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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강단-404 예수님의 치유(마태복음8장1-4절)
성경말씀은 마태복음 8장 1절에서 4절까지 봉독합니다.
[마태복음 8장]
1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2 한 문둥병자가 나아와 절하고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시니라
이제 산에서 제자들에게 산상보훈의 교훈을 베푸시고 산에서 내려오면서 맨 처음에 만난 사람이 나환자들이예요. 나환자들..
어느 정도 심했는지는 모르지만 나병이라는 게 종류가 40여종류가 된다고 해요.
옛날에 제가 받아보던 잡지가 있었는데, ‘복지’라는 ‘한국 나협회’라고 하는 곳에서 나온 잡지가 있었어요.
꽤 오fot동안 제가 받아봤는데, 그분들을 조금 이해하기 위해서 그 책을 쭉 받아보다가 끊어져버렸는데,
거기 보면 무좀 중에서도 골치아픈 것은 나병이예요.
잘 안 나아요.
잘 낫는 게 있고 나병 중에서도 잘 안 낫는 게 있는 거예요.
어떤 것은 피부가 하얗게 되어버리면서 그것으로 끝이야.
전염되거나 죽거나 하는 것이 아니고, 갑자기 하얗게 되어서 갑자기 백인이 되는 거야.
흑인이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나..
어떻든 그렇게 되어 버린 경우에는 그것은 생활도 할 수 있고 사람들과 악수해도 전염도 안 되고 그런 스타일도 있는 거야.
그래서 하도 여러 가지이기 때문에 여기 마태복음 8장에 나오는 이 나환자는 어느 정도였는지는 모르지만, 나병이 대체로 바이러스성인데, 최근에 와서야 나병을 그런데로 인류가 치료하게 되었다.. 그런데로..
그래서 사실 여러분 우리 의학이나 약학이 그렇게 많이 개발되고 발전된 것 같아도, 별로 완전히 끝장 낸 병이 별로 없어요.
확실한 것 하나가 천연두는 확실히 끝낸 것 같아요.
천연두는 확실히 지구상에서 사라졌다고 보는 것이고, 그 외에는 무슨 병이든지 의학이나 약학을 가지고 완전히 해결한 병이 없다는 거예요.
암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 어떤 분들이 줄기세포를 가지고 어떻게 한다, 조금 희망을 가질만한 면도 있기는 해요.
그러면 그것 가지고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병을 다 잡을 수 있느냐?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것 다 잡지 못해서 인류 역사에 종말이 오지 않겠나..
한편 여기 복음서의 기적들을 보면서 우리가 자칫 실수하기 쉬운 게 있는데, 그 때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주셨으니까 지금도 고쳐주실 것이고 고쳐 주신다..
그렇게 마침표를 딱 찍으면 책임져야 돼요.
안 고쳐주면 예수님을 안 믿게 되거나, 예수님이 약속을 안 지키시는 분으로 그런 식으로 되는 거죠.
그런데 이 병고치는 이런 이적과 기적 표적을 저도 목회중에 몇 사람에게 몇 번 체험하고 제 자신도 정말 대책없이 그저 의학으로도 어찌해보기 어려운 정도, 의학은 놔두고라도 내 살림살이가 도저히 흉부를 잘라서 가슴을 수술할 수도 없는 것이고, 그래서 몇 번 그런 죽을 수 밖에 없었던 때가 있었는데, 그냥 나았어요.
어떻게 나았느냐? 몰라요.
그런데 그냥 나은 거예요.
폐안에 피거품이 부글부글해가지고 이렇게까지 심하게 네 번 정도 재발을 했었거든요.
지금 재발하지 않은지가 10년 가까이 되었으니까 나은 걸로 봐야 되겠죠.
나은 것으로 믿고 그렇겠죠.
어떻든 그 때만 해도 의료 보험도 없고 할 때에, 지금도 그 구봉서 장로님께 내가 감사하는데, 코메디언 구봉서 장로님 있잖아요.
그분이 라디오 방송에 나오는데, 그 때만 해도 창원극동방송이 없고 제주도에서 쏘는 아세아 방송이 어쩌다가 AM으로, FM이 아니고 AM으로 중파를 쏘는데 어찌하면 들리다가 어찌하면 안 들리고.. 이런 정도인데, 구수한 목소리 있잖아요.
자기가 어느 나라에 선교하러 갔는데 그 나라에 가니까 ‘믿는다’는 단어가 없어요.
그 나라에 믿음이라는 단어가 없는 거야.
그래서 ‘누구든지 믿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해야 되는데, 믿는 단어가 없으니까..
그래서 믿는 단어와 제일 비슷한 게 ‘드러눕는다’는 거야.
‘주 예수 앞에 드러누우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이런 식으로 번역을 했다는 거야.
그리고 거기에 ‘양’이 없어. 또..
양이란 동물이 없어서 할 수 없이 ‘돼지새끼’가 제일 비슷하다는 거야.
‘그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한 마리의 돼지새끼를 보라..’
그렇게 이분이 라디오 방송을 하는데, 병이 걸려 누워 있으면서도 어떻게 웃으면서 재미가 있었는지..
그렇구나. 믿음은 드러눕는 것이다.
여러분 드러눕죠? 별수 없이 아프면 드러눕잖아요.
그래서 아이고 하나님, 제가 별 수 없이 드러누워 있습니다. 그저 시키실 일이 있으면 살려주시고, 일 다 했으면 가야죠. 하고 그냥 드러누워 있었는데, 다 나았어요.
그것도 세번..
여러분 제가 네번 재발했으면 네번 나은 것 아녜요? 그렇죠?
일생에 병이 1백번 걸리면 99번은 낫는 거야.
한번 안 낫습니다.
마지막 한번 안 나아서 결국은 천국 가는 거죠.
사실은 지금도 예수님께서 끝없이 한없이 우리 몸에 병이 생기고 매일 고쳐주는 줄로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매일 고쳐주시다가 어떤 것은 ‘아이고 너는 그만 집에 가자.. 너 고쳐도 또 나고 고쳐도 또 나고..’
그런 거예요. 사실은..
그래서 어쩌다가 특이한 게 있는 거죠.
여러분 배탈났던 것 머리 아픈 것 다 나았죠.
여러분 다 매일같이 거의 한달에 몇번씩이나 병고치는 은혜 입어놓고 다 모르고 지나가요.
우리가 알든 모르든 하나님이 우리를 고쳐 놓은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여기 와서 앉아 있잖아요.
그래서 이것을 특별할 때 난치병이나 불치병일 때 이게 나으면 우리가 볼 때 기적이지, 하나님께는 난치병 불치병 오래된 것 조기나 말기나 하나님은 다 똑같아요.
죽은 자를 살리는데, 조기나 말기나 감기나 똑같다니까..
그렇잖습니까?
그러니까 매일같이 여러분 다 고쳐주셨고, 여기 예수님 은혜로 하나님 은혜로 병고침 받지 않은 사람 하나도 없다고 봅니다.
다 고침 받은건데, 단 어떤 병은 병 걸린 것도 몰랐고 고침 받는지도 몰랐고.. 소문이 안 났을 뿐이지..
맞는 것 같아요? 안 맞는 것 같아요?
집에 가서 가만히 생각해보라고..
굉장히 여태까지 생각하는 것과 막 기적이 일어났다. 기적이 매일 일어나는데, 우리가 느끼지 못한 것이고 내가 모르고 지나간 거야.
저는 좀 못 되었던지 기적이 몇번 지나갔는데, 저는 알죠.
하도 요란하게 병을 앓아가지고..
제가 예배시간에 설교시간에 헛기침 하는 것은 흔적입니다.
그 때 어마어마한 죽을 고비를 몇번씩이나 넘겼는데, ‘너 살려줬어 이놈아..’ 하는 흔적을 조금 남긴 거예요.
제가 병 있는 것도 아니고, 아픈 것도 아니고 다 나았는데, 기관지에 어떤 객담이 넘어오다가 흉터가 있는 곳에 붙어있다가 안 넘어오는 거예요.
나은 흉터에 객담이 붙어서 안 떨어져가지고 헛기침을 몇번하는 그런 것이기 때문에, 전혀 이게 제 생명에 지장을 주는 게 아니고 흔적으로 남긴 거예요. 저는 그렇게 알고 있어요.
그래서 여기 병고침 받는 얘기가 나오는데,
[마태복음 8장]
1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2 한 문둥병자가 나아와 절하고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그러니까 이게 믿음이라고 하는 건데, 자기야 원하죠.
세상에 이름만 봐도 그렇잖아요.
‘나환자’라고 하면 누가 반겨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자기가 간절히 원하지만, 문제는 고쳐주시는 분이 원해야 되겠다..
그래서 그랬더니,
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거기 줄을 그으세요.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하는 말이, 이게 예사로운 말이 아니예요.
왜냐하면 율법적으로 또 위생적으로 나환자에게 손을 내밀어 대면 안 된다니까..
불가촉병이야.
이게 대어서는 안 되는.. 절대 손을 대서는 안되고, 또 건강한 사람이 와서 손을 대도록 가만히 있어서도 안 돼. 피해야 돼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사람이, ‘주여 원하시면’ 할 때에, ‘원하지 내가 원하다마다.’ 하실 뿐 아니라, 또 더 친절하게 손까지 내밀어서 거기 대셨다는데, 이것을 특별히 기록하고 있는 겁니다. 손을 대시며..
이리 봐요.
예수님께서 온 안 대고 고칠 수 있어요? 없어요?
손 안 대고 고칠 수 있어요. 원격으로 처리할 수 있잖아요.
일부러 이런 것도 전염될 수 있으니까 원격으로 할 수 있는 건데, 더 친절하게 손을 내밀어 대시며 가라사대,
..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얼마나 사랑과 정감이 넘치는 말인지.. 손을 대시며 ‘그래 내가 원하지 원하고 말고..’ 하면서 깨끗함을 받으라 하셨는데,
..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
자 이것은 좀 특이한 특별한 케이스이기 때문에 기사화되고 성경에 기록된 건데, 쭉 이렇게 병고쳐 나가시다가 이 병고치는 게 첫째는 병들어 있는 것을 볼 때 안타깝다는 거예요. 민망히 여기시고 안타까워 하셨다..
여러분 모든 질병이 어떤 직접적인 무슨 죄와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보편적으로는 질병이라든지 불행이나 죽음 전체가 근본적으로 원죄와 상관이 있는 거죠.
죄가 옴으로 사람이 약해지고 병들고 이렇게 죄와 질병이 관계가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지금 무엇을 할려고 하시느냐 하면, 예수님께서 이런 식으로 해가지고 지구상에 병을 다 없애겠다. 그런 의도가 없어요. 제가 볼 때..
그런 의도가 있었다면 지금 지구상에 병이 점점 늘어나는 것은 예수님이 게으른 거죠.
그런 의도가 아니라는 겁니다.
쭉 가다보면 예수님께서 병을 고칠 능력도 있을 뿐 아니라, 죄를 사하는 권세도 있다..
죄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너희에게 알게 할려고 한다. 따라서 죄를 사하는 것은 누가 할 수 있는 거죠?
사람이 할 수 있어요? 할 수 없어요. 하나님만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철저하게 죄를 사하는 것은 하나님만 할 수 있는 건데, 그런데 예수님께서 죄를 사하신 것을 보면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다.’ 하는 것을 지금 증명할려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하나님이, 유대인들이 아는 것은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 한분만 있는 줄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까 성자 하나님도 계시고, 더 나아가서 보니까 성령 하나님도 계시고, 삼위일체로 계신다.
이런 하나님을 알게 하고 예수님께서 하나님 되심을 믿게 하고 알게 하는데 목적이 있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그런 어떤 능력을 가지고 이 세상의 병을 다 고쳐버리겠다. 그렇게 의도하신 것 같지가 않다는 거예요.
그런 것 같으면 이 세상에 병이 하나도 없어야 돼죠.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가 늙는 것과 질병이 다 죄의 삯으로 해서 사망으로 가는, 한 삶이라는 텀을 빨리 빨리 끝내게 해요.
여러분 어차피 하나님을 안 믿고 할 바에야 이 땅에 너무 길게 살면서 속 썩이고 앉아 있지 마라. 지구도 좁은데..
지구도 물에 잠겨서 육지가 좁은데, 자꾸 애도 안 낳으면서 그러면서 속만 썩이고 죄만 짓고 오래 살 필요 없다는 거야.
할일 다 끝났으면 빨리 빨리 가야지..
그래서 홍수 이후에 인간 수명이 거의 10분지 1로 단축된거야.
그러니까 역사가 빨리 빨리 지나가는 거죠.
‘너 120년 줬어. 믿을 거야? 안 믿는 거야?’
120년 주고 봐도 안 되면 빨리 끝내는 거야.
그래서 홍수 이후에는 굉장히 역사가 빨리 돌아가는 거죠.
옛날에는 천년을 한 세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천년씩이나 갔는데, 이제는 120년 100년 70년 그 텀에서 돌아가게 이렇게 빨리 빨리 돌아가게 한 거예요.
그래서 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나타내실려고 하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나타낼려고 하는 것이고, 그 예수님이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나타낼려고..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이신 것과, 그 하나님 안에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고 구원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 이런 것을 쭉 예수님께서 종합적으로 나타내실 의도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복음서를 가지고 제가 마태복음 자체에 너무 서론이 길었기 때문에 마가복음 할 때쯤 가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예수님께서 이루신 일을 가지고 전부 한번 보고, 예수님 이후에 오늘 이시간까지 또 앞으로 미래에 있을 일까지 전체 종합적으로, 예수님이 오셨어야만 했던 이유, 예수님만이 할 수 있는 일들, 이런 것 쭉 정리를 할려고 해요.
그렇게 하면 우리가 예수 믿는 믿음이 ‘아, 이런 분이시니까 이렇게 믿어야 바른 믿음이 되겠구나.’ 하고 정리가 된다는 거죠.
확실한 것은 우리가 병나가지고 골골하는 것은 하나님 뜻이 아닙니다.
여러분 하나님도 고쳐주시고 예수님도 고쳐주시고 성령도 고쳐주시고 본인도 낫기를 원하고 부모도 낫기를 원하고 사회에서도 병든 것 원하지 않아요.
병든것 좋아하는 사람은 의사와 약사 이런 사람이 병든것 원하겠죠.
지구상에서 병 하나도 없으면 의사도 약사는 정말 얻어 먹어야 돼요.
얻어 먹을데도 없어요.
얻어먹어도 불쌍해야 얻어 먹는데, 그렇게 미끈해서는 얻어 먹지도 못하는 거야.
제가 읽고 있는 책 중에 하나가 ‘제약회사는 우리의 주머니를 어떻게 털어갔는가’ 하는 책이 있어요.
그것들이 얼마나 웃기느냐?
오늘 약국하시는 분 안 나왔죠?
약을 개발할 때 양약회사에서 신약을 개발할 때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을 개발하면 실패라는 거야.
완전히 실패한 것이고, 절대로 병이 단번에 낫지 않고, 먹으면 낫고 안 먹으면 안 낫고..
먹으면 효과있고 안 먹으면 빨리 재발하고 그렇게 개발하는 게 일등으로 개발된 거야.
그래서 한번 입에 대면 죽을 때까지 먹어야 되는 것..
계속 약을 팔아주게 개발된 것이 잘 개발된 약으로 정평이 나는 거예요.
그런 것 많이 있죠?
고혈압약이라든지.. 한번 먹기 시작하면 평생 달아놓고 먹어야 돼.
그 약 한 가지만 개발하면 그냥 제약회사는 돈방석에 앉습니다. 그냥..
그런 책을 썼는데.. 한편 참 씁쓰레하면서..
저도 약을 먹는 게 있거든요.
먹으면 낫고 안 먹으면 안 낫고..
먹으면 확실히 효과가 있습니다. 그런데 안 먹으면 원점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절대로 낫지 않습니다.
이게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최고로 잘 개발된 약이야.
병이 싹 나아버리는 그런 약은 절대로 개발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것을 읽으면서 앞으로 자녀들 낳아가지고 약대에 보낼 생각을 안 해야 되겠다는 거야.
약대가 아니고 신약 구약대..
신약과 구약을 잘 배워서 병 안 걸리게 하는 대학..
병 안 걸리게 예방하는 것 그게 바로 신학교죠. 신학교..
여러분 성경 말씀을 잘 배워서 그대로 하면 거의 병에 안 걸리는데, 그 증거가 뭐냐하면 유대교와 몰몬교와 안식일교가 음식을 거의 레위기 수준으로 그렇게 먹으니까, 우리보다 현저하게 병이 없어요.
2002년도 1월달에 SBS방송국에서 ‘잘먹고 잘사는 법’이라는 프로그램을 3부작으로 내보냈는데, 그 동영상 파일을 제가 갖고 있어요.
언제 우리 성도님들 같이 봤으면 좋겠는데,
참 부끄러운 얘긴데, 한국의 청소년들 고등학생들 피를 검사했는데, 피가 엉망인거야.
그런데 어디 학생들 피가 제일 깨끗한가?
안식교 제단에 삼육제단 학생들의 피가 깨끗하다는 거야. 그것도 현저하게..
그리고 지금 현재 미국의 나사(NASA)라고 하는 미항공우주국 거기 핵심 인물은 진작부터 몰몬교 신자야.
닐 암스트롱, 엘드린, 콜린즈.
달에 처음 발 디딘 사람부터 몰몬교입니다.
몰몬교가 미국에서는 기독교로 싸잡아서 그렇게 해주거든요.
진짜 기독교가 아니고 이단, 몰몬교 신자예요.
지금 현재 나사의 유수한 학자들 과학자들 거의 다 몰몬교예요.
기독교는 아무 것이나 먹어서 피가 더러워져서 머리 좋은 애가 안 나오는 거야.
학원에 100번 보내봐도 안 돼. 피가 나쁘니까..
공부 잘하게 할려면 1대 2대에 거쳐서 피를 맑게 만들어야 돼요.
그래서 한방에서도 건강의 원리는 피, 혈과 물과 기에 있다. 보통 그래요.
좋은 물을 마셔야 돼요.
우리 몸의 60-70%가 물이기 때문에 물이 나쁘면 온 몸 환경 전체가 나쁜 물에 푹 빠지는 거야. 완전히..
우리 모든 세포가 나쁜 물에 빠지는 거죠.
물 더러운 것 마시면 안 돼요.
그리고 공기. 우리 모든 세포에 공기가 계속 유입되는데, 공기에 미세먼지라든지 공기가 오염 되었다 하면 우리 몸 전체에 오염된 게 들어가게 됩니다.
제일 무서운 게 미립자에 속하는 미세먼지들..
여러분 성냥꼬챙이만큼 큰 것은 우리 콧구멍에 안 들어가니까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작은 미세먼지.. 도시의 미세먼지 이게 무서운 거야.
침묵의 살인자죠.
그리고 음식, 이런 것들을 물과 공기와 음식을 안 가리고 이렇게 막 살면 건강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병 안 걸리게끔 우리 성도들을 잘 지도하는 게 그게 진짜 의사예요.
병 나서 고치는 것도 필요하지만, 병 나지 않도록 하는 게 잘 하는 겁니다.
제가 처음에 밀양에 갔을 때 96년도에 거기 부임해 갔는데, 온 골목에서 지체가 자유스럽지 못한 분들이 다리를 절면서 이런 분이 즐비한 거야.
보니까 골목마다 나와.
이상한 동네다. 이게 무슨 장애인 동네도 아니고 왜 이런가?
성도들도 보니까 그런 사람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이것 안 되겠다.
뭐가 잘못 되었는가 해서 보니까 청진기와 혈압계를 가지고, 제가 성도들 일일이 심방을 가서, 제가 제일 첫 심방때 청진기와 혈압계를 가지고 심방을 갔다니까..
재어보니까 성도들이 다 고혈압이야 다. 그냥..
얼마나 제가 충격을 받았던지..
정육점 금족령을 내렸다니까.. 정육점 금족령..
그리고 레위기를 가르쳐서 음식을 가리라고 그리고 그릇도 싹 바꾸고..
96년도에 가서 음식 그릇 다 바꾸고..
벌써 13년 전 이야기 아닙니까?
그리고 한동안은 음식 때문에 집안에 전쟁이 났을 거야.
처음에는 떨떠름해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한참 지나고 보니까 얼굴이 점점 밝아지는 거야.
얼굴이 고기라든지 자꾸 먹으면 성질도 자꾸 부리고 피도 더러워지고 성질도 나빠지고..
순대 먹고 하면 얼굴과 성품이 밝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한참 지나가서는 느낄 정도로 좋아지고 있다. 본인들의 건강이 느껴지니까..
그 다음부터는 먹으라고 해도 안 먹는 거죠.
여러분 부산이나 마산에 가보면 ‘밀양돼지국밥집’이라고 더러 있죠?
원조가 바로 그 동네에 있다니까. 예배당 바로 앞에..
이 사람들은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는지 빌딩을 지었어요.
그래서 그렇게 고기를 너무 많이 먹다가 보니까 피가 더러워져가지고 결국은 그 마을 전체가 중풍 이런 게 즐비한 거예요. 즐비해..
그리고 자동차 회사에서 관광회사에서 무안을 잡으라는 게 표어야.
왜냐하면 무안에 돈이 많으니까..
무안면 한 면에서 나오는 청량고추라는 고추가 있어요.
아주 맵고 연하고 향이 있고 한 풋고추, 풋고추 10kg에 7만원 10만원 하는 거야.
그래서 그 고추 청량초라는 유명한 고추가 거기에서 나오는데, 전국 생산량의 70%가 나와요.
그 수입이 400억대를 넘어섭니다. 한해 동안에..
그렇게 돈이 많이 들어오니까 그야말로 온 동네가 그 면소재지 한 곳에 음식점이 한 40개 50개 있어요.
그리고 전부 음식점이야 그냥..
아침도 비닐하우스에 가서 시켜먹고, 점심은 물론 시켜먹고, 저녁도 당연히 시켜먹고, 새참까지 다 시켜먹고 이렇게 하는거야.
그러니까 고기를 많이 먹다보니까 하루 이틀 먹으면 표가 안 나는데, 몇년간 달아놓고 그렇게 먹다 보니까 중풍이 많이 든 거예요.
그래서 저는 중풍병을 치료해 본 적은 없지만, 예방하기 위해서는 꽤 노력을 하고, 성도들에게는 효과가 나타난 거예요.
그래서 우리 성도님들 중에서도 음식을 안 가리다가 고혈압으로 되어가지고.. 무섭습니다.
40대까지는 먹어도 별로 병이 안 나타납니다. 대개.. 괜찮아요.
그러니까 40년 동안 먹어왔는데 그러는데, 40에서 50으로 넘어가다가 뻥하고 넘어지는 거야.
그러면 그때부터는 후회해도 힘들어요.
4절,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시니라
이것은 ‘레위기 14장에 있는 대로 하라.’는 거죠.
나병이 있는 사람은 공동체 안에 들어오지 못해요.
항상 격리된 마을에 살아야 되고, 일절 교제가 안 되다가 제사장이 그 때는 의사입니다.
다시 말하면 옛날에는 목사가 의사인거예요.
목사가 목회를 할 때 영혼만 가지고 씨름하는 게 아니라, 영과 혼과 몸과 생활까지 다 돌보는, 정말 전인목회가 옛날 제사장인데, 그 제사장에게 가서 네 몸을 보여서 나았다는 것을 증명을 해라.
그리고 예물을 드리고 결례를 행하고 그리고 공동체에 들어오는 절차를 공적으로 밟아라.
레위기 14장에 있는 대로 하라 이렇게 한 것이고..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나았다는 것을 증거하라.. 그러면 그 다음부터 제사장이 진찰해가지고 몇번 더 살펴 본 다음에 이 사람은 확실히 나았다는 건강진단서를 끊어주면 공동체에 들어오는 거예요.
5절입니다.
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 가로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와하나이다
그러니까 문둥병 중풍병 이런 것 다 거의 난치병 내지는 불치병에 가까운 거죠.
7 가라사대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8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여기에 왜 백부장이 예수님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치 못한다.’ 왜 그랬을까요?
접대비가 많이 들어서 그럴까요? 집이 비좁아서 그럴까요?
그런데 그건 너무 오버 한거야.
쉽게 하면 그 당시에 유대인, 공식적인 유대인 정통파 유대인이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서 앉아서 먹었다 하면 말썽이 나요. 말썽이..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썽에 휘말리는 것 내가 감당하기 어렵다는 거죠.
그러한 위험을 무릅쓰고까지 그렇게까지 우리 집에 올 것까지는 없고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이렇게 한 겁니다.
베드로가 고넬료 집에 가서 식사했다고 해가지고 나중에 교회에서까지 말썽이 나가지고, 사도행전 11장에 보면 따지고 덤비고 하는 얘기가 나와요.
그런 것처럼 정통파 히브리인 유대인이 이방인 집에 가서 집 안에 들어가서 자리를 같이 했다는 것 용납이 안 되고 말썽이 날것 같으니까 그런 말썽의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것을 내가 감당치 못합니다. 그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그랬더니,
10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여기 우리가 이렇게 읽으면 별로 실감이 안 나는데, ‘진실로’ 라는 말이 예수님께서 ‘아멘’ 한 거야.
그러니까 백부장이 한 말에 대해서 예수님이 ‘아멘!’ 했다니까..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아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원어에 보면..
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나도 거기 끼인다)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거기 줄을 그으세요.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거기 줄을 긋고 ‘나도 거기 끼인다’고 쓰세요.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방인들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게 된다는 거야.
이게 우리에게 복음이죠.
맞아요?
이게 복음 아닙니까? 이게..
예수님께서 벌써 이것을 징조를 본거예요.
이 백부장이 이스라엘 중에서도 만나보지 못한 믿음을 가지고 그런 고백을 할 때, 이것을 하나의 싸인 하나의 징조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징조로 받아들이시고 바로 말씀하시기를,
..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 나라의 본 자손들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누구예요?
유대인들이겠죠.
..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시고,
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
저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 이게 제일 멋있는 것 같아요.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 안 나아도 그만이야 그렇죠?
그 사람 믿음 없으면 안 나은 것이니까..
그런데 아직 제가 그것을 잘 못 써먹었어요.
그냥 맨날 그저 저는 ‘낫게 해 주시옵소서’만 했지, ‘가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나으면 좋고 안 나아도 그만이죠.
그런데 예수님은 믿음을 보시고 그런 말씀을 하신거죠.
우리는 믿음이 잘 안 보이니까..
한국사람은 안 믿어질수록 ‘믿습니다.’ 더 세게 하니까..
하나님도 헷갈릴거야. 안 믿어져도 ‘믿습니다.’ 하니까..
사실은 우리가 성경을 보면 유대인 중에서 믿음이 참 신실한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진짜로..
놀랍게도 성경 전체를 흐르는데 보면, 유대인들을 1차적으로 염두에 두고 은혜 베푸실려고 하나 항상 보면 이방인이 더 믿음이 좋았다니까.. 대부분이..
예를 한번 들어볼까요?
여러분 유대인 혈통이 아니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고, 아브라함의 씨도 아닌데, 다메섹 엘리에셀이라는 사람이 있어요.
아브라함 집에 청지기 그 사람 봐요.
나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좋은지 그 사람의 믿음이 좋은지 분간이 안 된다니까..
묵도하기를 마치지 못하여 응답되죠? 그렇죠?
나는 엘리에셀을 제가 만나보지 못했습니다만 어떻든 그분은 참 마음 속으로 존경해 마지 않는 게 이삭이 안 태어났으면 자기가 그 집에 후사가 되는 거야. 맞아요?
그러면 속아지가 못된 종 같으면 이삭이 태어났을 때 ‘재수없는 게 늦게 태어나가지고 내 팔자를 망친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전혀 그런 마음이 없고..
여러분 아브라함이 적어도 엘리에셀에게, 얼마나 엘리에셀을 믿어주느냐 하면 100살에 얻은 독생자의 백년 배필 일생 배필을 간택하는 것을 맡겼다는 거야.
여러분 자신 있습니까?
내가 볼 때 우리 성도들은 목사도 못 믿는 것 같아요. 보니까..
내가 소개할테니까 결혼 시키시오. 자신 있습니까?
입을 한 일자로 닫고 있죠.
그 눈을 가지고 봐야 돼요. 희미한 눈을 가지고 보니 뭘 알아야 말이지..
어떻든 제가 아브라함을 보고도 야 참 대단한 믿음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고 사람을 믿는 거예요. 그렇죠?
아브라함이나 다메섹 엘리에셀이나 하나님을 믿고 사람을 믿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제가 처음 믿을 때는 우리 처녀 총각 다 그런 식으로 결혼했어요.
‘믿음으로 결혼하자. 제품이 하나님 제품이란다. 그냥..’
브랜드가 예수님 브랜드니까 그냥 믿고 하자. 했는데, 아이고 요즈음 사람들은 얼마나 따지는 게 많은지..
골치 아파요. 그렇죠?
여기 다메섹 엘리에셀을 볼 때 얼마나 믿음이 좋은지..
그 다음에, 애굽의 바로왕 애굽 사람이지만 보세요.
요셉 같은 인물을 탁 알아보지 않습니까?
그것 뭐 국적을 초월하고 인물 본위로 사람을 선택하는 것 보세요. 인물 본위로.. 멋쟁이야.
내가 볼 때 바로는 멋쟁이야 사람이..
바로도 바로 나름이지.
아주 훌륭한 바로왕이 있는 거예요. 그렇죠?
그리고 엘리야 시대에 이스라엘 땅에서는 엘리야가 빵 하나 얻어먹을 데가 없어. 어디로 가는 거죠?
두로와 시돈 이방 나라 국경을 넘어서 사르밧 과부 집에 가서..
내가 늘 걱정이 되는 게 그 과부집에 가서 얻어먹었다고 하는데, 소문이 어떻게 나는지 걱정 돼죠.
이방 여인이예요.
그 다음에, 엘리사 시대에 수넴 여자도 이방여자는 아니라도 그런 이름 없는 여자인데, 믿음을 가지고 영접한 것이고,
엘리사 시대 많은 나환자 있었죠? 그렇죠?
이스라엘에 많은 나환자가 있었는데, 아무도 은혜받지 못하고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었어요. 수리아가 아람이예요.
지금 현재 시리아. 다마스커스 그 쪽 사람이거든..
그러니까 이방인인데 그 믿음이 좋아서 은혜 받았다는 거예요.
예수님도 이런 설교 했잖아요.
누가복음 4장에 예수님의 첫 번째 설교가 이런 설교였어요.
그리고 사사시대 속이 깊은 여자 누구죠?
모압 여자 룻이죠? 그 모압 여자예요. 모압 여자..
예루살렘 여자도 아니고 베들레헴 여자도 아니고..
모압 여자 룻인데 이방 여자인데 속이 깊은 여자예요.
그 다음에, 여호수아 시대에 여리고 기생 라합 보세요.
눈이 세개라니까..
남자 보는 눈이 있고, 하나님 보는 눈이 있고, 시대와 역사를 보는 눈이 있었다는 거예요.
이래가지고 보는 눈과 듣는 귀와 깨닫는 마음이 있어서 은혜 받은 거예요.
예레미야 시대에 예레미야 35장에 보면, 자기 선조 여호나답의 유훈을 충실하게 지키는 사람들이 유대인이 아니고, 겐 족속이예요. 겐 족속..
미디안 족속인데, 모세의 장인이 속했던 그 쪽 사람들인데, 신실하게 자기 조상의 유훈을 지키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감동받아가지고 ‘여호나답의 유훈을 지키는 사람 중에서 여호와 앞에 설 사람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칭찬 받는 것 보세요. 놀랍게도 다 이방인이예요.
여러분 선지자 요나가 가서 개떡같이 외쳤는데, 찰떡같이 알아듣고 회개한 사람들이 예루살렘 사람들이 아니고, 니느웨 사람들이예요. 이방인들..
또 다니엘 같은 인물을 단번에 알아본 느부갓네살 왕, 다니엘이 자기보다 훨씬 나이가 어렸을텐데, 느부갓네살 왕이 ‘다니엘의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하면서 다니엘 앞에 무릎 꿇는 것 봤잖아요. 느부갓네살 왕이..
이런 것은 유대인 중에서도 없었어요. 한번도 그런 일 없었어요.
그 다음에, 메대왕 다리우스 보세요.
메대 사람 다리우스는 모함 때문에 다니엘을 사자굴에 억지로 집어넣고는 밤새도록 잠을 못자고 침수를 폐하고 새벽에 달려가서,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사자의 입에서 구원하시기에 능하시더냐?’ 하고 그렇게 슬피 부르짖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런 멋진 사람이 메대 사람이야. 놀랍게도..
유대인 중에는 한 사람도 이런 사람 없었어요.
또 바사왕 고레스.
페르시아왕 고레스가 얼마나 신실해가지고 결국은 하나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칭호를 받은 거예요.
아닥사스다 왕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에스라 느헤미야 때에 성벽 중수를 위해서 그렇게 기꺼이 후원했던 사람이 페르시아 황제죠.
다윗에게 있어서 수많은 장수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 가장 충직한 사람이 우리야예요. 헷사람이예요. 힛타이트 족. 이방인. 외인부대 출신이예요.
헷사람 우리야가 그렇게 충실한 사람이야.
여러분 성경에 유대인 중에 멋쟁이 누구 있어요? 거의 없잖아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잘 없어요.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그 먼데서 온 사람이 스바 여왕이야. 이방 여자..
그래서 심판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서 이 시대 유대인을 심판할 것이다.
그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먼 길을 찾아왔다는 거야.
솔로몬보다 더 큰이가 왔어도 듣지 않는 것 아니냐?
예수님 하신 말씀이죠.
솔로몬이 성전 건축할 때 제일 크게 기여한 사람이 두로 왕 히람이죠. 두로 왕 히람..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갈 때, 그것을 대신 지고 갔던 사람은 열두제자가 아닙니다. 주의 우편에 좌편에 그런 사람이 아니라, 구레네 사람 시몬이야.
열명의 나환자를 고쳐준 적이 있어요. 예수님께서..
고쳐줬더니 감사하러 온 사람이 누구죠?
놀랍게도 사마리아 사람이야 또..
‘내가 너희 열명을 고쳐주지 않았느냐? 아홉은 어디 있느냐?’
예수님께서 못내 섭섭해 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 때도 사마리아 사람이죠.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에 강도 만난 자를 돌아본 자도 선한 사마리아인이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있어요.
예사로운 얘기가 아니죠.
수가성 우물가에 예수님 말씀듣고 금방 메시야인줄 알아보고 물동이를 내팽개치고 전도하러 쫓아갔던 사람이 수가성 사마리아 여자입니다.
유대인들이 그저 손도 잡기 싫어하고 그 땅을 지나가기도 싫어하는 그런 곳인데, 사마리아 여자가 전도한 겁니다.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 그 먼길을 찾아와서 예물 드렸던 사람들 전부 다 페르시아 사람들이죠. 동방박사들..
발다살, 메키올, 가스팔 하는 사람은 전부 다 동방 박사 이방사람들이예요.
여러분 신약성경 속에 나오는 백부장, 오늘 만났던 백부장 뿐 아니라, 모든 백부장은 한 사람도 나쁜 사람이 없었어요.
사실 보세요.
신약성경에 나오는 모든 백부장이 다 신사적이고 인격적인 사람들이었어요.
로마사람들인데..
바울의 곁에서 그림자처럼 바울을 섬겨 봉사했던 사람은 헬라인 누가예요. 헬라인 누가..
성경에 누가 누가만 한 사람 있겠어요?
누가같이 좋은 사람 누가 있겠습니까?
제일 아름다운 사람이 누가라는 사람이예요.
또 바울의 수족처럼 어려운 곳에 제일 골치아픈 곳에 보내면 그저 일을 시원시원하게 해 치우는 사람이 헬라인 디도야. 디도..
여러분 일설에 의하면 디도가 누가의 친동생이었다는 전설도 있는데, 헬라인이예요.
바울의 심부름을 맡아서 얼마나 잘 달아나는 두기고, 에베소 사람 두기고. 발이 빠른 사람이예요. 사랑받는 두기고라고..
베드로를 영접했던 코넬리우스라는 사람 있죠? 고넬료.
대단한 사람이었죠.
그 기도와 구제가 하늘에 상달할만큼 아름다운 사람이예요.
로마 백부장이죠.
여러분 성경을 알아볼려고 그 먼길을 와서 성경책을 사가지고 마차에서 흔들리면서 너무 너무 알려고 애를 쓰지만 그래도 몰라. 그렇죠?
그래서 ‘읽는 것을 깨닫느뇨?’
구스인이예요. 구스인 검둥이.. 유대인이 아니고..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에 외로워 있을 때에 부지런히 찾아왔던 사람이 오네시보로였다고 기록하고 있어요.
예수님께서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될찌어다.’ 페니키아 사람이야.
‘수로보니게’라는 말은 ‘쉬르 페니키아’. 페니키아 남부..
‘옳소이다 마는’ 하면서 예수님 말씀에 토를 달았던 여자가..
전부 다 놀랍게도 유대인이 아니고 이름을 남길 만한 사람이 이방인이었다는 겁니다.
더 웃기는 것도 있습니다.
때로는 사람보다 짐승이 나은 수가 있어요. 동물이..
여러분 파리들도 시키는대로 다 하잖아요.
죽으라면 죽고 말라면 말고..
메추라기도 하나님께서 다 죽을 때 아무데서나 죽지 말고 이스라엘 진에 가서 죽으라. 다 찾아가서 죽는 거야.
당나귀는 하나님 뜻대로 하나님 사자 알아보는데, 돈에 눈이 먼 발람은 못 알아봐요. 그렇죠?
선지자는 못 알아보는데, 당나귀는 알아보는 거예요.
큰 물고기는 순종하는데, 요나는 거꾸로 가요.
물고기는 며칠전부터 와서 타이밍 맞출려고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고..
그렇게 하는데 요나는 거꾸로 가는 것 보세요.
여러분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 보세요.
하나님의 법궤를 실었다고 멍에 메어본 적이 없는 암소가 송아지가 울고 하는데도 돌아보지 않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곧장 자기 길로 가는 그런 모습을 보여 줍니다.
까마귀도 엘리야가 배고픈 것 알고 다 물어오잖아요.
보나마나 어디가서 훔쳐올텐데..
미련한 곰도 하나님의 예언자 엘리사를 놀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잖아요.
사람이 때로는 곰보다도 못하잖아요.
이스라엘을 두고 말할 때, 이사야서에 보면 소도 그 임자를 알고 당나귀도 그 주인의 구유를 아는데, 이스라엘을 알지 못하고 내 백성은 깨닫지도 못한다고 탄식을 하는 거예요.
때로는 사람이 동물보다 못하는 수가 있어요.
비둘기도, 반구라고 하죠. 멧비둘기.. 비둘기도 집을 찾아오고 철새도 철이 되면 돌아오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다고 얘기합니다.
아무리 사자가 배고파도 다니엘을 먹으면 안 된다는 것 알잖아요.
그 사자가 얼마나 배고프겠어요?
예레미야서를 보면 들개도 젖을 내어서 새끼를 먹이는데, 내 백성이 잔인하기가 광야의 타조같다. 그런 말씀도 있습니다.
모든 동물들과 해물들이 인간에게 길들이므로 길들였지만, 사람은 혓바닥을 길들일 사람이 없어요. 항우 장사도 없는 거예요.
이렇게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 이것을 누가 알겠는가..
예언자들의 탄식속에 구약성경 속에 자세히 보면 유대인보다는 이방인, 때로는 사람보다 동물들이 하나님께 더 순종하는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거예요.
그만큼 우리 사람이 타락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 예수님께서,
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굉장히 두려운 말씀이죠.
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
나았다는 얘기죠.
우리가 참 마음에 담아둘만한 것은, 백부장이라고 하면 로마의 중급 장교인데 초급 중급 장교인데, 종같은 것 그런 것 하찮게 여길 수 있어요.
로마인들은 노예라는 사람들을 가축처럼 여깁니다. 가축처럼..
그래서 말과 노예가 사막길을 주인과 셋이 가는데, 물이 조금밖에 안 남았어.
그러면 주인이 먼저 마시고, 말에게 마시게 하고 노예는 세 번째 마시게 하는 거야.
왜냐하면 노예는 타고 못가잖아.
이용가치가 말보다 못하다는 거야.
이용가치를 따라서 말을 더 중시할 정도로 그렇게 로마시대의 노예라는 것은 비천한 사람들인데,
이 백부장이 자기 집의 하인이지만, 병들어 고통하는 것을 긍휼히 여기는 사랑의 마음이 있었다는 거야.
그리고 믿음이 있고 사랑이 있을 때 소망이 있는 거죠.
우리가 믿음이 없고 사랑이 없으면 소망이 없는 겁니다.
보세요.
지구상에 살아있는 모든 사람이 저와 여러분을 다 포함해서 믿음이 없고 사랑이 없는 사람은 소망이 없는 거예요.
믿음도 없고 사랑도 없으면 그 존재가 고깃덩어리이지 아무 의미가 없어요.
밥만 축내는 거죠. 그렇죠?
만약에 믿음도 없고 사랑도 없으면 아무런 노동력 가치밖에 동물밖에 안 되잖아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믿음과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어야 되는데, 그 하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백부장이 피식민지의 이름없는 예언자를 찾아와서 그렇게 간구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믿음과 사랑이 있는 곳에 소망이 있다.
14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15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이리 보세요.
예수님께서 병고치는 방법이 한가지예요? 여러 가지예요? 여러 가지.
어떤 경우는 만져서 낫게 하시는 거예요.
또 어떤 경우는 말씀을 했죠? 그렇죠?
또 여기 베드로의 장모는 만져서 낫게 했다는 거예요.
16절,
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이사야 53장 4절 5절에 있는 말씀이죠.
그래서 귀신들린 자를 고친 것은 구약시대에 수많은 예언자 모세부터 말라기까지 있지만, 아무도 귀신을 제어했던 예언자는 없었어요.
예수님이 오셔서 처음으로 귀신들린 자를 고치신 거죠.
여러분 이 마태는 마태복음을 쓰지만, 나중에 의사였던 누가는 누가복음을 쓰면서도 그게 무슨 병이다 자기 이론대로 쓰지 않고 반드시 귀신들린 것은 귀신들린 것으로 이야기 합니다.
아쉽게도 신학교에서 한 시간도 귀신에 대해서 공부를 안 합니다. 몰라요.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잘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복음서 공부하다가 한번쯤은 우리 성도들이 많을 때에 귀신들에 대해서 조금 공부를 해야 돼요.
지금도 귀신에 대해서 너무너무 잘못되게 알고 있는데, 미국에서 신학한 사람들, 미국 계통의 신학을 한 사람들이 귀신을 엉터리로 공부해가지고 얼마나 많은 실수를 하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18절,
18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쌈을 보시고 저편으로 건너가기를 명하시니라
19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말씀하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참 희한한 거야.
따라오겠다는 사람은 따라오지 못하게 해요.
안 따라가겠다는 사람은 따라오라고 해요.
그래서 오래전에 읽은 책에서 어떤 분이 ‘하나님은 항상 너의 반대편 있는 것을 오랫동안 경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무슨 말을 내면 꼭 하나님 반대로 하는 거예요.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해가지고.. 애를 먹는 거야. 그렇죠?
그래서 정말 언젠가 내 생각을 자꾸 꺼내면 항상 내가 하나님편에 안 있고 하나님 반대편에 있는 거야.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어지간하면 내 생각을 안 내놓는 게 좋습니다.
내놔봤자 항상 하나님 반대편에 있다니까..
내 생각은 내 생각이지..
그래서 나중에 믿음이 조금 조금 더 완숙으로 가까이 가게 되면 말이 없어져요. 조용해지는 거야.
떠들 말이 별로 없게 돼요.
오늘 우리 홈페이지에 어떤 분이 성경강좌에 몇번 와보더니, ‘아, 내가 이제 아무 말 말아야겠다..’
자꾸 떠들다가 보니까 하나도 되는 게 없고 그런 것을 보더니, ‘아 이제부터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내가 들어야 되겠다..’
그런 간증이 올라와 있어요. 짤막한 글인데..
내가 생각하기를 철이 들어가시는가 보다.. 포도주가 다 익으면 조용해지는 거예요.
아주 설익었을 때 거품을 내뿜고 부글부글 괴고 그렇죠?
19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말씀하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서기관이라고 하면 당시에 지식층입니다. 엘리트예요.
예수님을 따라오겠다는 사람중에 제일 엘리트인데,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사양을 했어요.
왜 사양했을까요?
이 사람은 공부 해놓은 게 있어요. 그렇죠?
서기관 같으면 보통 어려서부터 공부하지만, 정식으로 14살 되면 그 때 성년식 하고 나서부터 해가지고 40세까지를 고도의 정규코스를 밟아서 서기관으로 임직을 해야 돼요.
기름부음 받아서..
그 정도의 권위 있는 직책이 서기관입니다.
당시로는 최고 학부 최고 권위의 엘리트에 속하는 사람들인데, 예수님을 따라 나서겠다고 했던 사람중에 제일 엘리트에 속하는 사람이예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딱 한마디로,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이 사람 틀림없이 자기가 상당히 실력자이기 때문에 예수님 따라가면 바로 예수님 다음 자리 차지하지 않겠는가?
그런 타산없이 공부를 한 사람이 따라온다는 말 안 하죠.
예수님 다 간파하시고 ‘자네 같은 사람처럼 공부하는데 투자를 많이 한 그런 사람은 앉을 자리가 없네. 미안하네..’
그러고 못 따라오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21 제자 중에,
이번에는 제자입니다. 서기관이 아니고, 누군지 잘 모르겠는데, 이름은 살짝 가렸는데 아는 사람은 알게, 애들은 모르게 한 거야.
저도 잘 몰라요. 어떻든 열두 제자중에 하나인데, 나중에 조금 있다가 물어봅시다. 마태에게 누군지..
21 제자 중에 또 하나가 가로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꼭 우리가 오해하기 좋은 말인데, 마치 부친이 초상난 것처럼 우리가 알고 있어요. 그렇죠?
그런 게 아닙니다.
‘내 부친 돌아가시고 나면 장사지내놓고 내가 주를 따라가겠나이다.’ 그렇게 말한 건데, 번역상 꼭 오해하기 좋은 거야.
세상에 아버지가 지금 돌아가셨다는데, 예수님 보내주지도 않고 말이야.
그렇게 되면 골치 아픈 거죠.
요즈음도 전도하면 그런 사람 많죠?
젊은 부인에게 하면 시어머니 때문에 못 믿는다하고, 시어머니 돌아가시고 나면 믿는다 그 말이죠?
‘시어머니 먼저 지옥 보내놓고 내가 혼자 믿겠습니다.’ 똑 같은 말이죠. 그게..
22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죽은 자들’ 하는 것은 죄인들, 죄에 빠져서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고, 두 번째 ‘죽은 자’ 하는 것은 진짜 죽은 사람이죠.
장례식이 중요한 게 아니다. 장례식은 그냥 놔두면 죽은 거예요. 이미 다..
그것가지고 인생을 허비할 필요가 없다. 장례식 때문에 산 사람을 구원하는 이 막중한 길을 뒤로 미루거나 할 수 없다는 거죠.
다른 데 보면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것도 합당치 않다.’
23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좇았더니
24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는 주무시는지라
25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가로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꼭 한국사람 같죠.
조금만 어려우면 죽겠나이다 하죠.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27 그 사람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하더라
이런 것 뭘 말하려고 하느냐 하면, ‘예수님이 바람과 바다까지 잔잔케 할 수 있는 분이다’ 하는 것을 보여주는 거예요.
이런 것을 문득 문득 보여주시는 거예요. 잘 봐야 돼요.
그래서 결국은 우리가 예수님을 누구로 어떻게 믿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우리 스스로 판단하게 하는 거예요.
병자를 낫게 하고 귀신을 제어하고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하고 이렇게 하는 분 같으면 이분이 누구신가..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어떠한 사람이냐?’
알아가야 돼요. 그런 것을 보면서..
28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저희는 심히 사나와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만하더라
29 이에 저희가 소리질러 가로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아직도 제자들은 뭐라고 해요?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그러죠.
그런데 누가 제일 먼저 알아보죠? 귀신..
그렇죠. 귀신이 귀신같이 알아보죠.
..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그러니까 다른 복음서를 보면 무덤가 어디 근방이라고 해요. 이 사람들이..
그러면서 거기서 얼마나 거칠었는지 아무도 제어할 수 없을 만하더라.
거기다가 쇠고랑으로 채웠는데, 쇠고랑도 터뜨리고 이렇게 사나운 거예요.
그러면 그 동네 사람도 감당 못하고, 본인도 감당 못하고, 가족도 감당 못하고 시에서 도에서 안 되는 거야. 경찰이 가도 안 되고 아무도 안 돼.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하느냐? 잘 보라는 거야.
30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31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가로되 만일 우리를 쫓아내실진대 돼지 떼에 들여 보내소서 한대
32 저희더러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33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 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34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담담하게 썼는데, 조금 생각해봐야 돼요.
그러니까 이 정도되면 사람들이 아무 사람도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사나운 거예요.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정도예요.
성경에 보면 ‘귀신들을, 자기 처소를 지키지 않고 위치를 떠난 그런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때까지 흑암에 가두셨다.’ 그런 말이 있어요.
귀신들을 흑암에 가두셨다는 말도 있는데, 여기 돌아다니는 귀신도 있거든. 분명히..
이것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이 다음에 귀신들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다룰 때 한번 논문처럼 정리해서 다루기로 하고,
간단하게 하면 세 가지로 봅니다. 세 가지로..
아주 악독한 게 있어요.
귀신 중에서 아주 악독하고 지독하고 표독하고 한 게 있어요.
그런 너무 심한 것들은 진작에 큰 날의 심판때까지 어두운 구덩이에서 지키고 있기 때문에 못 나옵니다.
그 다음에 제가 직접 만나서 쫓아내보고 했던 귀신 중에서 비실 비실한 것들이 있어요.
‘가!’ 하면 그냥 가버립니다.
어떤 것은 가라는 말도 안 했는데, 예수 믿는 사람이 가까이 오기만 했는데, 어마야 저마야 하면서 울면서 도망가는 것도 있는 거야.
그런 것도 있는가 하면, 기를 쓰고 악을 쓰고 안 나가겠다고 바락바락 대드는 귀신이 있어요.
목사도 상관 없어요. 막 덤벼드는 거야. 그냥. 무지막지하게..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도 있고 병들게 하는 것도 있고 싸움하게 하는 것도 있고 별것이 다 있어요.
그런데 여기 이런 것들은 심한 거야. 심해가지고 본인도 감당 못하고 가족도 동네 사람도 감당이 안 되는 거야.
예수님만 가야 감당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일 경우에는 예수님께서 다른 복음서 보면 자기들을 무저갱에 들어가게 하지 말기를 간구하고 있어요.
그런데 왜 무저갱에 들어가지 않게 간구할까요?
예수님께서 잡아서 무저갱에 집어던지러 오니까 들어가기 싫으니까 안 들어가게 해 달라고 하는 거죠. 그렇죠?
귀신의 말을 들어보고 귀신의 말을 알아야지.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어떤 것들은 워낙 진작부터 악독한 것들은 이미 큰 날의 심판때까지 어두운 구덩이에 집어넣어 갇혀있고, 어떤 것들은 세상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점점점 더 악해지는 거예요. 점점 더 악해지는 것이 있다니까..
너무 악해져서 사람이 감당하지 못할 때쯤 되면 그것은 예수님께서 수시로 무저갱에 집어넣는 거야.
그리고 성도들 시험할만큼 덜 악한 것들, 시험용으로 쓸만한 것들은 세상 끝날까지 놔둡니다. 활동하게..
성도들 시험용입니다.
대체로 그 세가지가 있는데, 제가 볼 때는 세가지 네가지 천가지 만가지 있지만, 크게 하면 세가지라니까..
성경에 보면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않으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도 내신다.’
이해가 됩니다.
그러니까 귀신 중에 어떤 것은 진짜 고약한 것이 있어요.
정말 안나갈려고 하고 나갔다가 들어오고 애먹이는 게 있는데, 우리가 귀신 무서워서 장 못 담그고 그런 것 아니죠.
골치아픈 것들이 있기는 한데, 그래도 귀신 때문에 교회가 안 되는 것 아닙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 이런 케이스는 다른 복음서에는 군대귀신이예요. 군대귀신..
그런데 군대귀신이라는 게 도대체 얼마나 많은지 모르지만, 두 사람 속에 들어있는 거예요. 두 사람속에..
사람 두 사람속에 군대라는 귀신이 들어있는데, 2천 마리의 돼지에게 들어가니까 2천 마리의 귀신인지 모르죠.
그래서 이 군대를 만드는 것도 대개가, 어떤 군대는 마귀의 군대예요.
그래서 신학적으로 군대라는 말을 할 때, 비인간화의 극치라는 거예요.
인간을 인간이 안 되게, 비인간화 하는 것이 군인을 만들어버린다.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 죽이는 기계처럼 만들어 버린다는 거야.
‘야! 예! 열중쉬어 차렷!’ 완전히 기계죠.
돌격앞으로 하면 죽을지 살지 모르면서 기계처럼 가서 몸을 내 던지는 비인간화죠.
그런 군대에게 ‘파사국군에게’ 이런 말도 있고 여러 곳에 보면 군대에게 그런 사람 죽이게 하는 악령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마귀가 만약에 사람을 군대로 만들어가지고 사람을 죽이게 하는데, 우리도 사람을 살리는 군대로 만들어야 돼요.
그게 십자군이예요. 구세군..
그리고 우리가 이런 악령들 세계를 공부를 할려면 시간이 많이 가게 되는데, 오늘은 다 할 수 없고..
어떻든 이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심한 것들은 수시로 묶어서 무저갱에 집어넣는 거예요. 지금도..
그래서 그런 대로 세상 질서가 유지되는 거죠.
귀신이 하는 대로 다 놔둬버리면 세상이 엉망이 되는 거죠.
그래서 이 때 두 사람에게 들어있던 건데, 2천 마리의 돼지에게 들어갔다는 것을 보면 어쩌면 귀신이 2천 이상일 수 있다.
저는 한 처녀에게 귀신이 들어갔는데, ‘너 누구야?’ 그랬더니 ‘누구보고 하는 말이냐?’ ‘그게 무슨 소리야?’ 했더니,
‘우리가 여럿이거든.’ 하더라고..
‘그럼 몇이야?’ 하니까 ‘백 둘이다.’ 하는 거야.
나보다 10살이나 어린 여자아이가 나는 결혼도 했고 어른인데, 처녀가 말이야..
백 둘이라는 거예요. 한 여자안에..
그래서 제가 나가라고 하니까 ‘얍! 얍!’ 그러면서 놀리는 거야.
할테면 해보라는 거죠.
제가 초신자때인데, 그래서 ‘너희 중에 대장이 있을 것 아냐? 대표 나와! 너 누구냐?’ 하니까 ‘천사장 루시퍼다. 왜?’ 그러는 거야.
말을 그냥 놔서 하는 거야. 나보고..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님 이름으로 나가라고 해서 다 나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안 나가고 애먹이는 게 있어요. 안 나가고..
그래서 저는 그 때 그 당시에 쫓아내지 못하고 그 이튿날 담임 전도사님이 두 달을 금식을 하면서 기도하고 쫓아냈어요.
문제는 쫓아내도 또 들어온다는 게 문제야.
쫓아내어서 나아서 집으로 갔는데 또 들어왔어.
두 번 쫓아냈는데 세 번째 또 들어온거야.
그 때 전도사님은 저 경기도 양평으로 가 버리고, 저는 사천으로 가버리고 해가지고 돌아보지 못했는데, 죽었습니다.
백 둘이라는 거야. 백 둘..
그런 경우도 있고 성경에 보면 ‘일곱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 그런 말도 있죠? 막달라 마리아..
아니 일곱이 들어갈 수 있는데, 여덟은 안 되겠어요?
백 둘이 들어가는데 2천은 안 되겠어요?
그렇게 여러 귀신이 들어갔을 때는 육체적으로도 힘이 센거야. 만져보면..
내가 옛날에 목수일을 해가지고 보통 여자 같으면 딱 움켜쥐면 입을 딱 벌리고 까물어치는데, 이게 뭐 갖고 놀아요. 얍 하면서 힘 자랑하겠다고.. 여자가..
소름이 끼치더라고.. 소름이..
그래서 그런 것을 보고 여기 2천마리의 돼지라고 말할 때 정말 2천 이상의 귀신이 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데 그 돼지가 물로 왜 들어갔을까요? 물로..
답이 있는 게 아닙니다.
어떻든 그 곧바로 무저갱에 들어가기 싫으니까 돼지에게라도 들어가게 해 달라 했는데, 예수님께서 돼지에게 들어가란 말을 하지 않고 그냥 가라고만 했죠.
예수님은 돼지 죽인 책임 없습니다.
그래서 그 주민들은 돼지가 죽고 말썽이 나게 되면, 대개 그 때 왜 돼지를 기르느냐?
요단강 동편 어디쯤인데, 유대인들이 돼지를 먹는 게 아니라 로마 군인들에게 남품을 해요.
그것 때문에 말썽 나가지고 시끌벅적하면 골치 아프니까..
제발 이 지역에서 떠나기를 간구하니라 그렇게 한 거예요.
오늘은 여기까지만 합시다.
앞으로 우리는 이런 기적들 이야기가 계속 이어질텐데, 그 모든 기적들이 무엇을 우리에게 보여줄려고 하느냐 하면, 모든 일에서 우리 죄에서 구원 하시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시고, 기름부음 받은 자시다 해서 우리로 믿게 하는 것이고,
그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 받고 구원얻게 하시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죄가 있다할지라도 죄문제까지 다 책임 질테니까 돌아오라. 하나님께 돌아오라.
이런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오신 줄 믿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은 우리 주 예수님께서 오셔서 어떤 교훈을 베풀어 주시고, 그리고 또 어떤 사역을 우리에게 하셨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잘 배워서 주님께서 하시던 일 중에 우리가 계승해서 주님 오실 때까지 이어나갈 일이 어떤 일인지 잘 분별하게 하시고, 잘 배워서 주님 하신 일을 우리가 잘 감당할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