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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는 때가 제일 이른 때
인사하러 오신 경옥스님에게 해인사에 비가 왔는지 큰스님이 물으셨다.
“비 안 와서 큰 일입니다.”
“해인사도 안왔구나. 삼선암 골짜기 물소리 좋은데. 안 온 데는 영 안 와서 야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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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7월 4일 태풍소식이 있었는데 태풍이 오다가 진로를 바꿨다고 했다.
짙은 먹빛 삼베 옷을 입고 내려오신 큰스님은 한결 가뿐하고 젊어보이셨다.
계속해서 자연식물식을 하고 계시고, 오전에는 과일을 많이 드신다고 했다. 살이 많이 빠졌었는데 다시 어느 정도 쪄서 필요한 만치 유지 중이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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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라진 암’이라는 책을 유튜브로 자주 듣는다고 책 읽는 유튜브 채널을 찾아서 보여주셨다. 여러 사람의 책읽는 유튜버들에 대해서도 짧게 짧게 평을 해주셨다.
“한상도라고 하는 강원도 영월에 어떤 공무원이 암에 걸려가지고 자기 암치료 한 기록을 책으로 만든거야. 아주 감동이야. 공감을 많이 했어. 그거 여러 번 들었어. 유튜브에 책 제목만 치면 여러 사람이 읽은 것이 있어. 쉴 때 가만히 누워서 듣다보면 듣다가 잠이 싸악 오고. 나는 그렇게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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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밥을 좀 만들어서 가져왔습니다.”
지난 번에 도라지청을 가져 오셨던 봉화산사 송준스님이 이번에는 연밥을 가지고 오셨다.
봉화에서 함께 포교하고 계시다는 스님도 오셨는데 봉화시내의 해성병원에서 건물 한 층을 내줘서 축서사 불교대학을 운영하고 계시다고 했다. 그곳에 학생이 많다고 하셨다. 큰스님이 ‘그런 이야기를 더 들어야 하는데’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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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담양에서 비구니 스님이 오셨다.
“스님께 화엄경을 배우고 싶어서요, 그런데 너무 늦게 온 것 같아서.”
“생각나는 때가 제일 이른 때야. 어쩔 수 없지 뭐 지나간 일은. 그렇구나, 이제야 알았어요?”
큰스님이 물으셨다.
스님은 공부하고 싶은 갈망이 있었는데 문수선원이 있는지는 처음 알았다고 하셨다.
“15년 지났는데. 지금이라도 독한 맘 먹고 열심히 하면 딴 사람보다 앞질러 갈 수가 있어. 협존자라고 80에 출가한 사람도 있잖아. 하기에 달려 있지. 일찍 출발했다고 꼭 잘하는 것도 아니고.”
“스님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서 너무너무 영광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스님 법명이 뭐라고?”
“닦을 수자 지혜 지자입니다.”
“그래요 좋은 자리에 앉으세요. 오늘 새로 온 분도 있네.”
하고 큰스님이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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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명스님이 오셔서 큰스님께서 은사스님의 소식을 물으셨다.
“고통스러우신가 봅니다. 별다른 치료도 없나 봅니다. 견딜 수가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고 병원에 가서 수혈을 하셔야 됩니다. 피를 만들지를 못한답니다.”
각명스님이 은사스님의 자세한 소식을 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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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스님이 오셔서 큰스님께 인사하셨다.
“만수무강하십시오. 오래 지켜주시고요.”
“고맙습니다. 건강하십시다.”
큰스님이 노스님께 합장하셨다.
이윽고 상강례
법회의 시작
날씨가 무더운데 이렇게 많이 동참해 주셔서 대단히 고맙고 감사하다.
내가 작년 초기에 한참 자연식물식 또는 건강의학, 예방의학에 대해 열의를 가지고 선전을 했다.
오늘도 새롭게 일깨우기 위해서 <건강을 위한 필독서>라고 책 제목을 적어놓은 것을 돌렸다. 또 오늘 그런 것을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발심수행장에서 원효스님께서 ‘사람들이 밥을 먹어서 주린 창자를 위로할 줄 알면서 법을 배워서 어리석은 마음 고칠 줄을 모른다’고 하셨다.
보통은 그냥 스치고 지나가 버리고 ‘흔히 있는 이야기다’라고 생각하면 별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 내가 근래 그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주 중요한 이야기 같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육신과 정신 두 가지뿐이지 않은가? 우리의 정신세계는 이렇게 부처님으로부터 좋은 경전의 가르침을 공부해서 내 정신세계를 자꾸 성장 발전시키는 일인데 그것은 우리의 평생과제니까 그렇다손 치고, 음식 역시 더 말할 나위 없이 공부를 해야 된다.
그 음식이라는 말 속에는 물도 있고 공기도 있고 음식도 있다. 그 세 가지를 다 말한다. 공기는 우리가 자연스럽게 흡입하는 것이고, 물도 요즘은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는데 그것도 또한 사실은 좀 공부도 하고 마음을 써서 물을 마셔야 된다.
우리 절에서는 불교 계율상으로도 그렇고, 부처님 사상도 그렇고, 음식에 대해 정리가 잘 돼 있지만 스님들은 모두가 포교 일선에 있으니까 ‘나는 포교사다’ 생각하고 음식에 대해 공부를 해야된다.
‘아 나는 잘 하고 있는데’ 이렇게 생각할 것이 아니다. 확실하게 자기 살림살이로 만들어서 철두철미하게 주입시키고, ‘포교하는 데 신도들에게 인생에 큰 도움이 되도록 해야 되겠다’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법을 가르쳐서 정신세계를 구축하는 것, 또 음식을 잘 먹어서 몸을 잘 관리 하는 것 두 가지가 다 해결된다. 인생사는 그 두 가지 뿐이다. 딴 것 없다. 출가한 사람이든 세속 사람이든 똑같다. 그 범주에서 벗어난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런데 우리가 무심코 습관대로 살아오면서 먹고 마시고 한다. 스님들이야 평소에 잘하지만, 포교사로서 신도들에게 제대로 알고, 음식도 포교의 한 과목으로, 확실한 한 과목으로 생각해서 가르쳐야 된다.
그런 생각을 나는 근래에 더욱 열심히 해서 거기에 대한 책도 더 많이 읽게 되었다.
지금 한 2년이 채 안되는 세월이지만 지금까지도 계속 같은 것을 읽고 듣는다. 한 번 안다고 해서 그것이 그대로 실천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철두철미하게 알도록 하기 위해서 지루할 정도로 그것을 듣고 읽고, 듣고 읽는다.
물 한가지만 이야기 드리자면 요즘 흔히 하루에 물 2리터는 마셔야 된다고 한다. 그런데 꼭 그런 것이 아니다. 물 중에 제일 좋은 물이 무슨 백산수도 아니고 삼다수도 아니고 프랑스에서 수입한 물도 아니다. 그것은 전부 그야말로 물 자체일 뿐이다.
정말 좋은 물은 채소 속에 있는 수분이다.
채소나 과일은 한 70프로 내지 80프로가 수분이다. 거의 물을 먹는 것이다. 수박 같은 것은 90프로가 물이지 않은가. 수박에 들어있는 물이라든지 기타 채소나 과일 등에 들어있는 물은 아주 정제된 물이다.
식물들이 자기가 빨아먹을 물을 전부 검토 다 해서 식물의 몸에 이롭다고 생각되는 것만 흡수해서 그것이 채소가 되고 과일이 된 것이다. 그보다 더 정제된 물은 이 세상에 없다.
다른 것이 아무리 훌륭한 물이라 해도 그것과 비교가 안된다. 과일 채소를 많이 먹으면 평소에도 물을 따로 먹을 필요가 없다. 첫째 물이 먹히지가 않는다. 그래서 하루 2리터씩 물을 먹어야 한다는 것도 굳이 지킬 일은 아니다. 목이 마르면 할 수 없고, 특히 여름에 목이 마르면 물을 먹어 줘야 되겠지만, 평소에는 그렇다.
<건강을 위한 필독서> 유인물에는 내가 읽은 책 중에서 한 3분의 1밖에 소개가 안됐다. 그런 책을 읽고, 또 그것을 유튜브에서 듣다 보면, 요즘엔 유튜브에서 많이 듣지 않는가? 유튜브를 듣다보면 또 다른 지엽적인 것들도 공부를 하게 된다. 그런 것들을 스님들이 잘 알아서 불교를 포교하는 것과 아울러 음식에 대한 포교도 제대로 알고, 제대로 포교를 하면 큰 소득이 있을 것 같다.
신도들에게 이 음식 문제를 제대로 이야기 하고,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귀에 싹 들어가게 하면 눈이 반짝반짝 한다
불교 공부할 때는 졸다가 이 음식문제, 건강 문제 이야기를 하면 신도들 눈에서 빛이 난다. 내가 그것을 느꼈다.
문수선원에서 금요일에 하는 <신도를 위한 화엄경 법회>에서도 내가 자주 이야기하는 편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 바로 실천해서 바로 소득을 얻는 사람들도 있다.
무심코 우리가 음식을 습관대로만 먹어 왔는데 좀 새롭게 생각해서 그것도 일종의 화엄경 공부 못지 않은 공부다, 이렇게 생각해야 된다.
‘화엄경 못지 않은 공부가 음식에 대한 공부다, 예방의학에 대한 공부다’ 라고 생각하고 최소한 제가 적어 드린 그 책들은 전부 여러분들 책상에 비치해 두어야 한다.
나도 열 권 이상 비치해놓고 어떤 때는 책을 사서 돌리기도 했다. 이 프린트는 여러 번 돌렸다. 책 목록을 천 장 이상 복사해서 여기 비치해 놓고 참고할 사람들은 언제든지 가져가게 하고 있다. 그런 뜻에서 오늘도 새롭게 찍어서 돌렸다.
화엄경 못지않게 중요한 이야기다. 기억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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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70페이지(민족사刊 제3권) 하단부터 보겠다.
大方廣佛華嚴經 卷第四十七
佛不思議法品 第三十三之二
四. 說法
8. 自在答
(4) 廣大한 佛事
차. 涅槃佛事
佛子야 一切諸佛이 入涅槃時에 無量衆生이 悲號涕泣하야 生大憂惱하야 遞相瞻顧하고 而作是言호대 如來世尊이 有大慈悲하사 哀愍饒益一切世間하야 與諸衆生으로 爲救爲歸니 如來出現이 難可値遇어늘 無上福田이 於今永滅이라하나니 卽以如是令諸衆生으로 悲號戀慕하야 而作佛事하며 復爲化度一切天人과 龍神과 夜叉와 乾闥婆와 阿修羅와 迦樓羅와 緊那羅와 摩睺羅伽와 人非人等故로 隨其樂欲하야 自碎其身하야 以爲舍利호대 無量無數하야 不可思議하야 令諸衆生으로 起淨信心하야 恭敬尊重하고 歡喜供養하야 修諸功德하야 具足圓滿하며 復起於塔하야 種種嚴飾하야 於諸天宮과 龍宮과 夜叉宮과 乾闥婆와 阿修羅와 迦樓羅와 緊那羅와 摩睺羅伽와 人非人等諸宮殿中에 以爲供養하며 牙齒爪髮을 咸以起塔하야 令其見者로 皆悉念佛念法念僧하야 信樂不廻하며 誠敬尊重하야 在在處處에 布施供養하야 修諸功德하고 以是福故로 或生天上하며 或處人間호대 種族尊榮하고 財産備足하며 所有眷屬이 悉皆淸淨하며 不入惡趣하고 常生善道하야 恒得見佛하야 具衆白法하며 於三有中에 速得出離하야 各隨所願하야 獲自乘果하며 於如來所에 知恩報恩하야 永與世間으로 作所歸依하나니 佛子야 諸佛世尊이 雖般涅槃이나 仍與衆生으로 作不思議淸淨福田과 無盡功德最上福田하사 令諸衆生으로 善根具足하며 福德圓滿이니 是爲第十廣大佛事니라 佛子야 此諸佛事가 無量廣大하야 不可思議하야 一切世間에 諸天及人과 及去來今聲聞獨覺은 皆不能知요 唯除如來威神所加니라
“불자여, 일체 모든 부처님이 열반에 드실 적에 한량없는 중생이 슬피 울며 큰 근심을 내어 서로 쳐다보면서 말하기를, ‘여래 세존께서 큰 자비로써 일체 세간을 가엾이 여기고 이익케 하여, 모든 중생의 구호할 이가 되고 의지가 되는지라, 여래의 출현하심을 만나기 어렵거늘 더없는 복전이 이제 영원히 가시도다.’라고 하나니, 곧 이와 같이 중생들로 하여금 슬피 울고 앙모(仰慕)하게 하여 불사를 짓느니라.
또 모든 천신과 사람들과 용과 신과 야차와 건달바와 아수라와 가루라와 긴나라와 마후라가와 사람인 듯 아닌 듯한 이들을 교화하려고 그들의 욕망을 따라 스스로의 몸을 부수어 사리(舍利)를 만들되 한량없고 수없고 헤아릴 수 없이 해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청정한 신심을 일으키게 하며, 공경하고 존중하고 환희하고 공양하여 모든 공덕을 닦아서 원만케 하느니라.
또 탑을 조성하고 여러 가지로 장엄하여 모든 천궁과 용궁과 야차의 궁전과 건달바와 아수라와 가루라와 긴나라와 마후라가와 사람인 듯 아닌 듯한 이들의 모든 궁전에서 공양하느니라.
치아와 손톱과 머리카락으로 탑을 조성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부처님[佛]을 생각하고 법(法)을 생각하고 스님[僧]을 생각하며 신심을 돌이키지 않고 정성으로 존중하며, 가는 곳마다 보시하고 공양하여 모든 공덕을 닦느니라.
이러한 복덕으로 천상에도 태어나고 인간에도 태어나서는 문벌이 훌륭하고 재산이 풍족하고 권속들이 청정하며, 나쁜 길에 떨어지지 않고 항상 좋은 길에 태어나서 늘 부처님을 뵈옵고 여러 가지 청정한 법[白法]을 구족하느니라.
세 가지 세계[三有]에서 빨리 벗어나 제각기 소원대로 자기의 과보를 얻으며 여래의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으며, 영원히 세간의 귀의할 데가 되느니라.
불자여,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비록 열반에 드시더라도 모든 중생의 헤아릴 수 없는 청정한 복전이 되고 끝없는 공덕의 가장 높은 복전이 되어 모든 중생들의 착한 뿌리를 구족하고 복덕을 원만케 하나니, 이것이 열째 광대한 불사이니라.
불자여, 이 모든 불사는 한량없고 광대하고 불가사의해서 일체 세간의 천신과 사람과 과거 미래 현재의 성문과 독각들도 알지 못하거니와, 오직 여래의 위신력으로 가피를 받은 이는 제외될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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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불사(涅槃佛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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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가 여러가지 소개 되었다. 불부사의법품에서는 부처님에게는 불가사의한 도리가 있다, 불가사의한 법이 있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못하고 헤아릴 수도 없고 생각이 미치지도 않는 것이다, 라고 하며 쭈욱 소개하고 있다.
지금 나온 열반불사는 마지막에 나온 불사이고 하이라이트다.
보통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로 열반의 문제를 가지고 뒷사람들에게 소개를 잘했다.
부처님의 열반을 제대로 소개하지 않았으면 불교가 이렇게 크게 번창하지 못했을 것이다.
돌아가신 부처님의 머리카락이라든지 손톱 발톱 아니면 화장하고 남은 재라든지 흙이라든지 돌이라든지 뼈조각이라든지 등등 그런 사리들을 모아서 전세계적으로 탑을 얼마나 많이 세웠는가? 사람들이 그런 것에 신심을 일으킨다. 그래서 불교가 오늘날까지 이렇게 크게 성하게 되었다.
그런 내용들이 지금 이 한 단락 안에 다 들어있다.
우리나라에도 어떤 큰스님이 열반하시면 상좌나 후손들이 얼마나 그 스님을 선양하기 위해서 원력을 세우고 불사라든지 행사라든지 하는 것을 잘 준비해서 하는가? 그렇게 하면 굉장히 그 스님의 법이 선양되고, 그렇지 못하면 그것으로 다 끝나버린다.
그래서 좀 괜찮은 스님이라고 생각이 들면 사전에 이런 것들을 준비해 두었다가 선양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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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불자야
일체제불(一切諸佛)이 : 일체제불이, 모든 부처님, 불교 믿는 사람도 좋고, 깨달은 사람도 좋고, 깨닫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도 좋고, 이 모든 사람들이 일체제불 속에 들어간다.
일체제불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불보살에 준하는, 또는 선지식이나 큰스님에 준하는 이들은 전부 일체제불 속에 포함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들이
입열반시(入涅槃時)에 : 열반에 들었을 때에
무량중생(無量衆生)이 : 한량없는 중생들이 어떻게 하는가?
비호체읍(悲號涕泣)하야 : 비호체읍한다. 아주 슬피 울면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린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열반상 그림을 보면 제자들이 눈물을 흘리고 땅을 치고 심지어 동물들까지 몰려와서 그 동물들도 눈물을 흘리고 슬픔에 젖어 있는 것을 본다. 그것이 비호체읍이다. 그렇게 해서
생대우뇌(生大憂惱)하야 : 큰 근심과 괴로움을 짜내서
체상첨고(遞相瞻顧)하고: 체상첨고한다. 서로서로 바라보면서 ‘우리 스님이, 우리 부처님이 열반하셨다’고 서로서로 위로를 하기도 하고, 바라보기도 한다.
큰 근심과 괴로움을 짜내어서 서로서로 바라보면서 ‘아유 우리 스님이, 우리 부처님이 이렇게 열반하셨다. 좀더 오래사셔도 되는데’하고 서로 위로하기도 하고 서로 바라보기도 하고 ‘그때 스님이 이러이러했는데’ 또는 ‘우리 부처님이 이러이러했는데’ 하는 말들을 하면서
이작시언(而作是言)호대 :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여래세존(如來世尊)이 : 여래 세존께서
유대자비(有大慈悲)하사 :큰 자비가 있어서
애민요익일체세간(哀愍饒益一切世間)하야 : 일체 세상 사람들을 애민히 여기고, 요익하게, 이익하게 하기 위해서
여제중생(與諸衆生)으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위구위귀(爲救爲歸)니: 구제할 바가 되고, 돌아가 의지할 바가 된다. 우리는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과거의 숱한 부처님을 소개받았다. 그 법맥은 석가모니와 그 후에 생존해 계셨던 가섭 아난으로부터 10대 제자, 그 뒤에 무착 천친 등으로 마명 용수로 다음에 삽삼조사(卅三祖師) 그다음에 달마로, 혜가로 육조로 해서 우리나라의 신라 원효 의상으로 조선시대로 내려온다. 그런 이들이 말하자면 세상을 유익하게 하면서 중생들에게 귀의할 바가 되는 것이다.
살았을 때 평소에 혜택을 많이 끼치고 영향을 많이 끼친 분들은 지금도 그 가르침이 사람들에게 면면히 이어진다.
예를 들어서 송광사의 불일 보조스님 같은 경우는 그 스님의 기일을 통해서 큰학술대회도 열고 보조사상연구회 책도 낸다.
한 사람의 훌륭한 수행업적은 그렇게 지금까지도 팔 구백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여래출현(如來出現)이 : 여래출현이,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한 것은
난가치우(難可値遇)어늘 : 참으로 만나기 어려운 일이다.
무상복전(無上福田)이 : 무상복전이
어금영멸(於今永滅)이라하나니: 어금영멸이라.
살아계실 때 그 부처님께 중생들이 하는 것마다 무상복전이 된다. 절을 한 번 하든지, 공양을 올리든지, 음식을 대접하든지 하다못해 과일을 하다 올리든지, 아니면 옷을 한 벌 해드리든지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 그렇게 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지금 부처님은 영원히 열반에 들었다. 어금영멸이라 하나니
즉이여시영제중생(卽以如是令諸衆生)으로 : 이와 같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비호연모(悲號戀慕)하야 : 아주 슬피 부르짖으면서 이름을 부르고 그리워하고 사모하면서
이작불사(而作佛事)하며 : 이작불사한다. 그런 것으로 불사를 짓는 경우가 있다. 그 자체가 불사다.
옛날에 내가 인도 성지 순례를 했는데 마침 부처님 열반당에 들어간 적이 있다. 열반당이라고 하니까 벌써 그 말 한마디에 건물 가까이 가기도 전에 사람들 마음이 숙연해졌다.
그 열반당 안에 들어서면 그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울기 시작하였다. 거기에 와불이 계시는데 부처님을 돌면서 그 가사를 어루만지면서 우는 것이다.
부처님이 열반하신 사실이 2600년 2700년 전의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오늘까지 감동을 주시기 때문이다.
그런 분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런 분을 우리가 모시고 산다. 거기서는 설명도 필요 없고, 설명이 되지도 않고, 안내하는 사람이 뭐라고 설명해도 통하지도 않는다. 그냥 감동으로 우러나는 슬픔을 참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것이 훌륭한 불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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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위화도일체천인(復爲化度一切天人)과 : 다시 또 어떤 경우인고 하니 일체 천인과
용신(龍神)과 : 용신과
야차(夜叉)와 : 야차와
건달바(乾闥婆)와 : 건달바와
아수라(阿修羅)와 : 아수라와
가루라(迦樓羅)와 : 가루라와
긴나라(緊那羅)와 : 긴나라와
마후라가(摩睺羅伽)와 : 마후라가와
인비인등고(人非人等故)로 : 인비인 등을 교화하여 제도하기 위한 까닭으로
수기낙욕(隨其樂欲)하야 : 그들이 즐겨하고 좋아하는 바를 따라서
자쇄기신(自碎其身)하야 : 자기들의 몸을 부순다. 막 돌에 짖이겨 찧는다. 그것이 자쇄기신이다.
이위사리(以爲舍利)호대 : 그래서 사리를 만들되
무량무수(無量無數)하야 : 한량없고 수가 없어서
불가사의(不可思議)하야 : 불가사의해서
영제중생(令諸衆生)으로 :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기정신심(起淨信心)하야 : 정신심을 일이키게 한다. 그래서
공경존중(恭敬尊重)하고 : 공경하고 존중하고
환희공양(歡喜供養)하야 : 환희하고 공양해서
수제공덕(修諸功德)하야 : 여러가지 공덕을 닦아서
구족원만(具足圓滿)하며 : 구족 원만케 하며
부기어탑(復起於塔)하야 : 다시 탑을 일으킨다.
불신(佛身)이 됐든지 부처님 제자의 몸이 됐든지, 미얀마 쪽이라든지 태국이라든지 이런 데 탑이 얼마나 많은가?
탑속에는 전부 사리가 들어있는데 현지 사람들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면 부처님 제자들의 사리가 대다수라고 한다. 하기사 부처님 사리가 그렇게 많을 수가 있겠는가? 아무리 부처님을 화장하고 그 주변에 태우던 나무토막들이나 그 주변에 있는 돌, 흙을 다 가져왔다고 해도 그렇다. 부처님 화장한 주변의 흙이니까 그것이 모두 사리라고 해도 상관없다.
그 흙을 샅샅이 파서 그것도 부처님 사리라고 생각하고, 다 파서 여덟 섬의 세 말이라고 할 정도로 그때 다 나눠가지고 가버렸는데, 언제 또 부처님 사리가 많아서 전 세계에 퍼졌겠는가?
그러니까 지금 탑속에는 아라한들의 사리, 부처님 제자들의 사리가 사실은 대다수다.
사리가 또 새끼를 친다. 분양이 잘 된다. 그것을 나도 봤다.
예를 들어서 사리가 열 개가 있었는데 그 이튿날 되니까 스무 개도 되어 있고, 서른 개도 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에 가져온 부처님 제자사리들도 그렇다.
그래서 사리가 그렇게 많다.
그런 경우, 그것도 다 좋은 불사거리다 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탑을 일으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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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엄식(種種嚴飾)하야 : 종종엄식이라. 미얀마 쉐다곤 대탑 같은 데는 얼마나 탑을 근사하게 장엄했는가? 부처님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엄식을 했잖은가. 장엄하고 꾸미고 가지가지로 엄식해서
어제천궁(於諸天宮)과 : 천궁과
용궁(龍宮)과 : 용궁과
야차궁(夜叉宮)과 : 야차궁과
건달바(乾闥婆)와 : 건달바와
아수라(阿修羅)와 : 아수라
가루라(迦樓羅)와 : 가루라
긴나라(緊那羅)와 : 긴나라
마후라가(摩睺羅伽)와 : 마후라가
인비인등제궁전중(人非人等諸宮殿中)에 : 인비인 등 모든 궁전 가운데
이위공양(以爲供養)하며 : 전부 궁전을 꾸며서 공양한다.
쉐다곤 대탑에는 그 탑 하나를 중심으로 해서 그 주변에 작은 탑을 여러 수백 개 세워 놓았다. 파간에 가면 또 얼마나 많은 탑들이 세워져 있는가? 그런데 거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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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조발(牙齒爪髮)을 : 아치조발 이렇게 써놓았다. 치아 사리 모발사리 손가락 사리, 중국의 법문사 부처님 손가락 사리가 유명하지 않은가? 우리나라에까지 한 번 오신 적도 있다. 치아사리도 들어보셨을 것이다. 또 미얀마 같은 데서는 부처님 머리카락 사리를 모셨다고 한다.
‘부처님 머리카락이 어떻게 해서 거기까지 전해졌는지’ 그런 것을 의심할 필요 없다. 부처님 머리카락이라고 하면 부처님 머리카락인지 알면 된다. 굳이 따질 필요도 없고 의심할 필요도 없이, 아(牙)치(齒) 조(爪) 손톱 발톱 이런 것, 우리에게 그동안 알려진 손가락사리 모발사리 치아사리 이런 것이 전부 진짜 부처님 사리다. 그것을 가지고
함이기탑(咸以起塔)하야 : 모두 다 탑을 세워서
영기견자(令其見者)로 : 그것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개실염불염법염승(皆悉念佛念法念僧)하야 : 부처님을 생각하게 하고, 부처님 법을 생각하게 하고, 부처님의 제자들을 생각하게 해서
신락불회(信樂不廻)하며 : 그 믿고 좋아하는 것에 신심을 돌이키지 않고 그대로 신심을 이어나간다. 불회라고 하는 말은 신심을 그대로 이어나간다는 뜻이다.
성경존중(誠敬尊重)하야 : 공경하고 존중해서
재재처처(在在處處)에 : 재재처처에
보시공양(布施供養)하야 : 보시하고 공양한다.
불교 일이라고 하는 것, 불사라고 하는 것은 전부 찬탄하고 보시하고 공양하고 공경하고 또 혹시 잘못이 있었는가 참회하고 그야말로 보현십대 원앙처럼 그런 생활의 일종이다. 우리 불교인의 생활이라고 하는 것이 그렇다.
수제공덕(修諸功德)하고 : 여러 가지 공덕을 닦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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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복고(以是福故)로 : 이러한 복으로써
혹생천상(或生天上)하며 : 혹생천상하며, 천상에 나기도 한다. 부처님을 성인이라고 믿고, 돌아가신 지 오랜 세월 수백년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서 똑같이 부처님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신심을 내서 하는 것, 그것이 천상에 나는 복이 된다.
이런 신심이 아니면 불교가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전파되지 않았다. 학문만 하고 공부하는 학자들은 신심이 없다. 신심이 싹 빠지니까 아주 삭막하다. 불교를 그냥 말로 설명하고 남의 이야기하듯이 하는 경우가 많다. 학자들이 경전을 안봐서 그렇다. 화엄경 같은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경전인가. 화엄경 같은 중요한 경전을 봄으로써 저절로 신심이 날것이다.
천상에 나기도 하고
혹처인간(或處人間)호대 : 혹은 인간에 태어나기도 하되
종족존영(種族尊榮)하고 : 종족이 아주 훌륭한 양반집에 태어난다. 그리고
재산비족(財産備足)하며 : 재산도 넉넉한 곳, 가난에 찌들어서 먹고 살기 어려운 곳에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재산도 충분히 갖추어졌으며
소유권속(所有眷屬)이 :있는 바 권속들도, 거기에 딸린 권속들도
실개청정(悉皆淸淨)하며 : 모두 훌륭하다. 다 양반집 자식이고 부처님의 아들 딸들이다. 부처님의 권속이니까 실개청정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불입악취(不入惡趣)하고 : 나쁜 갈래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상생선도(常生善道)하야 : 항상 선한 길에 태어나서
항득견불(恒得見佛)하야 : 항상 부처님 친견함을 얻어서
구중백법(具衆白法)하며 : 여러 가지 백법, 청정한 법을 갖춘다. 불교의 신심만 제대로 가지고 인과를 믿고, 이치대로만 살아가면 주변 환경 상황이 모두 다 좋아질 수밖에 없다. 좋은 것만 가지고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백법을 갖추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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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삼유중(於三有中)에 : 욕계 색계 무색계 삼유 가운데서
속득출리(速得出離)하야 : 빨리 출리함을 얻고, 벗어나게 함을 얻고
각수소원(各隨所願)하야 : 각각 원하는 바를 따라서
획자승과(獲自乘果)하며 : 자신이 목표한 결과를 얻고, 자승과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 오르고자 하는 결과다.
어여래소(於如來所)에 : 어여래소에
지은보은(知恩報恩)하야 : 지은보은한다. 중국 대만 이런 데의 큰스님들 법문을 들어보면 지은보은 이 말이 참 잘 쓰는 말이다.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는다 해서
영여세간(永與世間)으로 : 영원히 세간으로 더불어
작소귀의(作所歸依)하나니 : 귀의할 바가 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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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제불세존(諸佛世尊)이 : 모든 부처님 세존이
수반열반(雖般涅槃)이나 : 비록 열반에 들었으나
잉여중생(仍與衆生)으로 : 이에 중생으로 더불어
작부사의청정복전(作不思議淸淨福田)과 : 불가사의한 청정한 아주 훌륭한 복전을 짓는다.
여기 제목이 열반불사지 않은가. 열반에 들었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 열반에 들고나서도 얼마든지 좋은 불사를 짓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만치 수행이 쌓여져야 되고, 덕을 쌓아야 되고, 공을 닦아야 된다. 그렇게 하면 뒷사람들이 저절로 그렇게 추앙하게 되고 선양하게 된다.
비록 열반에 들었으나 이에 중생으로 더불어 부사의한 청정복전과
무진공덕최상복전(無盡功德最上福田)하사 : 무진공덕 최상복전을 지어서, 다함이 없는 공덕 최상의 복전을 지어서
영제중생(令諸衆生)으로 :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선근구족(善根具足)하며 : 선근이 구족하며
복덕원만(福德圓滿)이니 : 복덕이 원만하느니
시위제십광대불사(是爲第十廣大佛事)니라 : 이것이 제10광대불사니라. 열 번째인 광대불사다. 그동안 열 가지 불사를 쭈욱 소개했다. 앞에서도 참 좋은 말씀이 많이 있었는데 오늘 이런 데서도 특별하다.
화엄경은 불멸 한 600년 경에 결집됐다고 보는데 그 결집의 방향을 부처님 성도에 맞춰서 부처님 세계, 부처님의 모든 깨달음의 세계를 다 드러내 보이고, 다 갖추어서 표현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화엄경을 설한 것은 최초 삼칠일이라고 했으면서도 입법계품 같은 데서는 부처님 10대 제자 이야기도 나온다.
그런 것들을 제대로 마음속에서 녹이고, 내 몸에 싹 스며들도록 이해하려면 한참 공부해야 된다. 이것은 설명한다고 납득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한참 공부하면 저절로 녹아 스며들어 간다. 제10광대불사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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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차제불사(此諸佛事)가 : 이 모든 불사가
무량광대(無量廣大)하야 : 무량광대해서
불가사의(不可思議)하야 : 불가사의해서
일체세간(一切世間)에 : 일체세간에
제천급인(諸天及人)과 : 모든 천신과 그리고 사람과
급거래금성문독각(及去來今聲聞獨覺)은 : 그리고 과거 미래 현재 성문과 독각들은
개불능지(皆不能知)요 : 개불능지다. 성문과 독각들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소승들은 빽빽한 소견으로 ‘부처님 열반하신 뒤에 결집이 됐느니, 언제 결집했느니’ 이것만 가지고 따진다. 경전을 의미로 보지 않는다.
모든 불교의 가르침은 의미상으로 이해하려고 해야되는데 의미상으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글대로만 이해하려고 하니까 앞 뒤가 안 맞는 것이다.
그 소견이 성문들이고 독각들이다. 그들은 개불능지다. 다 능히 알 수가 없다. 이해가 안된다. 소견이 툭 터져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이해하는 식으로 따지고 보면 하나도 안맞는 것이다.
화엄경을 부처님이 최초에 깨닫고 나서 이칠일 내지 삼칠일 안에 21일 안에 설했다고 하는데 이 화엄경 안에는 부처님이 제자를 둔 이야기도 있고 제자 중에는 늦게 제자 된 사람도 있다. 그래서 안맞다고 하면 안된다.
화엄경은 시간과 공간을 자유자재로 왔다갔다 하고 걸림없이 그야말로 씨줄과 날줄을 자유자재로 오고 가면서 베를 짜내듯이 불교의 깨달음의 세계를 거기에 짜 넣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경전 결집의 의도다.
성문 독각은 개불능지요
유제여래위신소가(唯除如來威神所加)니라 : 오직 여래의 위신력으로 가피한 바는 제하느니라.
여기까지 열 가지 불사를 쭈욱 소개한 것을 오늘 마쳤다.
(5) 無二自在法
佛子야 諸佛世尊이 有十種無二行自在法하시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一切諸佛이 悉能善說授記言辭하야 決定無二하며 一切諸佛이 悉能隨順衆生心念하사 令其意滿하야 決定無二하며 一切諸佛이 悉能現覺一切諸法하사 演說其義하야 決定無二하며 一切諸佛이 悉能具足去來今世諸佛智慧하야 決定無二하며 一切諸佛이 悉知三世一切刹那가 卽一刹那하야 決定無二하며 一切諸佛이 悉知三世一切佛刹이 入一佛刹하야 決定無二하며 一切諸佛이 悉知三世一切佛語가 卽一佛語하야 決定無二하며 一切諸佛이 悉知三世一切諸佛이 與其所化一切衆生으로 體性平等하야 決定無二하며 一切諸佛이 悉知世法과 及諸佛法이 性無差別하야 決定無二하며 一切諸佛이 悉知三世一切諸佛의 所有善根이 同一善根하야 決定無二가 是爲十이니라
“불자여, 모든 부처님 세존께는 열 가지 둘이 없는 행에 자유자재한 법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 모든 부처님은 다 수기(授記)하는 말씀을 잘 설하시는 것이 결정하여 둘이 없느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이 다 중생들의 생각함을 따라 그 뜻을 만족하게 함이 결정하여 둘이 없느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이 다 일체 모든 법을 분명히 깨닫고 그 뜻을 말씀함이 결정하여 둘이 없느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이 다 과거 미래 현재에 계신 모든 부처님의 지혜를 구족함이 결정하여 둘이 없느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이 다 세 세상의 일체 찰나가 곧 한 찰나인 줄을 아는 것이 결정하여 둘이 없느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이 다 세 세상 일체 부처님의 세계가 한 부처님의 세계에 들어감을 아는 것이 결정하여 둘이 없느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이 다 세 세상 일체 부처님의 말씀이 곧 한 부처님의 말씀임을 아는 것이 결정하여 둘이 없느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이 다 세 세상 일체 모든 부처님이 교화할 일체 중생과 성품이 평등함을 아는 것이 결정하여 둘이 없느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이 다 세상법과 모든 부처님 법의 성품이 차별이 없음을 아는 것이 결정하여 둘이 없느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이 다 세 세상 일체 모든 부처님들의 가지신 착한 뿌리가 다 같은 착한 뿌리임을 아는 것이 결정하여 둘이 없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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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자재법(無二自在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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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없는 자재한 법이다. 여기 둘이 없다고 하는 말은 다름이 없다라는 뜻이다. 생과 사, 남과 여, 오고 감 이런 것을 둘이라고 나눠서 이야기할 수가 있는데 이것이 다름이 없다. 이렇게 이해하면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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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불자야
제불세존(諸佛世尊)이 : 제불세존이
유십종무이행자재법(有十種無二行自在法)하시니: 십종 둘이 없는 행의 자재한 법이 있으니
하등(何等)이: 무엇이
위십(爲十)고 : 열인가.
소위일체제불(所謂一切諸佛)이 : 소위 일체제불이
실능선설수기언사(悉能善說授記言辭)하야 :다 능히 수기 언설을 잘 이야기해서
결정무이(決定無二)하며: 결정코 둘이 없으며, 결정코 수기에 대한 이야기가 다르지 않다. 틀리지 않다. 무이라는 것은 다르지 않고 틀리지 않다는 뜻이다.
법화경은 수기경이라고 할 정도로 수기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수기언사(授記言辭)가 화엄경에는 간혹 어쩌다 한 번씩 나오지만 법화경에는 수두루 쏟아지고 자주 말한다.
내가 법화경에 대한 책도 여러 가지 것을 썼고, 교재도 만들었고 별별 것을 많이 했다.
2008년인가 문수경전 연구회가 맨 처음에 생겼을 때도 법화경을 가지고 1년 2개월인가 3개월동안 여기 염화실지에 다 나와있는데, 법화경을 맨 처음에 우리가 공부를 했다.
법화경에 수기가 자주 나오는데, 수기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고, 우리가 거기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가면 인불사상(人佛思想), 사람이 본래로 부처님이다, 하는 이 사상에 대해서 변함이 없게 된다.
사람이 모두 부처님일 뿐만 아니라, 그것은 부처님으로부터 보증을 받은 사상이고 부처님이 보장한 내용이다, 라는 것을 확실하게 우리가 알 수 있다. 그런 내용이 법화경의 수기사상이다. 수기언사를 잘 이야기해서 결정코 다름이 없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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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제불(一切諸佛)이 : 일체제불이
실능수순중생심념(悉能隨順衆生心念)하사: 중생들의 마음, 중생들이 마음에 무엇을 생각하는가? 그것을 다 능히 수순해서
영기의만(令其意滿)하야 : 그 뜻으로 하여금 만족케 해서 중생들이 생각하는 바를 만족케 해서
결정무이(決定無二)하며 : 결정코 다름이 없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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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제불(一切諸佛)이 : 일체제불이
실능현각일체제법(悉能現覺一切諸法)하사 : 분명하게 깨닫고 일체 모든 부처님, 모든 법을 현각한다. 분명하게 깨닫는다는 말이다. 현각 분명하게 깨달아서
연설기의(演說其義)하야 : 그 뜻을 연설하는데
결정무이(決定無二)하며 : 조금도 다름이 없게 한다. 결정코 다름이 없게 한다. 틀림이 없게 한다.
2라고 하는 것이 둘이 되면 틀리지 않는가? 하나라야 맞다. 그러니까 틀리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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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제불(一切諸佛)이 : 일체제불이
실능구족거래금세제불지혜(悉能具足去來今世諸佛智慧)하야 : 과거 현재 미래 세상의 모든 부처님의 지혜를 구족해서
결정무이(決定無二)하며 : 결정코 무이하며, 어느 때 부처님이든 간에 부처님은 한결같다, 똑같다, 이것은 결정코 의심할 바가 없다, 둘이 아니다, 그 뜻이다. 그래야 옳다.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의 부처님이나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의 부처님이나 아니면 오늘 이 순간에 누가 제대로 불법을 깨달았다고 하면 그 사람도 역시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 석가모니부처님의 견해나 그전의 과거 칠불의 견해나 과거 천불의 견해나 똑같다. 그래야 옳다. 거래금세 모든 부처님의 지혜와 결정무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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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제불(一切諸佛)이 : 일체부처님이
실지삼세일체찰나(悉知三世一切刹那)가 : 삼세인 과거 현재 미래 일체찰나가
즉일찰나(卽一刹那)하야 : 곧 일찰나가 됨을 다 알아서, 일체의 시간이 곧 일찰나다.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무량원겁즉일념(無量遠劫卽一念)과 같은 의미다. 그것이
결정무이(決定無二)하며 :결정코 무이다. 결정코 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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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제불(一切諸佛)이 : 일체제불이
실지삼세일체불찰(悉知三世一切佛刹)이 :삼세 일체제불이 과거 현재 미래 일체부처님 세계가
입일불찰(入一佛刹)하야 : 한 불찰에 들어감을 다 알아서
결정무이(決定無二)하며 : 결정코 무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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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제불(一切諸佛)이 : 일체제불이
실지삼세일체불어(悉知三世一切佛語)가 : 삼세일체 부처님 말씀이
즉일불어(卽一佛語)하야 : 한 부처님의 말씀임을 다 알아서
결정무이(決定無二)하며 : 결정코 무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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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제불(一切諸佛)이 : 일체제불이
실지삼세일체제불(悉知三世一切諸佛)이 : 삼세 일체 모든 부처님이
여기소화일체중생(與其所化一切衆生)으로 : 그가 교화할 바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체성평등(體性平等)하야 : 체성이 평등함을 다 알아서
결정무이(決定無二)하며 : 결정코 둘이 없으며, 틀리지 않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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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제불(一切諸佛)이 : 일체 모든 부처님이
실지세법(悉知世法)과 : 세상법과
급제불법(及諸佛法)이 : 그리고 부처님 법이
성무차별(性無差別)하야 : 성품이 차별이 없음을 다 환하게 알아서, 세상법하고 불법하고 그 본바탕이 차별이 있으면 영원히 다른 것이고 같아질 수가 없다.
본래 차별이 없고 뿌리가 하나이고 바탕이 하나이다 보니 결국 알고보면 하나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 도리다. 이런 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길게 하기로 하면 한참해야 할 내용이다. 이쯤 공부하신 분들은 충분히 다 이해할 것이다.
성무차별함을 다 알아서
결정무이(決定無二)하며: 결정코 무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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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제불(一切諸佛)이 : 일체제불이
실지삼세일체제불(悉知三世一切諸佛)의 : 삼세일체제불의
소유선근(所有善根)이 : 과거 모든 부처님이 가지고 있는 선근이나
동일선근(同一善根)하야 : 동일선근이다. 과거 현재 미래 모든 부처님의 선근은 똑같은 선근이다. 이것도 환희심 나는 내용이다. 동일선근함을 다 알아서
결정무이(決定無二)가 : 결정무이가
시위십(是爲十)이니라 : 이것이 열 가지다. 그 내용도 무이자재법이라고 하는 내용이다.
(6) 一切法에 住함
佛子야 諸佛世尊이 有十種住의 住一切法하시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一切諸佛이 住覺悟一切法界하며 一切諸佛이 住大悲語하며 一切諸佛이 住本大願하며 一切諸佛이 住不捨調伏衆生하며 一切諸佛이 住無自性法하며 一切諸佛이 住平等利益하며 一切諸佛이 住無忘失法하며 一切諸佛이 住無障礙心하며 一切諸佛이 住恒正定心하며 一切諸佛이 住等入一切法하야 不違實際相이 是爲十이니라
“불자여,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열 가지 머무름이 있어 일체 법에 머무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 모든 부처님은 일체 법계를 깨달음에 머무느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은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말에 머물고, 일체 모든 부처님은 본래의 큰 서원에 머무느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은 중생들을 버리지 않고 조복함에 머물고, 일체 모든 부처님은 제 성품이 없는 법에 머무느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은 평등하게 이익되게 하는 데 머물고, 일체 모든 부처님은 잊어버림이 없는 법에 머무느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은 장애가 없는 마음에 머물고, 일체 모든 부처님은 항상 바른 선정의 마음에 머물고, 일체 모든 부처님은 일체 법에 평등하게 들어가 실제를 어기지 않는 데 머무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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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법(一切法)에 주(住)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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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법에 머무름, 지금 공부하는 품의 이름이 불부사의법품이지 않은가. 부처님이 깨달음을 완전히 이루고 나면 불가사의한 도리가 저절로 표출이 되는데 그것이 보통사람에게는 이해가 안된다. 그래서 불불가사의다. 부처님에게는 불가사의한 법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경전에 글로 써 놓고 말로 하니까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 것은 짐작인 간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니고 강 건너 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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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제불세존(諸佛世尊)이 :제불세존이
유십종주(有十種住)하야 : 열 가지 일체법의 머무름이 있으니 십종주로써
주일체법(住一切法)하시니 : 일체법에 머무름이 있다, 그렇게 해석이 된다.
하등(何等)이 : 하등이
위십(爲十)고 : 위십고
소위일체제불(所謂一切諸佛)이 : 소위 일체제불이
주각오일체법계(住覺悟一切法界)하며 : 일체법계를 깨달음에 머무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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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제불(一切諸佛)이 : 일체제불이
주대비어(住大悲語)하며 : 큰 자비의 말씀에 머무른다. 부처님은 자비의 말씀을 쓰신다.
일체제불(一切諸佛)이 : 일체제불이
주본대원(住本大願)하며 : 본래의 큰 원을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 머무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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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제불(一切諸佛)이 : 일체제불이
주불사조복중생(住不捨調伏衆生)하며 : 주불사조복중생한다. 부처님이 중생조복하는 것을 버리면 부처님이 아니다. 부처님의 화두는 중생이다. 보살의 화두도 중생이고 관세음보살의 화두도 중생이고 지장보살의 화두도 중생이다.
일체제불(一切諸佛)이: 일체제불이 중생을 조복하는 것을 버리지 아니하는데 머무르며
주무자성법(住無自性法)하며 : 자성이 없는 법에 머무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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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제불(一切諸佛)이 : 일체제불이
주평등이익(住平等利益)하며 : 평등이익에 머무르며
일체제불(一切諸佛)이 : 일체제불이
주무망실법(住無忘失法)하며 : 망실함이 없는 법에 머무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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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제불(一切諸佛)이 : 일체제불이
주무장애심(住無障礙心)하며 : 장애가 없는 마음에 머무르며
일체제불(一切諸佛)이 : 일체제불이
주항정정심(住恒正定心)하며 : 항상 바른 선정의 마음에 머무르며
일체제불(一切諸佛)이 : 일체제불이
주등입일체법(住等入一切法)하야 :일체법에 평등하게 들어감에 머물러서
불위실제상(不違實際相)이 : 실제의 모습을 어기지 않는 것
시위십(是爲十)이니라 : 이것이 열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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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훌륭하심
언제나 읽어도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