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종우 야고보 신부님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루카 2,41-52
모두가 원하지 않는 불행한 요소의 집합체
+ 찬미예수님
재작년 이맘 때 즈음 저는 알프스 남부의 꼬모 호수가 있는 지역에서
고해성사 전담 사제로 성탄을 보냈습니다.
한 주간 동안 하루 종일 고해소에 앉아 수 없이 많은 신자분들의 고해를 듣는 일정이었는데,
그 당시 만난 주임신부님이 참으로 인상 깊었습니다.
나이가 너무나도 많이 들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던 신부님은
성탄절 가족들과 함께하는 식사 자리에 저를 초대하시며,
그날 특별히 하느님이 우리 가족들에게 주신 빛나는 존재가 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성탄절이 다가왔고 가족들이 모이기 시작했는데,
저는 신부님이 말씀하신 그 소중한 존재가 누구인지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커다란 돋보기 안경을 쓴 다섯 살배기 어린아이가 성큼성큼 집안으로 들어선 것이었습니다.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어린 아이였습니다.
거동이 힘들고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다운증후군으로 산만하게 돌아다니는 어린 아이.
아마 이 이야기를 듣는 대부분의 분들은, 얼핏 생각만 해도 여러 가지 수고로움이 필요하겠다며
고개를 저으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식사자리는 제가 초대받은 어떤 곳보다도 밝고 아름다운 식사자리였습니다.
아이를 위해 온 가족이 함께 노래로 식사 전 기도를 바치는 모습,
만날 때와 헤어질 때 어머니의 볼에 입을 맞추는 자녀들과 손주들의 모습,
기타를 들고 캐롤을 부르기 시작하자 가운데에서 신나게 춤을 추던 다운증후군 아이의 모습,
그 아이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웃음 소리. 그 모습들 하나하나가 눈부실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일정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오며 왜 그렇게 그들이 아름다워 보였을까 곱씹어 보았습니다.
외국에서 생활하며 수많은 가정에 초대를 받았지만 왜 그들의 가정이 특별하게 보였을까에 대해서 말입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평범하지 않은 요소들,
즉 우리가 불행이라 생각할 수 있는 가족 구성원 때문이었습니다.
세속의 눈으로는 불행이라 여길 수 있는 구성원들을 그들은 장애물이라 생각하지 않고
너무나도 당연한 듯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남들은 불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것. 그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느님께서 맡기신 것이리라고 받아들이는 순간,
그에 대한 수고는 당연한 것이 되고 자칫 짐처럼 여겨지기 쉬운 상대는 소중한 존재가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순간, 비로소 성가정이 이루어집니다.
자,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원하는 성가정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성가정이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이미지는 거룩하고 평안하며 행복이 넘치는 가정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과 성모님, 요셉이 이룬 가정은 과연 어떠했을지요.
사실 이 가정은 우리가 원하는 가정의 모습과 매우 다릅니다.
세속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모두가 원하지 않는 불행한 요소의 집합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 이유를 정리해 보자면, 첫째로 이 가정은 경제적으로 가난한 집안이었습니다.
요셉의 직업은 목수였는데 당시 목수란 막일을 하던 사람들에 속하는 계급이었습니다.
이는 곧 농사지을 땅이 없음을 의미했으므로 이 가정은 재산이 없는 노동자 계층의 가정이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로 이 가정은 불신과 오해가 있었습니다.
마리아가 처녀의 몸으로 임신을 했으므로 요셉은 마리아를 오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의롭게 살아온 요셉이 남몰래 파혼하기로 결심을 했으니 그의 불신과 상심이 얼마나 컸을지
우리는 쉽게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이 가정의 자녀는 그야말로 부모의 속을 뒤집어놓는 자녀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잃어버렸다가 겨우 찾아내 안도의 한숨을 내 쉬는 부모에게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 라고 이야기 합니다.
사람들은 이 아들을 두고, 먹보요 술꾼이며 죄인들하고만 어울린다고 수근댑니다.
아들을 찾아간 어머니에게는,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라는 말로
마치 어머니를 부정하는 듯한 이야기마저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가정은 처절한 고통이 있는 가정이었습니다.
요셉은 아들의 공생활 전에 죽음을 맞이하여 마리아는 일찍 과부가 되고
그 와중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눈앞에서 처절히 죽어갑니다.
우발적인 사고도 재해도 아닌 사람들의 질투로 인해 억울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바로 이러한 모든 불행의 요소를 가지고 있는 가정을 우리는 성가정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 가정이 성가정이라 불리는지에 대해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사실 간단합니다.
이 모든 불행의 요소를 하느님의 이름 안에서 받아들였으며
이에 따르는 주님의 섭리를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경제적인 가난이 그들의 신앙을 꺾을 수 없었고,
불신과 오해는 천사의 도움을 통해 말끔히 씻겨집니다.
아들의 모든 언행이 하느님을 위한 일이었음을 부모는 정확히 알고 있었으며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느님의 사업을 위한 영광스러운 과정이었음을
마리아는 이미 순명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 닥칠 때, 그 모두를 하느님의 뜻이라 여기며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 하느님의 섭리와 도우심이 있음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은 하느님을 위한 일이 되며
실제로 주님께서는 당신만의 방식으로 우리를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추운 겨울, 코로나로 인하여 모두가 힘든 시기,
이 안에도 우리가 배워야할 하느님의 섭리가 있을 것입니다.
이 시기를 모두가 힘을 합쳐 잘 이겨 냈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의 욕심으로 일어난 이 바이러스가 하루빨리 사라지길 오늘도 내일도 함께 기도하면서
이를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사회에 협조하며 주님께 도움을 청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지금 이 순간,
세상 안에서 서로의 건강을 지키고 바이러스를 몰아내는 일이
하느님의 사업을 위한 영광스러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지금 우리 모두가 이 일을 해야 할 때입니다.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아멘.
서울대교구 방종우 야고보 신부님
첫댓글 아멘🙏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 깊이 새겨 잘 들었습니다.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