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만에 다시 찾는 한라산,
설레이는 마음이야 어찌 없겠는가?
그러나,
설레임보다는 내가 한라를 완주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선다.
4년전에는 대부대(7명)를 이끌고 리더의 역할까지 하면서도
날듯이 백록담을 넘었건만...
이젠 환자가 아닌가?
계단만 올라도 가슴이 쥐어짜는 듯 흉통이 오는데...
차편이 마땅치 않아 성판악을 기점으로 회귀산행을 하기로 했다.
심장에 대한 두려움으로 서둘러야 한다.
성판악에서 정상까지 9.6Km, 정상 산행시간 4시간 반, 왕복 9시간,
정상적인 발거음이 아니니 10시간 이상을 예상하면 서둘러야 한다.
호텔에서 7시에 조식을 준다는데 그거 먹을 시간이 없다.
서둘러 6시에 출발해 성판악에 도착하니 6시 30분이다.
고맙게도 휴게소 문을 열었다(사실 전날 전화 확인)
해장국으로 뱃속을 채우고, 김밥 좀 싸 넣고 출발하니 7시 15분이다.
출발은 제일 빨랐는데
뒤따라 오던 산꾼들이 하나같이 앞질러 간다.
옛날 같으면(멀정하던 때) 조런 일은 있을 수 없었는데...
그러나 내 몸이 그러하고,
무리하다 싶으면 바로 하산할 맘으로 시작한 산행이니...
남들이 앞질러 가던 말든 거북이 걸음으로 살살 걸었다.
정말 아주 살살 걸었다.
동행 역시 이런 상황을 잘 알긴 하지만,
그래도 쪼께 미안하고 존심도 있고해서리...
흉통이 오면 사진 찍는다는 핑계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근디, 이게 뭔일이랴?
이렇게 무리하게 시작한 산행인데...
산행 시작한지 한 시간이나 지났는가 비가 온다.
아니, 이 한겨울에 왠 비냐?
참으로 박복한 놈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강심장인 줄 알았던 심장은 비실거리고,
모처럼 큰 맘 먹고 어렵사리 날잡아 뱅기 타고 예까지 왔건만...
이게 왠 청승이냐?
한 겨울에 비라니...
아니 한 겨울의 한라산...
무릎까지 쌓인 눈을 찾아 예까지 왔지 않은가?
제길,
비가 주적거리니 제약이 많다.
우선 안경에 김이 서려 연실 안경을 닦아야하는게 일거리다.
1300 고지를 넘어서부턴 그 좋던 등로도 경사가 심한 너덜길로 변했다.
사진 찍는 흉내를 내며 쉬는 횟수가 많아졌다.
그래도 어찌어찌해서 진달래 휴게소에 도착했다.
전 같으면 요런덴 처다보지도 않고 지났쳤을텐데...
오르는 내내 이정표상의 남은 거리에 위안을 삼던차라 무지 반갑다.
10시 45분, 3시간 30분 걸렸다. 좀 긴 시간이긴 하지만, 요기까진 견딜만 했다.
진달래 휴게소로 들어서는 얼굴들이 너도나도 상기됐다.
주척이던 비도 잠시 물러가니, 휴게소 앞 진달래 밭이 가을 빛으로 변했다.
이건 완연한 가을이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단풍이다.
그러나 실은 조리대와 잎이라곤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진달래 나무가 그려낸 색의 마술일 뿐이다.
백록을 향해 11시에 출발을 했다.
이제부터 길은 좀 험했지만, 비는 그쳐서 수고는 좀 덜었다.
햐!
고것참!
듬성듬성 눈과 얼음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요긴 또 딴 세상이다.
이건 완전 한 여름이다.
요거이 또한 색의 마술이다.
초록 이끼가 시계를 반년이나 되돌려 놓았다.
그럭저럭(죽을 힘을 다해...)
1800 고지에 다달았다.
이제,
조 계단을 오르면 남한 땅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 정상이다.
근데 고게 장난이 아니다.
칼바람은 아니지만 안개비와 강풍으로 숨이 탁탁 막힌다.
어이없게도 한겨울에 산을 오르면서 이제야 겨울을 느낀다.
조기서,
정말 조기서 무지무지하게 많이 걸음을 멈추었었다.
흉통이 시작되면 그야말로 큰 일 아닌가?
사알살, 아주 사알살...
오후 1시, 드디어 정상이다.
세상이 비구름 속에 파묻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제기럴...
백록담 보러가자고 꼬셔서 데리고 온 옆 동네 교감샘 미안해서 어쩐다냐?
정상을 지키는 관리인, 사진만 찍고 바로 내려 가라고 성화다.
하산 마지노 시간인 1시 30분까지 아직 30분이나 남았는데,
날씨가 개떡 같아 위험하다고 하산을 재촉한다.
재촉 안해도 시계가 재로인 요기선 더 이상 할 일도 없다.
내려갈 생각을 하니 걱정된다.
내려갈 길 또한 만만치 않으리라.
1600고지까진 등로에 얼음이 섞여 있고,
성판악으로 가는 9.6 Km 내내 그 지긋지긋한 너덜길이니...
더구나 빗길이니...
아, 정확히 5시에 성판악에 도착했다.
여름 장마비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큰 맘 먹고 30만원이나 주고 산 트렉스타 중등산화도 10시간 물길을 걸으니 소용 없다.
신발 속에 물이 질퍽하다.(그 유명한 서귀포 쌍둥이 식당 횟집들어 갈 땐 맨발로...)
그래도
3일 동안 우리를 편안하게 길 동무가 되어 준 '허씨 아씨'(렌터카)를 만나니 살 것 같다.
비록 새벽에 출발해서 밤에 내려 온 긴 산행이었지만,
비록 한 겨울에 한여름을 헤매다 온 빗길 산행이었지만,
비록 백록도 못보고 정상에서의 증명 사진 한방에 만족해야하는 산행이었지만...
그래도 요렇게 사진을 보는 이 순간은 또다시 한겨울의 한라에서 한여름을 맞으며 빗 속에 서서 감흥에 젖어있다.
첫댓글 제주도에 다녀오셨군요 지금쯤이면 하얀 설국 세상이 되어 있어야 할 한라산이 말짱하네요 비도 내리고 모처럼 가신 한라산이 윤화중님의 기대에 못미쳐 서운하셨겠습니다 힘든 몸으로 그 어려운 걸음을 옮기셨건만 백록담 마저도 자취를 감추고... 그러나 마음속에 담으신 한라는 기억속에서 언제든 윤화중님의 마음을 따듯하게 뎁혀줄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살펴 가시고 내년에는 쾌차하시어 훨훨 날아다니시길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실은 꾀병일 수도 있는데, 이렇듯 힘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산죽님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온난화...온난화 이야기하는데 한라를 보니 와 닿습니다...설국이어야할 곳에 비가 내렸고 잔설조차 녹여버렸으니 그래도 곧 흰눈으로 덮히겠지요....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십시오.
어제 오늘엔 눈이 내렸겠지만, 12월 28일까지 제주엔 눈구경을 못했다니... 가은 나라지만 기후는 천처만별이더군요. 새해 복 많ㅣ 받으시기를...
편치 않으신 몸에도 한라산 정상을 밟으실 능력이시라면 아직도 누구 못지않은 체력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직도 마음속에만 담고 있는 한라산을 이렇게 대하니 또 가슴이 요동을 치는것 같습니다 시계가 좋지않아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재밌는 기록과 사진들 즐감하고 갑니다
전직이 치악산 나뭇꾼이니 힘은 있으나, 동력이(심장동력) 모자라는 거겠지요(?)... 좋은 시간에 꼭 한라를 찾게되길 기대하며,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 기원드립니다.
하얀세상을 기대했는데 제주도도 에외는 아니네요...힘드신 몸으로 큰 일을 해내셨네요.건강하던 몸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니 고초가 이만저만 아니지요?개대에 못미친 산행이셨겠지만 우중산행 무사히 마치신 것만으로도 큰 행복으로 생각하세요.덕분에 제주도 풍경 가슴에 담습니다...
뭐, 산이 보고싶은 모습 대로 다가오기는 힘들겠지요. 그래도 무릎까지 쌓인 눈을 헤치고 성판악에서 관음사로 넘어간 추억이 있어 조금은 위안이 되었답니다. 새해엔 좋은 일만 함께 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정신이 몸을 지배 하셔군요 편치 않은 몸으로 한라 등정 추카합니다
축하해주신다니 감사합니다. 근데, 아주 심한 정도는 아니라서 가능했지, 정신이... 요 정도는 아니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자켙이 좋아보입니다*^^*....제 맘도 포근합니다..ㅎㅎ..사계를 다~`보셨으니 더 가슴속 깊이 추억으로 남으시겠습니다*^^*고생 많으셨습니다....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빗속에서 고생은 했지만, 사계를 다 본건 분명 또다른 행운이고 추억이겠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비싼 뱅기 타고 사계를 다 보셨으니 박복이 아니라 복을 많이 받으신게 아닌지요,,, 궂은 날씨에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직 한라산에 오르질 못했는데,,, 새해엔 건강 완전 회복하셔서 좋아하시는 산에 좀더 자주 오르시길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말씀대로 사계를 하루에 다 보았으니 2%로 부족하긴해도 행운이라 생각하고 있답니다. 특히 눈보러 가자고 꼬득였던 친구한테는 더더욱 평생 두번다시 없을 기회였다고(?)... 개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