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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앞의 글에서 잠시 언급한바 있지만 韓末의(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당시)의 조선의 유생들이자
사대부들의 적폐 온상이었던 조선 서원의 규모를 대략 650 여개 정도로 잡는것이 학자들의 일반
적인 견해다.사실 이것도 면적이나 자연환경에 비해 터무니 없이 많다.대체로 서원이나 향현사들
의 존립 근거는 학자들이 많이 배출되어 흠모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 건립된다.따라서 돈(재물)
과 사람이 없으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고명한 학자를 배출하기는 힘들고 이러 저러한 환경의 지배
를 받는 것이 학문이다.그것이 어떤 학문이든 학문의 탄생지는 '물산이 풍요로운 지방' 에서 생겨
난다.증거는 바로 세계 4대문명 발상지란 곳의 역사적,지리적 환경및 조건들이 말해준다.
2, 따라서 국립이나 공립이 아닌 사립 서원이나 향현사 같은 '사학 재단이나 유명인 배향사당' 들도
척박한 지역에는 생겨날수도 세워 질수도 없다.농본주의 시대 학문인 신유학이자 성리학이란 학문
역시 물산이 적고 땅이 척박하거나 산간오지 에서는 생겨나기 힘들다.이런곳의 자연환경은 먹고
살기도 힘들기 때문에 학문 자체를 말하기가 어려워 진다.또한 학문이란 것은 대체로 지배계층들
이 다수를 지배하기 위한 이데오르기를 만드는 작업이기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희박하거나 허술
한 변방에서 생겨나기도 힘들다.일단 큰 중앙 권력이 있고,도시가 있고,사람들이 많고,먹을 것이
(콩고물) 풍성한 지역이자 물산의 집산지에서 생겨난다.
3, 따라서 성리학이 주자에 의해 집대성될 즈음 시작된 서원(10세기 ~ 11세기) 이라고 할지라도
서원 생성과 서원의 번성 지역은 현 중국에서도 양자강 유역과 그 일대인 풍요로운 남방지역이
된다.우선 이곳은 기후도 그런데로 온화한 지역으로 물산이 풍부하다.즉 인간과 물산이 풍족해야
문학도 예술도 학문도 생성될수 있는 것이다.흔히 강자들이 약자들을 약올리는 말로 晝耕夜讀,
螢雪之功과 같은 말은 하지만 이것은 힘없는 백성들을 현혹시키기 위해 지배자들이 만들어낸
허황된 말로 교과서에만 나오는 얘기다.만약 서원사에 있는 역사 조선의 서원들이 모두 반도에
있었다고 한다면 서원과 향현사들의 건립과 창건(소재지)지역은 물산이 그런데로 풍부한 지금의
전라도 충남,경기도와 황해도 남서부 지역이 되었을 것이다.운영비가 만만치 않다.그러나 반도로
옮겨진 역사의 경상도 지역은 역사의 지리적 환경과 다르게 또 물산이 풍부한 지역이 아니라는데
있다.물산이 풍족치 않은 환경이라 서원이 많이 건립되었다고 주장할 근거가 없다.
4, 이유는 대륙 경상도 서원들을 무턱대고 촐론의 역사 이전과 함께 반도로 옮겨 놓다보니 이지경
이 된 것이다.역사 속의 慶尙道의 뜻은 지금처럼 반도에서 경상남북도로 나뉘어지는 행정적 의미가
아닌 '方面' 을 뜻한다.즉 경상도란 역사적 지정학적 의미는 '경주 상주 방면이란 길(路)' 의 뜻이다.
전라도 충청도 도명 역시 그렇다.지금처럼 일정한 면적으로 나뉘어져 있는 의미가 아니다.1871년
경의 충청도는 公忠道 였고 함경도는 영흥도에서 함길도를 거쳐 함경도가 됐다.역사의 경상도 경주
만 해도 지방의 조그만한 고을 성격의 이름이 아니라 경주 자체가 담는 그릇이 '소속군 4군,소속현
10현,방어군 5군,지군사 1군' 등으로 지금의 한반도 보다 더 큰 스케일 이었음을 알아야 역사의 잡
다 한 조선사 의문들이 풀린다.대체로 역사 조선의 경상도라 함은 지금의 강소성 절강성 복건성이
들어가나 주력지역은 지금의 절강성 동남부와 복건성의 동부지역이 포함된다.
5, 이제 한말의 역사 조선의 지역별 書院數를 비교하여 조선국의 스케일을 살펴보자.서원의 규모를
고종실록과 한국 서원사를 통해서 찾아 보면(이름과 위치,장소만 발견되었다고 전해지는 곳까지
포함= 역사와 연계 시켰을때 반도에 없었던 서원들),
" 경기도 40개->충청도 57개->전라도 66개->경상도 156개->강원도 11개->황해도 20개->평안도
16개->함경도 12개 등 총 378 개의 서원" 이 있었던 것으로 조선(한국) 서원사는 말한다.
물론 반도를 의미 하는 것이 아닌 역사 조선의 서원을 지명의 이식과 함께 반도 식재의 서원을 말해
놓은 것이다.역시 반도로 옮겨놓은 서원도 대륙에서 처럼 척박한 산악과 오지가 많은 지역은 서원이
별로 없거나 그 규모가 아주 작다.대륙의 황하 이북지역이 그렇고 반도 식재의 평안도와 함경도가
그렇다.서원의 수나 스케일이 아주 작다.그러면 한말(19세기말) 경의 현 중국지역의 서원 스케일을
중국의 서원사와 중국 서원사전(절강츨판사 간행)을 통해서 살펴보자.
"북경시 12개->천진시 10개->하북성 50개->산서성 40개->내몽고 3개->요녕성 15개->길림성 7개->
흑룔강성 4개->상하이 16개->강소성 63개->절강성 118개->강서성 112개->호남성 121개->사천성
106개->안휘성 68개->복건성 54개->산동성 94개->하남성 93개->호북성 83개->광동성 90개->광서성
89개->해남성 23개->귀주성 70개->운남성 64개->섬서성 56개->감숙성 34개->청해성 7개->영하성
9개->신강성 2개->타이완 33개->홍콩 7개->마카오 1개 등 총 1554개의 서원" 존재를 알려준다.
중국 서원들도 이름과 터만 남겨지고 없어진 것도 많고,문화유산 성격으로 현세(1980년 이후)에 중건
복원된 것들도 많다.중국의 서원역시 척박한 황하 유역엔 적고 물산이 풍부한 남방에 편중되어 있다.
6, 필자가 가본 호남성 장사의 岳麓서원이나 강서성 廬山의 白鹿洞서원,그리고 강소성 무석의 東林
서원,복건성 우계의 南溪서원 같은 경우는 서원의 규모나 스케일이 한국의 경복궁보다 더 훌륭하고
큰 규모를 볼수가 있다.한국 성균관대 내에 있는 반도 유학의 핵심이자 본부였다고 전해지는 성균관
스케일은 대륙 조선의 서원문화 시설로 옮겨놀고 보면 잘해야 '큰 鄕校' 정도의 규모다,이곳에 가면
진짜 옛냄세 나는 토호 유생들이자 사대부들의 사학재단의 학교(사립학교)같은 자태가 있다.스케일
도 그렇지만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는 그말이 소비될수 있을 정도로 역사를 담고 있는 風趣도 느끼게
한다.경전을 열심히 읽고 암송하는 소리가 들리는듯 하고 공부하던 유생들이 튀어나올 풍경들이다.
7, 반도로 옮겨진 조선 서원의 분포는 대체로 반도의 남부에 집중되어 있다.그러나 반도처럼 대륙에
서도 양자강을 중심으로 그동쪽 지역이자 양자강의 上下지역,또 많은 호수들이 둘러싼 물산이 풍부
한 지역에 書院들이 집중되어 있다.대륙의 서원 소재의 모든 지역들은 대부분 水路로 연결된 물산의
집산지 역할을 하는 곳도 많다.지역의 차이는 있지만 省 별로 100개 이상의 서원을 보유하고 있었던
지역은 대륙에서도 水運 교통이 발달한 '절강성,강서성,호남성' 등을 들수가 있다.확대 교류 지역으로
는 안휘성,강소성,호북성,복건성 지역으로 이어진다.특히 강서성 무원(자양)지역은 주자가 태어난 곳
이다.그는 강서와 강동(지금의 강소성)의 일대에서 강주자사를 지냈고 집대성한 신유학인 주자학은
절강과 복건,강서에 걸쳐있는 武夷山脈을 넘어 복건성으로 갔고 장강과 태호를 건너서는 강소와 浙江
地域으로 퍼져 나갔다.
8, 문제는 다른 것에 있다.19세기 말 역사 조선의 경상도에 156개의 서원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역사의
기록이다.그렇다면 그많고 많은 서원들은 지금 모두 어디로 갔나? 최소한 면소재지 하나 정도에 서원
이 하나 정도 있어야 할 화려한 역사속의 경상도 서원들은 지금 어디로 갔단 말인가? 아무래도 찾을수
가 없다.주춧돌이라도 있어야 할것 아닌가? 한국의 경상도만 한 섬나라이자 대륙 남방과 가까운 대만
의 경우에도 겨우 33개의 서원 만이 있었다고 한다.그런데 반도로 옮겨진 조선의 경상도는 조선국
서원의 41%에 해당하는 156개(387개 중)나 있었음은 물론 대륙의 큰 省지역도 역사의 경상도 지역의
서원수와 규모를 능가하지 못한다.역사의 경상도는 서원에 살고 서원에 죽었던 고장이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다.즉 유학의 본고장들 보다 더흥성한 유학의 성지들이 반도의 경상도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선 그런 그림자 조차 찾을수 없다.왜냐! 역사서들의 대륙 경상도 기록들을 반도에 새로
만들어진 경상도에 주입시키다 보니 이러한 억지가 만들어질수 밖에 없었다.
9, 따라서 지금의 반도 경상도는 역사서들의 기록과는 다르게 헐리우드 쎄트같은 서원의 모형들만 몇개
세워져 어느시대 누구의 서원이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그것도 대륙에서 서원이 제일 많았다는 호남성
지역의 121개 서원보다 35개나 더많은 156개의 서원을 건립했던 지역이 바로 조선의 경상도 였다,그래서
이익이 성호사설에서 조선의 경상도에 유학자 출신의 양반 사대부들이 제일 많았다고 한 것이다.문제는
반도의 경상도는 물산이 다른 지역에 비해 풍부한 곳도 아닐 뿐더러 총면적이 3만 2천 평방킬로미터에
불과하여 서원 156개를 담을 면적이나 그릇이 없다는 것이다.비교한다면 대륙의 호남성 지역은 물산이
풍부할 정도가 아니라 2모작에서 3모작 까지 되는 곳으로 면적은 21만 평방킬로미터로 대충 한반도만
하다.반도의 경상도 면적 보다는 7배나 넒은 지역이다.호남성은 풍요로운 평야지대가 끝없이 펼쳐지는
곳 임에도 121개의 서원이 있었을 뿐이다.반도로 옮겨진 경상도에는 어떻게 156개의 서원이 들어갈수 있
나.이제는 억지를 부리지 말자.아마 모르긴 해도 이황의 陶山書院이란 것도 지금의 절강성 남부인 溫州
지방이나 그 근처에서 찾아 봄이 탁월할 것이다.
10, 반도의 경상도가 반도의 다른 도보다 규모가 큰것은 사실이다.그렇다고 156개의 서원을 담을 그릇이
되는 곳은 더더욱 아니다.우선 서원 156개를 운영할 물산의 규모가 없는 산악이 많은 경상도라는 사실이
다.반도 전체를 망라하고 만약에 소중화의 그 외침 지역이 반도가 맞다고 해도 반도 전체라도 156개의
서원은 담을수가 없다.또한 이것의 증빙으로는 수많은 학파들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역사적 문헌적 기록
이 있어야 한다.반도가 담을수 있는 서원 규모는 물산이 풍부한 대륙남방의 省들을 기준으로 할때 대략
60개 정도를 쓰면 적당할 것이다.더 진솔하게 말하면 50 여개 정도라고 해도 너무많다.또한 반도는 해당
지방들이 서로 호응하는 지방의 현사(향사)들도 많이 배출한 곳도 드물다.역사서에 등장하는 동방4현 등
의 유생 인물들도 기록에는 있지만 그들이 살았다는 동국이나 동방이 반도였다는 증거나 말은 한마디도
없는 스토리 텡링인 것이다.우기지 말자.최초의 서원이라고 말하는 소수서원이자 白雲洞書院이란 것도
지금의 경북 풍기 순흥면에 있어야 할 서원이 아니다.실제는 지금의 강서성 廬山에 있는 白鹿洞書院(구
강시 남부)을 말했던 것인데 중북을 피하고 차별을 주기 위해 白鹿洞을 白雲洞 으로 바꾼 것이다.
11, 대체로 반도에 유학이란 학문이 들어온 경로를 지정학적으로 설명한다면 지금의 하북성이나 요녕성
을 거쳐서 왔을 것이 자명하다.그런데 이 지역에 해당하는 요녕성 전지역(면적 15만 평방 킬로미터) 이
15개 서원,길림성 (18만)은 7개의 서원,하북성(19만)은 50 여개의 서원이 있었을 뿐이다.반면에 이지역을
경유해 들어왔을 반도 조선의 사설 교육기관이자 사대부들의 놀이터 였던 서원은 반도의 남한지역(9만
6천)에 대륙 省들의 절반도 않되는 면적에 서원은 5배에서 10배정도가 많은 330 여개 서원이 있었다고
억지를 쓴다.특히 지금의 하북,요녕,길림성 지역은 반도와 대륙을 오가는 요충 통로로 그면적이 52만 평
방킬로미터나 된다.그리고 그지역을 이른바 고조선 지역으로 역사 조선의 시발지라고 말한다.그런데 이
지역의 서원은 총 72개 정도인 반면에 이곳을 통해 전수 받았을 반도 조선의 서원은 387개를 넘어 19세기
말에는 650 여개나 되었다고 하니 근거없이 기절을 할 노릇이다.서원에는 기본적으로 본당과 東齊와
西齊가 있으며 학생들이 묵는 기숙사가 있고 교수들이 살림을 차리고 있는 살림집들이 있고,서원 경영과
유지의 전답들이 있고,이를 운영할 노무자들이 많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대륙의 어느서원이든 규모가
대단히 크다.
12, 대륙의 북경과 하북성,요녕성 지역을 경유해 유학을 수입해 왔다고 하고 그것도 수입해온 학문의 공급
이 느린 지역인 반도의 경상도가 남한지역에서 서원의 절반인 156개가 있었고 대륙의 省지역이자 성리학
및 서원의 발생지역보다 서원이 더 많았다고 해서 될일은 아니다.반도의 충청도는 면적이 1만 6천 평방킬
로 미터 인데 이식되어 명칭만 옮겨진 서원이 57개다.그리고 호남으로 불려지기도 하는 전라도는 2만 평방
킬로미터에 66개의 서원이 있었다고 한국 서원사는 말한다.그리고 강원도는 11 개의 서원이 있었다고 말
한다.반면에 대륙의 절강성 지역은 면적 10만 평방킬로미터에 118개의 서원,강서성은 면적 16만 평방킬로
미터에 112개의 서원,강소성은 면적 10만 평방킬로미터에 63개의 서원,산동성은 면적 15만 평방킬로미터
에 94개의 서원,하남성은 면적 16만 평방킬로미터에 93개의 서원,호북성은 면적 18만 평 방킬로미터에 83
개의 서원,광동성은 면적 18만 평방킬로미터에 90개의 서원이 세워졌던 것으로 중국 서원사는 말한다.
13, 중국의 서원사와 서원사전에 동시에 지적한 것처럼 중국도 북방지역(황하유역)보다 남방지역(양자강
유역과 그이남)에 몇배의 서원이 더 많이 세워져 있다.그것은 물산이 풍부한 남방이 신유학이자 서원 문화
의 중심이란 것을 말해준다.따라서 신유학이자 주자학(정주학등)의 본방은 지금의 양자강 유역 일대가 된
다.조선과 중국의 서원사 만으로 한정하여 알수있는 가느다란 역사 조선의 경상도,충청도 전라도로 한정
할수 있는 지역은 지금의 '호남성,강소성 남부,강서성 북부,절강성,안휘성남부' 지역을 포함한다고 할수
있을 것이다.지역에 따라 역사의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란 3남 지방의 역사 지명들이 서로 겹치기 출현 한다
는 것이다.역사의 3남이란 영남,강남,호남 이기에 근본부터 반도땅과는 어울림이 없다.그런데 너무 디테일
하게 역사를 너무 쪼개면 역사는 곧바로 사라 진다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또한 역사가 여러분 들에게 용
기와 희망을 준다고도 하고 또 속아 낚이기도 하는 '스토리 텡링' 임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역사의 진실
은 해당시대의 시대를 평정하는 실질 권력자들이 바로 역사의 진실 입니다.곧 역사의 진실이 밝혀 질것 입
니다.
첫댓글 귀한 글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와우 대난합니다
감사 합니다.열심히 공부 합시다.
정말 대단합니다.
가슴이 확 열립니다.
너무나 명쾌하고 이치에 맞는 글입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열신히 공부 합시다..
이 글은 추천 백만개 안되나요? 읽어내려오는 동안 숨이 턱턱 막혔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것이 시공간에 어울리는 역사라는 것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