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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
‘힌두’라는 말은 ‘인도’라는 말과 같다. 지금 인더스 강 지역을 옛날에 ‘신두’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인디아·인더스·힌두 등의 말이 파생했다. 힌두교란 인도에서 발생한 종교라 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 베다의 권위를 인정하는 전통적 종교만을 일컬어 힌두교라 한다. 지금 인도인 80% 이상이 따르며, 네팔인 거의 전부가 힌두교인이다.
힌두교는 다른 종교와 달리 창시자가 없다. 이 말은 힌두교가 현존하는 세계 종교 중에 가장 오래되고 복잡한 종교라는 뜻이다.
기원전 3000~2000년경 인도 서북쪽에 있는 인더스 강 연안 계곡에 도시 국가가 상당수 있었으며 이 중에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의 문명에 버금가는 우수한 문명인 모헨조다로와 하라파의 문명이 있었다. 이 인더스 계곡 문명이 힌두교 전통에 공헌한 것이 두 가지인데, 첫째는 여성성 혹은 창조성을 강조한 것과 둘째로는 만물이 한 번 죽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계속 돌고 돈다고 보는 윤회 사상을 남겨준 것이다.
‘베다’는 인도로 침공해 온 아리안족이 신에게 드리는 예배 의식을 위해 여러 노래를 지어 부르고 나중 이를 모은 것이다. 그 중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것이 ‘리그 베다’이다. ‘리그 베다’는 1000여 개의 송가나 시편으로 이루어졌다. ‘리그 베다’에 나타난 종교 사상은 막스 뮐러에 따르면 ‘자연 숭배’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자연’은 고대인 나름대로 어떤 성스러운 힘이 있다고 느낀 대상물이라는 뜻이다. 대략 76개의 대상물이 등장하며 이런 것은 의인화되고 신격화되어 찬양과 기도의 대상이 된다. 이런 신들 중에 가장 중요한 신은 폭풍의 신 ‘인드라’였다.
이처럼 ‘리그 베다’에서는 많은 신을 인정하되 그 중 어느 한 신을 골라 섬기는 신앙 형태를 ‘단일신론’이라 한다.
‘리그 베다’에 나오는 찬송과 기도를 보면 당시 사람들은 주로 건강, 장수, 부귀다남, 풍작, 전쟁 승리 등 현실적 번영을 희구하고 있다. 이런 소원을 성취하는 수단으로 신들에게 기도 드리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기원전 10세기경 베다 후기에 새로 생겨난 문헌으로 ‘브라마나스’가 있다. 이 문헌은 제사장 계급인 브라만이 제사를 지낼 때 필요한 ‘제사 요람’같은 것이다.
그 후 기원전 9~7세기에 ‘우파니샤드’라는 문헌이 생겼다. ‘우파니샤드’란 학생이 스승 가까이에 경건히 앉아서 우주와 인생의 깊은 뜻을 찾아 서로 대화한 기록이라는 뜻이다.
‘우파니샤드’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인도 및 세계 종교사에서, 최초로 대화체로 된 문헌이라는 점과 대화를 이끄는 스승은 제사장 계급에 속한 사람뿐 아니라 무사 계급에 속한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다.
‘우파니샤드’에서는 우주의 궁극 실재인 ‘브라흐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한 것으로 강조된다. 브라흐만은 ‘이것이다’ 혹은 ‘저것이다’ 말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다. 또 단순히 추상적인 원리만도 아니다. 바로 나 자신의 본질이며 참된 자아 자체다. 나 자신은 바로 그 브라흐만이 구체화된 상태로서 “나는 곧 브라흐만이다.”
이렇게 내가 곧 브라흐만이요, 브라흐만이 나라는 사싱을 모르는 것이 바로 무명이요, 이를 몸소 체득해서 깨닫는 것이 바로 목샤(해탈)라고 본다.
이제 인도 종교사에서 경전을 신의 직접적인 계시로 보는 시대는 지나고 종교적 고전이 나타나는 시대에 들어온다. 이렇게 새로이 고전으로 나타난 문헌 중에 기원전 3세기~기원후 3세기경에 생긴 ‘마누 법도론’이 있다. 이것은 힌두교인의 실제 종교 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문헌이다. 이 책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사성 제도, 삶의 네 단계, 삶의 네 가지 목적 등이다.
‘마누 법도론’은 이처럼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이를 성실히 지킬 때 이상적인 삶이 가능하다고 가르친다.
‘바가바드 기타’는 인도 종교사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경전이다. ‘바가바드 기타’는 ‘주님의 노래’라는 뜻이다. ‘바가바드 기타’는 ‘신애’가 종교 생활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경전이다. ‘바가바드 기타’에서는 여자도 슈드라도 비쉬누 신의 현현인 크리쉬나를 경배하고 사랑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보장한다. 그리고 비쉬누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처럼 신이 여러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을 아바타르(화신)라고 하는데 이런 사상은 지금까지 힌두교에서 아주 중요한 사상으로 작용한다.
‘베다’로 시작된 힌두교의 고전 시대는 ‘바가바드 기타’와 함께 끝이 난다. 이후 고전 이후의 힌두교에서 생겨난 중요한 종교 현상은 첫째가 삼신 경배이고, 둘째는 철학적 학파들이라 할 수 있다.
고전 이후 힌두교에는 ‘세 신’이 크게 부각된다. 첫째는 브라흐마로 창조의 신이요, 둘째는 쉬바로 파괴의 신이요, 셋째는 비쉬누로 보존의 신이다. 이 신 중에 하나를 믿고 헌신하면 목샤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다.
브라흐마는 비록 창조신으로서 존경받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에게 경배하는 사람은 없다. 이런 현상은 세계 여러 종교에서 발견되는 일반적 현상이라 볼 수 있다. 창조신은 창조를 마친 후 일단 전면에서 물러나 잊혀지는 것이 보통이다.
쉬바는 파괴와 죽음의 신이다. 쉬바가 파괴의 신이면서 경배를 받는 것은 파괴가 건설을 위한 전제 조건이라는 뜻으로 좋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쉬바는 춤의 신이기도 하다. 그의 춤 때문에 우주 생성과 파괴와 리듬이 가능하다고 한다. 쉬바는 식물, 동물, 인간의 생식을 관장하는 신이기도 하다.
쉬바를 섬기는 사람들은 쉬바를 실제적으로 창조의 신, 파괴의 신, 보존의 신을 다 합한 신, 심지어 우주 만물의 궁극 실재 자체라고 믿는다. 인간은 무지 때문에 쉬바와 떨어져 살고 있는데, 지혜나 신애를 통해 쉬바와 다시 하나가 됨으로써 목샤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한다.
쉬바뿐 아니라 쉬바와 짝을 이루는 여신들도 경배의 대상이다. 이런 여신들 중에 가장 중요한 신은 칼리다. 칼리는 검은 피부의 무시무시한 여신으로 묘사된다. 쉬바의 아들로 가네샤가 있다. 사람 몸에 코끼리 머리를 한 신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을 상징한다.
비쉬누는 보존의 신이다. 사랑과 자비와 용서의 신이기도 하고, 장난과 유희의 신이기도 하다. 비쉬누는 인류를 위한 사랑으로 세상이 혼탁해질 때마다 인류를 돕기 위해 여러 모습으로 인간에게 나타난다. 쉬바를 경배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비쉬누를 섬기는 사람들도 비쉬누를 실제적인 궁극 실재로 경배한다.
비쉬누의 짝이 되는 여신은 락스미로서 풍요와 부와 승리의 여신이다. 흔히 비쉬누와 인간을 연결짓는 중재의 역할도 맡는다.
고전 후기 시대에 나타난 종교 현상은 신을 숭배하는 것만이 아니라 철학적으로나 영적으로 깊이 천착함으로써 목샤에 이를 수 있다는 생각도 있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형성한 종교 내지 철학 학파가 크게 여섯이었는데, 쌍키야 학파·요가 학파·미만사 학파·바이세시카 학파·나야 학파·베단타 학파가 그것이다.
쌍키야 학파는 요가 학파와 더불어 쌍둥이 학파라 하는데, 쌍키야가 이론을 제공하고 요가가 실천 방법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우리에게 있는 근본 문제는 정신과 물질이 뒤섞인 상태인데, 문제를 없애는 길은 물론 이 둘을 ‘구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요가 학파는 정신과 물질을 구분하는 실제적인 방법을 제시하겠다고 주장하면서 나왔다. 요가 학파에서 가르치는 요가는 기원전 2세기경에 살았던 파탄잘 리가 ‘요가경’이라는 문헌에 정형화해 놓은 ‘라자 요가’를 말한다. 요가는 근본적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일컫는다.
베단타 학파의 ‘베단타’는 ‘베다의 끝’이라는 뜻으로 이 학파의 기본 사상이 베다의 끝인 ‘우파니샤드’에서 나왔음을 시사하면서 동시에 그 완성이라는 말이다. 베단타 학파는 그 강조점에 차이 때문에 세 개 학파로 나뉜다.
첫째, 불이론 베단타 학파는 샹카라가 창시한 학파로 브라흐만이 유일무이한 절대적 궁극 실재임을 강조한다.
둘째, 수정된 불이론 베단타 학파가 있다. 창시자는 라마누자이다. 라마누자는 브라흐만을 ‘주님’ 곧 인격신으로 경배하는 것이 오히려 가장 좋은 길이라고 주장했다.
셋째, 이원론적 베단타 학파는 마드바가 창시자이다. 그는 라마누자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오직 브라흐만이 실재라는 생각을 버리고 브라흐만과 세계가 인간이 각각 분리되었다고 주장했다.
힌두교의 궁극 목표는 목샤를 얻는 것이다. 힌두교뿐만 아니라 불교 등 인도에서 생긴 종교는 공통적으로 윤회를 믿는다. 이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을 목샤 혹은 해탈이라 하고, 이것이 바로 종교의 궁극 목표이다.
힌두 전통에서는 이 궁극 목표를 이루는 길이 보통 세 가지라고 한다. 첫째는 행동의 길, 둘째는 신애의 길, 셋째는 지혜의 길이다.
첫째 행동의 길이란 계율이나 도덕 규범을 잘 지키고 이웃에 선행을 많이 하여 구원의 길에 이르려는 것이다.
둘째 신애의 길이란 어느 신을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사랑하고 받드는 일이다. 세 가지 길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택하는 길이기도 하다.
셋째 지혜의 길이란 궁극 실재를 직접 꿰뚫어 보는 통찰과 직관과 예지 등을 통해 구원에 이르려는 것이다.
이후 17세기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로 다스리기 시작하면서 서양 문명과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받는다. 힌두교 내에서도 이에 대응하여 개혁의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이렇게 일어난 개혁 운동의 선구자는 람 모한 로이였다. 로이는 남편이 죽으면 여자가 남편과 함께 화장 당하는 수티 제도와 열 살도 채 안된 여자 아이를 중년 남자와 결혼시키는 어린이 조혼 제도를 선교사와 협력하여 불법화했다.
종교적인 면에서도 가장 영향력을 끼친 개혁가는 라마크리슈나였다. 그는 힌두교·이슬람교·그리스도교를 모두 체험해 보고, 결국 이 종교들이 근본적으로 같은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가르쳤다.
현대 힌두교 개혁자로서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은 간디였다. 그는 힌두교뿐 아니라 자이나교·이슬람교·조로아스터교, 그리고 그리스도교에서 특히 예수의 산상수훈에 영향을 받고, 톨스토이·소로·퀘이커교 등에 대해서도 잘 알았다. 이런 다양한 종교적 전통에서 얻은 지혜와 이상에 따라 사회를 개혁하고 인도 독립을 이루려고 노력했는데, 이를 위해 그가 채택한 원칙이 아힘사와 사탸그라하였다.
아힘사는 일체의 생명에 해를 주지 않는 것, 생명을 ‘살림’, 생명을 경외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탸그라하는 우리 행동이 감정이나 이해 관계에 좌우될 것이 아니라, ‘참된 현실을 진정으로 꿰뚫어 본’결과에서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다.
힌두교는 주로 인도에 있는 종교이지만,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에도 있고, 특히 최근에는 인도인이 서양으로 이민해 감에 따라 서양에서도 많이 믿는다. 힌두교의 특징은 너무나 종교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강한 종교적 성향이 좋은 면도 많지만, 부정적인 면도 없지 않다. 그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이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충돌을 비롯한 종교간 분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