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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산과 운악산으로 이어지는 한북정맥 줄기를 타고 내려오다 수원산에서 천마지맥으로 갈라진다. 천마지맥의 이 산줄기는 다시 주금산에서 두 갈래로 나뉘어 한 줄기는 천마산으로, 나머지 한 줄기는 서리산·축령산으로 이어진다.
축령산(886m)은 경기도 남양주 수동면과 가평군 상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등산객들은 대개 축령산자연휴양림이 있는 남양주 수동면으로 산행하지 가평 8경 중 7경인 ‘축령백림’이 있는 가평 상면 행현리 방향으로 등산하지는 않는다. 등산객이 드문 만큼 실제로 사람 손을 많이 타지 않은 산이기도 하다.
경기도 산림환경연구소에서 가평 잣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를 활용하기 위해 지금 ‘잣나무 푸른교실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치유의 숲과 자연학습장을 한창 조성 중이다.
식물이 병원균·해충·곰팡이에 저항하려고 내뿜거나 분비하는 물질인 피톤치드(phytoncide)는 마시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장과 심폐기능이 강화되며 살균작용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톤치드는 오전 10시에서 오후 2시까지 가장 왕성하게 분비된다. 이 피톤치드는 편백나무와 소나무, 잣나무 등 침엽수에서 특히 많이 분비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가평의 잣 생산은 전국 생산량의 약 40~47%를 차지한다고 한다. 축령산은 가평의 전체 생산량 중에서 가장 많은 20% 정도라고 가평축령산잣영농조합 이수근 대표는 말한다. 어느 지역보다 잣나무가 많고 생산량도 풍부하다는 얘기다. 이 대표는 축령산의 잣나무 조림 면적만 200㏊에 이른다고 덧붙였다.
그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 전후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잣나무는 전국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드리 나무로 성장했다”면서 “지금은 울창한 잣나무 숲과 함께 마을 주민들의 주 소득원으로 자리 잡았다”고 강조했다.
‘치유의 숲’과 ‘잣나무 푸른교실’은 가평 방향 축령산 중앙 쯤 잣나무 숲이 우거진 자리에 있다. 이곳을 거쳐 축령산 정상에 오른 후 다시 행현리로 원점회귀하기 위해서 행현리 마을회관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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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가평8경 중 7경인 축령백림의 축령산 잣나무숲은 마치 검은숲을 방불할 정도로 한낮인데도 어두운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2 잣나무 숲을 벗어나 임도가 끝나면 바로 축령산 절고개로 이어지는 등산로로 연결된다. 3 잣나무 체험학습장에서 축령산 정상으로 연결되는 등산로도 산책코스로 잘 닦아 놓았다.
- 가평 잣 생산량 전국의 40% 이상
마을 입구엔 축령산과 행현리의 유래에 관한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가평군 상면에 위치해 있는 행현리는 예로부터 아름답고 살기 좋은 무릉도원의 신비스런 고장으로 불려왔다. 이 마을을 지켜주는 우뚝 솟은 축령산은 해발 870m의 높은 산이며, 산에 정기가 영험하여 향리인들의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기도처로 삼았으며, 옛날에는 용이 승천하여 비룡산이라 했다. 이조 7대 세조왕이 어린 단종을 시해하고 왕위에 올랐으나 양심에 반하여 몹쓸 병이 온몸에 발산되어 고생하다가 비룡산에 와 빌어 쾌유되었다 한다. 그런 연고로 축령산으로 개명했다.(후략)”
축령산의 원래 이름이 비룡산이라는 설명이다. 다른 책에서는 그와 다른 유래를 소개하고 있다.
“조선왕조를 개국한 태조 이성계가 고려 말(1390년경) 이곳에 사냥을 왔다가 짐승을 한 마리도 잡지 못하자, 산신제를 지낸 후 멧돼지를 잡았다는 전설이 전해져 그때부터 고사(告祀)를 올린 산이라 하여 축령산(祝靈山)이라 불리게 됐다.”
어떤 설명이든 축령산은 기도와 관련된 영험한 산이라는 얘기다. 축령산 유래에 관한 사실 여부를 차치하고라도 역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때로는 전설로, 산신으로, 신령으로 각색되기도 한다.
행현리 마을회관 입구엔 조금 오래된 듯한 커다란 등산로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그 길을 따라 올라가는 길은 등산로인지, 임도인지, 차도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한창 공사 중이다. ‘치유의 숲’‘잣나무 교실’조성과 맞물려 농어촌도로 확·포장 공사 중이라고 마을 주민이 전했다. 길은 조금 넓었지만 걷기엔 엉망이다. 공사 중인 길은 1㎞ 가량 계속됐다. 그 뒤로도 임도 같은 시멘트길과 흙길이 1㎞ 남짓 더 이어졌다.
마지막 갈림길에서 오른쪽에 펜션이 있고, 왼쪽 계곡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면 가평군에서 세운 조그만 등산로 이정표가 나온다. 길은 거의 외길 수준이라 ‘알바’할 우려도 없다.
경기도 산림환경연구소에서 조성 중인 잣나무 푸른교실 체험자연학습장과 치유의 숲 조성 장소는 등산로 이정표에서 1.4㎞쯤 더 가면 나온다. 잣나무 숲의 넓직한 공간에 여러 채의 한옥을 조성한 장소가 바로 그곳이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제법 그럴듯해 보여 조성되면 한 번 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물레방아와 연못, 산책로, 찜질방 등 건물 여러 동이 보였다. 자연휴양림보다 더 다양한 시설을 조성 중이었다.
축령산 정상까지
임도와 등산로로 바로 연결
이곳에서의 이정표는 ‘← 2.8㎞ 축령산 임도, ↑ 2.3㎞ 축령산 정상, ↓ 3.3㎞ 상면 행현리 마을회관, 서리산 임도 3.9㎞ →’로 가리켰다. 축령산 정상으로 직행이다.
체험자연학습장에서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박석을 깔고 사이 공간은 콘크리트로 막아 너무 깔끔하게 만들었다. 오히려 등산로 같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등산로 옆으로 계곡이 계속됐다. 등산객의 발길은 별로 닿지 않은 듯했다. 산나물과 새순을 따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등산로, 아니 임도는 한적했고, 우거진 잣나무 숲 사이로 피톤치드가 쏟아져 나오는 듯했다. 상쾌한 기분이다. 깊게 숨을 들이켰다. 스트레스가 확 달아나는 느낌이다. 산행하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걷는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 없이 걷기 그 자체에 몰입하게 된다.
절고개로 올라섰다. 남양주 수동면에서 등산 온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삼삼오오 앉아서 쉬고 있었다. 축령산 정상까지 0.68㎞ 남았다고 가리키고 있다. 절고개에서 내려다본 가평7경의 ‘축령백림’은 마치 검은 숲과 같았다.
잣나무 숲을 벗어나 절고개 주변엔 참나무가 군락을 이뤘고, 축령산 정상부근엔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정상비석이 선 해발 886m 축령산 정상에서의 주변 전망은 막힘이 없고, 조망도 일품이다. 서북쪽으로 서리산(825m)과 주금산(813m), 북쪽으로 운악산(936m)·명지산(1,267m), 북동쪽으로는 화악산(1,468m), 동쪽으로 청평호수, 남동쪽으로 용문산(1,157m), 남서쪽으로 천마산(812m) 등이 보인다.
정상에서는 세 방향으로 하산길이 나뉜다. 서리산 철쭉동산까지 2.87㎞, 남이·수리바위 1.67㎞(홍구세굴 1.99㎞), 가평 행현리 방향 등이다.
남이바위는 조선시대 세조 때 남이 장군이 한성의 동북방 요충지인 이곳에 자주 올라 지형지물을 익히며 심신을 수련했다는 바위를 말하며, 수리바위는 산세가 험한 축령산에 독수리가 많이 살며 모양이 독수리 두상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또 홍구세굴은 조선시대 홍씨 성을 가진 판서가 늦도록 후세를 잇지 못해 애를 태우던 중 영산인 축령산에 올라 제단을 쌓고 지성으로 기도한 결과 후세도 잇고 자손 대대로 가문이 번창했다는 전설이 깃든 바위다.
하산길은 당연히 가평 행현리 방향이다. 등산로로 조금만 내려오면 바로 임도와 연결되고, 조그만 이정표가 행현리 마을회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길을 따라 내려오면 된다.
지금 축령산 행현리 방향은 곳곳이 개발 중이다. 체험자연학습장과 농어촌도로 확·포장, 무슨 선원과 펜션 등을 신축하고 있다. 아마 잣나무 아름드리숲을 상품화하기 위한 작업이지 않을까 싶다. 잣나무 숲의 다양한 효능이 이제야 제대로 평가받는가 보다. 수도권에서는 그만큼 우거진 잣나무 숲을 쉽게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 당장 스트레스를 날리러, 몰입을 위해, 잣나무 숲 체험을 하러 축령산 ‘축령백림’으로 달려가 보라. 그곳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교통
서울에서 가평 상면 행현리까지 바로 가는 대중교통은 없다. 청량리 롯데백화점 앞에서 20분 단위로 청평 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요금 1,800원). 이 버스를 타고 청평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상면 행현리 마을회관까지 가는 버스로 갈아탄다(오전 7시20분, 오후 5시 등 하루 2회 운행·요금 1,000원).
승용차로는 46번 국도를 타고 청평에서 37번 국도로 가평 상면 행현리 방향으로 틀어 행현리 마을회관 쪽으로 진입하면 된다.
맛집
상면 행현리 마을회관에서 축령산으로 올라가는 임도는 지금 한창 개발 중이라 대단위 펜션과 식당 등이 들어서고 있다. 가평군에서 추천한 식당은 하늘소잣두부(031-584-5368), 촌가청국장된장촌(031-584-5266), 축령가든(031-585-585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