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처지에서도 살아가는” (필리 4.12 참조) 경제 지혜
야누스와 같은 임금의 두 얼굴 참소중한 당신 1809 p125-132
오정근{요한) 한국금융CT융합학회 회장
임금이란 로마신화에 나오는 야누스처럼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많이 받을수록 소비여력도 생겨 소비도 많이 하게 되어 경제가 활황을 띌 수도 있다. 이것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소득주도성장정책을 주장하는 경제학자들이 하는 주장이다. 만약에 아주 많이, 예를 들어 모든 가정에 무조건 매월 천만 원씩 주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어려운 사람들을 볼 때 이런 생각을 아니 해본 것도 아니다. 그 경우 아마 도 아무도 힘든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할지 모른다. 모두 고급스러운 일들만 하려고 하거나 심지어 일은 하지 않고 여행을 하거나 여가를 즐기려고만 하는 사람들도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그 결과 정작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이 생산되지 않아서 물가가 올라 결국은 실제로 살 수 있는 구매력은 원위치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 가장 중요한 문제는 기업이 지급할 능력이 있느냐 하는 점이다. 기업이 지급하지 못하고 정부가 재정으로 지급하게 되면 나라의 빚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늘어나 후대에 부담을 지우게 될 수도 있다. 반대로 너무 적게 주면 어떻게 될까. 하루 종일 일을 해도 근로자들은 가난을 면하기 힘들어 고통스러운 생활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70년대 한국 가정의 대부분이 어렵게 살 수밖에 없을 때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영국의 정치경제학에서 찾아보고자 필자는 영국 유학을 가기도 했었다. 가계는 소비할 여력이 없어 결국은 공장에서 생산하는 물건들도 팔리지 않아 재고가 쌓이면서 공장이 문을 닫을 수도 있을 것이다. 너무 적은 임금을 주면 결국 기업가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경제학은 일을 해서 생산성이 오르는 만큼 임금이 오른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가르치고 있다. 근로자들은 열심히 일해서 일한 만큼 받아 가족과 함께 소비하는 근로윤리가 확립되고 그러한 과정에서 일하는 성취감과 보람도 갖게 될 것이다. ‘일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이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기업가들도 생산성이 오른 만큼 임금을 지급해 너무 큰 이익이 나거나 적자도 나지 않고 적정한 수준의 이익을 내어 기업할 활력이 생기면서 사람들도 고용해 열심히 기업하는 기업윤리가 자리 잡고 일자리와 소비가 선순환하면서 경제가 잘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특히 노조활동이 활발한 국가에서는 노사간의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결정되기 마련이다. 이런 경우 대부분 생산성에 맞는 임금수준은 구두선에 불과하게 된다. 한국에서 요즘 가장 뜨거운 이슈인 최저임금은 27명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한다. 27명의 최저임금위원회는 사용자위원 9명(경총3명,중소기업중앙회 4명, 소상공인연합회 2명) 근로자위원 9명(한국노총 5명,민주노총 4명) 공익위원 9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결국 캐스팅보트는 공익위원들이 쥐고 있는 셈이다. 공익위원들은 고용노동부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따라서 사실상 정부가 공익위원들을 친노동성향, 친기업성향, 중립성향의 인사들 중 어느 비중으로 임명하느냐가 중요하다. 특히 근로자위원 9명은 2000만여 근로자 중 약 9%밖에 차지하지 않고 있는 양대 노총이 결정하는 데 따른 대표성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이들은 이미 취업되어 있는 그룹이고 대부분 상위 고연봉자들이기 때문에 취약근로자들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2017년 최저임금위원회의 조사데 따르면 근로자의 62.4%가 9% 이하의 인상을 적정한 수준의 인상률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으나 16.4%의 고율인상으로 고용참사를 초래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고율 임금인상으로 일자리를 잃게 된 취약근로자에게 돌아갔다.
-중략- 얼마 전 최저임금산업범위를 놓고 격론을 벌인 끝에 매월 정기상여금 중 최저임금의 25% 초과분,복리후생비(숙식비 교통비 등) 중 최저임금의 7% 초과분만 포함하도록 하는 어정쩡한 결론을 내렸다. 한국에서 상여금은 대개 분기별로 지급하고 있어 해당되지 않는다. 상여금지급시기를 월별로 변경하려는 경우 다시 노사분쟁의 불씨가 될 우려도 있다. 더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과 터키만 도입하고 있는 주휴수당은 포함하지 않고 있다. 주휴수당은 주 5일을 일하면 하루 치 임금을 더 주는 제도다. 이 주휴수당을 포함하면 최저임금은 금년에 9,045원, 내년에는 1만 30원이 된다. 주휴수당을 포함하면 내년에 대통령의 공약이 실현되는 셈이다.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라면 가능하면 많이 지급하는 것이 근로자들의 소비도 늘리는 등 바람직할 수도 있다. 문제는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설 수도 있다는 점이다. 특히 다른 나라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수준일 경우 기업의 생산활동을 아예 해외로 옮겨 일자리 자체가 날아갈 수도 있다. 주휴수당을 포함한 금년 최저임금 시급 9,045원은 일본의 8,497원 미국의 8,051원보다도 많다. 물론 일본과 미국의 최저임금에는 한국은 포함하고 있지 않은 숙식비가 포함되어 있다.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금년에 6만 달러로 전망되고 있어 한국의 두 배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최저임금이 얼마나 높은 수준인지 알 수 있다. 이런 가운데 2년 새 29%나 오른 최저임금은 한국의 일자리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점도 무리가 아니다.
지난해 한국기업의 해외투자는 437억 달러, 처음으로 4백억 달러를 돌파했다. 약 45조 원이 넘는 액수다. 한 해 한국의 설비투자가 약 150조 원 정도 되는 점을 감안하면 설비투자의 1/3 정도가 해외로 나가고 있다는 의미다. 그만큼 일자리가 날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금년 들어 제조업의 일자리 증가수가 낮아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감소하고 있다. 한국경제로서는 무서운 경고가 아닐 수 없다. 정부의 대책도 미흡하기는 마찬가지다. 금년도 16.4% 최저임금인상으로 고용참사가 이어지자 정부는 3조 원 규모의 일자리안정자금을 집행하고자 했다. 그러나 4월 26일 기준 실제 지급액은 2,440억 원으로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큰 이유가 소득원이 노출되어 세금을 내거나 받고 있는 복지지원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다시 내년도 최저임금 10.9% 인상에 따른 대책으로 정부는 금년과 같은 3조 원 규모의 일자리안정자금 지원, 근로장려세제(ETTC) 확대, 하도급대금 인상, 가맹본부 불공정행위조사 강화로 가맹수수료 인하 유도, 상가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원 연장<5년->10년), 카드수수료 인하 등 대책을 마련 중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대부분 효과가 확실치 않은 재탕이거나 기업이나 임대인, 카드회사 등에 부담을 전가하는 대책들이다. 특히 일자리안정자금을 조달하는 고용보험기금은 원래 근로자들이 실업이 되었을 때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쌓아온 기금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이 기금도 2020년에 적자로 전환될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최저임금인상에 따른 대책으로 미리 당겨쓰고 나면 차후 실업급여는 어떻게 지급할 것인가. 아마도 다시 세금을 올려 재정을 보전해 지원해 줘야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될 전망이다. 정부는 기업의 실질적인 임금지급부담에 기반한 합리적인 최저임금포괄범위, 영세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의 부담능력을 고려한 최저임금수준, 최저임금결정기구의 대표성, 효과적인 대책수립을 위해 보다 더 심사숙고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노사정 모두 임금이 갖고 있는, 너무 많아도 안 되고 너무 적어도 안 되는 야누스와 같은 두 얼굴을 잘 인식하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대처하는 일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