수행자는 어엿한 도계의 중진을 향해 더 나아가 고단자가 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이제는 수행이 뒤로 후퇴할 걱정은 없다. 수행자는 더욱 분발하여 궁극의 깨달음을 향한 불퇴전의 길을 가는 것이다.
그러나 궁극에 도달하여 대각을 얻고, 얻지 못 하고는 이제는 수행자 자신에게 달려 있다.
말하자면 궁극에 도달하는 마지막 길, 해탈의 길은 수행자 스스로가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원신배양(元神培養)
출처: http://www.danhak.org/board_wonsin/377
출태된 원신을 배양하는 데는 두 단계가 있다.
처음의 단계는 하늘의 경청기(輕淸氣)와 땅의 중탁기(重濁氣)로 후중(厚重)하게 배양하여야 한다.
이 때의 원신은 음양(陰陽)과 청탁(淸濁)이 혼합된 배합체를 이룬다.
하늘과 땅의 기운을 혼합하여 배양한다는 뜻은 음식을 먹으면서 태식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때 즈음이면 식사하는 음식의 양은 상당히 줄어 있을 것이다.
태식으로 원신을 지속적으로 배양을 하면 삼화(三火)도 차츰 원만해지며 그 빛의 밝기를 더해간다.
벽곡(壁穀) 수행
출처: http://www.danhak.org/board_wonsin/378
벽곡이란 ‘곡식과 담을 쌓는다’는 뜻으로 음식을 끊고 하는 수행을 말한다.
과일을 먹어가며 하는 단식(斷食)과는 전혀 다르며, 그 어떤 곡식이나 열매도 먹지 않고 수행을 하는 것이다.
벽곡수행에 대하여는 세상에 별로 알려진 바가 없어 많은 사람들이 시행착오를 하고 생명을 잃기도 하였다.
옛 적에 이것을 수행의 비법이라고 오해하여
절벽에 있는 동굴에 밧줄을 타고 올라가서는 성공을 하지 못하면 여기서 죽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밧줄을 끊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는 내려오지 못하였다.
이런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것은 잘못된 수행법이라고 단정을 짓는 사람도 있다.
벽곡은 수행의 비법도 아니며, 수행의 특별한 방식도 아니다.
수행의 단계에서 이 과정이 요구될 때가 있는데 그 때 행하는 과정이다.
언제 행하는가? 원신을 하늘과 땅의 기운으로 배양하여 등신대가 되어도 원신과 삼화는 아직 완전하지는 못하다.
완전한 원신과 삼화를 얻기 위해서는 육신(肉身)을 떠난 원신(元神)만으로
오직 하늘의 청(淸)한 양(陽)의 기운만으로 정기신을 배양하여야 하는데, 이 때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석가는 한동안 음식을 먹지 않으며 수행하였다.
그러다가 우유 죽을 공양 받고는 다시 음식을 먹어가며 수행을 계속하였다.
석가가 음식을 먹지 않은 이유는 삼화를 완전히 이루기 위해서 그리한 것이며,
음식을 다시 먹은 이유는 삼화가 완전해 졌기 때문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함이었다.
벽곡을 하여야 하는 시기는 수행자 스스로가 수행을 하다 보면 자연히 알아지게 되며,
이 과정은 보통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걸리게 된다.
이 과정을 거치게 되면 원신은
오직 청(淸)한 양(陽)의 기운만으로 이루어진 순일한 존재가 되며 삼화는 완전해 지게 된다.
무호흡 지식(無呼吸 之息)
출처: http://www.danhak.org/board_wonsin/379
용어의 혼란
무호흡(無呼吸)에 대한 설명에 앞서 용호비결의 원문과 번역을 먼저 보기로 하자.
(번역飜譯)
그러므로 태식이 능해진 후에야 이 기가 부드러워져서 화(和)하며, 화(和)하면 정(定)이 되어 마침내 ‘
호흡이 없는 (듯한) 숨’을 쉬게 되는 것이다. 경에 이르기를 기가 안정되면 호흡이 없어진다고 하였다. -
용호비결에 무호흡(無呼吸)이란 용어가 나오는데, 이 용어에 대하여 많은 오해가 있기에 경험을 토대로 이를 바로 잡고자 한다.
먼저 지식(止息)이 무호흡을 가리킨다고 하는 오해가 있으나 전혀 다른 내용이다.
지식은 숨을 최대한 참고 멈추어서 하는 호흡으로 차력 등을 할 때 일시적으로 힘을 모으기 위해 하는 방법이다,
다음에 무호흡의 경지에 가면 숨을 전혀 쉬지 않는다고 하는 오해도 있다.
조식수행(단전호흡)에서 호흡을 전혀 하지 않는 경지란 없다.
비록 한 번의 호흡을 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1시간이나 하루 혹은 더 긴 호흡을 하는 것이지
호흡을 전혀 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호흡이 없으면 폐기도 없게 되므로 정기신을 기를 수도 없다.
심지어 무호흡은 태식을 의미한다고 하면서 조식수행(단전호흡)의 궁극적 경지라고까지 하는 경우도 있는데,
전혀 부당한 말이다.
태식을 하다보면 이런 상태에 이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태식도 무호흡도 조식수행(단전호흡)의 궁극적인 경지는 아니다.
조식수행의 궁극적인 경지는 태허와 내가 하나임을 확인하는 경지이다.
궁극적인 깨달음 외에는 태식도 그 무엇도 궁극의 경지나 목표는 아니다.
문헌에 나오는 무호흡지식은 호흡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코로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그 호흡이 극히 미세하여 호흡이 사라진 듯한 숨을 쉬게 되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어느 책에서도 이것을 바로 설명하지 않으므로 ‘호흡이 없는 듯한 숨’이라고 번역을 하여 바로 잡아 보고자 한다.
호흡이 없는 듯한 숨이란?
무호흡(無呼吸)이란 실제 호흡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호흡이 극히 미세하여 코로 들어가고 나가는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상태를 표현한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는 한 번 경험하면 계속 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공부수준이 일정한 단계에 오른 후에 열심히 정진하다 보면 가끔 일어나는 상황이다.
또한 호흡의 길이가 서서히 길어지면서 이러한 단계에 이르는 것도 아니다.
열심히 정진하는 중에 어느 순간 갑자기 호흡이 수 십 배로 길어지는데,
이 때에는 수행자 자신도 호흡이 없어진 것으로 착각을 하게 된다. 그
러나 한 두 호흡이 지나면 호흡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길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이 때부터 자리에 앉으면 항상 이러한 호흡의 길이로 정진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처음으로 이런 경험을 하였을 때 오후 5시경부터 시작하여 두 시간 정도 수행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호흡이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그 당시에 호흡이 사라진 것으로 착각하였다고 한다.
코로 숨이 들어가고 나가는 것을 전혀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2회의 호흡이 지나고 나면서 호흡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연히 알게 되었으며
호흡이 서서히 길어진 것도 아니고 잠깐 사이에 이러한 단계로 진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침까지 수행하는 동안 밤새 4~5회의 호흡이 전부이다.
노자(老子)가 말하는 ‘코로 들어가고 나가는 것이 없는데 그 숨이 깊고 깊은(鼻無出入 其息深深)’ 상태나
용호비결에서 말하는 무호흡지식은 모두 이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이 후에는 열심히 정진하다 보면 종종 이런 현상이 일어나면서
호흡의 횟수도 점점 줄어들고 2~3일동안 무호흡 지식에 들어가며 이 때를 두고 삼매경 또는 입정에 든 것이라고 한다.
이 때에는 짐승들은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며 혹시라도 사람이 이것을 발견한다면
몸에 손을 대거나 옳겨서는 절대 않되며 다른 이가 손을 대지 못하도록 지켜주어야 하는 것이 옳다.
무호흡지식의 재검토
연기화신(鍊氣化神)
용호비결의 이 문장은 연기화신(鍊氣化神)과 연신환허(鍊神還虛)를 포괄적으로 설명하여
자세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는 중요한 문장이다.
여기서 유(柔)와 화(和), 그리고 정(定)은 각각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기는 부드러운 것과 강한 것이 있는데, 강한 기는 신으로 화(化)할 수가 없다.
부드러워진 기만이 신으로 화(化)하게 된다.
그래서 기를 부드럽게 하는 태식으로 신을 기를 수 있는 것이다.
태식이 기를 부드럽게 하는 이유는 마음을 고요히(靜)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음의 경지를 고요할 정(靜)자를 써서 입정(入靜)의 상태라고 한다.
그리고 부드러워지면 화(和)한다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화(和)는 이른바 중용(中庸)에서 말하는 화(和)의 개념으로 절도에 어긋남이 없이
완전하게 어울리는 것을 의미한다(皆中節).
기가 어울린다는 뜻은 신(神)에 완전하게 동화(同和)하는 것이며, 신으로 화(化)한다는 뜻이다.
연기화신(鍊氣化神)의 단계이다.
연신환허(鍊神還虛)
신으로써 허(虛)에 이르는 설명은 위에서처럼 단순하지는 않다.
허(虛)의 단계는 단순히 몸과 마음을 고요히 하는 단계보다 더 깊은 경지이며 보다 진보된 단계이다.
그러면 허(虛)란 무엇이며 구체적으로 어떠한 경지를 말하는가?
노자의 도덕경과 용호비결에서 허(虛)를 묘사한 문장을 각각 보기로 하자.
도덕경 찬현(贊玄)편에서 도의 허(虛)함은 볼 수도 없으며(이夷), 소리도 없으며(희希),
만질 수도 없는(미微) 무물(無物)의 형상이라 분간하기 어렵다(황홀恍惚)고 하였다.
그리고 허심(虛心) 편에서는 분간하기 어려운(황홀恍惚) 가운데에 도가 있고,
고요하고 아득한(요명窈冥) 가운데에 정이 있다고 하였다.
도덕경의 두 편을 요약하면 말 그대로 허(虛)하여 분간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요명窈冥, 황홀恍惚)
용호비결에서는 내가 육신에 깃들어 있는지 육신이 내게 깃들어 있는지 분간하기 어려운 상태
즉, 요명과 황홀을 강조하여 ‘요요명명(窈窈冥冥)’ ‘황황홀홀(恍恍惚惚)’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또한 태극이 갈리기 이전의 경지에 있는 것 같은(已在於太極未判之前矣) 상태만이 참된 경계라고 하였다.
모두 허(虛)의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허(虛)는 단순히 아무런 욕망과 생각도 일으키지 않는 고요한 마음의 상태 입정(入靜)보다
한 단계 더 깊게 진보된 상태이다.
이러한 상태를 ‘허(虛)에 자리한다’고 하여 입정(入定)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入靜(입정)과 入定(입정)은 다르다.
무호흡지식(無呼吸之息) 이전의 태식이 입정(入靜)이며, 아직 허(虛)에 이르지는 못한 상태이다.
무호흡지식이 시작되면 비로소 허(虛)로 들어가는 것이며, 이를 입정(入定)이라고 한다.
엄밀히 말하면 입정(入定)의 상태는 도에 이른 상태로써 깨달음에 이르렀다고 표현한다.
화(和)한 기는 지극히 안정(定)되면 마침내 호흡이 없는 듯한 숨을 쉬게 된다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정(定)은 연신환허(鍊神還虛-神으로써 虛로 들어감)의 단계이다.
무념(無念)의 상태 즉 아무런 생각도 일어나지 않아서
마음이 마치 고요한 호수와도 같은 상태에 이르면 허(虛)에 이르렀다고 하는 것이다.
허(虛)에 이르면 무호흡지식(無呼吸之息)의 단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胎息(태식) 入靜(입정) 入定(입정)
氣柔(기유)→ 氣和(기화)→ 氣定(기정)=> 無呼吸之息(무호흡지식)
氣(기)→ 神(신)→ 虛(허)=> 無呼吸之息(무호흡지식)
[현빈]
현관(玄關)과 현빈(玄牝)이란
출처: http://www.danhak.org/board_hyunbin/381
현관(玄關)과 현빈(玄牝)
玄關과 玄牝의 의의(意義)
현관과 현빈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현관이 자통을 격을 때 현관은 일규를 이루게 되면 그 안을 현빈이라 한다.
현관은 신장과 배꼽사이의 십 등분하여 신장 앞에 존재하는 기관이다.
대장大腸 소장小腸 간장肝腸 폐장肺腸 위징胃腸 등과 같이
물질적 형체가 갖추어진 기관이 아닌 기炁 를 관장하는 형이상학적인 기관이다.
이기관은 수행자가 고도로 정신이 집중이 되면
신장앞에 탁구공정도의 크기로 흰색의 주머니가 위치하고 있는 것을 볼 수 가있다.
현관과 현빈은 계란을 연상하면 쉽게 해석 될 것이다.
외부는 현관이고 내부는 현빈이다.
용호비결(龍虎秘訣)의 현빈(玄牝)
출처: http://www.danhak.org/board_hyunbin/385
한편 용호비결에서는
至於工夫稍熟(지어공부초숙)하야 得其所謂玄牝一竅(득기소위현빈일규)면 百竅皆通矣(백규개통의)니라
[번역]
공부가 점차 성숙되어 이른바 ‘현빈일규’(현빈이 한 구멍을 얻음)를 얻게 되면 모든 구멍이 다 통한다. -
이라고 했다.
여기서 구멍은 인체에서 기가 소통하는 통로를 말한다.
그리고 백 가지 구멍은 구멍이 백 개라는 뜻이 아니고 모든 구멍을 의미한다.
백회(百-100 會-모이다) 또한 백 개의 구멍이 모여서 백회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구멍(통로)이 모이는 곳이므로 백회라고 한다.
현빈일규는 문자 그대로 하늘의 현빈에 하나의 구멍이 열린다는 것이며,
백규개통(百竅皆通)은 백회가 열려 현빈과 통하게 되면
이 때 들어오는 하늘의 기운으로 인체의 모든 구멍이 뚫린다는 의미이다.
현빈을 단전으로 오해하여 소주천 시작할 때
기가 단전에서 구멍을 열어 좌협으로 이동하는 것을 현빈일규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 때에는 기의 이동이 비로소 시작하는 초보단계이며 기가 완전하게 소통되지는 않는다.
백회가 열려야 비로소 기가 온 몸으로 막힘 없이 구석구석 통하게 된다.
백회가 열리고 나면 피부의 탄력이나 투명도가 눈에 띄게 달라지며 주름살도 펴지는 등
신체에 많은 변화가 확연하게 일어난다.
이것은 그 동안 막혔던 기의 모든 통로가 완전하게 뚫렸다는 증거이다.
현빈을 단전이라 하고 현빈일규를 기가 좌협으로 밀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주장의 근거를 용호비결에 두고 있다.
그러나 용호비결 그 어느 구절에서도 이러한 근거는 찾을 수 없다.
이런 말이 나오는 이유는 현빈일규를 직접 체험하지 못한 소치이며
그러한 결과 용호비결을 제대로 해독하지 못한데서 기인한다.
[주문수행]
주문수행
출처: http://www.danhak.org/board_jumun/402
선도수행은 수행의 방법에 따라 주문수행(呪文修鍊)과 조식수행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설명한 조식수행과 주문을 낭송(朗誦)하며 신계(神界)와 접(接)하고 정신을 밝게 깨우쳐
궁극의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수행을 주문수행이라 한다.
주문수행은 좌도(左道)라고 부르기도 한다.
수행은 깨달음이 목적이므로
신통력은 깨달음에 비해서 왼쪽(1차가 아닌 2차)의 자리에 있다하여 그렇게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주문수행도 엄연한 수행이며, 수행한 만큼 계제가 올라가는 것은 조식수행과 동일하다.
주문공부가 호흡보다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주문수행은 조식수행보다 가리는 것도 많고 소리를 내게 되므로 힘이 더 든다.
주문수행 중에는 중도에 산에서 하산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찾아오는 사람이 있어도 수인사 정도로 끝내고 잡담을 하지 않아야 하고,
상스러운 소리는 입에 담지 말아야 한다.
누린내 나거나 비린내 나는 것을 먹지 말아야 하는데,
누린내 나는 것은 소고기나 닭고기도 누린내가 나지만 개고기를 먹지 말라는 것이고,
비린내 나는 것은 젓갈을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며
젓갈은 생선으로 만든 젓갈로 예를 들면 멸치젓이나 갈치젓 즉 생선을 삭혀서 만든 것으로
지독하게 비린내가 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새우젓이나 조개젓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또한 상여를 보지 말아야 하고, 상주도 멀리해야 한다.
부정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개고기를 먹게 되면 공부한 능력이나 그 동안 애써 쌓은 공덕은 일시에 모두 소멸된다.
애써 공부했다가 한순간에 날려 버리는 과오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주문수행은 피동수행법(被動修鍊法)이라고도 하는데, 신계(神界)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신과 통하여 이른바 신통력을 얻게 되는 공부이다.
주문수행의 종류는 무수히 많으나
비인부전(非人不傳 - 바르지 못한 사람에게는 전하지 않는다)이라하여 은밀히 비전되고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는 특징이 있다.
이 주문수행법을 아무에게나 전하지 않은 것은 이것을 함부로 남에게 전하면 하늘의 신벌을 받게 되기 때문이며,
주문수행법의 많은 부분이 실전된 것도 함부로 누설하다
신벌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거나 정신병자가 되어 죽어갔는가 하면
불행하게 살다가 일생을 마쳤기 때문일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수행자라도 불순한 행동을 하거나 불순한 마음을 먹게 되면 신계의 벌을 받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를 본 사람들이 함부로 접근해서는 안될 것으로 여기고 외면하면서 점차 실전되어온 것이다.
주문수행은 불순한 목적으로 공부하면 열심히 하여도 성공할 수 없다.
흔히 말하는 어떤 분야에서 도통했다고 하는 말은
옛적에 그 분야의 주문수행에 성공한 것을 두고 이르던 말이 일상화된 것이다.
주문수행도 계제가 있으며, 같은 분야라 하더라도 계제에 따라 능력의 고하가 있다.
주문수행은 몸이 깨끗하여야 신과 통할 수 있으므로 삼시충을 잡아낸 후에야 그 성공이 가능하다.
주문수행 중에서 힘을 바탕으로 가장 으뜸인 것은 산차(山借)와 수차(水借)이다.
이 주문 수행을 성공하면 나라의 이름을 바꿀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을 얻는다고 선가(仙家)에서 전한다.
산차의 대표적 인물로는 고구려의 연개소문(淵蓋蘇文)과 삼국지의 등장인물 조자룡이 있다.
일생동안 한 번도 패한 일이 없는 조자룡은
경상도 상주(상산)출신으로 은척의 성주봉에서 수행하였다고 전해져 내려오며 그 계제는 8계였다고 한다.
연개소문은 산차에서 가장 높은 입신(入神)의 경지인 9계에 이르렀다고 전한다.
수차(水借)의 대표적 인물로는 송(宋)나라의 건국을 도운 조참(趙參)장군과 남송(南宋)의 건국을 도운 악비(岳飛)장군이 있다.
산차와 수차는 그 우열을 가리기는 힘드나 그래도 산차를 상위라고 한다.
이것을 통하여 능력을 얻으면 지혜와 힘을 얻고 신계(神界)의 보호를 받는다.
‘단(丹)’이라는 소설에서 소개된 바 있는 비홍검법과 같은 최상의 무술은 신계로부터 지도 받아 터득을 하게 된다.
인간의 힘으로 터득한 무술과는 비교가 안 된다.
선배로부터 혹은 스승으로부터 지도를 받지 않아도 신이 직접 지도를 해준다
스승의 역할은 주문수행의 방법을 지도하는 것 외에는 없다.
조식을 하는가 주문을 낭송하는가에 따라 위와 같이 구분을 하지만
오수주(五獸呪), 삼극주(三極呪), 심인경(心印經) 등의 주문은 조식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 구분이 애매한 것도 있다.
그러나 공부수준이 도계의 중진을 넘어서게 되면
주문수행과 조식의 구분은 점점 없어지고 조식수행만 하였더라도 신과 통하여 여러 가지 능력은 부수적으로 생기게 된다.
주문수행은 반드시 선배나 스승의 지도를 받아야 마장과 부작용을 극복하고 성공할 수 있다.
지도 없이 혼자서 입산 수행하다가 낭패보는 일이 없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누구나 처음 주문수행에 임할 때는 성공하겠다는 굳은 의지로 열심히 수행에 임하게 된다.
그러나 점차 의지가 약해지거나 수행의 진전이 보이지 않을 때
방심하고 정신을 놓거나 해이해지게 되면 동자신이나 기타 다른 잡신들이 몸으로 들어와 빙의처럼 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을 마치 수행에 성공한 것으로 착각하고 잡신에게 지배되어 무당처럼 살아가는 경우가 더러 있다.
잡신은 색동저고리를 요구하거나 굿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요구를 거절할 수 없도록 만든다.
예를 들어 요구사항을 들어주면 돈을 벌어주거나 좋은 일이 생기도록 도와주며,
거절하면 본인을 비롯한 가족들에게 불의의 사건 사고를 발생시켜서 피해를 준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면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게 되고 그러면 무당처럼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밤마다 색마가 찾아와서 관계를 갖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귀신과의 관계에서는 방사를 자제할 수가 없다.
그리하여 서서히 기력이 쇠약해져 죽어가는 경우도 있으며,
잡귀가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중얼거리도록 하여 정신병자로 취급받는 경우도 있으며,
혹은 낭떠리지에서 떨어져 죽게 하거나 목을 매서 자살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주문수행에 임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런 것을 항시 유념하고 각별한 주의를 해야 할 것이다.
개중에 젊은 혈기만을 믿고
귀신 자체도 믿지 않을 뿐더러 무서울 것이 무엇이 있을 것이며
어떤 것이 무서운가 하고 두려움을 모른채
주문공부를 가벼이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실제 있었던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삼원학회와 교분이 있던 사람 중 1999년 11월경 당시 32세의 우종형이라는 사람이
귀신이 무엇이 무섭냐고 하며 큰소리 치고 혈기가 넘치던 사람이었는데
그가 산에서 공부를 해보겠다고 주문 하나를 가지고
벽오선생이 공부하던 산 그 자리에 들어가서 단 3일만에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쫓겨 내려와
다시는 그 산을 바라 보지도 않는 사람이 있다.
본인의 이야기를 들어본 즉 어떤 신의 모습이 나타나 점점 접근해 오자
처음에는 뭐 이런 것이 있나 하고 별거 아니라 생각했는데,
마음에서부터 점차 두려움이 일어나며 이것이 무서움으로 바뀌어 갔다고 한다.
그리고는 이 힘에 밀려 뒤로 조금씩 물러나다 결국에는 견디지 못하고 뒤걸음을 치며 산을 내려오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공부에 섣불리 나설 사람이 있을 것 같아 경계삼으라 하는 뜻에서 예를 들어보았다.
여기서는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는’ 공부 중에서
심인경과 벽오 선생이 직접 수행하여 성취한 의학통령과 지맥통령을 소개하였다.
의학통령(醫學通靈)
출처: http://www.danhak.org/board_jumun/403
통령(通靈)이라 하면 글자 그대로 영적으로 신의 경지와 통하게 된다는 뜻이다.
선계(仙界)의 천신(天神)들은 평소 자기 일을 하면서 또한 각자 궁극의 깨침을 향한 자기 수행에 정진하고 있다.
그들 천신들은 나름대로 자기의 전공분야가 있는데, 의학이 전공인 천신도 있고,
무공이 전공인 천신도 있고, 지맥(地脈)에 통한 천신도 있다.
그들 천신들 중 의학이 전공인 천신의 가르침을 받아
인간의 신체내부구조와 질병의 발생, 질병의 치료법 등에 통달하게 되는 것을 ‘의학통령’이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상에서는
동의보감(東醫寶鑑)의 ‘허준’ 선생과 사상의학(四象醫學)의 ‘이제마 ’선생이 의학통령 공부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의보감은 인간의 지식만으로 저술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또한 실제로 동의보감을 완전하게 이해하려면 의학통령을 통한 밝음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이제마 선생의 사상의학도 인체 내부를 완전히 꿰뚫어 보고,
오장육부와 인간의 심성과의 연관관계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통찰이 없이는 이론 정립이 불가능하다.
위의 두 분 이외에도 우리 역사상에는 정신수행을 통하여 공부를 성취하신 분들이 수도 없이 많다.
선계의 천신(天神)의 가르침으로 의학을 공부하는 것은,
인간세상에서 책과 강의를 통해 배우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의학통령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호흡이 최소한 1분 이상은 되어야 하며,
뇌조목(雷棗木;霹棗木-벼락맞은 대추나무)을 구하여 필요한 영패(令佩)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의 왕래가 없는 산 속에서 공부에 좋은 자리를 찾아 주문수행을 시작한다.
수행자는 의학통령경인 ‘천령주(天靈呪)’를 혼신의 정성을 다하여 유장(流長)하게 낭송하며 정진하여야 한다.
입정에 들어 밝아진 상태가 되면 인연이 있는 의학에 밝은 천신이 현신한다.
현신한 천신은 인체의 내부구조, 경맥의 흐름과 낙맥의 흐름, 오장육부의 구조와 상호연관성, 질병과 그 원인,
진전과정과 치료방법 등을 가르쳐 주는데, 이는 머리로 배우는 것이 아니다.
인간세상의 지식으로는 무엇이라고 표현하기 힘든 활연관통의 경지로 마음으로 배우는 것이다.
즉 심법(心法)으로 배우는 것이다.
이렇게 정진하여 의학을 통령하게 되면 어떤 질병이든지 그 원인과 진행상태가 한 눈에 파악된다.
의학통령이 완성되면 선계로부터 ‘홍제패’ 일명 ‘홍패’를 받게 된다.
이는 앞서 도의 계제에 따라 받게 되는 석패,철패, 동패, 금패 등과는 다른 것으로,
비유하자면 선계에서 주는 ‘자격증’ 같은 것이다.
홍패를 받고 분발하여 더욱 정진하면 의학을 통령하게끔 공부를 인도해 준 천신,
즉 의신(醫神)과 서로 인사하고 의(義)를 맺는 결사(結辭)를 하게 된다.
결사까지 맺게 되면 의학통령의 능력은 일생 동안 유지되는 것이다.
결사를 맺지 목하면 신통한 능력은 10년이 지나면 없어진다.
결사까지 완성하면 수행자의 명(命)이 다할 때까지 의통한 능력이 유지된다.
의학통령은 남자 신선들이 지도하며 결사도 남자신선과 맺게 된다.
이렇게 통령하여 인간의 구조와 질병에 대한 모든 것을 깨우쳐도
현 시대의 제도권에서는 맞지 않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나 천산민족 전통수행법의 맥을 끊지 않기 위해서도,
그리고 언젠가 때가 오기를 기다리기 위해서도 누군가는 반드시 이 공부를 이어가야 하는 것이다.
의학통령경인 천령주(天靈呪)는 세가지 공부를 이룰 수 있다.
첫째는 신침(神針)이다. 침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의술이다.
신침 공부를 하다보면 신선들이 와서 치료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인체의 모든 부분을 현상시켜 보여준다.
이 때 인체의 내부를 완벽하게 공부하게 된다.
침통공부가 완성되려면 침을 써도 좋다는 선계의 인정이 있어야 하는데,
인정을 받게 되면 선계에서 영적인 침을 받는다. 이것이 신침 공부이다.
두 번째는 신인(神印)이다.
이는 손바닥으로 환자에게 부족한 기를 보충하고, 환자의 기를 전신의 요혈을 돌게 하여 치료를 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예수가 대풍창 환자(나병 환자)를 치료했다는 그 방법인 것이다.
이 또한 신침과 같이 능력을 받게 된다.
세 번째는 신약(神藥)이다. 신침의 통령과 같은 방법으로 능력을 얻고 통령을 하게 된다.
신약통령을 하게 되면 환자를 연상하고 조식(명상)에 들면 환자에게 필요한 처방이 현상된다.
이 처방대로 약을 지어 사용하면 질병이 낫게 된다.
이것이 곧 신약(神藥)인 것이다.
신약통령을 하게 되면 한가지 처방으로 백병을 다스리는 처방을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처방은 신계 신선들의 처방법인 것이다.
의학에 통령하기 위한 주문을 천령주라고 하며 주문은 단검도에 소개되어 있다.
지맥통령(地脈通靈)
출처: http://www.danhak.org/board_jumun/404
‘지맥경’ 혹은 ‘지골경’은 신라 말기 승려인 도선국사가
당나라의 일행선사로부터 전수 받은 것인데,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온다.
일행선사의 제자가 묻기를
“동쪽에서 지금 우리 쪽으로 서기(瑞氣)가 다가오고 있는데 이것이 무슨 현상입니까?”
선사가 답하기를
“지금 동쪽나라에서 태백성의 기운을 받고 태어난 위인이 우리 쪽으로 오고 있으니
맞을 준비를 하여라.” 하였다.
선사가 도선을 맞이하여 물었다.
“지금 성인의 반열에 이른 자들은 지리의 이치를 깨우쳐 알고 있으나,
사람들이 이를 배우려하지 않고 책으로 전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
후세에는 내용도 변질될 우려가 있으니 그대가 이 주문을 통령하고 지리의 이치를 익히지 않겠는가?”
도선은 이를 흔쾌히 승낙하고 지리의 이치를 깨우쳐 돌아와
전국의 산야를 돌아보고 곳곳의 길지를 잡았다는 일화가 있다.
도선 국사는 이 주문을 후학에게 전하기 위해 산 속 바위틈에 숨겨 두었는데,
500년 후 무학대사가 이를 찾아내었다.
비단보에 쌓여 있는 것이 너무 오래되어 만지면 부서질 것 같아
칠일칠야를 잠을 자지 않고 정성을 다하여 관법(觀法)으로 파악하여 기록한 것이,
지금 전해오는 지골경(地骨經)인 것이다.
지골경은 여자 신선들이 지도하며 전해주는 것이다.
특히 신통한 능력은 남자 신선보다 여자 신선이 많이 알려 준다.
이것은 아버지는 일반적인 것을 자식에게 주지만,
어머니는 맛있는 것을 숨겨 두었다가 자식에게 주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면 된다.
의학통령 때와 마찬가지로 입정(入靜) 상태에 들어
혼신의 정성을 다하여 지골경을 유장(流長)하게 낭송하며 주문수행을 한다.
호흡의 길이가 1분 이상 되는 수행자는 주문수행에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으나,
호흡수준이 약하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호흡수준이 2분 정도 되면 성공하지 못할 주문수행이 없다.
주문수행 시에도 조식수행과 마찬가지로 삼시충이 빠지고 난 후에야 공부에 성공할 수 있다.
먼저 하충부터 빠지기 시작하여 수행이 더욱 진보하면 상충, 중충이 빠진다.
지맥경에 통령하면 어느 산 어느 지역을 가도
그 지역의 맥이 확연하게 잡히고 땅 밑으로 흐르는 기맥(氣脈), 기가 맺히는 혈자리 등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어떤 산소자리를 보든지 그 후손들이 지금 어떠한 상황에 있으며
어떠한 일들을 겪었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이며, 그 집안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확연하게 밝힐 수 있다.
즉 그 후손의 과거, 현재, 미래를 한 눈에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지맥경 통령은 초통, 재통까지는 큰 무리 없이 갈 수 있으나,
삼통을 할 때에는 많은 신장과 신들을 접하게 된다.
이들은 수행자에게 위협을 하기도 하고, 무서운 형태로 나타나
무서움에 질리게 하는가 하면 신장과 신들의 무서운 분위기에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이때 수행자가 두려운 마음을 가지거나 한치의 물러남이라도 있으면
이 즉시 수행은 실패로 돌아가고 정신병자가 되거나 목숨까지 내주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매단계마다 나타나는 신장과 신들의 시험은 그 강도가 더욱 거세지고 수행자를 더욱 힘들게 한다.
그러나 수행자가 아무리 힘들고 무서움이 있더라도
한치의 두려움도 없이 꿋꿋이 나간다면 이러한 것들은 모두 사라진다.
이후에는 여자 신선이 나타나 지맥에 대하여 지도를 해주며
현상으로 지맥의 흐름과 산세에 대하여 모든 것을 보여주어 수행자가 이러한 것들을 터득하게 되면
통령을 얻게 되고 홍패를 받게 되는데 이것이 곧 자격증이다.
이때 수행자가 더욱 정진하여 나아가게 되면 천신과 결사를 맺게 된다.
천신과 결사를 맺게 되면 그 능력은 평생 유지된다.
통령만으로는 그 능력이 10년에서 15년을 넘지 못한다.
그러나 스스로 탐욕이 앞서 그 능력을 사용한다면 큰 화를 당하게 되지만,
욕심 내지 않고 이로운 일에 그 능력을 사용한다면 그 만큼 기간은 연장될 수 있다.
지맥통령 주문인 지맥경(지골경)은 단검도에 소개되어 있다.
심인경(心印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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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인경은 관법(觀法)이다.
관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심인경은 그 중에서도 가장 으뜸의 관법주문이다.
심인경에 통령을 하게 되면 나라의 이름을 바꿀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이 생기는데,
주문왕(周文王)의 건국을 도왔던 강태공(姜太公)이나
유비(劉備)를 도왔던 제갈량(諸葛亮),
유방(劉邦)을 도와 한(漢)을 세운 장자방(張子房)의 능력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주문이다.
일반인들에게는 단학(丹學)의 경전으로 알려져 글자의 뜻풀이에 많은 학자들이 노력을 하고 있지만,
심인경의 비밀은 내용보다도 그 자체가 최고의 관법주문이라는 것이다.
심인경에 통령하기 위해서는 심인경 외에도
타본유비주(他本有比呪)라는 후미(後尾)와 상약삼품도 및 심인도가 있어야 완성할 수가 있다.
타본유비주와 상약삼품도 및 심인도는 선도의 바른길 수행보감에 소개되어 있다.
원상(原象)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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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상주(原象呪)는 주역의 요지를 함축한 문장으로, 계사전(繫辭典)의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일반주문은 각 주문마다 내용이 다르며, 각각 전공의 신통력이 따로 있는 반면에,
원상주는 다양한 능력을 이 하나의 주문으로 성취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의학통령 주문인 천령주(天靈呪)로 수행에 성공하여 의학(醫學)의 능력을 얻었다 하더라도,
지맥통령(地脈通靈)을 얻고자 하면 지맥경(地脈經)이라는 주문으로 수행을 해야 한다.
그런데 원상주는 이 주문 하나를 가지고 여러가지 신통력을 얻을 수 있다.
가령, 관법(觀法)을 수행하고자 하면 원상주의 내용 중에 ‘授我○○’이란 문구 대신
‘수아영구(授我靈龜)’란 문구를 넣고, 의학(醫學)의 능력을 얻고자 하면
‘수아헌기(授我軒岐)’란 문구를 넣어 낭송하며 주문수행을 한다.
차력(借力)의 능력을 얻고자 하면 ‘수아용력(授我勇力)’이란 문구를 넣고,
빠른 걸음의 능력을 얻고자 하면 ‘수아축지(授我縮地)’라는 문구를 넣어서 낭송하며 주문수행을 하면 된다.
이처럼 원상주 하나로 여러가지 능력의 주문수행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주문이 무차(武借)로 분류되는 반면,
원상주는 문차(文借)로 분류되어 같은 분야에서는
일반주문으로 공부한 무차(武借)보다 그 능력면에서 뒤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참고】원상주(原象呪)로 주문수행을 하여 의학(醫學)의 능력을 얻고자 할 때,
수아○○(授我○○)라는 문구 대신 수아헌기(授我軒岐)라는 문구를 넣어 수행하는데,
이때 헌기(軒岐)는 황제내경(黃帝內經)을 지은 황제헌원(黃帝軒轅)과 그의 신하인 기백(岐伯)을 함께 부르는 용어이다.
일반적으로 의학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한다.
※ 삼령재신(三靈在身)… 이하의 문장은 축원문(祝願文)으로서 관법수행시에는 이를 쓰지 않으며,
원상문을 주문으로 하여 주문수행시에 ‘빨리 이루게 해 주십시오’하는 문구이다.
주문수행과 현빈
출처: http://www.danhak.org/board_jumun/409
주문수행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삼시충이 제거되어야 한다.
조식수행과 주문수행 모두가 현빈에 들어야 성공할 수 있는데,
삼시충을 제거하지 못하면 현빈에 들 수 없기 때문이다.
주문수행에서 천상에서 인간세상을 관장하는 칠성의 허락을 받아 당에 들지 않고서는 통령을 얻을 수 없다.
삼시충은 제거하고 싶다고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수행이 깊어져 삼시충을 볼 수 있는 정도로 정신이 맑아지고 눈의 밝음이 열리고 맑아지면
삼시충이 견디지 못하고 떠나게 되는 것이다.
조식의 기초가 없더라도 주문수행만으로 시작하였다면
하루 12시간 이상 정성껏 수행하여 3년 정도가 되면 삼시충을 몰아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삼시충과 대등한 정도까지의 귀신은 볼 수 있는 눈이 열리게 된다.
만약 3년 정도의 수행을 하고도 삼시충을 보지 못하였다면
공부를 게을리 하였거나 정성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주문수행은 정성껏 주문을 낭송면서 공부를 하는데, 소리를 내지 않는 때가 있다.
이 때는 주문수행으로 삼매에 들었을 때문인데,
주문수행에서 ‘삼매에 든다’ 함은
입정상태에서 나의 본신이 현빈에 들어 선계仙界에서 선관仙官을 만나는 것을 의미한다.
본신은 현빈에 들어도 수행자의 몸은 본래 수행하는 모습 그대로 있게 된다.
주문을 낭송하느라 입은 움직이지만, 본신이 몸을 이탈했기 때문에 소리가 나지 않는다.
조식수행에서 무호흡지식의 상태와도 같은 맥락으로 보면 될 것이다.
이것을 생리학적으로 보면 일반인에게는 죽은 상태이지만,
수행자에게 있어서는 수행의 깊은 경지에 이른 것이다.
이 때 수행자의 몸의 심장박동은 느려지며, 호흡도 미세한 상태로 된다.
이러한 상태는 여러 시간이 지속되며 이 단계가 바로 주문수행의 최고의 경지이자,
주문수행의 통령 또한 이 상태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바로 이 때가 주문수행시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인데, 몸에 본신이 없기 때문에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수행자의 본신이 현빈에서 나와 몸으로 들어가기 전에
자신이 주문을 낭송하며 수행하고 있는 모습을 몸 밖에서 보게 되는데,
그 때 보게 되는 자신의 모습은 외모 뿐만 아니라 오장육부를 비롯하여 뇌 속까지 신체 내부를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비몽사몽간에 보이는 것을 자신이 졸고 있었다는 것은 모른채 현빈에 든것으로 착각하는 이도 있다.
현빈에 든 것은 수행시 모습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비몽사몽과는 엄연히 구분이 된다.
그리고 같은 주문수행이라도 취물법등과 같은 저급한 주문들은 현빈에 관계 없이 접신이 될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