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에 쓴 첫 완주기가 있다. 올 가을 춘천에서 머리를 올리는 치와와를 위해 지난 여름쯤에 게시판에 올리려 했었다. 하지만 말이 완주기이지 당시 모든 면에서 무지했고, 완벽하게 실패한 레이스였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고, 쑥스런 내용도 있어 삼갔다. 하지만 내가 달리기에 입문하고 처음으로 풀코스를 뛰기까지 아니 풀코스를 뛰려고 작심하는데 여러 사람들의 첫완주 후기를 읽으면서 받은 감동이 큰 역할을 했기에, 아직 풀코스를 안 뛰어본 여러 친구들에게 그와 비슷한 기분을 갖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의 첫 마라톤 완주기를 올리려 한다.
시의에 맞지 않거나 다니던 회사싸이트에 올렸던 것이기에 우리와 무관한 내용, 새삼스레 달리기를 권유하는 내용들이나 기타 이런저런 군더더기는 모두 삭제했고 읽기 좋게 다시 편집도 했다. 사실 다섯 차례에 걸쳐 분재했던 것이고 전체의 분량이 바로 아래 중앙마라톤 후기의 일여덟배 가량 되기에 줄이지 않을 수 없다. 길면 마구 짜증내는 넘이 있어 당최 눈치가 보여서 말이다.
… 어쨌거나 올인하는 심정으로 마지막 밑천 다 드러낸다.
< 제1회 부산바다마라톤 완주기 (99년 11월 21일) >
1. 프롤로그
전날 저녁 송도바닷가 근처에 사시는 작은 아버지댁에 와서 하룻밤 자고, 이른 아침을 먹고 결전지로 향했습니다.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신평역에 도착, 대기중인 셔틀버스를 타고 다대포 해수욕장에 내려서 걸어 들어가는데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몸을 풀고 있었습니다. 본부석으로 배번을 받으러 갔습니다. 검정색 251번이었습니다.
이 감격. 드디어… 8월초 집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2-3킬로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 몇 번의 대회에서 하프 코스를 뛰었고 좀 더 욕심이 생겨 ‘풀 코스를 완주하고 새 즈믄년을 맞으리라’는 다소 무리한 결심을 했는데, 이를 실현키 위해 마침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간단한 의례가 있으니 모여달라는 의례적인 하소연이 있어 대열로 가는 도중에 그 지역 여의도맨이 악수를 청합니다. 저도 양식 있는 국민이기에 또한 마라톤을 사랑하는 건전한 시민이기에 국해(害)의원 무리를 결코 좋아하지 않으나, 잘 뛰라며 격려하는데야 인상 쓸 수 없는 노릇이지요. 고맙다고 했습니다 뭐.
풀 코스 대열에 섰습니다. 또다시 이는 뿌듯함. 왕년의 내가 그랬듯 옆 열의 하프코스 주자들이 나를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을까 흐흐. 이 기분만으로도 멀리서 돈 내고 참가한 본전은 뽑은 거나 마찬가집니다. 아니 그런데 이 영화(榮華)도 잠깐, 주위의 두런거림을 들으니 참가인원은 적으나 대부분 이름있는 아마 고수들이라는데 그만 꼬리가 살포시 내려지며 야코죽게 되더군요.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 동안 가르쳐 주는 이도 없이 체계도 없이 혼자서 인터넷 통해 들은 풍월을 가지고 순전히 나 편한 식을 내 체질에 맞는 방법이랍시고 연습해왔으니. 경력이라고 어디 넉넉합니까. 이제 겨우 하프 세 번이고 풀은 처음인데. 명짜한 마라톤클럽 이름이 새겨진 상당히 전문적인 복장에, 몸푸는 초식에서 벌써 여러 해 쌓은 무공이 슬금슬금 배어 나오는 강호의 고수들 틈바구니에서, 바싹 긴장해서 두리번거리는 저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왕초보 풀 코스 주자였을 것입니다.
비슷한 초보로 보이는 이에게 슬슬 접근하여 말을 걸었습니다. 역시 첫 도전이고 하프기록도 저와 같은 수준이었고, 완주가 목표이나 대략 4시간 30분을 의식한 것도 구간당 시간배분도 저와 비슷했습니다. 열심히 하자고 꼭 완주하자고 같이 서로 격려했습니다.
출발지점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했고, 내려서 뛰기 전에 마지막 배설을 위해 주위를 살펴도 적당한 곳이 없어, 다른 이들 따라 아무 죄없는 담에 일렬횡대로 서서 한 줄기 뽑아냈습니다. 가끔 느끼는 것인데(!) 금지된 곳에서 소변을 보면 왜 그리 오래 걸리고 그 물줄기도 민망할 정도로 긴 강을 이루는지요. 교통통제하러 나온 순사들도 못 본 척하는군요. 부끄…
2. 10km까지
스타트라인에 섰습니다. 춘천 때에 비하면 주자가 단촐합니다. 스타트에서 시간손해는 없겠습니다. 총성이 울리고 함성과 함께 발을 내디뎠습니다. 날씨도 적당하고 기분도 좋습니다. 잘 뛸 수 있겠지. 벌써 저 앞에서 마치 단거리 선수들처럼 힘차게 내딛는 모습들은, 튀어나간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저들은 고수들이다. 신경 쓰지 말자. 기분에 들뜨거나 다른 주자들의 페이스에 뇌동하여 초반에 무리하면 후반에 엄청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귀가 닳도록 듣지 않았는가. 처음 10킬로를 1시간이 걸리도록 뛰어야 한다. 세시간 넘도록 뛰어본 적이 없지 않느냐. 뒤를 보니 따라오는 사람이 몇 안 되는군요. 하프 때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역시 대부분이 고수들인 모양입니다.
3킬로쯤 갔을까요. 길 한복판에서 큼직한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차량을 통제하는 검은 안경을 낀 멋진 경찰아저씨가 ‘욕보십니더’ 하며 격려합니다. ‘수고 많으십니다’라고 화답했습니다. 그럴싸 그러한지 더티하리의 클린트이스트우드 같기도 하여 힐끔 뒤돌아 보았습니다. 매그넘 권총도 가지고 있을까 하는 쓸 데 없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5킬로 남짓 되니 하프코스 선두 주자들이 풀코스 후미를 마구 추월하며 나아갑니다. 저이들은 1시간 반만 고생하면 되겠지요. 그래도 이것이 내가 한 선택이기에 부럽지 않습니다.
그 중에 눈에 익은 한분, 김제 영감님이 저의 옆을 지납니다. 어째 안보이더라 궁금했기에 반가워서 뒤따르며 고함질렀습니다. 또 뵙네요. 잘 뛰십시오. 돌아보진 않고 손짓만 하십니다. 이 작은 동작에 응 그려 거기도 열심히 혀라는 말이 담겨 있음을 척 알아봅니다. 예순 일곱 이시지요 아마. 경력이 십 년 이상 되며 항상 하프만 뛰십니다. 충주대회에서 뒤따라가면서 볼 때 보다 몸이 가벼워 보입니다. 약간 오버하시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빨랐는데 나중에 보니 결국 일을 내셨습니다. (뒤에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이번에도 많이 줄이셨네요” 했더니, “그려, 근디 나는 언덕이 강헌디, 언덕에서 젊은 사람들을 많이 추월허는디, 이번에 언덕이 읎응게 영 퍽퍽혀” 라며 은근히 뻐기시는데 하나도 거슬리지 않았습니다.)
코스가 줄곧 평지인데다 왼쪽으로 바다구경을 하며 뛰니 기분이 상당히 느긋합니다. 동행이 생겼습니다. 305번. 창원마라톤 소속이고 2-3년 경력이나 대회참가는 처음인데 풀 코스에 도전했답니다. 역시 첫 도전답게 목표는 4시간 30분이어서 보조를 맞추어 뛰었습니다. 러닝메이트입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하구언 지나 10킬로 통과했고 53분15초였습니다. 아이쿠 빠르다, 늦추자.
3. 20km까지
이번에는 이런저런 사전조치를 해서인지 아직은 몸이 괜찮습니다만 결코 안심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한번씩 통증을 느꼈던 곳에 바르고 붙이고 했다고는 하나, 안 뛰어본 거리나 시간을 처음 뛰게 될 경우 예외 없이 전혀 생각치 않았던 곳에 탈이 나곤 했으니까요. 러닝메이트와 이런저런 이야기도 해가며 또 과속하지 말자고 서로 단속하며 (하구언지나 김해공항으로 가는 도로에 실제로 과속하지 말라는 교통팻말이 군데군데 있어 ‘하, 이것이 내게 주는 주의인 모양이다’ 하고 피식 웃기도 했습니다) 열심히 뛰고 있는데, 이런, 지금까지 문제가 없었던 오른 발목이 시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나 너무 이른데. 아직 삼분의 일도 안 왔는데.
근육통도 물론 반가울 리 없습니다만 관절이 시큰거리거나 따끔거리면 정말 난처합니다. 썩 개운치 않은 기분으로 15킬로 통과했습니다. 1시간 23분 55초. 5km 구간기록이 30분 40초이니 적당하기는 했으나 혹시 초반 10킬로에 비해 벌써 처진 것이 기록으로 나타난 것인가 좀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하프코스 같으면 7할 정도 뛴 것이고 이 정도 남은 힘 같으면 지금부터 상당히 속도를 낼 수도 있겠는데… 아서라. 아직도 삼분의 이가 남았고 그것도 지치고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가야하는 거리이다.
처지는 사람이 슬슬 눈에 뜨입니다. 발목통증이 심해집니다. 발목 중에서도 안쪽이 특히 아파서 아스팔트가 시멘트 배수로 쪽으로 기울어지며 생기는 경사라인을 따라 오른쪽 발을 디뎠습니다. 좀 낫습니다. 이거 말로만 뛰는 것이지 자세도 이상하고 속도도 경보선수 걷는 것보다 더 느린 것 아닌가 하여 사기가 계속 떨어집니다. 배도 상당히 고파옵니다. 출발 전에 다대포에서 몸을 풀며 먹은 간식이 다 꺼진 모양입니다. 항상 100분 정도 뛰면 힘이 달렸었는데 4시간 이상을 뛰어야 하는 오늘도 어김 없습니다.
저만치 20킬로 지점이 보입니다. 다소 안도가 됩니다. 바나나가 있겠지. 이브를 꼬였던 선악과 보다 맛있을. 조금 더. 조금 더.
도착하여 허겁지겁 찾았으나 분하게도 바나나는 이미 동이 나버린 뒤였습니다. 한때 지겹게 듣던 ‘꼬우면 일찍 오지’를 다시 한번 체득했습니다. 꿩이 없으니 대신 닭이라도 잡아야지요. 맛없는 빵 한 개와 물 한 병을 집어 들고 뛰면서 먹었습니다. 먹으면서 뛴 건가요. 잠시 서서 먹지 못할 정도로 시간에 쫓긴 것은 아니나 그러고 나면 다시 뛰기 힘들까 하여 천천히라도 뛰면서 먹은 것입니다. 어쨌거나 먹을 것에 눈이 어두워 그만 정확한 시간을 체크하지 못했습니다. 1시간 53분쯤 되었을 것입니다. 5키로 구간기록 30분. 아직은 이럭저럭 괜찮습니다.
4. 30km까지
제 앞으로 나갔던 305번의 뒷모습이 다소 지쳐 보였습니다. 발목은 계속 시큰거리나 페이스는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긴 이제 하프코스 정도 뛴 것이니까요. 충주대회 때는 언덕이 많아 힘들었지만 대신 가을 산, 물, 댐 등 주변 경관이 수려하여 한결 뛰기 좋았는데 거기에 비해 이번 코스는 살풍경한데다 주로도 거의 직선이어서 매우 단조롭고 지루합니다. 머리 속으로 딴 궁리하기도 귀찮고 가사가 긴 노래를 찾아 흥얼거려 볼까나.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를 3절 까지 떠올릴 수 있을까. “당신이 지치고 왜소하다 느낄 때, 당신의 눈에 눈물이 가득할 때…” 음, 노래 된다.
대한민국 남자가 평생 기억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단연코 군대시절일 겁니다. 저는 포수 주특기를 받고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이라는 곳에 있는 포병부대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군대가더니 일체 연락이 안 된다고 불평하는 속세의 친구들에게 내가 바로 ‘강원도 포수’ 아니냐며 기염을 토했습니다.) 그 동네 겨울은 정말이지 춥고 길었습니다. 한겨울 밤에 보초를 서려면 야전잠바 위에다가 무슨 내피니 외피니, 무슨 파카니 하는 이런저런 털옷, 누빈 옷을 대여섯 개 껴입고, 장갑과 군화 위에도 더 끼고 더 신고 하는데도 20분만 지나면 덜덜 떨립니다. 단 하룻밤도 속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외부에서 텐트생활을 하는 동계훈련기간 중에는 밤바람을 피할 수도 없는 곳에서 근무를 서게 되는데, 안 보태고 정말 뼈까지 시립니다. 그럴 때면 가사가 긴 노래를 찾아 이거 다 부르면 5분은 지나가겠지 하면서 속으로 2절3절 까지 가능한 천천히 부르고 하나가 끝나면 또 하나를 찾아 부르곤 했었지요.
그때 돈 맥클린의 <아메리칸 파이>를 왜 외우지 않고 군에 왔을까 하고 통탄을 했었습니다. 그 정도 분량의 가사를 최대한 느리게 부른다면 한 30분은 좋이 지날 텐데요. 하긴 레코드를 사다가 가사를 보면서도 따라 하기 힘들 정도로 가사가 길고 빠르고 난해했지요. 그 친구 전생에 하프를 들고 유랑하던 음유시인이었을 겁니다.
좌우지간 한 20년쯤 지난 지금 새삼스레 그 노래가 생각나는데 여전히 처음 시작하는 구절 밖에는 모르는군요. 학창시절에 확실히 배워둘 걸 그랬습니다. 5학년, 2학년인 딸아이들에게 배움에도 다 때가 있는 법이라고 설교를 하면 어느 정도나 절실하게 받아 들여질까요. 깨우침에도 때가 있는가 봅니다. 단지 그것이 너무 늦거나 시행착오의 대가가 크지 않도록 바랄 뿐일 모양입니다, 저 같이 범속한 인간은.
25킬로 지점 통과. 2시간23분22초. 5킬로 구간기록이 아직은 30분입니다. 적이 마음이 놓였고 잘 하면 4시간10분쯤도 가능하겠구나 했는데, 일순 현저히 힘이 떨어집니다. 큰일이다. 아직 삼분의 일 이상이 남았는데. 15킬로 이상을 더 가야 하는데.
이제는 발목도 발목이지만 (이제 왼쪽 발목도 시큰거립니다) 조금 전부터 양쪽 허벅지뼈와 골반을 잇는 관절 - 특히 왼쪽 – 에 신호가 오더니 거북한 단계도 지났는지 걸음 옮길 때마다 제법 묵직한 아픔이 전해옵니다. 거기다가 발목관절 안쪽의 시큰거림으로 인해 의식적으로 바깥 쪽으로 무게를 실으며 뛰느라 자세가 어긋났던지 양쪽 허벅지 안쪽 관절과 근육까지 뻐근해 오기 시작합니다.
신경질이 날 정도로 불편했습니다. 지난번 30킬로 연습 때에는 나타나지 않은 징후들이 왜 이리 모질게도 한번에 무더기로 나타나는지요. 하체에 있는 이런저런 근육이나 관절이 한번씩은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라 할지라도 좀 더 나중에 나타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제 겨우 25킬로 통과했는데.
무의식적으로 뛰고 있다가 갑자기 내 의사와 전혀 무관하게 뜀박질이 걸음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유별나게 힘들거나 고통이 심하여 좀 쉬자고 명령한 것이 분명히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어서 곰곰이 생각하니, 뛰다 보면 가끔 무아경이라는 것을 경험할 때가 있는데, 다시 말해서 갑자기 정신이 들어 몇 분 동안의 과거를 되짚으면 내가 잠시 머리 속이 하얀 상태였구나 하고 느끼게 되는 것 말입니다. 이 때가 그런 상태였던 듯, 머리 속은 잠시 텅 비어 아무 생각이 없는데 근육과 관절은 더 이상 참기 어려운 한계에 이르러 저도 모르게 그렇게 되었나 봅니다.
또한 걷는 기분도 참 묘했습니다. 내가 걷고 싶어 걷는다기 보다는 누가 천천히 등을 떠밀어 멈춰지지 않고 흘러흘러 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이것이 관성의 법칙인가요. 하긴 수시간 동안 줄곧 같은 동작을 반복했으니 그 룰을 적용받을 만 합니다.
다소 해이해진 - 아니면 불길한 - 생각이 듭니다. 지금부터 골인지점까지 걸으면 다섯 시간에 갈 수 있을까. 좀 어렵겠구나. 다섯 시간 내에 들어오지 않으면 그 이후는 교통통제를 해제한다니 나머지를 걷더라도 조금만 더 뛰고 걷자. 마침 내 옆을 지나 달려가는 역시 힘겨워 하는 주자가 있어 바로 뒤를 따라 다시 뛰었습니다. 좀 지나니 그가 다시 처지고 혼자 뛰게 되었습니다.
힘드니 다시 한 곡 읊조리자. 이 대목에선 <불의 전차>가 어울리겠구나. 마침 육상선수들의 실제이야기를 가지고 만든 영화의 주제가이기도 하니. 음악자체도 매우 사내스럽지. 음악부문 오스카상도 탔던가. 아님 말고. 노래 박자와 발을 맞추기도 좋으니 군가부르며 구보하는 기분이군. 힘들었으나 30킬로 통과. 2시간 55분 23초. 5킬로 구간기록 32분 1초.
5. 35km까지
페이스가 처지는 것이 기록에 슬슬 반영되나 봅니다. 이제 4시간 안에 뛰는 것은 물 건너 갔구나 했습니다. 사실 참가신청을 하며 내심으로는, 조선일보 춘천대회의 하프기록이 1시간45분이니 산술적으로 풀 코스는 3시간 30분인데 후반에 30분 정도 더 걸린다 하더라도 혹시 4시간에 들어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는데, 그것은 혼자만의 꿈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래도 지금부터는 내 평생에 달려본 적이 없는 거리이다 한걸음 한걸음이 모두 새로운 거리이니 뛰는데 까지 뛰어보자 하며 생각을 추스려도 역시 힘든 건 힘든 것이었습니다. 5킬로, 10킬로, 하프 다 있는데 왜 30킬로 종목은 없을까. 하프코스만 되어도 짧은 거리가 아닌데 여기서 바로 갑절거리가 되다니. 고스톱처럼 따,따,따,따블 하는 식으로 계산하길 좋아하는 사람이 종목을 만들었나. 그게 아니겠지. 풀코스가 너무 힘드니 절반으로 뚝 잘라주고 그것도 힘들다고 반 자르고 또 자르고 했겠지.
자주 고통을 의식해서인지 얼마 전에 자수한 ‘고문기술자’와 그에게 고문 받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떠올랐습니다. 읽거나 듣기만 해도 진저리가 처지는 고문 받은 사람들의 고통이 지금 나의 고통에 비할 것인가. 나는 앞으로 한시간 남짓이면 끝나는데 그들은 그 고통이 도대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막막함까지 겪어야 했겠지. 또한 나에게는 고통의 마지막은 바로 보람과 환희와 만족감으로 이어지는데, 그들에게 고통의 끝남이란 폭력에 못 이겨 강요받은 진술서에 지장을 찍음에서 – 혹은 죽음으로서 – 비롯될 진대 그 후에 찾아 올 굴욕, 모멸, 패배, 좌절감은 육체의 고통보다 못할 것인가. 거기에 비교한다는 자체가 그들이 받은 고통에 대한 모욕이다. 이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엄살부리지 말자.
다시 자세를 곧추세우며 뛰는데 이상하게 다리의 통증이 가시고 몸이 가벼워집니다. 원기가 새롭게 왕성해집니다. 어인 일인가. 어인 일 인가. 의아해 하는데 순간 무엇인가 머리를 망치로 쳤습니다.
지난 일요일(11월14일) 중랑천 둔치에서 처음으로3시간(30킬로 정도일 것입니다)을 뛰어봤는데, 사실 뛰기 전에 3시간을 뛸 수 있으면 풀 코스 참가하고 못 뛰면 포기하기로 작정했었습니다. 다행히 3시간을 뛰고 좀 더 뛰어보려 했으나 다리가 말을 듣지 않은데다 더 무리하면 1주일 남기고 몸을 망칠지 모르겠어서 그만 두었습니다.
그때 하늘을 보면서 세상을 떠난 형에게 부탁했습니다. ‘30킬로까지는 내 힘으로 뛰겠는데 그 이후에는 자신이 없어요. 힘을 내도록 도와줘요. 내 기필코 끝까지 뛰고 완주메달을 바칠께요.’ 아아 이것이었습니다. 틀림없습니다. 하나뿐인 동생을 끔찍이도 위했던 형이 지켜보다가 힘을 넣어 준 것이었습니다.
고백컨대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나왔습니다. 엉엉 울고 싶었습니다. 달리는 호흡과 맞지 않았던지 숨이 찰 정도로 한동안 흐느꼈습니다. 좋다. 열심히 뛰자. 뛰다 죽어도 포기하지 말자. 어느 정도 거리를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덕택에 어쨌든 이 구간은 걸었던 기억이 없고 제법 페이스 유지하며 뛴 것 같았습니다. 35킬로 통과. 3시간 26분 53초. 상당히 처져야 할 구간기록이 31분 30초로 이전 보다 오히려 줄어든 것도 이를 말해줍니다.
6. 40km까지
35k-40k 구간은 마의 구간이라고들 합니다. 아마 저승입구를 수없이 왔다갔다 하는 모양이지요. 저의 이 컨디션으로 능히 짐작하겠습니다. 현저히 힘이 떨어집니다. 이제 버티는 데에도 한계가 온 것 같습니다. 영계에서도 한정없이 힘을 보태주지는 않고 스스로 돕는 자만을 그 노력한 만큼만 돕는 모양입니다. 하긴 지금까지 온 것도 대견하지요.
99년 8월 16일. 그날을 잊지 못합니다. 딸아이들이 다니는 집 근처의 초등학교 운동장을 처음으로 30바퀴 뛰고는 (약 6킬로쯤 될 겁니다) 어제는 나라의 광복절 오늘은 김성연의 광복절이라고 감격에 겨워했던 날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10월 24일의 춘천마라톤 하프코스 완주를 목표로 삼고 나름대로 열심히 달렸습니다. 좋아하던 술도 일주일에 한번 이상 하지 않으려 무던히도 애썼는데 저로서는 엄청난 변화였습니다.
그 이후 백일쯤 지났군요. 하지만 경력이 짧고 절대연습량이 충분치 않음에서 오는 한계는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래도 그 동안 시커멓게 빠져버린 발톱들, 가라앉을 틈도 없이 덧나곤 했던 피물집들을 생각하면, 비록 고지가 바로 저기 뵈진 않으나 ‘예서 말 수는 없다’ 입니다.
흔히들 이야기 하지만 마라톤은 가장 원시적인 운동이라고 합니다. 그 원시적이란 말은 그저 팔 흔들며 달리는, 짐승의 그것 보다 결코 진화되지 않은, 반복적인 동작을 요구하는 단순성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고, 그 기원이 오래된 것에서일 수도 있을 것이고, 다른 보조장비나 동료선수를 필요치 않음에서일 수도 있고, 달려야 하는 거리나 걸리는 시간의 야만성 - 혹은 무식함 - 에서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 맞는 말이며 오히려 이런 모두를 다 함축한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마라톤의 원시성이란 몽매에 가까운 그 정직함입니다. 마라톤은 전적으로 연습이 결과를 말한다고 하는데 철저히 동감합니다. 마라톤은 운이 좋아서 혹은 나빠서라든지 게임에는 이기고 승부에는 졌다 혹은 이변이네 플러스 알파네 하는 말장난을 전혀 허락치 않습니다. 부지런히 많이 뛰면 그만큼, 술 마시고 게으름 부리면 그만큼, 잘 뛸 수 있거나 못 뛰게 되는 운동입니다. 인간의 극한을 이토록 장시간 시험하는데 운이니 당일의 컨디션이니 하는 것은 터럭과도 같겠지요. (초보인 주제에 산전수전 다 겪은 도사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군요.)
이삼십 미터 간격으로 앞뒤에서 비슷한 처지의 주자들이 뛰다 걷다 하는 것이 보입니다. 저들은 이번이 몇 번째 풀코스일까. 입문한 경위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마찬가지로 마라톤에 미친 사람들이겠지. 어떤 생각을 하면서 뛰고 있을까. 그러다 바로 앞의 사람이 그만 털썩 - 비틀거리는 동작도 없었습니다 - 주저앉아 버립니다. 무너진다는 말이 더 적당할까요. 내 저 고통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나 힘들어서 걷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어찌 엉덩이를 깔고 주저앉을 수야 있으랴. 저러지는 말아야지 다짐하며 뛰다가 우습게도 몇 십 미터도 못 가서 저도 앉아버렸습니다.
그 순간은 갈 때까지 갔구나 했지만 그 상황을 ‘최악’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이후에도 시간이 갈수록 매 순간이 그 이전의 상황에 비해 더욱 최악이었으니까요. 걷다가 뻣뻣한 다리로 다시 뛰는 데에도 상당한 괴로움을 감수해야 하는데 일단 앉고 나니 일어서는 것 조차를 못하겠습니다. 펴진 관절을 접는 것이나 접어진 관절을 펴는 것이나 똑같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상상 속에서 악마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너 아무도 몰래 한 1킬로 정도 차로 이동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래? 그러나 대답은 단호히 ‘아니다’ 였습니다. 끙 하며 일어나는데 허리까지 쑤십니다. 오른쪽 발목으론 이제 경사면 말고 평지를 딛고는 다섯 걸음도 못 옮길 정도로 시큰거립니다. 양발에 천근추를 단 것 같이 비척거립니다. 나아가는 길을 방해할 때 발목을 잡는다 라는 말을 쓰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어쩌다가 연호해주는 고마운 시민이 있어도 도무지 응대를 할 기력이 남아있질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비친 내 표정이 등신불을 연상케 할 정도로 찌푸리지나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프 때는 일일이 고맙다는 말을 했지만, 지금은 겨우 손짓으로만 대답합니다. 이해들 해주겠지요. 이 구간에서 세 번쯤 걸은 것 같습니다. 어쨌든 죽을둥살둥 30분 이상 뛰었는데 40킬로 표시가 안 보입니다. 다리는 끊어질 듯 해도 그 표시만 뜨이면 마지막 힘 좀 써 보려고 하는데 말입니다.
필리피데스였던가요. 승전보를 전하고 쓰러져 죽었다는 아테네의 그 병사에게도 아마 이 구간이 가장 힘들었을 것입니다. 뜀박질에 자신이 있었을 그에게도 42킬로는 역시 긴 거리였나 봅니다. 마지막 몇 킬로는 혼이 절반쯤 나간 상태에서 뛰었을 것이구요. 언젠가 이차대전 때 영국군 장군이던 몽고메리가 쓴 <전쟁의 역사>에서 고대 그리이스에는 기병이 없었다는 구절을 읽고 아항, 이래서 그 병사가 그 거리를 말을 타지 않고 무식하게도 달렸어야 했구나 생각했었습니다. 근데 이 똑같은 짓을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제가 돈 써가면서 하고 있군요.
거리표시 깃발은 없고 길바닥에 흰 페인트로 40km라고 씌어 있는 것을 설핏 보았습니다. 지나칠 뻔했습니다. 4시간3분. 몇 초인지는 생각나지 않습니다. 구간기록 36-37분 정도. 드디어 4시간 넘었으나 시간당 10킬로 씩 뛰기로 했으니 죽이 되었든 밥이 되었든 레이스 운영은 이럭저럭 된 셈입니다.
7. 피니쉬까지
나머지 2킬로를 12분에 뛸 수 있으면 좋겠다. 어쨌든 거의 온 것 아닌가. 이제는 걷다가 안되면 기어서라도 갈 수 있겠지.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비록 뛰다 걷다 했지만 그리고 뛴다고 뛰는 이 속도가 평소 걷는 속도 보다 빠를 것이 없었겠지만 10분이 지나도 골인지점 비슷한 것이 저 멀리로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충주나 춘천 때에는 1-2킬로쯤 남기고 연도에서 박수 쳐주고 힘내라고 격려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정말 힘이 났었는데 응원은 없어도 좋으니 골인지점이 보여야 젖 먹던 힘을 내든 최후의 발악을 하든 할 터인데 이건 뭐 가도 가도 끝이 없으니 진이 빠지더군요.
아까 40킬로 지점이 잘못된 것인가. 공황이 생깁니다. 지금까지 뛴 것 보다 열 배는 더 힘듭니다. 약 200미터쯤 앞에 사이좋게 달리는 저 두 사람이 다대포 해수욕장으로 홱 하고 꺾여서 시야에서 사라지기를 이제나저제나 하며 학수고대하고 있는데 왜 계속 굳세게들 달리고 있는지요. 어쨌든 저들은 나 보다 저만큼이나 더 갔구나. 그 이백 미터 가량 앞서고 있다는 것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저들이 뛰는 지점까지 걷지 않고 갈 수 있을까. 차라리 보지 말고 가자며 바닥만 보고 뛰다 걷다 삼추(三秋)같은 몇 분이 지나 이제는 사라졌겠지 하고 고개를 들면 원망스럽게도 여전히 저 앞에서 씩씩하게 달리고 있었고, 또 그만큼 부러웠고. 다시 의식적으로 무심히 한동안 뛰다 걷다 하고 나서 이제는 설마 하면서 고개를 들어보면 다대포는 여전히 차안(此岸)에 부재(不在)하고.
피가 마르고 속이 타고 애가 끓고 있습니다 지금. 다리가 저의 몸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주리 틀리고 압슬 당해 너덜거리는 다리를 다른 몸들이 끌고 가는 것일 겝니다 지금.
아 드디어 다대포 입구가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힘이 솟구칩니다.
골인하고 숨쉴 기력만 남으면 된다고 누가 그러지 않던가. 뛰자. 부서지자. 해병전우회 복장을 한 사람이 ‘다 왔심더. 힘 내이소’ 했던 것 같았고, 피치를 올리며 해수욕장 입구로 틀었습니다. 바로 피니쉬 라인이 보입니다. 정말 다 왔구나. 가슴에서부터 주먹만한 것이 치밀어 올라 목울대를 뻐근하게 합니다. 다른 레이스에서처럼 운동장 트랙을 반 바퀴 정도 돌고 골인하는 것이었다면 도는 동안 아마 눈물이 핑 돌았을지 모르겠습니다. 드디어 결승점 통과. 마침내 해냈습니다. 이 감격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으며 이 벅찬 기분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습니까. 이 순간만큼은 나는 영웅입니다. 나 자신에게도 어느 누구에게도 자랑스럽습니다.
8. 좀 긴 에필로그와 뱀발 그리기
무슨 육상회라든가 무슨 클럽이라든가 하는 모임에 속해 있지 않아서, 등 두드려 주고 축하해주는 사람들이 없는 ‘감격시대’는 더 이상 연장되지 못하고 짧게 끝났습니다. 걸음 옮기기가 만만치 않아서 어기적거리며 물이 있는 곳으로 가서 맛좋게 벌컥벌컥 마셨습니다. 감로수였습니다. 그리고 완주 메달을 받고 기록증을 받았습니다. 4시간 28분 10초였습니다. 저의 시계로는 4시간 29분이 좀 넘었던데 까짓 1-2분은 중요치 않습니다. 어느 쪽이든 목표했던 4시간 30분 안에 든 것이니까요.
집으로 전화했습니다. 큰 아이가 받았습니다. “수정아, 아빠 뛰었다.” “정말?…야아아!!”하며 환호를 하고 외칩니다. “엄마, 아빠 다 뛰었대.” 마누라가 전화를 바꾸었는데 역시 좋았던 모양입니다. 상당히 감격적이고 같이 기뻐하는 목소리로 (역시 마누라는 마누라입니다) 수고했고 어쩌고저쩌고 잘 올라오랍니다.
목욕을 마치고 작은 아버지댁에 가서 저녁식사를 하며 밤차에서 푹 잘 요량으로 소주를 한 병하고 반쯤 더 마셨습니다. 그러고서 밤11시 기차를 타고 올라오는데 이상하게도 잠이 지독히도 안 오더군요. 4시간 반 동안 육체를 혹사하고 소주를 적잖이 마시고 밤차인데다 잠 청하려고 책을 들어다 보고있으니 잠이 당연히 와야 할 여건이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을 터인데 말입니다.
이거 정말 고역이었습니다. 몸은 녹초가 되었는데 잠은 안 오고, 다리라도 좀 높이 둘 수 있으면 좀 나을 텐데 그것도 여의치 않고, 술을 마셔 개운치 않은 머리로 책 내용도 잘 들어오질 않아 시간도 잘 안가고, 객실 밖으로 나가봐도 달리는 객차 속으로 들이치는 밤공기가 만만찮게 차가와 오래 있을 수도 없고, 자리에 돌아오면 주위의 코고는 소리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실은 오히려 내가 통나무처럼 쓰러져, 술과 피곤으로 엄청나게 시끄럽게 코를 골아 주위의 잠을 방해하여 눈총을 받지 않을까 했는데, 그야말로 기우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저의 꼬심에 넘어가 같이 몇 번 대회에 출전했던 캐나다인 친구Kent에게 했더니 몸이 극도로 피로할 경우 회복을 위해 많은 엔돌핀이 생성되는데 이 것이 잠을 안 오게 한다는 것입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이나 수긍이 갔습니다.)
서울 도착하여 아침을 먹고 제대로 누워서 한 잠 자고 (회사에는 미리 하루 휴가를 냈습니다) 형의 산소를 찾았습니다. 메달을 바치면서 절을 하는데 다시 눈물이 나오더군요. 다 큰 어른이.
달리기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뭐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느 날인가 - 외밭을 지나는 것은 아니었는데 하여간 - 구두 끈을 고치려고 몸을 숙이는데 보기 싫게 나온 배 때문에 허리를 접기가 거북했었습니다. 이건 너무하구나 하고 충격을 받아 동네 체육관엘 등록하고 거의 매일 딴에는 부지런히 운동을 했는데 허리둘레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달리기가 살 빼는 데는 가장 효과적임을 모르는 바가 아니어서 트레드밀에서 10분-15분 씩 뛰었었지요. 트레드밀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제자리에서만 뛰는 것이라 일정거리를 이동했다는 기분이 덜해서인지 조금만 뛰면 지루했습니다. 또 보통 내 모습을 보면서 뛰게 되는데 더운 날 15분쯤 뛰게 되면 땀이 사실 많이 나게 마련이고, 그 땀에 젖은 모습에 적당히 만족하고 대충 그만 두게 되기도 하며, 다른 운동도 좀 해야지 싶으면 언제든 쉽게 손을 뻗어 작동만 중단시키면 되니 그 이상 시간을 늘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그간 체육관에서 연습했으니 깜냥으론 30분쯤 어렵지 않게 뛸 줄 알았으나 처음에는 10분만 넘어가면 헉헉 했습니다. 저 역시 중 고등학교 시절 체력장 천 미터 오래 달리기가 가장 힘든 종목으로서, 한바퀴 반, 그러니까 삼백 미터만 달리면 그때부터 지옥이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어쨌든 그래도 매일 한두 바퀴씩 늘이는 재미가 생겼고 육체의 한계를 매일 갱신한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었지요.
장거리 달리기를 타고난 사람이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천부적으로 못하게 태어난 경우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가장 솔깃하게 넘어가게 된 말이며 남을 끌어 들이기 위해 자주 들먹이는 말이 있습니다. 5킬로를 걸을 수 있는 사람은 5킬로를 뛸 수 있고 5킬로를 뛸 수 있는 사람은 10킬로를 뛸 수 있으며 10킬로를 뛸 수 있는 사람은 20킬로를 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게으름 부리지 않고 꾸준히 연습하면 여기까지는 3-4개월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20킬로를 뛸 수 있는 사람은 언젠가 풀 코스를 뛸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연습을 얼마나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저의 경우는 한 3개월간 매주 40킬로 정도 뛰었는데 사실 제대로 풀 코스 뛰는 사람들은 매주 70-80킬로 정도를 뛴다고 합니다.
제가 이번에 풀 코스를 뛰면서 힘들었을 때 괜히 뛰었다라든지 1킬로나 오백 미터만이라도 누가 대신 뛰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 적이 있었던가요. 없었습니다. 이런 고통이 있는 줄 미리 알았어도 뛰었을까요. 뛰었을 것입니다. 다시 이 고통을 감수하고 뛰겠냐구요. 뜁니다.
오히려, 다음에는 좀 더 잘 뛰기 위해서 더 연마하겠습니다. 다음에 이보다 더 괴롭더라도 뜁니다. 어떤 시인은 ‘왜 사냐건 웃지요’라고 했었지요. 대체 왜 뛰냐고 물으신다면 저도 준비된 대답이 있습니다.
첫댓글 편집 했는데도 길다..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 길으면 기차 ♫♬.. 감회가 새롭겠다.... 서화에 있었어? 난 귀둔에 있었는데...
고생 했구먼
오빠글 읽는데 사부수리했어요.58개띠방이전의 오빠는 꽤나 진지하셨는데....
흐미, 휴~ 티물아 고생한 김에 한번 더, 한 페이지 정도로 요약 안될까? 달리기는 4시간에 후기는 40시간이요, 부산에서 달리고 후기는 강원도에 그리스 영국 미국까지 망라 되어, 고대~현대까지...전주 울트라 뛰면 책 한권 나오겠다.
시작은 분명 내가 빨랐는데 ( 2001년 동아 4시간 10분대 ? ). 지금은 ?? 생각을 말자 !!
읽다 배고파 새참 좀 먹고 와서 읽어야것다
나중에 " 티무르는 달렸다" 함 써봐 .....대박예감이 든다. 요시카 피셔 버전으로
이제야 봤다........형에게 바친 메달이었기에 더욱 값진 것 같구나..그리구 ....맞아 .그 가사를 왜 안 외우고 왔는지..보초서면서 나두 생각한 적이 있었지.....마라톤!!설렁설렁이 아닌 니가 더 멋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