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상당히 신장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분야에서는 여성의 참여가 아직도 부진하다.
43개국에서의 여성의 정치참여에 관한 최근 연구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정치적 지위, 접근 기회, 영향력을 가진 국가가 하나도 없다는 비관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국가의 헌법에는 '법 앞의 평등' 원칙이 보장되어 있다. 한 마디로 법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너무나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치분야에서의 남녀간의 현격한 불평등은 자유, 평등, 기회의 균등을 기본으로 하는 민주주의 원칙과도 정면으로 상반되는 현상이다.
따라서 지구상의 모든 국가에서 부르짖는 민주주의란 남성을 위한 남성에 의한 남성의 정치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있다. 선진국인 미국의 예를 보더라도 미국헌법 개정안 19조에 의해 미국여성이 참정권을 획득한 후 여성의 의회진출이 1922년 0.2%에서 1988년에 5.2%로, 그리고 1997년에 약 10%(상하 양원의 평균)로 증가하였으나 이런 속도라면 2582년이 되어서야 양성의 평준화가 이루어진다는 계산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여성의 정치참여 문제는 남성학자 중심의 정치학 연구대상에서 관심 밖의 분야였으며 오히려 이 분야에 대한 연구자들을 과소평가하는 경향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21세기의 새로운 문제들인 환경, 정보, 평화, 빈곤문제에 대처해 나가려면 기존의 남성 중심의 사고만으로는 어려우며, 그동안 낭비하고 사장시켜 온 여성의 인적자원을 동원하여 여성 특유의 자질과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본다.[이범준 (1998), "21세기 정치와 여성", 이범준 외,「21세기 정치와 여성」(서울 ; 나남출판), 20-22쪽.]
한국여성의 참정권은 1945년 해방이후 대한민국 헌법과 각종 선거법에 명시되어 있다. 1948년 최초의 선거에서 이미 남녀 보통선거권이 부여되었고, 정치상 아무런 제한 없이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되었다. 이로써 현행 법규정은 여성도 국민으로서 정치적·공적 생활영역에서 균등한 생활을 하면서 성차별을 받지 않는다는 남녀평등권을 구현하고 있다.
헌법제정의 기본이념은 여성과 남성의 평등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으나 아직도 민법규정을 비롯한 여러 부문의 법규정에는 조선시대 남존여비사상의 잔재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사회의 저변에 흐르는 정치·사회·문화적 요소는 끊임없이 여성들을 제약하고 있다. 한국여성의 정치·사회적 참여실태가 저조한 것과 관련해 혹자는 한국여성의 참정권 획득을 위한 운동기간이 1945년 해방이후부터 1948년 헌법 제정 때까지의 짧은 기간이라는 점과 여성의 참정권이 쟁취된 것이라기 보다는 1948년 민주헌정 수립과 함께 보장된 사실에서 찾기도 한다.[송은희, "한국여성의 정치·사회적 참여", 위의 책, 65-66쪽.]
따라서 한국여성의 참정권 투쟁은 법적 투쟁보다는 법과 현실의 괴리감을 좁혀보자는 투쟁으로 보여진다. 이는 선진국의 경우 투쟁의 산물이 법적으로 이어지는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이미 법상으로 규정된 여성참정권을 실질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때늦은 투쟁의 특징을 갖게 된다. 그것도 일부의 여성과 시민단체가 이룩하게 되었지 대부분의 여성과 기존의 정치권은 여성참정권의 중요성이나 의미를 최근까지도 망각하거나 부인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 글에서는 여성의 정치의식과 참여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매체인 정당과 선거과정에서 우리의 현실이 어떠한가를 다루고자 한다.[이 글에서 사용된 방법론은 백영옥, "여성과 정당 그리고 선거", 위의 책, 143-178쪽을 주로 참조하였다. 이런 방법론의 토대 위에서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의 지난 대통령 선거공약과 2000년 총선 대비 정치개혁입법의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여성의 정치참여, 정당과 선거제도
1) 정당과 여성
민주정치는 대의정치를 기초로 하며 그 기본요소로서 정당의 존재를 필수요건으로 하기 때문에 민주정치는 정당정치로 귀착된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정당은 국민의 의사를 통합하고, 이를 국가의 의사로 만들어 나아가는 데 불가결한 존재이며 현대정치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국민의 의사를 정확히 반영하는 것은 국민주권의 실질적인 실현이며 국가권력의 민주적 정당성 확보를 담보하여 주는 것이다. 현대의 대중적 민주주의 하에서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 국가의 의사결정과 국가의 운영 방향이 정당에 의해 주도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의 정치참여도 정당을 통해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정당은 민주정치의 핵심적인 주체이며 정당의 핵심 기능은 후보 추천과 그의 당선을 돕는 선거 기능이기에 남녀의 정치적 평등을 제도화하기 위해서는 정당의 지원이 절대적이다. 따라서 여성의 정치참여를 확대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곳은 정당이며 정당의 역할 중 가장 큰 후보
자 공천을 중심으로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그 동안 여성의 정치참여는 남성의 정치적 기득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인식하거나, 여성들이 정치참여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은 오로지 여성 엘리트들의 실리추구로만 이해되는 경향이 있었다.
여성의 정치참여가 부진했던 서구에서 획기적인 돌파구를 열어준 곳이 바로 정당이었다. 즉 서구의 정당들은 적극적으로 여성후보를 발굴·육성하여 그들에게 유리한 지역으로 공천을 주었다. 서구의 정당들은 정당에서 공천하는 입후보자 명단에 남녀의 공천 숫자를 평등하게 달성하려는 목표 하에 할당제를 도입하였으며 더 나아가 당선할당제를 실시하는 나라들도 생겨나고 있다. 또한 이러한 할당제 운영은 비례대표제에서도 적용되어 여성의 정치참여를 확대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2) 여성의 정치참여에 영향을 미치는 정당 요소들
정당은 민주정치의 핵심적인 주체이며 정당의 핵심기능은 후보추천과 그의 당선을 돕는 선거기능이기에 남녀의 정치적 평등을 제도화하기 위해서는 정당의 지원이 절대적이다. 따라서 여성의 정치참여를 확대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곳은 정당이다.
물론 무소속 후보로 출마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기는 어려우며 특히 여성의 경우는 더욱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선거와 공천에서 정당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며 여성의 정치참여를 부진하게 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데 정당이 기여한 사례를 북유럽의 선진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여성의 정치참여를 정당이 촉진하기 위해서는 정당의 어떤 요소들이 여성의 공천과 연관성이 있는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정치문화
정치문화란 정치와 사회활동에 있어서 여성의 활동에 대한 지배적인 가치와 태도를 의미한다. 전통적인 가치관이 지배적인 곳에서는 여성들이 정치입문을 꺼리게 되고 공천자는 여성후보를 선택하는 것을 마음내켜 하지 않으며 정당은 남녀평등을 지향하는 정책을 내세우는 데 주저한다. 이는 정치문화가 입후보자의 출마의지, 정당의 후보공천 그리고 유권자의 지지를 획득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유교적 정치문화를 지니고 있는 한국과 일본에서는 여성정치인의 활동이 저조한 반면, 북유럽의 평등 지향적 정치문화를 지닌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여성의 정치참여가 활발한 데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는 그 사회내 모든 정당이 남녀평등을 이루고자 하는 공동의 목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비슷한 민주체제하에서 여성의 정치참여가 차이가 나는 것은 정치문화가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2) 선거제도
여성의 정치참여의 비교 문화적 차이를 설명하는 데 가장 일반적인 요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선거제도이다. 선거제도에 관한 비교연구를 분석해 보면 세가지 요인이 여성의 정치참여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영향을 미치는 비중에 따라 살펴보면 선거절차(정당명부식 혹은 단일후보선출), 선거구의 크기(지역구당 의석수) 그리고 비례정도(어떻게 투표를 배정하는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다른 모든 조건을 같다고 보았을 때 여성후보에게 가장 유리한 선거제도는 대선구제하에서 다수의 의원을 뽑는 방법이며, 전국구 정당명부제가 여성에게 가장 유리한 제도로 나타나고 있다. 대만의 경우 '여성의원 당선보장제도'라는 독특한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즉 모든 선거에서 여성은 최소한 10%에서 25%까지 의회 의석수를 할당받도록 헌법, 지방자치법, 선거법에 명시하고 있다. 대만헌법에서는 국회의석의 10%를 여성에게 할당하고 있다.
이와 같이 여성의 정치참여가 확대되고 있는 나라에서는 여성의 정치참여를 할당제로 운영하고 있고 헌법에서보다는 각 정당의 당규로 결정하여 공천할당제를 사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또한 여성의 정치참여를 높이는 좋은 방법으로 비례대표제를 들 수 있다. 비례대표제는 유럽 여러 나라에서 사용하는 제도로, 여성에게 상당히 유리하다. 비례대표제는 통상 다수당 체제를 운영하는 나라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다수당 체제는 소선거구제보다 중선거구제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여성의 정치참여는 어떤 정치체제를 채택하고 있느냐에 따라 많이 좌우되게 된다. 유럽의 경우 다수당 체제와 비례대표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제도하에서 입후보자들의 역할은 미약하다. 이는 유권자가 선거를 할 때 후보자보다는 정당을 중심으로 투표하며 비례대표자도 후보자 개인의 지도력보다는 정당의 역할을 중심으로 투표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에 여성후보자의 당선율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는 여성들이 여러 가지 사회·문화적 요인으로 개발하지 못한 정치력을 정당이 보완해 주기 때문인 것으로 평가된다.
정당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비례대표제에서 여성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십분 발휘하여 자기 정당의 국회의원 수를 늘리려고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정당정치에서 여성의 참여가 종국에 가서는 정당의 당선 비율을 높이고 정당의 지도체제에 남성보다 협조하는 비율이 높은 경향을 보이게 되어 여성을 많이 선출하게 된다. 정당에서 여성의 역할 증대는 전체 사회에서 여성의 현실참여를 높이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므로 여성의 정치참여는 그 동안 사회에서 받은 불평등한 대우와 여성 역할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는 제도적 보완이 정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여성의 정치참여를 위하여 첫째 할당제를 실시했고, 둘째 비례대표제에 여성 공천비율을 높여 여성들을 대거 진출시켜 여성의 정치적 역할을 높여 주었다.
(3) 의원직의 경쟁구조와 정당 경쟁체제
의원직을 둘러싼 경쟁구조는 의원직 획득에 따른 비용과 혜택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다른 정치적 지위와 비교해 의원으로서 갖게 되는 여러 가지 지위, 혜택 및 영향력과 의원직을 얻기 위해 치뤄야 할 비용을 비교해서 혜택이 비용보다 높을 때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 있다. 의원직에 대한 경쟁이 약한 경우 여성과 같이 정치권에서 소외된 집단의 정치권 진입이 용이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의원직을 둘러싼 경쟁도는 의원의 봉급, 재선비율 등으로 측정한 연구가 있다.
의회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당간 경쟁구도가 여성공천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정당수, 의석수에 따라 후보로 공천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4) 정당 조직
정당의 성격은 표방하는 이념이나 이를 구체화한 강령 그리고 당원들의 구성에서 나타나는 특징 등에 따라 결정되지만 이에 못지 않게 정당의 조직적 특징에 따라서도 결정된다. 특히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를 위해 적극적인 우대정책을 펴느냐, 당위론적인 말뿐인 지원만을 하느냐는 정당의 이념과 함께 정당조직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정당의 제도화 수준과 당권의 소재에 따라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제도화된 정당은 정당공천에 관한 절차 및 과정이 당규에 명문화되어 있다. 반면에 제도화되지 않은 정당의 경우는 정당의 공천이 비공식적으로 행해지며 공천에 관한 당규가 지켜지지 않으며 공천과정이 비공개적인 경우가 많다. 또한 당의 권한이 중앙당에 집중되어 있는가 지방 당에 분산되어 있는가에 따라 공천결정과정이 달라질 수 있다.
(5) 정당내 공천과정과 공천 담당자
후보를 공천하는 데 정당에서 요구하는 조건은 무엇이며 이러한 조건들이 여성의 공천심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가 여성 후보공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울러 누가 공천을 담당하며 공천자가 후보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이고 의원직에 대한 공천자의 태도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여성에 대한 공천이 달라질 수 있다.
3. 한국여성의 정치참여 실태분석
1) 정치 문화적 관점
한국의 정치문화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다. 그러나 한국이 고도의 정치 중심 사회이며, 권위주의적 속성이 강하다는 데는 견해를 같이 하고 있다. 이는 유교주의 가부장적 사회전통에서 유래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한국여성의 정치참여를 저해하는 주요 요인으로 첫째 가부장주의, 둘째 권위주의 정권하의 강압적인 통치형태, 셋째 혼탁한 선거풍토를 들 수 있다.
(1) 가부장주의
조선시대부터 유교의 윤리규범과 정치교리에 의한 정치문화는 군주와 관료들을 모든 사회생활에서도 우월적 존재로 만들었으며, 가족 내에서 가장이 갖는 권위, 가족구성원이 갖는 의무에 준해 세습적인 가부장적 관계를 형성해 왔다. 이러한 전통사회의 정치적 유산이 아직도 우리사회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러한 영향은 우리의 정치문화 뿐만 아니라 통치엘리트, 권력구조, 정치행태 및 유권자의 의식 속에서 유지되고 있어 여성을 정치에서 소외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아직도 우리사회에서는 정치는 남성의 영역이며, 여성은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는 인식이 유권자뿐만 아니라 공천권을 쥐고 있는 당직자들에게도 팽배해 있는 실정이다. 그 결과 여성들은 공천에서 불이익을 당하고 유권자들의 남성후보 선호경향에 따라 탈락되고 있다. 정계에 진출한 경우에도 우리사회가 남성중심의 사회라 여성의원들의 사회관계망이 극히 협소하고 제한되어 있어 활동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와 반대로 남성의원들은 여성의원들과는 달리 동창조직, 혈연 및 지연, 지인과의 연고관계 등이 강해서 국회 내에서나 국회 밖에서 폭넓은 사회관계망을 형성하고 있어 필요시에는 최대한으로 동원할 수 있다. 따라서 남성우위의 정치권이 재생산되고 유지되는 것이다.
이처럼 여성의 정치활동이나 정치참여를 어렵게 하는 사회·문화적 환경은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되어 우리사회에 깊게 뿌리내려 있어 이를 단기간 내에 변화시키기는 매우 어렵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여성의 정치의식이 남성의 의식과 같아지기 위해서는 교육, 취업, 사회구조 등 성의 불평등을 초래하는 여러 요인들의 변화가 우선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여성의 의회 참여비율은 그 나라의 경제·문화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 여성들의 교육수준은 높아지고 있으나 평균 교육연수가 남성보다 짧고 대부분의 취업여성들도 저학력·저연령층의 참여비율이 높으며 저임금 직종에 집중되어 있다. 또 정치·경제·언론·교육기관 등에서의 중요한 정책결정직은 남성들이 독점하고 있어 불평등한 사회구조가 그대로 존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정치의식에서의 성별 차이가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
(2) 권위주의 정권하의 강압적인 통치행태
해방후 50년 동안 한국의 정치는 서구의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제도를 채택하면서 민주주의를 정착·발전시키려는 목표를 추구해 왔으나 역대 권위주의 정권이 국민들의 정치참여의 열망과 요구를 억압하여 진정한 의미에서 국민들의 자발적인 정치참여는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특히 권력교체가 선거에 의해 행해진 것이 아니라 대규모 시위나 쿠데타와 같은 비정상적 방법에 의해 이루어짐으로써 많은 시민, 그 중에서도 학생들의 희생이 컸다. 민주화 투쟁과정에서 학생들의 희생이 늘자 가정에서는 자녀들의 정치적 관심과 참여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특히 여학생의 경우 정치사회화가 제대로 이루어지기도 전에 정치에 대해 무관심하도록 집중적으로 교육되었다. 따라서 자신의 정치참여는 꿈도 꾸지 못할 뿐 아니라 다른 여성의 정치참여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견해를 갖게 되는 것이다.
(3) 혼탁한 선거풍토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선거는 최소한의 정당성 확보와 권력의 사후정당화 기능을 수행함에 따라 집권여당은 부족한 정당성을 보완하기 위해 선거에 관권과 정치자금을 최대한 동원했으며, 조직력과 자금력이 부족한 야당은 정치적 이슈를 쟁점화해 야당바람을 일으키고자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폭력이 난무하고, 유권자에게 선심향흥을 베풀며 상대방 후보에 대한 흑색선전 등으로 선거분위기는 혼탁해져 갔다. 따라서 이러한 선거풍토에 도전할 수 있는 여성후보의 수는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2) 선거 제도
우리는 아직도 단일선거구에서 한 사람의 의원을 뽑는 소선구제를 유지하고 있다.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여성들이 조직력과 자금력 부족뿐만 아니라 남성우위의 사회에서 자신의 대표로 여성을 뽑게 되었을 때 지역에 불이익이 생기지나 않을까 하는 유권자의 우려와 여성에 대한 편견에서 다수의 유권자의 지지를 확보하기 어렵다. 반면에 중·대선거구제 하에서는 여성의 당선율이 높아질 수 있다.
여러 명의 후보자를 선택하는 경우 구색을 갖추려는 성향이 유권자 의식 속에 있기 때문이다. 지난 6.27지방선거에서도 2인 이상 뽑는 선거구에서 여성후보가 많이 당선되었으며 중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를 채택했던 9대에서 12대까지 여성의원의 비율은 3.69%로,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를 시행했을 때의 1.87%나, 소선거구제만을 채택했을 때의 0. 74%에 비해 훨씬 높게 나타나고 있다. 외국의 사례에서도 중·대선거구제에서 여성의 당선율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한편 선거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정계에 진출하려는 여성후보의 수가 늘지 않고 있다. 또한 남성들의 경우 친지들이나 이권청탁 등으로 정치자금 마련에는 어려움이 적으나 여성의 경우 자비로 충당하는 경우가 많아 어려움을 겪고 있을 뿐 아니라 정계에 진출하려는 의욕이 저하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구당 관리에 돈이 많이 들어 여성후보의 저변확대가 어려운 실정이다.
3) 정당 상황
(1) 정당이념
우리 나라는 서구처럼 국민의 의식구조가 보수와 진보세력으로 구분되어 있지 않고 야당들이 공히 중도보수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정치인들간에 이념을 공유하는 측면은 적고 개인적인 유대가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정치지도자들은 사회가 나아갈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달성할 수 있도록 국민적 잠재력을 생산적으로 결집하는 노력이 부족하였다. 특히 여성의 잠재력과 에너지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그러나 최근 한국정치에서 여성의 참여가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뒤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가 되고 있고 또한 여성유권자의 정치의식이 높아지면서 여성유권자의 지지를 확보하려는 차원에서 각 정당은 여성의 정치참여에 총론적으로는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정당간 차이는 미약하다.
(2) 정당조직
한국의 정당들은 특정 정치인과 이들을 추종하는 정치지망생들에 의해 구성되어 왔다. 당원 수는 많으나 자발적으로 정당에 가입한 사람은 극히 적으며 급조한 정당원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다. 당은 당수를 정점으로 한 획일적이고 비민주적으로 조직되어 있다. 정당의 영향력은 당수에게 집중되어 있다. 중앙당의 경우 부총재, 당무위원, 당고문, 각급 위원회 위원, 전문위원 등에 여성의 참여율은 매우 저조했으며, 여성위원회나 여성관련 부서에 여성들을 소수 충원하는 경향이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점차 여성당직자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여성당원들은 여성들이 원하는 여성정책을 제시하거나 여성에게 유리한 조직을 확보하는 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해 정당활동에 커다란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선배 정당원들의 경험은 훌륭한 여성인력들의 정당기피 현상을 낳아 정당에서는 필요한 여성인재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3) 정당내 공천과정
이러한 정당풍토에서 정당내 공천권은 당수뇌부가 독점하고 있으며 정당의 최고지도자들은 공천권을 최대 무기로 활용해 왔다. 최근에는 지역정당의 성격이 더욱 짙어져 공천이 당락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가져 공천권을 따기 위한 경쟁은 매우 치열한 편이다.
또한 정치적 충원의 통로가 폐쇄적이라 밀실공천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여당의 경우 정권의 초기에는 선거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다양한 사회적 배경을 가진 명사들을 충원하지만 야당의 경우 문민정부 이전까지는 정부의 탄압과 방해로 인하여 새로운 인물들이 충원되기 어려웠으며 야당정치인들의 측근에 있는 사람들이 주로 충원되어 왔다. 전국구 의원의 경우 여당은 통치권자의 개인적 친분관계나 보상으로서, 야당은 정치자금을 조달하는 방편으로도 이용되어 왔다.
현행의 공천과정은 당에서 준비한 공천후보자 명단을 당총재의 재가를 받아 확정한다. 여성 공천자 명단을 따로 준비하지 않으며 공천후보자 명단을 준비하는 당직자들은 남성들이기 때문에 여성후보가 명단에 포함되기는 쉽지 않다. 또한 후보명단에 포함되더라도 낙점과정에서 참고자료로 활용되는 당의 조사부 또는 관계기관의 정보보고서를 준비하는 실무 팀이 모두 남성들로 구성되어 여성들이 공천을 받기는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과거 정당들은 불법적인 선거운동에 여성을 동원하거나 여성 표를 모으기에 급급했을 뿐 실제로 정당내 여성지도자 육성과 여성후보 확보를 위한 노력이 부족해 정당이 필요로 하는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
(4) 공천 담당자
공천권은 당수뇌부가 독점하고 있으며 폐쇄적으로 운영하고 있어 유능한 여성정치인을 확보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당총재가 여성의 정치참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약하고 여성계에 대한 정보도 부족하여 정치에 대한 야망과 비전을 가지고 여성들의 지지를 받는 여성정치인을 발탁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오늘날의 우리 정치 현실에서 여성후보를 발굴해 정치권에 영입하기도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여성정치인 중에는 정치에 대한 야망을 가지고 도전한 사람은 극히 소수이며 대부분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활동하다가 선거를 앞두고 당시 정치상황에 따라 갑작스레 전국구로 영입된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권력 그 자체를 추구하며 자신의 정치적 야망달성을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남성의원들 속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라 정치체제의 변화를 꾀하기보다는 남성 중심적 제도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이렇게 우리사회에 몇 안되는 여성 고급인력들이 정치권에 들어가 정치적 리더로 활동하기보다는 상징적 역할만을 하다가 일회 임기를 끝으로 정치권에서 멀어지는 사례가 많아지자 정치에 뜻을 둘 만한 여성들의 정치권에 대한 불신 및 기피현상은 변화되지 않고 있다.
지난 15대 총선에서도 신한국당은 253명의 지역구 공천자 중 여성을 단 한명 공천하였으며 이는 당선가능성을 고려한 결과라고 당지도부는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회의는 다른 당에 비해 가장 많은 6개 지역에 여성후보를 공천했으며 여성후보 발굴에도 적극적이었다. 이중 광진 을에서 출마한 추미애 후보만이 당선되었다. 국민회의는 각종 선거에서 비례대표 배분에서 여성에게 25%이상 할당한다고 공약했으며 전국구에 정희경 선대위 공동의장을 1번으로 공천하고, 신낙균 부총재 겸 여성특위위원장을 8번에, 한영애 당무위원을 11번에 공천해 당선시켜 그나마 공약을 실현했다.
4. 여성의 정치참여 제고를 위한 제언: 국민회의 대안을 중심 으로
1) 정치참여 제고를 위한 선진적인 대안들
해방 이후 50년 동안 우리사회는 눈부신 발전을 하였으나 여성의 정계 진출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동안 여성의 정치의식은 매우 높아졌으며 여성의 정치참여 활성화를 위한 여성계의 활동도 매우 활성화되었다. 이제 한국여성의 정치참여 확대를 위해서는 점진적 정책변화에 의존하기보다는 획기적인 제도보완을 지향해야 한다. 실질적인 쿼터제를 사용하여 여성의 의회진출 기회를 용이하게 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보여주는 것과 같이 여성의 의회진출을 확대할 수 있는 선거제도를 도입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최근에는 각 정당들이 여성유권자를 겨냥해 여성정책을 개발하고, 정당 당직에 쿼터제를 도입해 여성간부를 임명하는 등 정당의 이미지를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여성의 정치참여를 확대하기 위해선 정당의 여성에 대한 관심표명보다는 여성들이 정당에서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국회의원 후보의 공천에 쿼터제를 도입해야 한다. 현행의 공천과정을 참고하면 당총재에게 재가를 받기 위해 준비된 공천후보자 명단에 여성후보자가 복수로 들어가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또한 당의 조사부 또는 청와대의 민정 및 정무비서실로 제출되는 관계기관의 정보보고서 작성시 전국에 공천될 여성후보자 명단을 작성하고 실무업무에 여성이 참여토록 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2) 국민회의의 여성의 정치참여 제고를 위한 사항
국민회의는 15대 총선에서도 가장 많은 수의 여성후보를 공천한 바 있으며, 김대중 대통령은 15대 총선과 대선에서 "각종 선거의 비례대표 배분에 있어 여성 비율이 30%이상 되도록 할당할 것이며, 지역구에서도 이 취지를 살리겠다"고 공약하였다. 이를 위해 지난 98년 지방선거에서 여성에게 지역구 공천(광역·기초) 30% 할당, 비례대표의 50%를 여성에게 할당, 기존 여성 지방의원들에 대해 하자가 없을 경우 우선적 공천 등을 약속하였다. 그 결과 광역의회에서 지역구(12곳)와 비례(12곳)를 합해 여성의원이 24명 당선되었다. 이것은 한나라당의 15석에 비해 9석이 많은 숫자이다. 기초의회에서도 24명의 여성이 진출하여 95년의 지방선거 때보다 여성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국민회의는 98년 7월 정치제도개혁을 위해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하였고, 여성 5인을 위원으로 참여시킨 바 있다. 그 결과 공천제도안 중에 비례대표 후보자 명부작성시 여성 30% 할당제를 도입하고 이를 정당법에 명시하도록 한다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이에 김대중 대통령도 여성의 정치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선출직 및 중요 정책결정직에 20-30%이상의 여성을 참여시키기로 약속해왔다.
국민회의 김영배 총재권한대행도 "우리사회에서는 여성들이 구조적인 불이익을 받고 있다"면서 "2000년 16대 총선에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도입될 경우 30%를 여성에 할당하겠다"고 약속하였다.
3) 여성 정치참여 제고의 조건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여성의 정치참여가 확대되기 위한 제도적 조건은 소선거구제보다는 현재 논의 중인 중대선거구제가 유리하고 비례대표 정당명부제의 경우에는 여성에게 일정한 비율을 할당함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방향으로 2000년 총선이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런 제도적인 보완책과 함께 여성들이 정치적 의식을 가지고 정당이나 국회에 적극적으로 진출함이 요구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기존의 정당이나 국회관련 부서의 충원과정에 여성들이 진출할 수 있도록 할당제를 함으로써 의사결정 과정에서 여성이 불리하지 않도록 고려함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정치권에 대한 편견이나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하는 요소들을 제거해야 상대적으로 열세에 놓여 있는 여성들이 정치권에 진출하는 것이 용이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여성의 정치의식 제고, 제도적 보완, 정치·사회적 풍토가 서로 긍정적으로 작용할 때 여성의 정치참여가 높아질 것이라고 본다.
"성평등사회에서의 여성의 정치의식과 참여"에 대한 논평
윤 진 표
( 교수)
유재건 의원님은 한국정치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열악한 위상을 지적하고, 정치발전을 위한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와 정책적 방안을 정당과 선거정치의 측면에서 제시하고 계십니다.
유 의원님의 현상 분석과 한국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의 당위성,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토론자로서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우선 유 의원님의 발표제목이 "성평등사회에서의 여성의 정치의식과 참여"인데 저는 이 제목을 이렇게 이해하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가 여성의 지위가 높아져서 즉, 성평등사회로 나아가고 있으니까 여성의 정치의식과 참여요구도 따라서 높아지고 있고, 그러기 위해 정치권에서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를 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저는 오히려 우리 나라가 아직도 성평등사회와는 거리가 매우 먼 나라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생각할 때 가장 노력해야 할 분야가 바로 정치영역이고, 정치가 변하고 앞장서야만 경제, 사회, 문화 부문들이 따라서 변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정치는 이익의 충돌과 갈등의 발생을 타협과 조정의 절차를 이용해 풀어가는 종합적인 틀이라고 본다면 사회적으로 뿌리깊은 성차별과 이로 인해 파생된 많은 여성관련문제가 정치를 통해 먼저 해결의 모법답안을 찾아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성평등 개념을 제기하고, 일반인들도 이 문제를 인간다운 삶을 위한 우리 사회의 중요한 아젠다로 여기게 되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이를 위한 여성계의 적극적인 활약과 꾸준한 노력도 높이 평가되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사회가 성평등을 자신할 만한 단계에는 결코 이르고 있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여성 지위향상이 가장 낙후되어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가장 파급효과가 큰 분야가 정치분야입니다. 이러한 모순적 현상을 볼 때 여성 지위향상과 성평등 사회의 실현을 위한 정치분야의 개혁이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가를 충분히 인식하게 됩니다.
한편 유 의원님의 발표 제목은 여성의 정치의식이라고 하셨습니다마는 여기에 대해 저는 항상 이런 생각을 합니다. 성의 사회적 문제는 여성의 의식이 문제가 아니라 남성의 의식이 바뀌어야 해소될 수 있는 문제라는 점입니다.
많은 여성학자들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한국에서의 여성문제의 본질과 극복방안은 충분히 개발되어 있다고 보지만 진짜 문제는 이러한 분석과 방안들이 남성들에게 진정으로 잘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한국 여성문제의 핵심은 이론 개발이거나 여성들이 모여서 하는 운동이 아닌 남성 의식변화와 남성 참여확대로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 저의 평소 지론입니다.
물론 오늘의 학술대회의 개최도 이러한 운동의 대 남성 전파와 남성들의 여성 편 만들기가 실제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성들이 참여하는 행사, 남성들을 내 편에 서도록 설득하고 유도하는 전략이 있어야만 그 좋고 지당한 여성학 이론들이 진정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지속적인 캠페인이자 행동 지향적 운동으로 나아가야 할 여성학이 두 손이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평범한 사실을 재삼 깨닫기 바라는 마음에서 한 것입니다.
유재건 의원님은 발표에서 한국적 현실을 정치의식과 문화, 선거제도, 정당조직의 세가지 측면에서 한국 여성 지위의 불평등성을 적절하게 지적하셨습니다.
가부장적 권위주의 문화가 여전히 지배하는 우리 사회의 남성 우위 구조는 남성과 여성을 불문하고 그런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우리의 의식까지 지배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정치권의 권위주의적 통치행태와 혼탁한 선거풍토는 지적하신 바와 같이 이러한 우리의 의식을 더욱 강화시켰습니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분위기가 선거제도와 정당조직, 그리고 그와 관련된 정치행태에 그대로 반영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문제를 인식하는 차원을 넘어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하는 보다 적극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유 의원님은 정치인이시기 때문에 정치제도의 보완, 특히 정당과 선거를 통한 한국여성 위상의 제고를 거론하셨습니다. 특히 의회진출 여성인력의 확대를 위한 선거구제 조정, 비례대표제 활용, 할당제 적용 등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셨습니다. 제도개선의 올바른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집권여당인 국민회의가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통해 비례대표 후보자 중 30%를 여성에게 할당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은 중요한 변화라고 보고 연속적인 조치들이 실현되기를 바랍니다.
미국의 정치학자인 사무엘 헌팅톤은 『변화하는 사회에서의 정치 질서』라는 저서에서 정치발전을 설명하기 위해 제도화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헌팅톤 교수는 근대화과정에 들어선 나라들은 경제성장을 경험하면서 자연적으로 사회적 이동을 하고자 하는 국민들의 욕구가 증가하게 되는데, 이 때 상대적으로 사회적 이동의 기회가 적게 제공된다면 사회적 좌절은 커지게 되고 결국 이것은 정치적으로 해결해 달라는 정치참여 요구의 확대로 나타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참여 요구의 확대에 대해 정치권이 어떠한 대응을 하는가에 따라 다시 말해 정치적 제도를 어떻게 적절하게 만들어 가면서 이러한 요구를 흡수하고, 적응시키는가에 따라 그 나라의 정치발전 정도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편 헌팅톤 교수는 제도화 수준을 결정하는 데는 정당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헌팅톤 교수의 분석을 우리 나라의 여성문제에 적용해 보면 적절한 제도적 조치의 실현, 즉 제도화의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고, 이는 곧 한국 정치발전의 척도가 된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우리 나라 상황에서 여성문제는 사회적 좌절 정도가 이미 경제 사회적 방법만으로는 해소시킬 수 없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헌팅톤 교수의 제안과 같이 정치참여 요구로 표출된 여성문제는 정치권이 특히, 정당이 얼마나 적절하고 효과적인 제도의 수립과 개선을 통해 노력하느냐에 달려있고, 이것은 한국 정치발전의 한 페이지를 만들어 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결론으로 유 의원님은 여성의 정치의식 제고, 제도적 보완, 정치 사회적 풍토가 상호 긍정적으로 작용할 때 여성의 정치참여가 높아질 것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이중에서 제도적 보완, 아니 과감한 제도의 신설을 통해서 위에서부터 아래로 변화시키는 운동성을 확보해 주어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의식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그 효과도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정치 사회적 풍토가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도 당장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나라들은 운좋게 훌륭한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지도자의 인물 됨됨이에 나라의 운명을 걸지도 않습니다. 선진성의 핵심은 제도가 현실에 맞게 법과 원칙에 따라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이것이 시스템적으로 사회를 지탱하면서 평균적인 국민들이 평균 이상의 노력을 하도록 보장해 주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 하에서 이익표출과 집약기능을 하면서 제도를 만들어 가는데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정당이어야 하기 때문에 건강한 정당정치의 실현은 한국 여성문제 해결을 위한 전제가 됩니다.
대의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나타난 정당이 정당내 민주주의조차 실천을 못하면서 당밖의 사회가 민주적으로 움직여주기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자유로운 참여와 경쟁을 보장해주는 절차적 제도입니다.
인구의 절반인 여성이 자유로운 참여와 경쟁을 제한받고 있다면 당연히 우리는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여성 정치참여 확대를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들을 시한을 정해 강제적으로라도 일정수준 이상 달성하고자 하는 노력을 저는 개인적으로 적극 지지합니다.
다종족 사회에서 인구비율에 맞춰 정치적 대표를 뽑는 다수결주의보다 사회적 약자인 소수종족들을 위해 인구비율이상의 대표성을 보장해주는 협의주의 모델을 적용하는 해외사례가 많습니다. 이는 전체 정치의 안정과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현실적이면서도 현명한 선택인 것입니다.
이런 교훈을 볼 때 여성의 지위가 지나치게 약하게 대표되어왔던 한국에서도 이러한 개념을 따라 일정수준 이상으로 대표성을 끌어올리는 제도의 시행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토론자로서 유 의원님께 두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의 당위성은 누구나 인정을 하고 있고 그러기 위해 책임 있는 정당부터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를 위한 과감한 제도개혁과 실행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정치의 현실상, 특히 정당정치에서 여성의 정치참여를 가로막는 장벽들이 여전히 많이 있습니다.
선거에서의 승리가 제일 중요한 정당의 목표인 것은 명백하지만 표를 얻기 위해 벌이는 경쟁에서 아직은 여성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 같은데 이 정도 수준밖에 머무를 수 없게 된 한국 정당정치 내의 장애요인들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둘째, 중앙정치에서 여성문제에 많은 관심과 활동을 하시고, 특히 성신여대가 있는 성북구에 지역구를 가지고 계신 유 의원님께서는 지역구 차원에서 어떤 여성문제 관련 정책을 수립하고 어떤 접근을 하고 계신지, 그리고 구체적으로 추진하고 계신 여성지위 향상을 위한 사업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