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것들은 모두 먼데서
이 성 부
오늘은 기다리는 것들 모두
황사가 되어
우리 야윈 하늘 노랗게 물들이고
더 길어진 내 모가지,
깊이 패인 가슴을
씨름꾼 두 다리로 와서 쓰러뜨리네.
그리운 것들은 바다 건너 모두 먼데서
알몸으로 나부끼다가
다 찢어져 뭉개진 다음에야
쓸모없는 먼지투성이로 와서
오늘은 나를
재채기 눈물 콧물 나게 하네.
해일이 되어 올라오면 아름다울까.
다 부숴놓고 도로 내려가는 것을.
다치지 않은 살결들
깨끗한 손들만이 남아서
다시 일으켜 세우면 아름다울까.
기진맥진 누워버린 얼굴들을.
<감상>
이성부 시인의 작품 중에 ‘봄’이라는 시가 있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로 시작하는 작품이다. 이 시 참 좋은데, 한 가지 단점이 있다. 그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
이 문제집에서 만나 버렸다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참 좋은 시들이 문제집에 등장하는 순간, 덜 멋
있어 보인다. 역시 시는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음미해야 맛이다.
다행히도 이성부 시인에게는 여러 편의 봄 시가 있다. 시인이 왜 하필 봄의 시를 많이 썼을까 곰곰
이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평생 동안 이성부 시인은 절망 속의 희망을 찾는 데 주력했다. 겨울을
이기고 돌아온 봄, 혹은 겨울 끝에 와주길 바라는 봄만큼 절망과 희망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그 봄 시 중에서 한 편을 오늘 소개한다. 이것 역시 희망의 시다. 물론 차이는 있다.
‘봄’이 희망의 도래에 강한 느낌표를 선사한다면, 이 작품은 희망이 없는 곳에서 희망을 찾는 몸짓
을 느끼게 한다.
시인에게는 몹시 기다리는 것, 그리운 무엇인가가 있었다. 목을 빼고 하늘만 쳐다보는데, 그 소중한
것은 아니 오고 대신 황사만 찾아왔다. 그래서 시인은 내 소중한 무엇이 다 망가지고 부서져 저렇게
황사가 되어 찾아오는가 탄식하고 있다. 눈물 콧물 흘리며, 기진맥진 지쳐 버렸지만 시인은 여윈 가
슴을 붙잡고 기다리지 않을 수 없다. 그리운 것은 아직 없는 게 아니니까, 그리운 것은 여전히 저 먼
곳에 있으니까 사랑하고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다.
멀리 있어서 더 그립다. 이것은 우리가 황사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 절망에 익숙해지지 않는 이유
이기도 하다. 그리운 것들은 모두 먼 데서, 언젠가는 돌아오리라.
-나민애(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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