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어야 산다(눅23:26-31)
2023.5.7 어린이주일 및 어버이주일, 김상수목사(안흥교회)
오늘은 어린이주일 및 어버이주일이다. 올해는 달력상 어쩔 수 없이 아 두 날을 하나로 합해서 감사예배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 이 복된 날에 주님의 크신 은총이 여러분들과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의 자녀 손들과 가정에 늘 풍성하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한다. 오늘 말씀을 위해서 오늘 본문 말씀을 묵상하고, 간절히 기도하는 중에 주님이 감동을 주신 메시지의 핵심은 “울어야 산다”는 말씀이다.
먼저 오늘 본문 말씀인 누가복음 23장 27절 말씀을 보라. 주님께서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주님이 골고다로 올라가던 고난의 길)로 가실 때,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지르는 냉혹한 무리들 속에서 마치 진흙탕 같은 상황 속에서도 맑게 솟아나는 옹달샘같은 존재들이 있었다. 가슴을 치며 슬피 울면서 주님을 따라갔던 여인들이 바로 그들이다(눅23:27).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눅23:27)
그녀들은 왜 이렇게 슬피 울었을까? 고난의 현장에 주님과 함께 있었기에 일단 감정적으로 눈물이 쏟아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여인들의 눈물에는 영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안타까움이나 어머니와 같은 사랑의 마음이 복합적으로 담겨있었다. 어쩌면 이 여자들 중에 일부는 갈릴리에서 주님께서 떼어 주신 떡과 물고기를 먹으면서 기뻐했었을 것이다. 그녀들 중에는 주님이 그녀들의 자녀들을 안아주셨고, 질병을 고쳐주셨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소중하고 행복했던 기억들이 많을수록 눈물은 더 많이 나오고, 잔인한 기억이 많을수록 눈물은 거의 나오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그렇기에 이 여인들의 울음은 사랑의 눈물인 동시에 핍박자들에게는 항의의 눈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주님을 욕하고, 손짓하며 비웃는 군중들과 냉정한 로마 군인들에게 이 여인들의 울음소리는 단지 바닷가에 한 순간 스쳐가는 바람 소리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애절한 눈물이 한 분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바로 예수님이다. 빌라도 관정에서 성문 밖 골고다 언덕까지의 거리는 약 800m에서 1km 정도의 거리이다. 아주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밤새 심문받으신 주님이 채찍을 맞으면서, 약 40kg정도 되는 십자가의 가로막대기를 매고 가시기에는 너무도 힘든 길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주님은 여인들의 눈물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 23:28)
주님은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앞으로 성전이 무너지고, 예루살렘이 파괴되는 엄청난 재앙이 자녀들에게 닥쳐 올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9장 41-44절 말씀에도 보면, 예루살렘에 임할 재앙을 미리 아시고 우셨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감람산 중턱에 주님이 예루살렘을 보면서 우셨던 것을 기념하는 눈물교회가 있다.
“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 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눅 19:42-44)
이 말씀에 보면, 로마군대에 의해서 예루살렘과 성전이 파괴될 때,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라는 말씀이 있다. 어린아이들을 땅에 메어쳐서 사정없이 죽이는 끔찍한 일을 상상해 보라. 주님의 이 말씀처럼 A.D 70년 예루살렘은 로마의 제7군단 티투스 장군에 의해서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 당시 유대인구 800만 중에 어린이들을 포함해서 무려 110만 명이 무자비하게 죽었다. 그래서 주님은 여인들을 향해서,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의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 23:28)”고 하셨다.
우리들은 이 말씀을 통해서 악한 이 시대에 우리가 진짜 울어야 대상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첫째는 누구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울어야 한다(“너희와”, 28절). 나 같은 죄인을 위해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흘려주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울어야 한다. 또한 너무나 쉽게 첫사랑을 잊어버리고, 여전히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세상 쾌락을 끊지 못하는 나의 연약함과 불신앙을 생각하면서 울어야 한다. 그래야 주님이 새롭게 만져주시는 치유의 은혜도 경험할 수 있다.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지 못한다. 눈물을 머금은 눈으로만 천국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암 치료 전문의사인 이병욱 박사(장로)는 『울어야 삽니다』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눈물은 겸손하고 부드럽습니다. 그 눈물이 흐를 때 단단히 맺혔던 마음이 녹아내립니다. 부드러운 눈물이 단단한 상처와 굳은 마음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눈물은 하나님이 주신 천연항암제입니다. 모든 긴장과 억압과 감정과 체면을 풀어놓은 채 마음껏 흘리는 눈물. 이런 눈물이 어린아이 같은 마음과 영혼으로 되돌아가는 길을 일러 줍니다…….
몸이 아픈 것보다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은 바로 마음이 아픈 것입니다. 마음은 몸보다 먼저 병듭니다. 화내야 할 일에 화내지 못하고 슬픈 일에 울지 못한 마음은 결국 메마른 감정으로 변질됩니다. 이때 몸 안에 쌓인 독소들을 해독시키는 것이 눈물입니다. 눈물은 우리 마음속에 깊숙이 감춰져 있던 감정의 응어리들은 풀어가는 열쇠입니다. 그래서 눈물은 곧 치유와 회복으로 가는 관문이 됩니다.”
*** 이병욱 장로/의학박사 특당 "암도 이기는 눈물치료"CGNTV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LtRMqUjFbos
둘째로 우리들이 가슴을 치면서 슬피 울어야할 대상은 자녀들이다("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28절).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는 말씀은 곧 ‘너희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말씀이다. 부모의 영성이 식으면 자녀의 영성도 식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시대에는 예루살렘의 파괴보다도 더 크고 흉악한 이단들이나 악한 일들이 우리들의 자녀들을 기다리고 있다. 어제도 태안에서 어느 여중생들이 또 다른 여학생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동영상이 뉴스에 보도 되었다. 내 자식이 가해자가 될 수도 있고, 피해자가 될 개연성이 늘 있다.
그렇기에 그들의 영혼과 신앙과 미래를 위해서 가슴을 치며 눈물로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면서도, 여인들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으셨던 것처럼, 주님은 자녀들을 위한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은 동일한 원리로 부모(또는 조부모) 된 우리들의 심정을 너무도 잘 아시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녀를 위하여 울라”는 말씀의 적용범위를 좀 더 확대하면, 가족들(부모, 형제, 자매, 친척, 성도들 등)과 이웃들도 이 범주에 들 수 있다. 아내의 영성이 식으면, 거의 백발백중 남편의 영성도 함께 식게 되어있다. 다른 가족들과 친구나 이웃들과의 관계에서도 동일하다. 그렇가이 이들을 위해서 울어야 한다. 울며 기도해야 막혔던 관계의 혈이 뚫리고, 전도의 문도 열린다.
창세기 50장 17절 말씀에 보면, 야곱이 죽은 후에 형들이 찾아와서 용서를 구할 때, 요셉은 울었다(창50:17). 이 눈물은 용서의 눈물이며, 화해의 눈물이다. 가식이 없고, 거짓이 없는 투명한 눈물이 중요하다. 가식적인 눈물은 오히려 상황만 더 악화시킨다. 이러한 진실한 눈물이 그와 형들과의 관계를 회복시켰다.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창50:1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 여러분들이여,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위해 울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우리의 자녀들과 부모, 배우자, 형제, 성도들 또는 주님을 알지 못하는 이웃들의 영혼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자. 그래야 나의 영혼과 그들의 영혼이 살아나고, 관계가 회복된다. 하나님 앞에서 울어야 산다.
혹시 자녀나 가족간의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해서 지금도 여전히 가슴 아파하고 있다면, 힘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공의로우신 성품에 모든 것을 맡기고, 눈물로 간구하자. 세상이 아무리 악해도, 그래도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의 기도를 들으시고,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신다. 이것은 모두가 다 함께 사는 길이다. 주님이 우리와 늘 함께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