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어지는 너와 나 사이, 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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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경제는 1997년의 외환위기를 아직 완전하게 극복하지 못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 더 힘든 여정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고도 했습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외환위기 이후의 후유증 가운데 하나인 양극화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경쟁에서 이긴 자와 진 자의 격차 확대
최근 양극화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세계화, 개방화, 경쟁화이며, 여기에 우리 경제를 엄습한 외환 위기입니다.
외환위기 이후 닥쳐온 개방과 경쟁 바람은 냉혹했습니다. 경쟁에서 탈락하는 자와 경쟁에서 살아남는 자의 격차가 확대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중간층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오직 가난한 자와 부자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다소 과장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허리가 튼튼해야 하는데
사람에게서 가장 중요한 부위는 어디일까요? 너무 우문이죠? 중요하지 않은 부위가 어디 있겠습니다. 눈이면 눈, 머리면 머리, 손이면 손 모두 중요합니다. 위장도 중요하고 심장도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오늘은 허리 이야기입니다.
허리가 아프기 전까지는 허리의 고마움을 잘 모릅니다. 축구에서도 허리가 튼튼해야 경기를 주도하고 승리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람도 허리가 튼튼해야 합니다. 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허리가 튼튼한 다이아몬드형 경제 구조가 되어야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는 중산층이 얇아지고 아래와 위가 굵어지는 기형적인 모습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전 강의 #33에서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양극화 문제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이 문제는 제외하고 다른 분야에서의 양극화를 구체적으로 짚어봅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양극화
외환위기 이후 중소기업은 물론 일부 재벌까지 해체됨으로써 '대마불사'라는 신화마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외환위기에 가장 잘 적응 한 것도 기업입니다. 자본주의 경제와 무한경쟁 시대에 재빨리 적응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렵다는 정글의 법칙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업들 사이에서도 적응 속도와 적응 능력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의 적응이 신속했고 효과적이었습니다.
대기업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여 무한경쟁 시대와 개방화 시대에도 살아남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 대기업은 사상 최대의 수출 실적 또는 사상 최대의 영업 실적을 기록하면서 그 결실을 누리고 있습니다.
사상 최악의 경기
이에 비해서 많은 중소기업은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중소 자영업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재래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외환 위기 때보다 장사가 더 안 된다고 하소연합니다. 사상 최대의 흑자와 사상 최악의 경기가 한 나라 경제에 공존하면서 우리나라 체감 경기를 북극처럼 냉랭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통계 수치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00년부터 대기업의 생산지수가 중소기업의 생산지수를 앞지르기 시작한 이후 그 격차가 현재까지 계속 확대되고 있습니다. 생산성 증가율도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업 전체의 통계를 구할 때 규모가 큰 대기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중소기업은 작은 비중을 차지하기 마련이므로 대기업의 좋은 실적이 중소기업의 어려운 실적을 압도해버립니다. 이러한 전체 통계를 보고 경제에 별 문제가 없다고 섣부른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일자리 문제가 심각한 노동시장
이번에는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생각해 봅시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급등했던 실업률이 3%대로 안정되었습니다. 이 숫자를 놓고 보면 노동시장은 양극화와 관계없는 듯이 보입니다. 그렇지만 자세히 노동시장을 들여다보면 역시 양극화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여 한창 열심히 일할 수 있고 생산성이 높은 청년들의 실업률이 전체 실업률의 두 배나 됩니다. 기업들은 생산 시설을 해외로 이전하고 있습니다. 결국 국내에서 근로자를 필요로 하는 수요가 감소합니다. 그렇다고 기업에게 국내 젊은이들을 생각해서 해외 이전을 자제해달라면서 매달릴 수도 없습니다. 기업들 역시 세계를 상대로 생존을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 사정 봐주다가 기업 자체가 도산하면 이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고용 창출 효과가 적은 IT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어
국내에 일자리 창출이 부진한 또 하나의 원인은 IT 산업의 호황과 비IT 산업의 부진입니다.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 IT 산업이 크게 기여했고 현재 우리는 세계적인 IT 강국이 되었습니다.
IT 산업은 특성상 많은 근로자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즉 노동 집약적이지 않습니다. 산업이 성장하더라도 고용 창출 효과가 크지 않은 IT 산업 위주로 경제가 성장하다보니 국내에서 일자리 창출이 과거에 미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IT 산업의 성장을 막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IT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의 소득은 급증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정규직 vs. 비정규직 근로자
운이 좋아서 일자리를 구한다고 하더라도 일자리의 성격이 문제입니다. 기업은 근로자를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 형태로 채용하기를 원합니다.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해고하기 비교적 쉽기 때문입니다.
언론에 비정규직 근로자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지만 정부와 노동계 사이에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의는 크게 다릅니다. 정부는 2002년에 노사정이 합의한 대로 한시적 근로자(contingent worker), 기간제 근로자, 파견·용역·도급 등의 비정형 근로자(non-standard worker), 단시간 노동자만을 비정규직 근로자에 포함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에 비해서 노동계는 임시직, 일용직 근로자 가운데 현실적으로 비정규직 근로자보다 근로 조건이 더 열악한 취약 근로자까지 비정규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수는 2005년 기준으로 정부 추정치 548만 명, 노동계 추정치 855만 명으로 무려 300만 명이나 차이가 납니다.
같은 일을 해도 임금이 적은 비정규직 근로자
비정규직 근로자는 정규직 근로자와 같은 일을 하더라도 임금을 적게 받습니다. 그렇다고 몇 년 뒤에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이로 인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소득 격차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한 기업 안에 소득과 근로조건에 차이가 있는 두 가지 형태의 근로자가 병존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생산성이 높아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더욱 벌어진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외환 위기가 모든 사람을 어렵게 했지만 어려움의 정도는 사람마다 달랐습니다. 저소득층이 받은 어려움을 생각하면 고소득층은 어려움을 받았다는 표현을 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고소득층은 외환 위기마저 기회로 활용하면서 어려움을 무난히 극복하고 소득이 크게 증가한 경우도 많습니다. 이에 비해서 저소득층은 외환 위기의 충격을 고스란히 받았습니다.
소득의 격차를 이야기할 때 언론에 자주 인용되는 지표가 있습니다. 십분위 분배율입니다. 한 나라의 가계를 소득이 작은 것에서부터 많은 순서대로 정렬시킨 후 이를 10개 등급으로 구분합니다. 소득이 가장 작은 그룹을 1분위, 소득이 가장 많은 그룹을 10분위라고 부릅니다.
이제 소득이 작은 4개의 계층의 소득을 모두 더합니다. 이 값을 A라고 부르겠습니다. 다음에는 소득이 많은 상위 2개의 계층의 소득을 모두 더합니다. 이 값을 B라고 하겠습니다. 십분위 분배율은 A/B로 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십분위 분배율이 큰 경우와 작은 경우 가운데 어느 것이 빈부의 격차가 클까요? 그렇습니다. 십분위 분배율이 작을수록 빈부의 격차가 큽니다.
외환 위기 이후 십분위 분배율 크게 하락
우리나라의 십분위 분배율은 1997년에 0.587로서 비교적 높은 편이었고 다른 나라에 비해서 빈부의 격차가 크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외환 위기 이후 십분위 분배율이 급락하였고, 1999년에는 0.496을 기록했습니다. 이후 십분위 분배율은 차츰 회복되고 있지만 외환 위기 이전의 값에 비하면 아직 한참 아래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생계비도 벌지 못해 정부가 주는 돈에 의존하거나 학교에서 급식을 하지 못하는 초등학생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주말마다 골프장에 사람이 넘쳐나고, 해외 여행자 수가 사상 최고를 기록하였다는 뉴스가 귓가에 전해집니다. 외제 고급 승용차 판매량도 매년 기록을 갱신하고 있습니다.
더하기 통계 외에 편차 통계가 필요
거시 경제 지표는 한 나라의 경제 상태를 하나의 숫자로 확인하기 위한 목적으로 집계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거시 경제 지표는 양극화로 인한 문제를 제대로 짚어내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비중이 큰 대기업의 양호한 실적이 비중이 작은 중소기업의 부진한 실적을 압도하여 전체적으로 실적이 좋은 것으로 발표되거나, 부자의 소비 심리가 빈자의 소비 심리를 압도하여 역시 전체적으로 소비 심리가 좋은 것으로 작성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통계만을 보고 경제에 문제가 없고 경제가 잘 되고 있다는 오판을 한다면 곪고 있는 환부는 회복 불능 상태까지 진전되고 영영 치료할 수 없게 될지 모릅니다.
각 부문의 통계를 더하는 통계도 중요하지만 각 부분의 편차를 측정하는 통계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경제가 빠르게 성장한다고 해서 양극화가 자동적으로 해소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 홀로 성장에는 한계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문> 사회 양극화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말해 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