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민일보 2024년 11월 15일 금요일자
유진의 詩가 있는 풍경
수평선
문태준
내 가슴은 파도 아래에 잠겨 있고
내 눈은 파도 위에서 당신을 바라보고 있고
당신과 마주 앉은 이 긴 테이블
이처럼 큼직하고 깊고 출렁이는 바다의 내부, 바다의 만리
우리는 서로를 건너편 끝에 앉혀놓고 테이블 위에 많은 것을 올려놓지
주름 잡힌 푸른 치마와 흰 셔츠, 지구본, 항로와 갈매기
물보라, 차가운 걱정과 부풀려진 돛, 외로운 저녁별을
♦ ㅡㅡㅡㅡㅡ 하늘과 바다가 멀리 맞닿아 경계를 이루는 수평선, 하지만 하늘과 바다는 결코 맞닿은 적 없고, 영원히 맞닿을 수 없는 관계이다. ’우리는 서로를 건너편 끝에 앉혀놓고’ 선을 그어가며 관계를 이루어 가는 외로운 사람들이다. 가시거리와 인식에 따라 달라지는 사람의 관계, 어떤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평평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적당히 알고, 적당히 몰라야 하는 것일까. ‘큼직하고 깊고 출렁이는’ 가슴은 수면아래 두고, 보이는 것만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마주앉아 있지만 서로에게 닿지 못하는 사이, 마주 앉아 있지만 마음 따로, 행위 따로......그래서 늘 외로운 저녁별처럼, 결코 맞닿은 적 없고, 영원히 맞닿을 수 없는 수평선처럼......
ㅡ 유진 시인 (첼리스트. 선린대학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