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차 답사
아침 5시에 기상했다. 답사를 와서는 밤에 오래 잠을 자기가 어렵다. 통화 호텔은 와이파이가 영 말썽이다. 인터넷이 안 되니, 바이두 등으로 검색해 보았던 국내 소식조차 볼 수가 없었고, 보이스톡도 안 되었다. 뭐 그 정도는 감내할 수 있었다. 7시부터 식사인데, 조금 일찍 식당이 있는 1층으로 내려왔다. 호텔에서 결혼식이 있는 모양이다. 붉은 색 옷에 금박으로 장식한 옷을 입은 신랑, 신부가 1층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고, 드레스를 입은 들러리 2명도 나타났다. 이번 답사에서 결혼식을 4번이나 보았다. 이날 오후 신빈에서 심양으로 가는 길에서도 야외 공연장을 만들어 놓고 마이크를 잡고 노래하는 결혼 피로연을 보기도 했다. 중국 답사여행 중에 종종 결혼식을 보지만, 이번처럼 많이 본 경우는 처음이다.
아침 식사는 오랜만에 제대로 된 호텔 조식을 먹었다. 식당이 깔끔하고 음식도 맛있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커피도 마셨다. 식사를 한 후, 영릉현으로 차를 달렸다. 이곳에서 온 것은 양세봉 장군 동상을 보기 위함이다. 2018년 양세봉 장군 동상을 찾기 위해 조금은 고생했는데, 이번에는 쉽게 찾았다.
그런데 양세봉장군 동상은 오랫동안 방치된 느낌이 들었다. 잡초가 자라고, 둔덕은 이미 무너지고 있는 상태였다. 5년 전에 방문했을 때와 크게 비교될 만큼 방치되고 있었다. 양세봉 장군에 대해 설명하면서, 좌익에는 관여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굳이 해야 했다. 홍범도 장군이 공산당에 가입했으니, 육군사관학교에서 기념해서는 안 된다니 세상이니. 참 기가 막힌다. 그는 남북의 국립묘지에 안장된 유일한 독립운동가다. 독립운동 역사에서 전공으로만 따지면 지청천과 함께 최고 명장이라고 할 만한 분이다. 물론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가 갖는 역사적 의미에 비하면, 그가 흥경성 전투, 노구대, 쾌대무자 전투의 승리가 갖는 의미는 적다. 하지만 1920~30년대에 그는 일본이 가장 두려워한 조선혁명군 사령관, 군신이란 별명까지 얻었던 분이다. 그런데 다소 외진 곳에 그의 동상이 있고, 관리하는 사람도 없다 보니 동상 주변이 너무 훼손되었다. 일행과 함께 참배를 하고, 다 같이 잡초를 죽이는 일을 했다. 다소 시간이 소비되었지만, 의미있는 일을 했다. 우리팀의 유일한 중학생 송태경군은 진심으로 잡초를 뽑고, 주변을 정리하는 일을 했다.참 멋져보였다. 버스에서 갖고 있던 콜라 한병을 그에게 주었다.
양세봉 장군 동상을 보고, 영릉진으로 향했다. 영릉진에 도착한 시간이 벌써 11시 30분. 이곳의 식사는 현지식이었다. 아침을 오랜만에 많이 먹은 탓에, 거의 먹지 않고 나왔다. 식당에서 나와 기다리는데 가이드가 사탕수수를 주었다. 사탕수수는 예전에도 답사를 하며 맛을 본 일이 있었는데, 다들 신기해하며 사탕수수를 씹어 단맛을 느꼈다. 식당은 허투알라성 동문 앞에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곧장 후금의 두 번째 수도인 허투알라성을 답사했다. 이번 답사에서 허투알라성을 일정에 넣은 것은 청나라의 성장과정이 고구려의 성장을 압축해놓은 것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청나라의 성장의 역사는 우리가 반드시 주목해야 보아야 한다. 허투알라성 동문으로 들어가서, 정전과 편전, 샤만 신당을 본 후, 홍타이지의 정양기 아문을 보았다. 그런데 그 안에 환인현 인삼전시관이 있어서 보았다. 누르하치와 인삼, 야인들의 성장과 인삼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했다. 그리고 누루하치 탄생지로 가서, 관람을 했다. 이곳에서 만주족의 빵을 10원에 5개에 팔기에 40원어치를 사서 답사팀과 나눠 먹었다. 맛은 우리의 명절 음식인 부꾸미와 비슷했다. 1시 반쯤 허투알라성을 나왔다. 허루알라성에서 설명할 것을 차에서 미리 설명해둔 탓에, 짧은 시간에 답사를 마칠 수 있었다. 그래도 허투알라성의 핵심은 다 본 셈이었다.
차를 타고 평성산진으로 가서, 의암유인석 기념비를 찾았다. 이곳에서 먼저 고교등학교 역사선생님인 김귀혁님으로부터 유인석에 대한 교과서에서 언급된 내용을 들었다. 그런데 교과서에는 유인석이 을미의병장으로 충주성을 공략한 이야기 정도만 나온다고 한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는 유인석의 제자들이 만주에서 복벽운동을 일으켜 의군부 활동을 했다는 것도 나온다. 하지만 유인석은 을미의병이 실패하자, 만주로 건너와 청의 지원을 받아 일본군을 몰아내려고 시도했고, 러시아로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이상설, 이범윤 등과 함께 13도 의군을 결성하고, 고종의 망명을 추진하기도 했다. 러시아에서 13도 의군이 일제에 압력에 의해 와해되자, 1914년 서간도로 와서 계속해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한 분이다. 그의 복벽주의는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일지라도, 유학자로서 그의 한결같은 충성심, 지조는 존경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다시 차를 달려, 태자성에 도착했다. 태자성 서장대 아래에 주유소가 있었다. 주유소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성에 들어갔다. 태자성은 태자하와 소북하를 해자처럼 끼고 있으며, 마안형 형태의 대표적인 성이다. 중국에서 이 성을 배모양 형태라고 표현했는데, 그것도 적합한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형태의 성은 요동반도쪽에 있는 득리사산성이 있다. 하지만 규모는 득리사산성보다 작다. 성 안은 온통 옥수수 밭이다. 다행히 옥수수를 베어 버린 곳이 있어서, 동장대와 내성 성벽을 볼 수 있었다. 성 안에서 내려다보니, 동쪽과 동남쪽은 거의 절벽에 가까웠다. 태자하를 향해 난 북문쪽만 잘 막으면 천혜의 요새가 될 만하겠다. 내성벽을 보니 고구려 초기에 만들어진 성이라고 생각되었다. 옥수수 때문에 성 안의 구조물을 더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독특한 구조의 성을 볼 수 있었다. 성을 내려다와서, 절벽 쪽 성벽의 사진을 찍고, 심양으로 달렸다.
중간에 비포장국도가 있었다. 공사 중임에도 차량의 통행은 막지 않았다. 5시 20분경 출발해 심양에 8시 30분에 도착했다. 중간에 류가이드가 물건을 팔았다. 잣, 마오타이주, 과자 2개를 구입했다. 대추 속에 호두가 들어있는 과자는 14개가 들어있는데, 하나만 먹어도 든든했다. 또 옥수수맛 젤리는 입에 달라붙지 않고, 옥수수 특유의 맛이 나서 맛이 있었다. 답사 중에 가이드가 한 개, 두 개를 주기에 맛있다고, 어디서 구입하냐고 물었었는데, 결국 가이드가 직접 물건을 팔았다. 두 개의 과자는 매진이었다. 다른 물건들도 거의 다 팔았다. 가이드의 장사솜씨는 인정하겠다.
귀국해서 두 개의 과자를 88세되신 장모님께 드렸더니 매우 맛있다고 만족해하셨다. 물론 직접 상점을 돌아다니며 구매했다면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했겠지만, 가이드가 그간 우리를 안내하느라 고생한 것을 생각해서 그냥 그에게 구입한 것이다. 쇼핑도 안하는 답사팀과 함께 하는 가이드에게 이런 재미가 없다면 안 될 듯해서 손해보는 셈 치고 그에게 물건을 구입했다.
심양시내는 역시 복잡했다. 식당에 도착한 시간은 8시 반. 가이드가 8명 테이블당 음료수 패트병 2개를 가져다 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에 들어온 시간은 현지시간 10시였다. 가장 늦은 호텔 투숙이었다. 심양 호텔 역시 통화 호텔처럼 객실에 올라갈 수 있는 층이 제안되어 있었고, 와이파이도 제한되어 있었다. 또한 호텔에 들어갈 때 외국인이라고 다 사진을 찍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호텔은 매우 깔끔했다. 너무 늦게 호텔에 투숙한 탓에 오늘은 모두들 조용히 취침을 하는 모양이다.
내일 요령성박물관을 보는 일정만 남았다. 오늘이 이번 답사에서 마지막 밤이다. 조용히 답사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되돌아보았다. 백두산에 오르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산성하고분군을 본 것, 꼭 가보고 싶었던 삼원보, 예정에 없던 만발발자 유적에 간 것 등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이번 답사를 함께 한 분들과 나눈 대화와 기억나는 장면들을 정리해 보았다. 어느덧 현지시간 12시가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