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25. 성탄절 주일예배설교
마태복음 1장 21~23절
“예수; 구원하신다”, 그리고 “임마누엘; 함께 하신다”
■ 질문으로 시작해볼까요? 여러분은 다음 중 어떤 세상을 원하시나요? ‘평화로운 세상? 전쟁하는 세상?’ 인생은 어떤 인생을 원하시나요? ‘안녕한 인생? 불안한 인생?’ 역시 모두 ‘평화로운 세상’과 ‘안녕한 인생’을 원하시는군요. 좋습니다.
혹시 ‘전쟁하는 세상’과 ‘불안한 인생’을 꿈꾼다면 그는 어떤 사람일까요? 제정신이 아닌 사람? 그렇습니다. 그는 제정신이 아니거나 인간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마 마귀일 것입니다. 마귀는 ‘분열시키는 자’이거든요. 만약 사람이라면, 분열시키는 자 마귀에게 사로잡힌 사람일 것입니다.
왜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전쟁과 불안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세상도 인생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평화로운 세상’이고, ‘안녕한 인생’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세상과 인생을 만들어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날이 성탄절이고, 오늘이 그날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평화로운 세상’과 ‘안녕한 인생’을 만들어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그 이름의 의미를 통해 더 높이 찬송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예수>의 의미와 <임마누엘>의 의미입니다.
■ 천사는 요셉에게 결혼을 약속한 마리아에게서 하나님의 약속이 태어나실 것이라며 그 이름을 알려주었습니다. 21절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그 이름은? 그렇습니다. <예수>입니다. ‘주님께서 구원하신다. The Lord saves.’는 뜻입니다.
이렇게 그 이름의 의미대로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로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천사는 예수님의 이름에 이름 하나를 더 보태 알려주었습니다. 23절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그 이름은? 그렇습니다.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God is with us.’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두 개의 이름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고 <임마누엘>.
■ 예수님의 이 두 개의 이름에서 우리가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입니다. 무엇인가요? 그렇습니다. ‘평화로운 세상’과 ‘안녕한 인생’을 만들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인정하시다시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평화롭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생 또한 안녕하지 않습니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죄’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이 만드신 평화가 깨지고, 안녕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죄가 무엇이기에 하나님이 만드신 평화가 깨지고, 안녕이 무너진 것일까요? ‘죄’란, 하나님께 불순종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무시한 행위입니다.
여기에는 분열시키는 자 마귀의 꾀임에 빠진 이유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마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동의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분열됐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분열됐습니다. 그리고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도 분열됐습니다. 그 결과 평화는 깨지고 미움과 싸움이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관계가 분열되자 인생의 안녕이 무너졌습니다. 사는 것이 불안하고 무서워졌습니다. 미움과 싸움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의 인생은 불안 그 자체가 된 것입니다. 혹시나 이런 세상과 인생을 돌이겨 볼 여지를 찾아보지만, 모든 관계가 깨진 상태에서의 회복은 불가능했습니다. 인간에게서는 그 어떤 가능성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나서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결자해지(結者解之)라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과 인생을 뒤틀어버린 자는 사람이지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혹시 하나님의 책임이라면,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책임밖에 없습니다. 당신의 형상대로 지은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하신 책임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자해지가 아닙니다. 사랑이고 은혜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사랑이 사람의 불순종을 품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평화를 깨트리고 불안을 조성한 마귀에게 동의한 사람의 불신앙을 품으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가시적으로 드러내신 것이 예수님의 오심입니다.
■ 그러므로 ‘예수님의 오심’은 ‘구원’이십니다. 불순종과 불신앙으로 인한 죄로부터의 구원입니다. 그리고 깨진 모든 관계로부터의 구원입니다. 이는 ‘회복’(revival)입니다. 원상복구(原狀復舊)입니다. 하나님이 의도와 의지였던 ‘평화로운 세상’과 ‘안녕한 인생’으로의 회복입니다. 원상복구입니다.
그런데 구원이 단지 회복/원상복구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회복시키시는 구원자이시지만, <임마누엘>이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구원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구원으로 끝나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아닙니다. 영원히 함께 하심이 구원이자, 하나님의 사랑이고 은혜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의 구원은 영원히 함께 하심의 시작이자 약속입니다.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영원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조차도 깨트리실 수 없는 영원한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오심은 평화입니다. 그리고 안녕입니다. 모든 관계의 회복이고, 사랑과 정의의 완성입니다. 그렇기에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 물론 여전히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들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를 엉망으로 만들기 위한 마귀의 계략은 쉬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여전히 미움과 싸움으로 혼란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 또한 불안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과 인생은 구원자 예수님의 평화와 안녕을 이길 수 없습니다. 마귀의 갖은 술책도 예수님의 평화와 안녕 앞에는 속수무책입니다. 예수님의 이름, <예수; 주님께서 구원하신다.>와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도 예수님의 이름을 건드리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인 <예수>와 <임마누엘>을 늘 기억하십시오. 늘 붙잡으십시오. 이로써 평화로운 세상살이를 즐기시게 될 것입니다. 안녕한 인생살이를 누리시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평화와 안녕은 예수님이신 임마누엘에, 임마누엘이신 예수님에게만 있을 뿐입니다.
■ 바라기는, 금번 성탄절을 맞아 예수님의 이름의 의미가 여러분 모두의 삶에 거룩한 소망이 되길 기원합니다. 더욱이 모든 문제로부터 구원받고, 어떤 상황 중에도 함께 하심의 은총을 노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참으로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