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우리 사회는 장애인 복지를 '결핍의 채움'으로 정의해왔다.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것. 불편한 것을 보완해주는 것. 모자란 것을 지원해주는 것. 그것이 복지의 전부인 양, 우리는 빵을 나눠주는 일에만 몰두해왔다.
틀린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인간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 이것은 성경의 언어이기 이전에, 수천 년 인류가 몸으로 증명해온 진실이다. 배가 불러도 외로울 수 있고, 지원을 받아도 존엄하지 않을 수 있다. 생존은 보장됐지만 삶은 텅 빈 상태 — 바로 그 공백을 메우는 것이 문화다.
선진국의 장애인 복지가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른 지점이 여기에 있다. 그들은 일찌감치 깨달았다. 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시혜가 아니라 참여라는 것을. 보호가 아니라 무대라는 것을.
휠체어를 탄 관객이 공연장 맨 뒷자리 구석에 배치되는 나라와, 무대 위에서 휠체어를 탄 연주자가 기립박수를 받는 나라. 이 두 나라의 차이는 예산의 차이가 아니다. 철학의 차이다.
문화 접근이란 단순히 공연장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일이 아니다. 장애인이 문화의 소비자가 되는 것을 넘어, 생산자가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그림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듣는 것을 넘어 음악을 만들며, 이야기를 읽는 것을 넘어 이야기를 쓰는 것. 그 과정에서 인간은 수혜자가 아닌 창조자로 자신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 순간, 복지의 패러다임이 바뀐다.
동정에서 존중으로. 시혜에서 권리로. 보호에서 참여로.
빵은 오늘 하루를 살게 한다. 그러나 문화는 내일을 살고 싶게 만든다. 빵은 몸을 지탱하지만, 문화는 영혼을 세운다.
진정한 선진 복지란 장애인이 더 많은 지원을 받는 사회가 아니다. 장애인이 더 많은 무대를 갖는 사회다. 그 무대 위에서 웃고, 울고, 창조하고, 갈채받는 사회다.
우리는 아직 빵을 나누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제는 무대를 나눌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