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부르는 소리
소흔 이한배
방안에서 냉방기를 틀고 시원하게 있다가 창문을 여니 열기에 숨이 막혀온다. 그래도 컴퓨터 화면에 고정되었던 시야를 먼 곳 산그리메 너머까지 확장해 본다. 여름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저 아래 나무에서는 매미 소리가 시끄럽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듯 새삼 반갑다.
어렸을 때 강 건너에 가면 이태리포플러 숲이 우거져 있어서 매미 소리를 들으러 그곳에 가곤 했다. 친구들에게 같이 가자면 시끄럽다고 싫어해서 늘 혼자 가서 듣곤 했다. 신나게 울어 젖히다가 내가 가면 일제히 뚝 그친다. 자기네들 소리를 들으러 온 나를 환영은커녕 언제나 푸대접이었다. 그래도 나름으로 재미가 있어서 후다닥 뛰어 가보기도 하고 살금살금 걸어도 가보지만 귀신같이 알아차리고는 이내 멈춘다. 한참을 가만히 서있으면 다시 시끄럽기 시작하곤 했다. 나무 그늘에 누워서 들어보면 이쪽에서 한바탕 노래하다가 그치면 저쪽에서 하고 저쪽에서 그치면 이쪽에서 교대로 합창한다. 내가 노래를 부르면 그 음치의 목소리로 훼방을 놓느냐며 화를 내기도 했다. 하긴 저네들 소리와 다르니 매미 쪽에서 보면 음치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한참 놀다 보면 내가 매미들 즐겁게 합창하는데 훼방꾼인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 때쯤 돌아 서지만 며칠 지나면 또 가보고 싶어 수시로 가곤 했었다.
그때는 매미가 노래한다고 생각했는데 성인이 된 어느 날 다른 사람들처럼 운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매미는 우는 걸까? 노래하는 걸까? 내 생각엔 매미가 운다고 하는 건 인간이 제 맘대로 그렇게 볼 뿐이다. 원래 인간은 슬픈 족속이라더니 귀뚜라미도 울고 기러기도 운다고 하는가 보다. 내가 보기엔 매미는 우는 게 아니고 노래하는 거다. 그것도 사랑의 노래다.
사람이 사랑을 구할 때 우는가?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울지 않고 노래를 부른다. 인간이 부르는 노래의 대부분이 사랑에 관한 노래다. 사랑의 만남, 진행, 헤어짐에 노래가 대부분이다. 그중에서도 애인의 창밖에서 부르는 소야곡(小夜曲=세레나데)이 대표적이다. 음악뿐만 아니라 시(詩), 소설에도 사랑에 관한 작품이 많다, 사랑이 주제가 아니어도 거의 사랑 얘기는 들어간다.
자기네들은 그렇게 다양하게 사랑을 표현하지만, 헤어지는 경우가 아니면 운다는 표현은 거의 없다. 그런데 다른 족속의 사랑 노래는 왜 운다고 표현한다. 매미 처지에서 보면 알다가도 모를 일일 게다. 자기네들이 사랑할 때는 ‘사랑 노래’라고 하면서 왜 다른 생명체의 사랑 노래는 운다고 표현하는가? 인간이 듣기에는 좀 시끄럽기는 해도 그들에게는 사랑의 세레나데가 아니겠는가?. 그것도 스무날 안에 애인을 만나야 하므로 절실하다. 백년씩이나 사는 인간이 그걸 어찌 알까마는 그렇다고 운다고 하는 건 너무한 것 같다.
사실 매미가 내는 소리는 목소리가 아니다. 수컷만이 소리를 내는데 가슴과 배 사이에 발성 기관이 있어 소리를 낸다. 현악기가 소리를 내는 원리와 비슷하다. 소리를 내는 이유는 생물의 대부분이 그렇듯 짝을 찾기 위해서다. 인간의 눈에는 하찮고 우습게 보이는 미물일망정 그들 나름의 삶의 방식이 있고 자연에 대한 역할이 분명히 있다. 모든 생물체는 그 역할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매미를 나무위키에서 검색해 보면 종류가 엄청 많다. 말매미(왕매미), 애매미, 쓰름매미, 참깽깽매미, 털매미, 늦털매미, 유지매미, 소요산매미, 세모배매미, 풀매미. 종류만큼 소리도 다르다. 녹음된 소리를 들어보면 종류마다 소리가 다르지만, 많이 듣던 익숙한 소리이다. 평소에는 뭉뚱그려 한꺼번에 듣다 보니 구분을 안 했을 뿐임을 알 수 있다. 태국 푸껫의 매미 소리는 비상벨 소리처럼 들린다. 또 인도네시아의 매미는 사이렌 소리로 들린다. 그런 걸 보면 익숙해서 그런지 아무리 시끄럽다고 해도 우리나라 매미 소리가 제일 낭만적인 것 같다.
지인이 보내준 붓글씨 도록에 보면 매미의 5덕(五德)이라 하여 문청겸염신(文淸儉廉信)을 말하고 있다. 『수염은 선비를 뜻하며 학문(學文)을 함이요. 이슬을 먹고 사니 청심(淸心)이라. 집이 없으니 검소(儉素)함이요. 곡식을 탐하지 않으니 염치(廉恥) 있음이요. 시절을 따라 울어대니 신의(信義)가 있도다』라고 쓰여있다.
언젠가 매미 유충이 성충으로 탈바꿈하는 우화 과정을 사진으로 찍은 적이 있다. 그 신비로움에 넋을 잃고 찍었었다. 자연 이치에는 한 치의 빈틈이 없다는 걸 그때 알았다. 내가 본 우화의 과정은 지금 생각해도 매미 일생일대의 대축제였다.
옛날 주택에 살 때는 아예 에어컨이 없이 살았다. 그래서 여름엔 항상 문을 열어 놓고 자연의 바람을 즐겼었다. 뒤꼍 담 너머 공원에 나무가 많아서 여름이면 늘 매미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곤 했다. 밤이 낮같이 환하니 매미가 낮인 줄 알고 한밤중까지 세레나데를 불러 댔다. 어느 날은 시끄럽게, 어느 날은 자장가로 들렸던 매미의 세레나데. 그렇게 주택에서의 여름은 매미 소리에 일어나고 잠들곤 했다.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에어컨을 켜놓고 살게 되니 문을 닫아야 하고 매미 소리까지 닫아 버렸다.
매미가 시끄럽기 시작하면 여름이 쉬이 간다는 신호다. 박정열 시인은 가을빛은 매미가 제일 먼저 안다고 했다.
가을빛은 맨 먼저 매미가 안다
초록 잎사귀에 투영하는
햇빛이 어눌하면 새순 자리는 피막이 무디고
바람은 아침에
옴츠러드는 소름 꽃이 송송…….
(「매미는 안다」. 중에서)
여름이 끝나가고 있다는 걸 매미가 먼저 알려 준다. 햇빛이 어눌해지고 새순 자리가 무뎌진다. 사람은 그런 가을이 오는 낌새도 알아채지 못하면서 덥다고 호들갑만 떨고 있다. 하지만 매미가 시끄럽다는 건 머지않아 여름이 끝날 거라는 소식을 전해주는 거다. 어느날 소낙비 한바탕 쏟아지고 나면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끝이 여물어 갈 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