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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생가(潘基文 生家) 5월 따스한 봄날 기독교대한감리회 '08 충북연회 평신도 총무 모임으로 음성에서 담소한후 L장로님 부부와 청주오던 길에 잠간 반기문의 생가 행치마을에 들렀다. 충북 음성군 원남면 행치길 17 (상당1리, 행치마을) 생가마을인 행치는 보덕산(큰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는 마을로 약 500년전 광주반씨 장절공파에 의해 형성되었고, 광주반씨 장절공파 행치종친 15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청주와 음성을 연결하는 국도변의 행치고개에 위치한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반기문 생가는 초가삼간 흙벽집으로 지어졌으며, 1970년대 새마을사업시 스레트 지붕으로 개조되었고, 2002년 3월경에 철거되어 2010년 예전 사진자료를 바탕으로 복원되었다. 삼신산(三神山)과 행치(杏峙)마을의 유래 마을 뒷산 삼신산은 해발 510m이다. 이 산의 정기가 워낙 강하게 네 방향으로 뭉치고 뻗어있는데다 온산 주변이 온통 살구꽃으로 뒤덮혀 있어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여 삼신(天神, 地神, 明神)이 살았던 곳이라 하여 삼신산이라 부르기도 하고 수번의 난리통에도 본 마을 사람들은 다치거나 희생된 사람이 없었던 것이 뒷산의 큰 덕이었다고 하여, 클 보(普)자와 덕 덕(德)자를 따서 보덕산(普德山)이라 부르기도 하고, 외적의 침입이 있을 때마다 봉화불을 피워 서로의 연락을 취했던 곳이라 하여 봉화뚝이라 부르기도 하고, 산이 본래 크다 하여 큰 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 생가 입구의 보덕정(普德亭) 그 언젠가는 삼신산의 정기가 발동하게 되면 이곳에선 전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칠 수 있는 커다란 사람과 커다란 부자와 커다란 장수가 태어날 것이라는 전설이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행치 지명에 대한 유래는 행치고개 정상에 수백년 묵은 살구나무가 있었는데, 이 나무는 본 고장의 수호신으로 섬겨져 정원대보름 밤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정한수를 떠다 놓고 소원을 빌며 제를 올렸다. ▲ 정숙문(靜肅門) 이를 보고 커다란 살구나무가 있는 고개라하여 살구 행(杏)자와 고개 치(峙)자를 따서 행치라 이름하였으며 들판에도 온통 살구나무로 뒤덮혀 있는 것을 보고 들판 이름을 살구징이라 부르고 있던 중 원남산단 조성으로 인해 그 지명이 소멸되었으며. 행치고개 살구나무 역시 두 번의 도로개설 중에 산허리가 잘려나감으로써 훼손되었다. ▲ 숭모재(崇慕齊) 태백산은 여자가 성하는 산인데 비해 삼신산은 남자가 성하는 산으로써 등산객들이나 젊은 부부들이 이 산을 찾아와 삼신의 정기를 받아 훌륭한 남아를 많이 생산하기를 원하노라. 1450년경 이곳에 광주 반(潘)씨와 풍천 임(任)씨가 아래위로 둥지를 틀고 살매. 그 우애가 형제 같았으나 세월의 변천에 따라 지금은 많은 성씨들이 윗과 아랫말, 돌담울로 나뉘어 살고 있던 중 돌담울은 원남산단 조성으로 인해 윗말과 아랫말 중간으로 이주하여 중말을 이루고 있다.
▲▼ 광주반씨 장절공파 행치종중 사당 숭모사(崇慕祠) 1914년 행정구역상 명칭으로 상당(上唐)1리라 부르고 있으며, 이 고개의 물이 한강과 금강으로 갈라지는 분수령 고개라하여 한금령이라 이름지어 부르고 있는데, 행치고개란 본래의 지명이 퇴색될까 염려스럽도다. (2012년 10월 상당1리주민 일동) 반기문(潘基文) 학력 및 주요경력 생년월일: 1944. 6.13. 출생: 충북 음성군 원남면 상당1리 행치(杏峙)마을 학력: 충주 교현초등학교(1957) 충주중학교(1960) 충주고등학교(1963) 서울대 외교학과(1970), 미 하버드대 행정학 석사(1985) ‘70.02 제3회 외무고시(차석 합격), ’70.05 외무부 입부, ‘72.09 주 뉴델리 부영사, ‘74.01 주 인도 2등 서기관, ‘80.11 외무부 국제연합과장, ‘80.11 국무총리비서실 의전비서관, ‘87.07 주 미국참사관 겸 총영사, ‘90.06 외무부 미주국장, ‘92.02 외무부장관 특별보좌관, (남북 핵 동제공동위원회 부위원장) ‘92.07 주 미국공사,‘95.02 외무부 외교정책실장, ‘96.01 외무부 제1차관보, ‘96.02 대통령비서실 의전수석비서관, ‘96.11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수석비서관, ‘98.05 주 오스트리아대사 겸 주비엔나 국제기구대표부 대사, ‘99.01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 준비위원회 의장, ‘00.01 외교통상부 차관, ‘01.05 주 국제연합대사 (제56차 유엔총회의장 비서실장), ‘02.09 외교통상부 본부대사, ‘03.02 대통령비서실 외교보좌관, ‘04.01 제33대 외교통상부 장관, ‘06.12 제8대 유엔사무총장 장수바위의 전설 태고로 부터 원서(원남) 땅에서 백마를 탄 장수가 태어나 천하를 통일할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달이차며 삼신산에서 삼신의 정기를 받아 삼신의 장수가 태어났고 시루산에선 시루산의 정기를 받아 시루의 장수가 태어나 자라고 있었다. 이를 본 장수바위는 삼신산의 장수가 태어난 지 3일 만에 뒷동산에 놀러왔다가 살구꽃 향기에 취해 넙적한 바위에 누워 낮잠을 자는데 그 장수의 체온으로 인하여 백마가 치솟아 하늘을 나는데 두 장수가 서로 자기 말이라고 다투기 시작 서로 바위를 던져 삼신산과 시루산 중턱에 꽂혀 박혔고 백마는 주인이 빨리 타주기를 바라며 하늘을 날다 지쳐 행치마을 두 번(장맹이 부모골), 마송리에 두 번(장승뱅이 진설미) 내려 앉아 자기 주인을 기다렸지만 타지 앉자 백마는 슬피울며 하늘로 올라갔다. 예나 지금이나 큰일을 앞에 놓고 서로 다투면 모두 잃는다는 교훈을 삼고자뒷동산에 있던 장수바위를 도로포장확장공사로 인하여 이 곳으로 옮기노라 외교관이 되기까지의 반기문(潘基文)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1944년 충북 음성에서 태어났다. 50년대 말 창고업을 하시던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나기 전까지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아버지가 정미소에서 일하는 등 근근이 끼니를 이어가는 보통의 가정에서 자랐다. 어려서부터 영어를 좋아하여 '충주의 영어 신동'으로 불리던 그는 충주고 3학년(1962년) 적십자사 비스타(VISTA) 프로그램의 한국대표 4명에 뽑혀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게 된다. 이때 미국인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충주여고 학생들이 복주머니를 만들었고 충주여고 학생회장이 반기문 학생에게 전달하게 된다. 그 학생회장이 지금의 아내인 유순택 여사이다. 미국으로 간 후 존 F. 케네디 대통령 부부와 대화를 하는 중 자신의 꿈에 대해 얘기할 시간이 있었다고 한다. 케네디 대통령이 꿈이 뭐냐고 했더니 스스럼없이 외교관이 되겠다고 했단다. 그 후 그의 진로는 외교관에 맞춰 진행되게 된다. 충주고 졸업 후 청년이 된 반기문은 서울대 외교학과에 들어간다. 당시 동창이었던 여성국 사장(대우버스 주식회사 사장)의 말에 따르면 강의 노트가 정말 꼼꼼하고 하나도 빠지지 않는 어떤 면에서는 교과서보다 더 나았다고 한다. 동기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아 서로 보겠다고 경쟁이 치열할 정도였다고 한다. 대학교를 졸업한 반기문은 1970년 제3회 외무고시에 차석으로 합격하고 이듬해 1971년에 유순택여사와 서울 동작구 흑석동 10만 원짜리 단칸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게 된다. 대한민국외교관 반기문(潘基文) 고시는 차석을 했지만, 신입 외교관 연수를 마칠 때 수석을 차지한 반기문은 그의 첫 부임지를 인도 뉴델리로 선택한다. 모든 외교관의 1지망이었던 워싱턴을 포기하고 뉴델리로 간 이유는 어머님께 집을 사드리고 싶은 이유였다고 한다. 위험지에 대한 특별수당을 모아 집을 사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이렇듯 한때의 마시멜로를 참은 반기문에게 평생의 은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주 인도대사였던 노신영 전 국무총리를 만나게 되는데 노 전 국무총리는 당시 이런 말을 했을 정도로 반기문에게 전적인 신뢰를 보냈다고 한다. 반기문 비채길(비움과 채움의 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고향마을 뒷산인 보덕산에 조성한 반기문 비채길(비움과 채움의 길) 하늘길, 땅길, 빛의 길 등 3개 테마 코스, 연장 8.5㎞에 이르는 비채길은 속리산 천왕봉에서 갈라져 충북 북부를 동서로 지나는 한남 금북정맥 구간에 위치해 있다. 반 총장이 태어난 원남면 상당1리 행치마을과 보덕산(큰산)에 얽힌 전설을 바탕으로 2013년에 만들었다. 행치마을은 옛날 보덕산에 놀러왔던 삼신(天 地 明)이 만발한 살구꽃에 반해 머물러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삼신의 보살핌으로 이 마을에 부자와 장수, 크게 이름을 떨칠 인물이 태어난다는 설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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