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재 시집, {나는 빛이요 파동이요 생명이므로} 출간
정동재 시인은 서울에서 태어났고, 2012년 계간 {애지}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는 {하늘을 만들다}와 {살리는 공부}가 있다. 첫 번째 시집인 {하늘을 만들다}가 상징과 은유, 풍자와 해학을 통하여 ‘새로운 하늘’을 창출해냈다면 그의 두 번째 시집인 {살리는 공부}는 그의 ‘삶의 철학’을 통하여 ‘우주’와 ‘인간의 조화’를 역설하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정동재 시인이 그의 세 번째 시집 제목을 {나는 빛이요 파동이요 생명이므로}라고 명명한 것은 그의 시적 주제가 ‘양자역학의 시학’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양자역학이란 뉴턴의 역학이론의 반대방향에서 미시적인 세계를 다루는 것을 말하지만, 그러나 그의 ‘양자역학’은 인위적이 아닌 ‘무위자연’의 ‘삶의 철학’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발자국 쫓다 보면 빛과 빛을 합성하는 작업 중이다
뭔가 큰일 벌이고 있다
DNA가 있어서 천명이 있어서
빛에 싹이 나고 잎이 나는 것을 보라
감자에 싹이 나고 잎이 나는 것을 보라
초록 풀이나 미역 뜯었다는 바닷가 바위 공룡 발자국을 보라
익룡 빼곡했다는 하늘 고개 들어 보라
하루도 쉬지 못하는 태양 숨은 붙은 것인지 확인하여 보라
폐지 한가득 손수레를 끄는 최후의 보루
등골이 다 빠져 활처럼 휜 허우적거리는 걸음걸이
빛의 발걸음을 보라
다 저녁에 이마 땀 한번 제대로 훔치고
하늘 한번 보는
먼저 가신님 허공에 그리고 섰을지도 모를
그렁그렁 한 눈망울 읽어 보시라
빛이 사람이 되기까지
아버님 어머님 우리 고운 님 되기까지
대견한 우리 아드님 되기까지
빛이 어찌어찌 고명하여지는지 눈여겨 보라
빛이 소멸하지 않는 빛님으로 신위神位에 모셔지기까지 또렷이 찍힌 발자국을 보라
환장하도록 고운 저녁노을이 감탄사 외에는 말을 잇지 못하게 한다
빛의 속성이란 그런 것
뭔가 분명 천지개벽시킬 큰일 벌이고 있다
*양자역학
---[나는 빛이요 파동이요 생명이므로—빛 발자국] 전문
태초에 말씀(언어)이 있었고, 전지전능한 신이 이 말씀으로 하늘과 땅과 우주와 모든 만물들을 창조했다고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기독교와 인간중심주의의 대사기극이라고 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태초에는 빛(불)이 있었고, 이 빛에 의하여 만물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물질은 빛(에너지)이고, 빛은 물질이다. 현대 물리학에서 빛은 파동이고 입자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빛은 입자와 입자(원자와 원자)의 총체이며, 그 움직임(파동)이라고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물질은 빛이고, 빛은 파동이고 생명이다. 빛에 의해서 밤과 낮이 생겨나고, 빛에 의해서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개’가 뜬다. 빛에 의해서 물이 흐르고, 빛에 의해서 물이 증발한다. 빛에 의해서 모든 생명체들이 태어나고, 빛에 의해서 시와 음악과 그림과 생활운동이 일어난다. 정동재 시인이 그의 세 번째 시집 제목을 ‘나는 빛이요 파동이요 생명이므로’라고 명명한 것은 그의 시적 주제가 ‘양자역학의 시학’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양자역학이란 뉴턴의 역학이론의 반대방향에서 미시적인 세계를 다루는 것을 말하지만, 그러나 그의 ‘양자역학’은 인위적이 아닌 ‘무위자연’의 ‘삶의 철학’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詩를 시라고 바꿔 쓰고 나면
글로 목탁 소리 낼 수 있어 좋다
글로 찬성 소리 낼 수 있어 좋다
글로 그림 그릴 수 있어 좋고
글로 영화 찍을 수 있어 좋다
수작 한 편 쓴 것 같아 다시 살펴보면
정답 없는 수학 문제를 풀다
정답을 못 찾은 것 같아서 좋다
점 하나 찍은 마침표에서
11차원 우주 물리학 이끌어내는 것 같아 좋고
행간 한 줄로 시작되는
천국의 계단 기하학 연결한 것 같아 좋다
부족한 내가 시 한 편 쓰고 나면
부족한 내가 별 하나 그리고 나면
시가 내게
안부를 묻는 것 같아 좋고
서툰 사랑에
서툴러도 된다고 고백해 주는 것 같아 좋다
시 한 편 쓰다 보면
온전히 나를 이끌어주려 하신다
―「시」([살리는 공부]) 전문
詩를 시라고 바꿔 쓰고 나면 글로 목탁 소리를 낼 수가 있고, 詩를 시라고 바꿔 쓰고 나면 글로 찬성 소리를 낼 수가 있다. “글로 그림을 그릴 수가 있어 좋고” “글로 영화를 찍을 수가 있어 좋다”. 좋은 시 한 편 쓰고 나면 “정답 없는 수학 문제를 풀다/ 정답을 못 찾은 것 같아서 좋”고, “점 하나 찍은 마침표에서/ 11차원 우주 물리학을 이끌어내는 것 같아” 좋다. “행간 한 줄로 시작되는/ 천국의 계단 기하학 연결한 것 같아서” 좋고, “부족한 내가 시 한 편 쓰고 나면/ 부족한 내가 별 하나 그리고 나면// 시가 내게/ 안부를 묻는 것 같아서 좋”다. “서툰 사랑에/ 서툴러도 된다고 고백해 주는 것 같아서 좋”고, “시 한 편 쓰다 보면/ 온전히 나를 이끌어주려 하신다.”
시는 빛이고, 빛은 빛과 빛을 결합시켜 “천지개벽”의 “큰일”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DNA가 있어서 천명이 있어서/ 빛에서 싹이 나고 잎이” 나고, 그리고 빛이 있기 때문에, “감자에서 싹이 나고 잎이” 난다. “초록 풀이나 미역을 뜯었다는” 공룡도 그렇고, “폐지 한가득 손수레를 끄는” 이 땅의 할머니들도 그렇다. 빛과 빛의 결합에 의하여 사람이 탄생하고, “아버님 어머님 우리 고운 님”이 탄생한다. 빛의 발자국은 시의 발자국이고, 시의 발자국은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 빛님의 발자국이다. 빛은 “환장하도록 고운 저녁노을”이며, “감탄사”이고, 빛은 천지개벽의 대서사시이며, 대우주의 원동력이다.
시와 시인이 하나가 되고, 시와 빛이 하나가 된다. 시인은 빛이요, 파동이며, 생명인 것이다. 따라서 정동재 시인의 ‘양자역학의 시학’은 인위적이 아닌 자연 그 자체라고 할 수가 있다. 그의 양자역학은 삶의 철학이자 긍정의 철학이며, 따라서 이 삶의 철학이 있기 때문에 그 모든 비판이 가능해진다. 이것이 정동재 시인의 ‘양자역학의 시학’이자 그 장엄하고 웅장한 위용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쟁기질 중인 저 소는 순백의 화합물이다
등짐을 벗고 화합물에서 벗어난 시간
밤별 외양간에 들이고 앉아
또다시 뿔난 황소의 전진 되새김질이다
염소 질소 수소 산소도 일심동체가 되고 싶었던 게다
사실 소였던 게다
굴레 쓴 소처럼 H2O, CO2, C2H5OH, CH4가 되어
들녘 가로지르는 뿔난 소가 되고 싶었던 게다
미세먼지 가득한 이 도시 저 산야에서
대기를 가르며 올라 구름으로 쟁기 끌었던 게다
하늘 이야기 눈비로 써 내리며
사람 사는 이야기 늘 같이하고 싶었던 게다
*시집-살리는 공부
--[들녘 뿔난 황소처럼] 전문
--정동재 시집, {나는 빛이요 파동이요 생명이므로}, 도서출판 지혜, 값 10,000원
정동재 시집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