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年5月8~9日, 1泊2日 統營·巨濟 旅行記
2014年5月8~9日(1泊2日)로, 統營·巨濟를 다녀왔다. 이번 여행의 주된 목적은, 지난4월16일의 세월호침몰참사로 인해 생긴 우울증과 애통함을 다소라도 healing하기 위함이었다. 5월초순의 아름다운 신록의 계절에 統營과 巨濟를 찾아가서, 계절의 진미를 맛보고, 신선한 봄기운을 듬뿍 받아서, 하루빨리 참사로 인한 후유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우리는 먼저, 꼭 찾아가고 싶은 곳을 정해놓고, 순로에 따라, 하나씩 하나씩, 관광이나 체험을 해나가기로 했다. 첫째가 요새 한참 인기를 모았던, 統營의 봄소식, 도다리쑥국점심→동피랑벽화마을→巨濟대명리조트 Check-in→사우나입욕→金泳三大統領生家마을의 멸치회정식만찬→대명리조트 숙박→바람의언덕→조찬→統營港에서 25분운항선편→閑山島制勝堂→선편 統營歸航→점심→上京出發의 순로로 여행을 실행했다.
참가자는 8명, 우리는 9인승의 Hyundai Starex를, 하루에 12만원씩에 rent했다. 서울의 도곡역에서부터 오찬장소인 통영중앙시장근처의 이화식당(055-645-7253)까지는 379km. 도중 휴게소의 휴식을 포함, 4시간30분이 소요되었다. 도중, 우리는 관광버스를 거의 보지 못했다. 관광지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대체가 관광객이 별로 없었다. 고속도로는 거의 텅텅비어 있었다.
1. 도다리쑥국
통영의 이화식당은, 도다리쑥국이 전문이다. 월전에 이곳을 다녀간 지인의 소개로 이집을 찾아갔다. 지인들은, 죽기전에 꼭 먹어봐야 후회가 없다고 강추했던 곳이다. 그러나, 기대가 커서인지, 도다리쑥국은 값은 @12,000원, 맛은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했다. 統營이 항구이므로, 생선요리를 찾자면, 없는 것이 없는 곳이다. 그러나, 점심메뉴로는, 간단하면서도 마땅한 것을 찾기가 쉽지않다. 통영중앙시잔근처에는 너무도 많은 충무김밥, 통영김밥집들이 연달아 늘어서있었다. 도다리쑥국보다는 오히려 회덮밥이나 김밥이 더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 동피랑벽화마을
우리는, 점심후, 바로 근처에 있는 동피랑벽화마을(http://kiwea2.blog.me/50193381808)을 차를 타고 찾아갔다. 20대쯤 무료주차가능한 곳에다가 車를 주차했더니, 가게주인 할머니가, 무료주차하고, 그 대신 茶를 몇잔 마시고 가달라고 한다. 동피랑마을을 두루 구경하고, 우리는 예의 그 찻집, 즉, 동피랑스타일찻집(055-641-7125)에서 시원한 단호박식혜@3,500원을 한잔씩 마셔주고 나왔다. 동피랑을 통영중앙시장에서 걸어갈 수는 있으나, 차로 가면 편하고, 또 주차도 가능하다. Navi에는 위 찻집 전화번호를 입력하면 불편없이 주차장까지 차로 편히 갈 수 있다.
‘동피랑’이란 이름은 ‘동쪽벼랑’이라는 뜻이다. 구불구불한 오르막 길을 따라 동피랑마을에 오르면 담벼락마다 그려진 형형색색의 벽화가 그려져있다. 이곳은 李舜臣장군이 설치한 統制營의 東砲樓가 있던 자리. 통영시는 東砲樓를 복원하고 주변에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었으나, 2007년 시민단체가 公共美術의 기치를 들고 ‘동피랑 색칠하기’운동을 전개, 전국의 18개팀이 낡은 담벼락에 벽화를 그렸다. 벽화로 꾸며진 동피랑마을에 대해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마을을 보존하자는 여론이 형성되자 통영시는 마침내 마을 철거방침을 철회하였다. 철거 대상이었던 동네는, 벽화로 인하여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통영의 새로운 명소로 변모해있다. 통영에 가면 꼭 가봐야 할 곳이다.
3. 인천상륙작전과 창경호 침몰
필자는, 이번 거제여행이 실로 62년만의 여행이었다. 반세기를 훨씬 넘는 여행, 감개무량하다. 그때의 기억은 철조망이 높이 둘러쳐진 포로수용소뿐이다. 필자가 중학1년때인 1952년8월 여름방학, 그때는 休戰前이었으므로 戰爭中이었다. 6∙25를 직접체험했던 필자는 당시 金海陸軍수송학교에서 복무중인 형(7살위)을 면회하기 위해, 光州에서 당시는 정기버스편이 끊어진 시기였으므로, Truck에 몸을 싣고, 順天까지 가서 자고, 다시 거기서 트럭을 타고 麗水, 거기서 배를 타고 釜山을 간 일이 있다. 그 당시 麗水와 釜山을 왕복하는 여객선은 昌景號, 太新號, 錦洋號였다, 지금에 비하면 형편없는 일본제의 낡은 배들이 운항되고 있었다. 다행히 필자는 木船이기는 하지만 新造船이라는 ‘錦洋號’를 타고, 여수에서 오후2시 출발, 다음날 부산에 새벽 6시경 도착하였다. 도중, 노량, 삼천포, 거제등을 들러 영도다리를 꿰뚫고 지나, 부산진에 도착하였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배안에는 우체국도 있었고, 식당도 있었다. 신기했다. 1950년6월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서울이 3일만에 함락, 파죽지세로 낙동강까지 밀려난 國軍등은 16個參戰UN軍이 속속 도착하였고, 불과 3개월도 채 안된 9월15일, McArthur장군의 지휘하에, 北韓軍의 허리를 싹뚝 절단한 仁川上陸作戰의 성공으로, 당시의 한국전쟁의 흐름을 180도 正反對로 바꿔놓게 되었다. 世界戰史에 길이 빛날 그 勝戰이, 오늘의 大韓民國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불과 3개월만에 서울을 탈환, 李承晩大統領은 곧 北進統一의 완성을 바라보는 시기였다. 그래서, 전쟁중이긴 했으나, 당시에 남해안의 연락선 선박교통망은 곧 정상회복되었다. 필자는, 우여곡절 끝에 12일만에, 光州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후, 불과 6개월도 지나지 않은 1953년1월9일, 당시는 대한민국의 最大旅客船 昌景號(146톤)이 과적으로 부산 다대포앞바다에서 침몰, 쌀400가마니, 승객229명이 실종, 7명만 구조한 사건이 발생했다. 필자가 여수에서 부산을 갈 때 금양호와 나란히 항해를 했던 배였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우리나라 初有의 海上慘劇이었다.
4. 거제대명리조트
거제는, 너무도 집들이 깨끗하고 아름다워 마치 외국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조선공업으로 섬전체가 완전히 remodeling이 된 듯하였다. 인구가 23만명이나 되고, 곳곳이 명소가 많다고 한다. 특히 포로수용소 유적지도 구경꺼리다.
우리는, 숙소인 거제대명리조트에 Check-in하기 전에, 바람의 언덕을 먼저 구경하기로 했다. 서울에서 미리 인터넷으로 검색, 알아낸 바람의언덕 고정전화번호를 Navi에 입력하고 차를 몰았으나, 엉뚱한 곳으로 안내하는 것을 깨닫고, 다시 다른 번호를 입력하였으나, 역시 실패로 끝나 시간만 허비하였다. 하는 수없이 우리는 대명리조트에 먼저 Check-in하고, 사우나에 입욕하였다. 콘도의 방은 family(4명투숙가능)를 2개 빌렸다. 방값이 89,100원씩. 사우나는 원래는 9,000원인데 회원은 7,000원씩. 이불을 1채추가하였더니 11,000원, 합계가 245,200원이었다. 1인당@30,650원씩이다.
5. 멸치회정식
필자는, 지난 4월11일 KBS의 VJ특공대에서, 멸치요리 <국자횟집>(055-636-6023)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 131-15를 시청한 일이 있다. 그때, 너무도 멸치요리가 생생하고 좋아보였다. 그래서 이번 여행시, 그 집을 찾아간 것이다. 전화로 식당에 물어보니, 차로 10~15분이면 되는 거리라고 한다. 실제로 대명리조트에서는 35분정도가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김영삼대통령생가마을에 있는 멸치전문의 식당겸, 멸치젓 생산업체였다. 우리가 갔을 때, 이집은 사람들이 꽤나 많이 식사를 하고 있었고, 우리일행을 위해 좋은 자리를 준비해놓고 있었다. 멸치회정식이라는 요리는, 3가지의 코스였다. 멸치회무침, 멸치튀김, 그리고 된장을 풀어서 시원히 끓인 멸치탕이 나왔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우리가 KBS를 보고 서울에서 찾아왔다고 했더니, 주인양반이 감탄했는지, 커다란 생아구를 토막쳐 삶아서, 큰 접시에 나눠서 2접시나 서어비스로 푸짐하게 내오는 것이었다. 김이 무럭무럭나는 삶은 아구살은 토실토실 탄력도 있었고, 와사비 간장에 찍어먹으니, 입속이 그야말로 황홀경이었다. 우리일행은, 멸치요리에 감탄을 연발하면서 저녁을 들었고, 삶아내온 아구찜에는 더욱 입을 다물지 못했다. 생멸치로만 요리를 하는 이집은 정말로 强推强推다! 저녁값은 1인당@15,000원씩, 음식의 품질에 비해 가격도 저렴하였다. 서울에서는 이런 요리를 먹어볼 수가 없다. 일행 모두가 처음 맛보는 멸치 풀코스요리에 대만족이었다.
만찬을 끝내고 식당에서 나오다가, 일행중 여성 한분이 이 집에서 멸치는 살수 없느냐고 물어본 것이, 새로운 幸運의 大發見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집은 멸치를 잡기도 하고, 魚市場의 경매인도 겸하고 있다. 다만 마른 멸치는 취급을 하지 않고, 生멸치와 천일염으로 35kg짜리 멸치젓을 플라스틱통에 담가서, 택배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35kg짜리 멸치젓1통에 40,000원, 서울까지 택배비가 8,000원씩이라고 한다. 그러나까, 48,000원이다. 이 멸치젓을 상온에서 저장해두고, 가정에서 멸치젓국을 국자로 떠서 요리에 쓰면 아주 맛있고 편하다고 해서, 우리는 4통이나 택배를 부탁했다. 4통이나 사니, 깎아달라해서 결국은 택배비포함 45,000원씩을 지불하고 나왔다. 매일매일 경매시세가 변하기 때문에 조금씩 비싸지고 있다고 한다. 이 식당의 멸치요리는 7월~8월까지 제공한다고 주인이 필자에게 설명해주었다. 독자여러분은, 거제여행시에는 꼭 이집을 찾아가 멸치요리를 상미하시기 바란다. 죽기전에 먹어보고 가야할 요리라고 확신한다! 멸치젓을 사고싶은 사람은, 위 전화외에, 010-3881-6165에 연락하면 택배등 주문을 할 수 있다.
6. 바람의 언덕
해금강 유람선선착장이 자리하는 도장포, 작은 항구 오른편에 자연방파제처럼 낮게 누워있는 언덕이 바람의 언덕이다. 파란 잔디로 뒤덮여 그림처럼 아름답다. 나무 계단으로 만들어진 산책로를 따라 언덕을 오르면 바람이 세차게 불어온다. 바람이 항상 불어대는 장소다. 정상 부근 벤치에 앉으면 아름다운 경치가 눈앞에 펼쳐진다.
바람의 언덕과 연결된 도장포항구는, 작고 아담한 남도포구의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주변에는 동백나무가 지천이다. 海金剛을 돌아보는 유람선관광이나 外島를 찾아가는 여객선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바람의 언덕입구 부근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던 노부부에게 아침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없느냐?고 해서 소개받은 곳으로 가서 우리는 전복죽@15,000원, 성게알미여국@10,000원등으로 조찬을 들었다. 포구주변에서 들뫼식당(055-633-1510)이 아침을 제공하고 있었다. 바람의 언덕을 차로 가려면, 위 들뫼식당의 전화번호를 Navi에 입력하면, 우리처럼 실패하지 않고, 편히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7. 閑山島 制勝堂(충무공참배)
우리는, 거제도의 가장 남쪽 끝, 바람의 언덕에서 약1시간 달려서, 통영여객터미날에 도착했다. 한산도행 연락선은. 성인은 편도 @5,250원 왕복 10,500원인데, 경로왕복이 @8,150원이었다. 아침10시출항의 閑山島行 여객선을 승선해서 25분만에 6.7km 떨어진 閑山島에 도착했다. 선착장의 바로 오른쪽 길을 약500m 걸어서, 제승당의 본당을 찾아가 忠武公李舜臣장군께 참배를 드렸다. 우리가 이번 여행중 가장 뚯깊은 일은 이곳을 참배한 것이었다. 1592~98 임진왜란등에 일본이 16만대군으로 침략해온 것을 물리치신 민족의 영웅, 충무공께 인사를 드렸다. 422년 전의 일이다.
◆◆◆◆◆◆◆◆◆◆◆◆◆◆◆◆◆
우리는, 다시 통영으로 돌아와, 점심도 먹고, 통영Emart에 들러서 쇼핑도 하고, 고속도로는 버스전용도로로 쌩쌩달려 서울에 도착하니. 오후 8시였다. 총주행거리는 960km. 차량비만은 40만원에 해결할 수 있었다. 8명이 쓴 돈의 총액은 1,190,000원, 1인당 148,750원씩이다. 이정도의 비용으로, 맛있는 계절의 진미를 맛보고, 가장 고급스런 숙소에서 사우나와 숙박, 노래방까지 2시간이나 하고, 충무공의 제승당에도 가서 참배하고, 점심도 맛있게 먹고 오는 비용이니, 비싼 것 결코 아니다. 이와같은 여행은, 참가자들 모두가 협심단결해서, 서로 돕고 서로 아끼고 배려한 총체적인 노력의 산물이었다. 특히 청심회가 오고가는 차중에서 끊임없이 온갖 外國産 名品菓子와 방울토마토, 귤, 바나나, 껌, 초코렛등 무상제공해주신 것, 깊이 감사한다. 특히 장시간의 운전을 맡아, 피곤한 내색 한번 보이지 않고, 항상 웃는 얼굴로 봉사해주신, 증권회사의 현직상무재직중이신 박상무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대한민국에서 우리같은 여행단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확신한다. 앞으로 다시 이런 여행기회가 생기면, 이번 여행단의 구성원들은 필히 동참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
2014-05-11, 오후 14:04, 최정규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